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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81화 (82/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81화

태원은 수겸의 절규를 보면서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히 수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지만, 그마저도 태원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일 뿐이었다.

“형은 다 알고 있었지!”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는 태원의 모습에 수겸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그러자 태원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내가 뭘?”

“그, 그거 말야, 그거!”

“그거라니?”

“아, 아무튼!”

이미 그가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는 하지만, 차마 태원 앞에서 유찬이 게이라는 사실을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수겸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답답함에 버둥거렸다.

“어허, 머리 빠진다.”

“빠지라 그래! 빠지라 그래!”

수겸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소리를 지르자, 태원이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수겸은 훌쩍거리며 다시금 태원을 노려보다가 이내 뾰족한 눈매를 최대한 무해하게 떴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무구한 동그란 눈을 마주한 태원의 눈매가 좁아졌다.

“뭐지, 이 찜찜함은.”

“에이, 찜찜함이라니.”

수겸은 새물거리며 웃으면서 태원의 옆에 바싹 붙었다. 태원은 수겸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는가 싶더니,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아니, 오히려 더 수겸에게로 더 바싹 제 몸을 밀착했다.

“어, 그, 너, 너무 붙은 거 아니야?”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그, 그래……?”

수겸은 뻔뻔하기 그지 없는 태원의 대답에 대꾸할 말을 잃었다. 그러면서도 무어라 더 따질 수 없는 이유는 아쉬운 쪽이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큼, 큼, 아무튼…….”

“아무튼?”

“나 휴대폰 좀 빌려주라.”

“오, 싫어.”

“아, 왜!”

대번에 돌아오는 대답에 수겸이 원망스럽게 외쳤다. 그러자 태원의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장난기가 걷히고는 딱딱하게 굳었다. 그 변화에 솔직히 적잖이 겁을 먹은 수겸은 흠칫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놈이랑 그렇게 연락하고 싶어?”

“어?”

“그 이상한 남자라는 놈이랑 그렇게까지 연락이 하고 싶냐고.”

수겸의 커다란 눈이 조용히 끔뻑거렸다. 긴 속눈썹이 너울거리며 위아래로 흔들렸다. 수겸은 대체 태원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뇌 정지가 왔던 수겸은 뒤늦게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가 오해를 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말이다.

“아, 아니야! 미쳤어?! 내가 그 자식이랑 연락을 왜 해?!”

“그러면 왜 그러는 건데!”

“아, 쿡히런 킹덤 해야 한다고! 토벌전 하루라도 안 하면 길드에서 강퇴당한단 말이야! 얼마나 힘들게 들어간 길드인데!”

“……어?”

“그 길드 아무나 안 받아준다고! 키워야 할 쿠키도 많고, 조건도 맞추기 까다롭고! 토벌전 안 뛰면 짤 없이 강퇴당한다고!”

수겸의 말에 이번에는 태원이 말 없이 눈만 끔뻑거렸다. 다소 사나워 보이던 눈이 얼이 빠져 순하다 못해 멍청해 보일 정도였다.

“그러니까 폰 좀 빌려줘. 나 로그인해서 게임만 좀 돌리게.”

“자, 잠깐. 진짜 게임 때문에 그런 거야? 그 자식이랑 연락하려는 게 아니라?”

“아, 아니라고! 내가 그 자식이랑 왜 연락을 하냐고! 그 새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데!”

기어코 수겸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오자, 넋이 나갔던 태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제야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뭐야, 그 자식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진짜.”

수겸은 무려 연달아 쓰리콤보로 ‘아니라고’를 외쳤다. 태원은 그제야 안도가 되어 한숨을 내쉬는 한편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 되었다.

“아니, 그러면 왜 그 자식한테 번호를 주고 난리야?”

“아, 그거야! 그 자식이 유찬이한테 작업을 거니까!”

답답함에 가슴까지 치며 대답한 수겸의 반응에 태원이 정색하고 캐묻기 시작했다. 수겸은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이미 유찬이 게이라는 사실을 태원 역시 알고 있는 상황이니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그게 진짜 이유라고? 단순히 유찬이한테 작업을 걸어서? 아무리 봐도 그 자식은 유찬이한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너한테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태원의 말에 수겸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말을 해도 된다는 걸 알지만, 역시나 좋은 기억이 아니라서 그런지 목구멍에 가시라도 걸린 듯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아서였다.

수겸은 답답한 가슴께를 꾹꾹 누른 후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전생에서…….”

“전생……?”

“어, 전생에서……. 그 새끼가 유찬이를 꾀어내어 아, 아…… 웃팅을 했단 말이야.”

“……뭐?”

‘아웃팅.’

입에 담는 것조차 아픈 말이었다. 그게 유찬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렸다. 무엇보다 그렇게 힘들었을 그를 혼자 내버려 두었다는 죄책감이 수겸의 목을 졸랐다. 밀려드는 미안함에 수겸은 푹 고개를 아래로 꺼뜨렸다.

“게다가 그 마…… 약…… 도 그 자식이랑 관련된 거란 말이야.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까지는 모르지만…….”

“……하. 개자식이네.”

태원이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살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수겸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눈치를 살피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런 거라고……. 그 새끼가 유찬이한테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고…….”

“…….”

잘했다는 칭찬까지는 아니어도, 이해는 받을 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태원은 싸늘한 눈으로 수겸을 응시하기만 했다. 수겸은 자신이 잘못한 게 있나 싶기도 하고, 동시에 억울함이 밀려들기도 해서 입술만 삐죽거렸다.

“송수겸.”

“……왜.”

태원은 차가운 눈빛과 달리 목소리만큼은 부드러웠다. 그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얻은 수겸이 태원의 눈치를 살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태원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걸 왜 혼자 감당하려고 해. 그런 새낀데, 너한테 뭔 짓을 할 줄 알고.”

태원의 말에는 깊은 걱정이 어려 있었다. 그의 감정을 느낀 수겸이 놀랐던 가슴을 달래며 태원과 눈을 마주했다. 태원의 짙은 검은색 눈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수겸아. 우리는, 나는 몰라.”

그는 짧은 한숨 끝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수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고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너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 그래서 너에게 있었던 일을 알 수가 없어. 이미 너는 그 일을 혼자 견뎌냈잖아. 우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너는 그 기억의 무게를 알고 있잖아.”

마치 태원은 수겸 혼자 그 모든 사실을 감내하게 했다는 사실이 미안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잘못이 아닌데, 그의 잘못일 수 없는데도 태원은 수겸에게 미안해했다.

여과 없이 전해지는 그의 감정에 수겸은 괜스레 자신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한편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니까 말해줘. 내가 알 수 있게.”

“……응. 그럴게.”

태원의 말에 수겸은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태원 역시 마음이 놓이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태원이 슬쩍 휴대폰을 내밀었다.

“비밀이야.”

“아, 당연하지! 형, 최고야! 고마워!”

수겸은 울컥 치솟는 고마움에 태원을 와락 끌어안았다. 태원은 갑작스러운 수겸의 행동에 놀라 멈칫했다가, 이내 저 역시 수겸을 세게 안았다.

“웁, 형, 나 숨 막히는데…….”

“그것도 각오하지 않고 나한테 치댔어?”

“그, 그게 아니라…….”

“송수겸, 치대는 거 적당히 해. 잡아먹고 싶은 거 애써 참고 있으니까.”

“허, 억, 알았어. 아, 안 그럴게!”

태원의 말에 기겁한 수겸이 외쳤다. 그 말에 태원의 표정이 불만스럽게 일그러졌다.

“적당히 하라 그랬지, 하지 말라고 한 게 아니라.”

“아, 어쩌라는 거야!”

“내가 너를 잡아먹을 욕구를 참을 수 있을 정도이되, 기분 좋게 치대달란 말이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르면 그냥 잡아먹히든가.”

“아니, 그러니까 안 치댄다니까?”

태원의 심드렁한 대답에 수겸이 도리질을 쳤다. 그러나 그 역시 태원이 원하는 답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그냥 냅다 잡아먹는다?”

“스톱, 스토옵, 그런 게 어딨어! 잡아먹지 마! 내가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잡아먹는대?!”

“그거야 먹어보면 알지, 먹는 건지 아닌지.”

“안 먹어봐도 알 수 있는 문제거든!”

수겸은 태원의 진심 반, 장난 반의 말에 간절하게 외쳤다. 마치 당장에라도 그가 자신을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그 반응에 태원은 번지는 웃음을 애써 갈무리하며 수겸의 늘씬한 허리를 가볍게 간지럽혔다.

“하, 읏!”

반사적으로 신음을 흘린 수겸은 자신이 소리를 내놓고도 놀라서 황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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