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80화
“네에? 압수요?”
수겸은 제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연습생도 아니고, 요즘 시대에 휴대폰 압수라니. 충격받은 표정으로 선욱을 바라보았지만, 선욱은 입 모양으로 ‘얼른’이라며 수겸을 채근하기 바빴다.
“아니, 그런 게 어딨어요!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폰 없이 어떻게 살라고…….”
다른 것이었다면 반항 없이 순순히 하라는 대로 했을 테지만, 휴대폰 압수는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 게다가, 막말로 자신이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애를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번호야…… 물론 자신이 준 것은 맞지만, 신명현이 예뻐서 줬겠는가. 유찬이한테 접근하려는 걸 막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었다.
“수겸아.”
“……네.”
“휴대폰 이리 내.”
“그, 그치만…….”
“얼른.”
조금의 타협점도 없어 보이는 선욱의 태도에 수겸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수겸이 급한 마음에 옆에 있던 한솔의 옷자락을 붙잡아가며 도움을 요청했다.
“어서 드려요.”
“야아, 솔아.”
“이사님께서 달라고 하시잖아요.”
그러나 한솔은 수겸을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잘됐다는 듯 가볍게 대꾸했다.
결국 수겸은 시무룩해져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욱의 앞에 섰다.
“근데, 저 좀 억울해요.”
“뭐가 억울해?”
“연애한 것도 아니고,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수겸은 주절주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지만,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항의했다. 그러자 선욱은 두어 번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수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수겸아, 내가 네 휴대폰 압수했다고 나를 싫어할 거야?”
“아뇨……. 그건 아니지만…….”
“아니지만?”
“워, 원망은 할 거예요.”
“그래?”
“네.”
선욱의 물음에서 희망을 느낀 수겸이 마른침을 삼키며 대꾸했다. 그러자 선욱은 입술을 길게 늘이며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에 수겸의 가슴이 기대감으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원망 좀 받지 뭐. 휴대폰 이리 줘.”
펑!
기대감은 한순간에 터져 버렸다.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 수겸은 결국 휴대폰을 내밀었다. 선욱은 그 휴대폰을 받아서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수겸은 솜사탕을 씻은 너구리처럼 허망하게 휴대폰을 들고 있던, 그러나 이제는 빈손이 되어버린 제 손을 바라보았다.
“쒸잉…….”
“우리 수겸이 욕도 하네?”
“그, 그건 아니고 그냥 저도 모르게 나온 거예요…….”
수겸은 축 처진 어깨를 하고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사이에 그의 앞접시에는 잘 익은 소고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마 한솔이나 유찬이가 한 것일 테지만, 지금은 식욕도 돌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우를 안 먹을 수는 없었기에, 수겸은 슬그머니 젓가락을 들어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었다. 풍부한 육즙이 입안에 번지며 고기 살이 부드럽게 씹혔다.
한 점, 두 점 고기를 집어 먹는 사이 수겸의 구겨진 표정이 조금씩 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다섯 사람은 번지는 미소를 애써 참고 또 참았다. 지금 웃음을 터뜨렸다가는 정말로 수겸에게 원망을 사고 말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 헉!”
무언가 깨달은 듯한 수겸의 혼잣말에 다섯 쌍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어렸다. 수겸은 이내 커다란 눈을 빛내며 선욱을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압수예요? 하루? 이틀? 삼 일? 설마…… 일주일이에요?”
“기한 없어.”
“예에?!”
수겸은 세상이 무너진 듯한 얼굴로 선욱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듯 한참 입술을 달싹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할 말이 생각났는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기한이라도 있어야죠! 뭐, 하다 못해 이번 달까지라든가, 아니면 1위 할 때까지라든가!”
“그런 거 없어.”
“아, 이사니임!”
수겸은 울 듯이 선욱을 불렀다. 그 간절함에 결국 선욱은 한 발자국 물러나 주기로 했다.
“착하게 굴면 돌려줄게.”
“저는 늘 착하게 있었는데…….”
수겸이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자신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수겸은 착했다. 연습생 때부터 연습을 빼먹는다거나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었다.
막말로 남자병에 걸려서 설친 것 때고는 선욱의 말을 착실히 따랐던 수겸이었다. 그러니 늘 착하게 있었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선욱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이내 싱긋 웃었다.
“그럼 예쁘게 굴면.”
“‘예쁘게 굴면’이요……?”
“응. 예쁘게 굴면.”
수겸의 되묻는 말에 선욱은 강조하듯 대꾸했다.
수겸은 고민에 잠겼다. 대체 예쁘게 구는 게 뭐란 말인가. 어떨 때 예쁜 거지? 팬분들이 어떻게 할 때 예뻐했더라? 조그마한 수겸의 머리통이 바쁘게 움직였다.
“저…….”
짧은 고민 끝에 수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응, 말해.”
“저는 원래…… 어, 언제나 예, 큼, 쁜데요…….”
제 입으로 말하기는 퍽 민망한 것이었지만, 실제로 그랬다. 팬들은 수겸이 뭘 하든 예쁘다고 난리였다. 웃든, 울든, 심통을 부리든, 정색을 하든, 애교를 부리든, 애교를 부리지 않든. 그러니 답은 원래 예쁘다는 답이 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네.”
선욱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이어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수겸을 또다시 절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럼 지금보다 더 예쁘게 굴어봐.”
“어떻게 하는 건데요!”
“그건 수겸이가 스스로 고민해 봐야지.”
다정한 목소리였지만, 냉정하기 짝이 없는 말에 수겸은 결국 반쯤 포기하고 유찬이가 앞접시에 덜어준 고기를 씩씩거리며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 * *
숙소에 들어온 수겸은 거실 바닥에 벌렁 누웠다. 휴대폰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허한 것이 아무래도 자신이 사랑하는 이는 휴대폰인 모양이었다.
“수겸아, 방에 가서 누워. 허리 아프다.”
“마음이 아파서 다른 건 느껴지지도 않아.”
태원의 말에 수겸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말에 태원은 뭐가 웃긴지 큭큭거리다가, 이내 수겸의 옆에 앉았다. 수겸은 자연스럽게 그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그렇게 슬퍼?”
“세상이 무너진 기분이야.”
“휴대폰 하나 없어졌다고?”
“나도 내가 이렇게 휴대폰에 의지하는 인간인 줄 몰랐어.”
자조적인 수겸의 말에 태원은 기어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단숨에 수겸의 눈매가 뾰족해졌지만, 싸울 기력도 없는지 이내 눈꼬리가 비 맞은 강아지처럼 아래로 축 늘어졌다.
“나 좀 서러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네가 번호 주겠다고 나섰잖아. 이상한 사람인데 왜 번호를 주겠다고 나서?”
“그야 그 자식이 유찬이…….”
“유찬이?”
“유찬이한테 관심을 보이잖아. 우리 소중한 막내인데.”
하마터면 전생에 그 자식이 유찬이에게 한 짓에 대해 이야기할 뻔했다. 그 이야기를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유찬이 게이인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아웃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어, 잠깐.”
나름대로 결연하게 유찬의 비밀을 지켜줘야겠다고 다짐하던 수겸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멈칫했다. 태원에게 말을 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깨달은 탓이었다.
“왜 그래?”
“유찬이가 나 좋아하잖아.”
“……뭐, 그렇지. 새삼스럽게 그건 왜?”
태원은 떨떠름하게 대꾸하는 동시에 되물었다. 갑자기 수겸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 이미 다 알고 있는 거잖아.”
“뭐를?”
수겸의 혼잣말에 태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겸은 자신의 생각에 빠져 있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껏 유찬이 게이라는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혼자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정작 유찬은 자신에게 고백을 했다. 그것도 다른 멤버들도 다 알게끔. 심지어는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이사님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결국 모두가 유찬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셈이었다. 물론 유찬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과 이사님마저 남자를 좋아하는 상황이었고. 이 상황에서는 유찬이 게이라는 사실이 흠이 될 리가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유찬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시시콜콜 자세하게 전생에 유찬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만, 제 휴대폰을 제물로 바칠 것까지는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수겸은 억울함에 몸부림을 쳐대며 외쳤다.
“뭐야, 괜히 내 휴대폰만 뺏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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