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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65화 (66/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65화

“어? 말해봐. 있어?”

“왜 그게 궁금한데?”

“그야…….”

차이겸의 물음에 대답하려던 수겸은 할 말을 잃었다. 무어라 말해야 할지 스스로도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단순한 호기심이기도 하고, 전생에서처럼 그가 혹시나 스캔들에 연루될까 봐 걱정되기도 해서였다.

복잡한 감정이 점점 깊어질 때쯤 그가 물었다.

“걱정돼?”

“어? 그게…….”

선뜻 대꾸할 수 없었다. 물론 걱정되기는 했지만, 솔직하게 대답하자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수겸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덕분에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차게 내려앉은 공기가 베란다 특유의 냉기 때문인지, 아니면 침묵이 불러온 냉기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쯤 차이겸이 입을 열었다.

“송수겸.”

“응?”

그의 부름에 수겸은 왜 그러냐는 듯 되물었다. 그러자 차이겸의 눈빛이 진득하게 따라붙었다. 어쩐지 그 눈빛이 기묘한 구석이 있어서 수겸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게 되었다.

“말했잖아.”

“……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수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말뜻이 감도 오지 않는데 어째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수겸은 콩닥거리는 박동을 느끼며 차이겸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의 눈빛을 피하고 싶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그의 눈빛을 피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수겸은 떨리는 가슴을 다잡고 이겸을 보는 눈을 떼지 않았다.

“……됐어.”

“아니, 되긴 뭐가 돼?”

수겸은 울컥 치미는 분노에 차이겸을 노려보았다. 왜 말을 하다 말아! 자기가 먼저 불러내서 말을 꺼내놓고는!

“야, 사람을 가장 열 받게 하는 게 뭔 줄 알아?”

“말을 하다 마는 거?”

차이겸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그의 말에 수겸은 으득 이를 갈았다.

“뭐야, 알고 있어?”

“당연하지.”

“알면서 그래?”

“말하다 말진 않았어, 나는 다 말했으니까.”

차이겸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수겸은 뻔뻔하기 그지없는 그의 태도에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게 뭔 소리야? 말을 안 했는데!”

“그건 네 생각이고.”

“아아아악, 차이겸 진짜 짜증 나!”

“그러든가.”

그는 정말 수겸이 자신을 짜증 나게 생각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듯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려 보였다. 수겸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 깊게 숨을 골랐다.

“저리 가, 나 들어갈 거야.”

“송수겸.”

“아, 또 왜!”

부러 차이겸의 팔에 어깨를 있는 힘껏 부딪치며 지나치던 수겸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뒤돌아보았다. 그러자 차이겸이 씩 입술을 말아 올리며 웃었다. 여유롭기 그지없는 그의 태도에 수겸은 다시금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야 했다.

“저녁 메뉴는 뭐 먹을래?”

“……말하면 해줄 거야?”

“안 해줄 건데 물어보게? 사 주기라도 할 테니까 말해.”

“……차이겸 진짜 짜증 나는데 좋아.”

수겸은 웅얼웅얼 원망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는 마치 자신을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마음 한쪽으로는 차이겸의 능수능란함에 분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뭘 먹으면 좋을지 고민에 잠겼다.

“……월남쌈. 새우랑 고기랑 맛살이랑 파인애플 필수. 기타 야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알았어.”

차이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정도는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굴었다. 덕분에 수겸은 치밀어 올랐던 분노가 0에 수렴할 정도로 단숨에 사그라들었다.

“앗싸, 월남쌈.”

수겸은 실실 웃으며 베란다를 나섰다. 거실에 있던 한솔이 수겸을 보더니 자연스럽게 따라붙어 방 안까지 들어왔다.

“이겸이 형이 뭐래?”

“몰라, 별 쓸데없는 소리 하더니 월남쌈 해준대.”

“그래?”

“응.”

수겸은 한솔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포근한 침대에 눕자 달아났던 잠이 다시금 몰려오는 것만 같아서 나른해졌다.

때마침 한솔이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넘겨 주어서, 수겸은 그 손길이 기분 좋아 햇볕 아래 고양이처럼 갸르릉거렸다.

“형, 자?”

“으, 응.”

“나는 첫 번째를 놓치기 싫어. 그런데 너무 빠르기도 싫어. 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거든.”

“그렇구나…….”

“잘 자.”

수겸의 대답에 한솔은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이불을 끌어 올려 수겸을 덮어주었다. 다정한 손길에 한층 더 나른해진 수겸은 몰려드는 잠을 거부하지 않고 의식을 내맡겼다.

* * *

“후하후하.”

수겸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오늘은 <소원꽃잎>의 무대가 있는 날이었다. 모처럼 만에 서는 무대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현재 <소원꽃잎>은 물론, 유피트 자체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지금이기에 더더욱 중요한 시점이었다.

하얀색 바지에 멤버마다 디테일이 약간씩은 다른 연분홍색 재킷을 입은 유피트는 무대 옆에서 차분히 기다렸다.

“나 머리는 어때?”

수겸은 이전보다 확연히 연해진 옅은 분홍빛 머리카락이 어색해서 만지작거렸다. 거의 로즈골드에 가까운 분홍빛 머리카락은 색 자체는 참 예뻤지만, 이제까지 수겸이 해왔던 진한 분홍빛과는 달랐기에 어색했다.

“예뻐요.”

“정말?”

“네, 정말요.”

확신에 찬 유찬의 말에 수겸은 한결 마음이 편안해져서 안도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랜만에 무대네. 잘하고 오자.”

리더인 태원의 말에 멤버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태원은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리더라는 직책 때문인 모양이었다.

수겸은 슬쩍 태원의 옆에 붙어 섰다. 놀란 태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수겸이 새물거리며 웃었다. 태원은 그 미소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입만 벙긋거렸다.

“파이팅.”

“……그래, 파이팅.”

수겸의 말에 태원은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을 즈음, 음악 방송 스태프가 ‘유피트 올라가실게요!’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후하!”

수겸은 잠시 호흡을 골랐다가,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사전 녹화인 만큼 객석은 팬들로 가득했다. 멤버들이 올라오자 팬들이 시원스럽게 소리를 내질렀다.

“유피트!!!”

“얘들아~!!!”

“꺄아아아!”

“사랑해!!!!”

“송수겨어어어엄!”

“선태원!!!!”

“차이겨엄!!!!”

“유찬악!!!!!!!”

“한솔아, 한솔아아!!!”

한동안 이어지는 비명 소리에 수겸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래지 않아 스태프가 흥분한 팬들을 진정시켰다.

팬들은 저마다 소속사에서 제작해 준 슬로건과 유피트가 준비한 선물 상자를 소중히 들고 있었다. 선물 상자에는 당을 채워줄 초콜릿과 따뜻한 커피, 휴대용으로 쓰기 좋은 핸드 워시가 들어 있었다.

스태프들의 신호 덕분에 공간 안에는 짧은 적막이 흘렀다. 이어서 <소원꽃잎>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수겸은 스탠딩 마이크를 붙잡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팬들을 바라보며 잔잔하게 웃다가, 노래의 도입부를 부르는 유찬을 바라보며 웃었다.

유찬은 수겸의 시선을 눈치챘고는 수줍은 듯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수겸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서 수겸은 다음 파트인 한솔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솔 역시 수겸을 바라보며 눈을 맞춰주었다.

그러는 사이 곡은 점점 하이라이트를 향해 달려갔다. 리드보컬인 차이겸의 파트가 되었고, 수겸은 동선을 바꾸면서 차이겸과 스치는 부분에서 그의 손을 잠시 잡았다가 놓았다.

차이겸은 놀란 듯 수겸을 바라보다가, 이내 입꼬리를 길게 늘이며 프로페셔널하게 웃었다.

수겸은 또 한 건을 해냈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 하면서 자신의 파트에 돌입했다.

그렇게 총 네 번의 무대를 마치면서 사전 녹화는 끝이 났다. 수겸은 소리를 지르며 배웅하는 팬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며 아쉽기만 한 무대를 벗어났다.

이어서 유피트는 곧바로 사전에 약속된 잡지 인터뷰를 하러 이동했다. 비록 디지털 싱글 앨범이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활동인 만큼 일정이 꽤 빡빡했다.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수겸은 이틀 전에 민성을 통해 전해 받은 질문지를 눈으로 훑어보았다. 고만고만한 질문들 사이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질문이 몇 개 눈에 띄었다.

수겸은 모처럼 만에 제대로 어그로를 끌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질문지에 답변을 꾹꾹 눌러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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