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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58화 (59/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58화

생각지도 못한 한솔의 물음에 수겸은 할 말을 잃었다.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탓이었다.

마른 입술만 달싹거리는데, 한솔의 표정이 당황한 듯 변했다. 그 모습을 본 수겸이 놀란 눈을 깜빡거렸다.

“아, 아니. 형 왜 그렇게 놀라?”

“어, 어?”

“당연히 장난이지. 설마 진짜 죽었었어? 그럴 리가 없잖아.”

“……어, 그치. 그럴 리가 없지.”

당황한 수겸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한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모양이었다.

“형, 진짜 이상해. 뭐 숨기는 거 있어?”

“에이, 숨기는 거라니, 내가 왜.”

“흐음……. 알았어.”

한솔은 마뜩잖은 듯했지만, 다행히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수겸은 한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재빠르게 주제를 바꾸었다.

“지금 누구 씻고 있는 사람 있어?”

“어…… 몰라. 일단 나랑 형은 아냐.”

“그래, 너랑 나는 아니겠지.”

한솔의 장난스러운 말에 수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을 나섰다. 수겸은 곧장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욕실로 향했다. 노크를 하고 답을 기다리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허억.”

놀란 수겸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욕실에서 나온 이는 차이겸이었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나타난 차이겸은 트레이닝 바지만 걸치고 있었다.

촉촉한 물기 덕분에 안 그래도 탄탄한 몸이 훨씬 더 좋아 보였다. 수겸은 힐끔 옷 안에 가려진 자신의 아무것도 없는 몸을 내려다보았다가, 다시금 차이겸의 몸을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봐?”

“좋겠다, 너는…….”

“뭐가?”

“내 몫까지 키워줘, 근육……. 나는 못 하니까.”

수겸은 눈물을 머금고 중얼거렸다. 그러곤 슬픈 마음을 달래며 차이겸의 탄탄한 가슴을 탁탁 두드렸다. 대리만족이었다.

“야이 씨, 미쳤냐?”

“아, 미안. 나도 모르게 손이 갔어.”

“너는 진짜…….”

차이겸은 당황했는지 얼굴이 붉게 익었다. 이겸이 그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기에 외려 수겸이 더 당황하고 말았다. 수겸은 덩달아 밀려드는 민망함에 그를 비켜나 얼른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좀 만질 수도 있지, 짜식. 답지 않게 당황하고 그래.”

머쓱해진 수겸은 차이겸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탓했다. 구시렁거리며 훌렁훌렁 옷을 벗은 수겸은 금세 알몸이 되었다.

“어우, 샤워를 뭘 어떻게 했길래 물바다야?”

샤워 부스가 있는데도 욕실 바닥 전체가 물로 흥건했다. 수겸은 이맛살을 구기며 조심스럽게 문에 달린 옷걸이에 옷을 걸었다.

발바닥을 찰박하게 적시는 물을 밟으며 샤워 부스로 들어선 수겸이 인상을 썼다. 며칠 전부터 샤워 부스의 물이 내려가는 게 시원찮다 싶더라니, 오늘따라 유난히 물이 거의 안 내려갔다.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물이 내려가기는 했다, 달팽이가 기어가는 속도로. 아예 고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한 수겸은 팔짱을 끼고 물이 빠지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그때였다. 벌컥 욕실 문이 활짝 열렸다. 놀란 수겸이 토끼 눈을 뜨고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어찌나 문이 세게 열렸는지, 문에 걸어둔 옷이 젖은 바닥에 모조리 떨어지고 말았다.

“아, 뭐, 뭐야!”

“헉, 미안하다!”

문을 연 사람은 태원이었다. 그는 안에 수겸이 있는 줄 몰랐는지 당황한 듯 얼어붙은 모양이었다. 태원은 가만히 서서 어쩔 줄 모르며 수겸을 바라보았다.

수겸은 헐벗은 몸을 가리기 위해 부스 안에서 몸을 웅크렸다.

“어, 얼른 나가!”

“헉, 그래, 미, 미안!”

수겸의 축객령에 태원은 서둘러 쾅 문을 닫고 사라졌다. 수겸은 문이 닫히자마자 부스 밖으로 나가 떨어진 옷을 주워 살폈다.

방금 벗은 옷은 물론, 갈아입고자 챙긴 옷과 속옷마저 반쯤은 젖어 있었다.

“으으, 하여간 태원이 형, 가만 안 둬. 할 수 없지. 수건으로 감싸고 나가지, 뭐.”

수겸은 치미는 분노에 이를 갈며 다시금 옷걸이에 옷을 걸고는 샤워 부스 안으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 고여 있던 물이 꽤 많이 빠져 있었다.

그 덕분이라기에는 뭐하지만 수겸은 한층 개운하게 샤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물이 빠진 게 무색하게도 쏟아지는 샤워기의 물줄기에 다시금 부스 안에는 찰박찰박 물이 고였다.

한창 샤워를 하는데 돌연 욕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있나 싶기는 했지만, 욕실에 있는 수겸이 뭘 어쩔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저 최대한 빠르게 샤워를 마치는 것밖에는 말이다. 샤워를 하는 수겸의 손길이 빨라졌다.

평소보다 배는 빠르게 샤워를 마친 수겸은 수건으로 허리를 감쌌다. 그러곤 옷걸이에 걸려 있는 젖은 옷을 품에 한가득 안고 욕실을 나섰다.

수겸은 욕실 문을 열자마자 품에 가득 안고 있던 옷을 모두 마른 바닥에 떨어뜨렸다. 다음 순간, 고개를 든 수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수겸은 커다란 눈을 끔뻑거렸다. 멤버들과 함께 쓰는 숙소이니, 문밖에 다른 멤버가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했다. 한 명, 어쩌면 두 명 정도. 많으면 세 명까지도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멤버 모두가 다 나와 있을 줄은 몰랐다. 태원, 이겸, 한솔과 유찬 네 명 모두가 거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거실에서 욕실은 바로 바라볼 수 있었기에 다섯 쌍의 시선이 모두 자신을 향하는 게 수겸으로선 마냥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다섯 쌍, 그래. 다섯 쌍이었다. 유피트 멤버들만 놓고 보자면 네 쌍이어야 하지만, 지금 수겸을 보는 시선은 모두 다섯 쌍이었다.

“이, 사님…… 왜 여기 계세요?”

물론 선욱이 종종 숙소를 찾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그가 올 줄을 몰랐기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헐벗은 상태로 그와 마주하는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수겸은 수건 한 장으로 겨우 가린 제 몸을 힐끔 내려다본 후, 다시금 선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 하, 죄송합니다……. 오실 줄 모르고…….”

“…….”

제 몸에 따라붙는 시선에, 수겸은 도망치듯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허리춤에 감싼 수건이 벗겨질세라 수건을 양손으로 꼭 붙드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등 뒤로 시선이 들러붙는 것이 느껴졌다. 수치심에 얼굴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이게 다 아까 태원이 문을 벌컥 열어 옷이 젖어버린 탓이라고 생각하며 수겸은 괜히 때늦은 원망을 했다.

방 안에 들어선 수겸은 벽에 걸린 자그마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샤워의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부끄러움 때문인지 얼굴이 타는 듯이 붉어져 있었다.

뜨거운 볼에 손부채질을 한 수겸이 서둘러 옷과 속옷을 꺼내 입었다. 밖에서 이사님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허둥지둥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옷이나 걸쳐 입었다.

“어, 뭐야. 내 옷이 아니었어?”

재빨리 입고 거울을 보니 옷이 헐렁헐렁하다 못해 쇄골과 어깨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보아하니 태원의 옷인 모양이었다.

다른 옷을 꺼내 입을까 하다가, 이사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갈아입을 시간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옷을 벗은 것도 아니고, 입고 있는데 무슨 상관이냐 싶었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판단을 마친 수겸은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

“하하, 오신 줄 모르고 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었죠?”

“아니야, 괜찮아.”

수겸은 민망함을 감추려 부러 하하 웃었다. 그러자 놀란 듯한 표정이던 선욱이 환하게 웃었다. 그는 이내 장난스럽게 눈매를 찡그렸다.

“그 옷은 누구 옷일까? 우리 수겸이 옷은 아닌 것 같은데.”

“아하하, 태원이 형 옷인가 봐요. 급하게 꺼내 입느라 그만…….”

뒷덜미를 긁적거린 수겸이 어색하게 웃었다.

선욱이 느른한 시선으로 수겸의 몸을 훑어보았다. 그 시선이 왠지 야릇하게 느껴진 수겸은 얼굴이 타는 듯이 화끈해졌다.

“어, 어쩐 일이세요?”

“민성이한테 이야기 전해 들으니까 걱정돼서.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더라고.”

“아…….”

선욱의 말에 수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금방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아까 촬영장에서 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게 틀림없었다.

수겸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선욱은 그런 수겸의 머릿속을 다 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가만히 수겸을 응시할 뿐이었다.

“듣자 하니 웬 무당이 이상한 말을 했다던데.”

“어……. 그러게요, 이상한 말을 하시더라고요. 하하.”

수겸은 마치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선욱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선욱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수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당황한 수겸이 고개를 돌리는데, 이번에는 올곧게 자신을 바라보는 유찬의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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