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62화
싸늘한 침묵이 사방을 짓누르듯 감돌았다. 수겸은 너무 솔직하게 말했나 싶어 제 행동을 후회했다. 하지만 진실을 물어보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봐, 이러니까 내가 말하기 싫다고 했던…….”
“내가 사람을 때렸다고……? 누구를?”
“……방송국 스태프를.”
“허……?”
수겸의 말에 한솔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서 태원 역시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폭행을 저질렀다는 인물이 다른 사람도 아닌 성격 좋기로 유명한 한솔이기 때문이었다.
한솔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 싶었겠지만, 어처구니없기는 태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수겸과 동일하게 6년간의 긴 연습생 생활을 거친 태원은 수겸만큼이나 한솔을 오랜 시간 지켜봐 왔다. 한솔이 얼마나 예의 바르고 성격도 좋은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그 또한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그가 방송국 스태프를 때렸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을 만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은 진실이었다.
“한 명은 열애설, 또 한 명은 폭행. 그게 다야?”
선욱의 물음에 수겸은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두 가지만으로 끝이면 참 좋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탓이었다.
“멤버 불화설도 있어요.”
“뭐?”
“불화라고?”
“어?”
“네?”
수겸의 대답에 멤버들이 제각기 되물었다. 지금 그 어떤 그룹보다 친근하게 지내고 있는 자신들인데, 멤버 불화설이라는 말에 기가 찬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진실이었다.
“태원이 형이랑 차이겸이 싸웠어. 영상도 있었어.”
“뭐?”
“둘이 진짜 살벌하게 싸우더라…….”
되묻는 태원에게 모든 걸 해탈한 수겸이 헛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러자 태원과 차이겸이 놀란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또 뭐가 있더라…… 아, 그래. 인성 논란도 있었지. 인성 논란은 뭐 멤버 불화설과 폭행의 연장선이었고…… 마약까지 했…… 헙.”
“마약? 마약을 했다고? 누가?”
한탄처럼 늘어놓던 수겸은 뒤늦게 제 입을 틀어막아 보았지만, 이미 한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약이라는 말에 싸늘하게 얼어붙은 분위기를 느낀 수겸은 질끈 두 눈을 감았다.
“마약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마약을 해?”
선욱마저 차디찬 목소리로 답을 채근하자, 수겸은 다시금 푹 고개를 숙였다. 그는 한참 동안 숨만 고르다가 결국 운을 떼었다.
“……유, 유찬이가요.”
“……유찬이가?”
수겸의 말에 선욱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하긴 그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전생에서 그 기사를 봤을 때 수겸 역시 너무 놀라 뒤로 나자빠지는 줄 알았던 것을.
“제가 그랬다고요?”
유찬은 당혹스러운 듯했다. 수겸은 괜스레 미안해지는 마음에 되묻는 물음에도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유찬은 다시금 수겸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이에요?”
“어, 그게 나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어……. 그랬다고 하는데 너는 우리한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거든.”
“…….”
수겸의 설명에 유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침묵이 공간을 무섭게 내리눌렀다.
수겸은 마른 입술을 달싹거리며 이 침묵을 어떻게 깨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어떤 말을 하더라도 적절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유찬 어찌나 당황스러울지 역시도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랬구나.”
“유찬아.”
그러나 유찬은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믿을 수는 없지만, 차마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인정하겠다는 듯한 대꾸에 수겸은 마음이 아팠다.
어느 누가 ‘너는 미래에 마약을 하게 될 거야’라는 말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수겸은 쿡쿡 찔리는 가슴에 차마 유찬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형이 그랬다니까, 맞을 거예요. 이유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자신에게 굉장히 아플 수 있는 말을 유찬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거짓말이라고 수겸을 몰아세우는 대신 말이다. 그게 못내 미안하고 고마워서 수겸은 가슴이 더욱 무거워졌다.
“……해체할 만했네.”
한참 만에 태원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아직 유찬의 게이설과 수겸의 남자병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도 않았지만, 하나씩 터진 내용을 말하니 그가 듣기에도 해체가 납득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게. 그럴 만했네.”
이번에는 차이겸이 쓰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한솔과 유찬도 대답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차마 수겸은 그들처럼 맞장구를 칠 수는 없었다.
“미안.”
“왜 형이 미안해. 우리가 그랬다는데.”
“그래도…….”
“원래 진실은 아픈 법이야. 그걸 말해준다고 해서 형이 미안해할 필요는 전혀 없어.”
한솔은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였지만, 표정만큼은 밝게 말했다. 수겸을 위해 억지로 웃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기에 수겸은 더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럼 다 그렇다 치고 남자병은 뭐야?”
“큽…….”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수겸은 훅 들어온 차이겸의 질문에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대답한 상황에서 남자병에 대해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 그건 그냥 뭐…… 그냥 내가 좀…… 남자답고 싶었어. 그래서 좀, 약간 허세를 부려봤어.”
그러나 아무리 솔직하게 이야기한다고 한들, 모든 것을 다 있는 그대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수겸은 남자병을 제대로 설명하기보다는 모호하게 대꾸하기로 했다. 핵심은 피하고 에둘러서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왜, 그 남자들 특유의 겉멋 든…… 그런 것 있잖아. 근육도 붙여보고, 센 척도 해보고…….”
“……송수겸 네가……?”
“으, 응…….”
“근육을 붙였어? 그게 붙긴 했어?”
“어, 어……. 삼시세끼 단백질 파우더랑 닭가슴살이랑 피넛버터만 먹으니까 붙더라.”
“……미친놈.”
“알아, 미친놈이었던 거.”
차이겸의 말에 수겸은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순순히 인정했다. 제정신은 아니었다. 뭐에 쓰이지 않고서야 저것만 먹으면서 살 생각을 할 리가 없었다.
“그 모습이 팬들이 보기에는 재수 없어 보였나 봐. 뭐, 그럴 만도 했지. 허세도 부리고 센 척도 했으니…….”
“상상도 안 간다.”
“그러니까. 네가 한 말 중에 제일 안 믿겨. 근육 있는 송수겸이라니.”
다행히 멤버들은 다른 포인트에 꽂혔다. 수겸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리도 아니었네.”
잠자코 있던 선욱이 중얼거렸다. 수겸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나하나 늘어놓다 보니 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그래서 유피트가 해체되었는데, 너는 왜 PC방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방송 일 안 하고.”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죠…….”
“내가 아무것도 안 해줬어?”
“해주셨죠, 엄청. 여기저기 꽂아도 주시고 계속 뭐라도 시켜주려고 하시고……. 그런데 봐주는 사람들이 곱게 안 봐주니까 그마저도 오래 안 갔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널 아르바이트하면서 살게 내버려 뒀냐고.”
“어, 그게…….”
수겸은 선욱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선욱은 몇 번이나 그 이후로도 도와주려고 했다. 심지어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 와서 자신의 집에 들어오라는 말을 하기까지 했었다.
“아, 엄청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런데 뭐, 죄송하기도 하고…… 제가 뭐라고 그걸 다 받고 있어요. 저도 염치가 있는데.”
수겸의 말에 선욱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모양이었다.
“그래, 그랬다고 치자. 그래서 왜 죽었는데.”
“그냥, 슬퍼하다가…… 후회도 하다가…… 술 먹고 계단에서 굴렀어요.”
“그놈의 술. 술 먹지 말라고 했지.”
선욱이 무섭게 말하자, 수겸은 순간적으로 겁을 집어먹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시점에서 유피트는 이미 해체된 후였다. 심지어 어제는 이사님이 먼저 술을 권했던 게 아닌가. 그래놓고 오늘은 술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화를 내는 게 못내 억울했다.
“그치만 유피트가 해체된 후였는걸요!”
“…….”
“어쨌든 다들 이번 생에서는 유피트가 해체되지 않도록 해줘. 나도 나, 남자병…… 안 걸릴 테니까. 싸우지들 말고, 누구 때리지도 말고, 연애질도 티 안 나게 하고, 마…… 약도 하지 말고.”
수겸이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반대가 있을 리 없었다. 멤버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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