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32화
* * *
회귀 전, 어느 날.
가이드를 들은 유피트 멤버들의 눈이 커지는가 싶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곡에 대한 소감을 늘어놓았다.
“와, 노래 좋다.”
“그러니까, 제목도 예뻐.”
“그러네.”
“예쁘다, 곡이 전체적으로.”
“좋네요.”
좀처럼 말이 없는 유찬마저 곡이 좋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그 역시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DP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맺은 작곡가 재진이 부른 가이드 버전이라, 썩 잘 불렀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잔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자꾸 귓가에 맴도는 곡이었다.
수겸은 얼핏 들은 가사 중에 ‘이번만은 네 소원꽃잎이 되고 싶어. 내 소원은 오직 너니까’라는 대목이 유난히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든 것 같아 다행이네.”
“진짜 좋아요.”
흐뭇해하는 재진에게 수겸은 작게 박수를 치며 대꾸했다. 재진은 흡족하게 웃었다.
“이 곡은 아마 수록곡으로 들어갈 것 같고, 다른 곡 또 들려줄게. 제목은 새드 무비랑 새드 엔딩 중에 고민 중이야.”
“넵.”
이어서 그가 또 다른 발라드 수록곡을 틀어주었다. 비교적 빠른 멜로디였지만 이 역시 발라드곡이었다. 고음 구간이 많은 노래여서 가창력을 뽐내기에는 좋을 것 같았다. 다만, 임팩트 면에서는 <소원꽃잎>에 비해 덜했다.
그 외에 <돌아와>라는 댄스곡도 한 곡 들었다. 나머지 곡들은 가사가 아직 미완성이라 다음 주쯤에 들려주겠다고 했다.
총 세 곡의 노래를 듣고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수겸은 겨우 한 번 들은 <소원꽃잎>이 귓가에 맴돌았다.
“수겸이 형, 무슨 생각해?”
“어어? 왜?”
“아니, 그냥 뭔가 생각하는 눈치라서 물어봤지.”
“아, 그냥. 아까 들은 곡이 너무 좋아서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
한솔의 물음에 수겸은 솔직하게 대꾸했다. 어찌나 곡이 마음에 들었는지, 단순히 이야기하는 것뿐인데도 가슴이 콩닥콩닥 뛸 정도였다.
“아, 소원꽃잎?”
“헉, 어떻게 알았어?”
“형이 아까 소원꽃잎 들을 때 표정 자체가 다르더라고.”
“아, 정말? 몰랐어.”
“당연히 모르지, 형 표정이니까.”
“뭐야, 정한솔. 너는 뭐 수겸이 얼굴을 그렇게 열심히 봤냐?”
운전석에 있던 민성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한솔은 민망한 듯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뭐. 그냥 내가 형이랑 가까이 앉아 있어서 본 거지, 보려고 본 건 아니었어요. 형도 오해하지 마! 내가 일부러 형 얼굴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니야. 그냥 어쩌다 본 건데 타이밍이 맞았던 거지.”
“어우, 알았어. 뭘 그렇게까지 변명이야? 오해 안 해. 그리고 뭐 멤버끼리 얼굴 좀 들여다볼 수도 있는 거지. 그런 거로 이상하게 생각 안 해.”
수겸은 한솔의 긴긴 변명에 고개까지 절레절레 저어가며 대꾸했다. 그러자, 한솔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와, 눈 온다. 눈.”
그때 창문 너머로 송이송이 하얀 눈꽃이 내리는 게 보였다. 얼핏 보면 벚꽃잎이 떨어지는 거로 오해할 만큼 큼지막한 눈송이였다.
“눈 진짜 예쁘게 온다.”
“그치, 나 꽃잎인 줄 알았어.”
태원의 말에 수겸이 신이 나서 대꾸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하얀 눈송이가 하늘하늘 떨어지고 있었다.
“차들 기어간다, 기어가.”
민성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지만, 수겸은 오히려 차가 천천히 가서 더 좋았다. 예쁘게 내리는 눈을 더 오래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려서 눈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 내리겠다고 했다가는 민성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는 알기에 꾹 참아야 했다.
아쉬움을 달래며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를 타고 숙소까지 도착하는 동안 다행히 눈은 그치지 않았다. 계속해서 소록소록 내린 눈은 어느새 소복하게 쌓였다. 연습실에서 숙소가 그리 먼 길이 아니었는데, 그만큼 길이 많이 막혔다는 증거였다.
마침내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수겸은 기다렸다는 듯이 재빠르게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엘리베이터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의 행동에 덩달아 다른 멤버들 역시 마음이 급해져 서둘러야만 했다.
“어디 가려고?”
“응, 눈 구경 좀 하려고.”
지하 주차장에서 내린 수겸은 엘리베이터 1층 버튼을 눌렀다. 숙소는 5층이었기에 수겸의 행동에 태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달했다. 수겸은 곧바로 1층에 내리는데, 차이겸이 따라 내렸다.
“어? 너는 어디 가?”
“아무 데도 안 가는데.”
“엥, 그런데 왜 1층에서 내려?”
“내 맘이지.”
“허…….”
다소 삐딱하긴 하지만, 틀린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겸의 말에 수겸은 기가 찼다. 마음속으로 ‘그래, 너 잘났다!’라고 한 소리 하며 수겸은 밖으로 향했다.
뽀드득, 뽀드득. 수겸이 걸을 때마다 하얀 눈이 기분 좋게 노래 불렀다. 수겸은 그 소리에 집중하며 여전히 꽃잎처럼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아까보다는 눈발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커다랗고 하얀 눈은 그치지 않고 내렸다. 온 세상이 스노우볼이 되기라도 한 듯,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수겸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살랑살랑 내리는 눈이 수겸의 손바닥에 내릴 듯 아슬아슬하게 비켜 지나갔다.
아쉬움에 수겸은 천천히 내리는 눈 한 송이를 목표물로 잡고 그 방향을 향해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뭐 하냐, 애도 아니고.”
등 뒤로 들려오는 핀잔에 수겸이 뾰족해진 눈을 치뜨며 돌아섰다. 차이겸이 팔짱을 끼고 수겸을 보고 있었다.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내 맘이지, 왜.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되냐?”
“그건 아니지만…….”
수겸은 ‘왜 하필이면 여기 있어서, 즐겁게 눈 구경을 하는 내 속을 긁느냐’는 뒷말은 애써 삼켰다. 대신 수겸은 홱 돌아서 다시금 하늘을 향해 손을 높이 뻗었다.
“그런다고 눈이 잡히냐?”
“아오, 너 좀 가라! 왜 여기서 속을 긁어?”
결국 수겸은 참지 못하고 바락 성질을 내고 말았다. 그러나 차이겸은 어깨를 으쓱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얄미워서 열이 뻗쳤다.
“저거, 저거는 좀 잡을 수 있겠네.”
“뭐? 어디? 어…… 되겠다, 되겠다!”
차이겸의 말에 수겸은 씩씩거리던 것도 잊고 얼른 양손을 내밀어 눈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눈꽃은 아슬아슬하게 수겸의 손에서 벗어났다.
“아, 아까워!”
“그걸 못 받냐? 이렇게, 손만 쭉 뻗으면…….”
“어디 봐! 뭐야, 자기도 못 받으면서.”
아무것도 없는 차이겸의 손바닥을 확인한 수겸이 툴툴거리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차이겸은 머쓱한지 손바닥을 외투에 쓱 문질러 닦았다.
“원래 이런 건 잘 안 잡혀. 꽃잎도 아니고, 나뭇잎도 아니잖아. 그리고 눈을 잡아서 뭘 어쩔 건데. 손바닥에 닿자마자 녹아 사라질걸.”
“……너 안 가냐?”
“…….”
기어코 수겸의 로망을 와장창 깨뜨리는 이겸 때문에 수겸은 성이 났다.
그가 말하는 것쯤은 수겸 역시 알고 있었다. 보통 이렇게 내리는 걸 잡는 것은 소원꽃잎이라는 제목처럼 꽃잎이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떨어지는 나뭇잎 정도는 되어야 했다.
눈송이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그 정도로 크지는 않으니 잡기가 배는 힘들었다. 게다가 어찌어찌 잡는다 치더라도 눈이라는 특성상 금세 녹아내리고 말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리는 눈꽃을 잡고 싶은 마음은 글쎄, 아마 오늘이라서 그런 것일 터였다. 다른 날이었다면 예쁘다고 생각만 하고 지나치고 말았을 눈송이가 유난히 꽃잎처럼 보이는 오늘이라서.
사람에게는 내일이면 느낄 수 없는 순간의 감정이 존재한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감정 말이다.
눈송이를 잡고 싶은 마음이 수겸에게는 그러했다.
유난히 눈이 예뻐 보이고, 내리는 눈송이를 받으면 왠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오늘. 수겸은 그 감정에 오롯이 손을 내민 것이었다.
그렇기에 수겸은 타박하는 이겸을 모른 척하고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눈송이를 받고자 노력했다.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기에.
수겸은 한참을 폴짝폴짝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그깟 눈송이가 뭐라고, 추운 줄도 몰랐다.
마침내, 새끼손톱만 한 눈송이 하나가 수겸의 오른손바닥 위에 떨어졌다.
“어, 어어, 어! 됐다, 됐다!”
“어디? 받았어?”
흥분한 수겸이 외치자, 차이겸이 달려왔다. 몇 번 타박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내심 수겸이 눈송이를 받기를 바라고 있던 모양이었다.
손바닥 위에 눈꽃을 보며 환하게 웃던 수겸이 고개를 들자, 코앞에서 웃고 있는 이겸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지워냈다.
“뭐야, 너 왜 이렇게 좋아해?”
“뭐래, 안 좋아했거든.”
“웃겨, 너 아까 엄청 환하게 웃고 있었거든.”
“잘못 본 거야. 됐고, 눈이나 봐. 녹고 나서 후회하기 전에.”
“헉, 맞다. 내 소중한 눈…… 아, 다 녹았어.”
수겸은 얼른 다시금 손바닥 위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바라보았다. 그 짧은 사이 눈은 자그마한 물방울이 되어 녹아버렸다. 아쉬움에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녹을 거 알고 있었잖아.”
“그치만…….”
“받았으니까 됐지.”
“그건 그래.”
수겸은 아쉬워하면서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애초에 눈이기에 금방 녹아버릴 것을 알고도 한 행동이었다. 그러니 눈이 녹더라도 그리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었다.
“소원이나 빌어.”
“소원?”
“그러려고 잡은 거 아니었어?”
“어…… 아닌데? 그냥 예뻐서 잡은 건데?”
이겸의 물음에 수겸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물론 오늘 들은 노래인 소원꽃잎이 생각나기는 했지만, 눈송이를 잡으려 한 이유가 소원을 빌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내가 빌어야지.”
“어, 어? 야, 안 돼! 내 거야!”
수겸이 화들짝 놀라 소원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차이겸은 재수 없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 행동에 불길함을 느낀 수겸이 그를 노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수겸을 열 받게 하기 충분했다.
“벌써 다 빌었어.”
“뭐……? 야, 그런 게 어디 있어!”
“어차피 소원 빌 생각도 없었다며.”
“그래도! 내가 잡았는데! 야, 빨리 취소해!”
“싫은데. 이미 빌었어.”
“이 씨…… 너 진짜……. 뭐라고 빌었는데, 내가 잡은 눈꽃이니까 말해, 빨리.”
“싫어. 원래 이런 건 비밀이야. 어휴, 춥다. 난 들어간다.”
“뭐? 그런 게 어딨어? 차이겸, 차이겨엄!”
수겸은 멀어지는 차이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는 사이에도 두 사람 위로 하얀 눈꽃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