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9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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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라이브 방송을 마치고 유피트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수겸이 기분 좋게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선욱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민성은 스태프들 전용 룸으로 이동하기 전에 선욱에게 인사차 들렀다.
“이사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선욱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민성은 짧은 인사를 마치고 룸을 나서려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제자리에 멈추었다.
“이사님, 애들 이러다 스캔들 나겠어요. 조심하라고 해주세요.”
“스캔들?”
민성의 말에 선욱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물론 황당한 것은 선욱만이 아니었다. 유피트 멤버들도 갑자기 웬 스캔들 타령인가 싶어 민성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민성이 수겸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뭐지……. 이 불길한 기분은…….
찰나 수겸은 섬찟함을 느꼈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쎄하고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예감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주 사이가 너무 좋아서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랍디다. 송수겸, 특히 저게 요주의 멤버예요. 저게 태원이 목덜미에 키스 마크까지 찍었다지 뭐예요. 활동기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지. 활동기에 그랬으면 오만 궁예 판치고, 기사 뜨고 난리도 아니었을 거예요.”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수겸은 민성의 말에 기겁했다. 차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듯 끝내더니, 그걸 이사님한테 말하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수겸은 원망스럽게 민성을 바라보다가 이내 들려오는 선욱의 목소리에 시선을 옮겼다. 선욱은 무서울 정도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키스 마크……?”
“아, 아니에요! 그, 그럴 리가요! 저는 그냥…….”
“그냥?”
선욱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수겸이 우왕좌왕했다. 어쩔 줄 몰라 태원을 바라보며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다행히 태원이 수겸이 보낸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입을 열었다.
“그냥 장난이었습니다.”
“마, 맞아요! 그냥 장난! 침대에서 장난치다가…… 아니, 침대는 아니었지, 아무튼 그 근방이기는 했는데, 어쨌거나 제가 깨문 거예요. 장난으로, 장난으로! 그런데 그게 그런 식으로 보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정말, 정말로!”
수겸은 당황하여 주절주절거렸다.
평소였다면 이런 수겸을 보며 느른하게 웃어줄 선욱일 텐데, 어째선지 지금은 여전히 서늘하기만 했다.
그만큼 잘못한 것인가 싶어 억울하기도 하고, 선욱의 화난 모습을 처음 봐서 무섭기도 했다. 수겸은 마른침을 삼키며 최대한 불쌍한 눈으로 선욱을 올려다보았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폭탄을 던져놓고 민성은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네고 룸을 나섰다. 문이 탁 소리가 나며 닫히고 나자, 공간 안에는 유피트와 선욱 여섯 사람만 남았다.
수겸은 아무 말도 없는 선욱의 눈치를 보느라 어쩔 줄 몰랐다.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들썩들썩하며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처럼 굴었다.
“이사님, 진짜 그런 게 아니고요……. 제가 설마 진짜 같은 멤버 몸에 키, 키…… 스, 큽, 마크를 만들겠어요? 진짜 아니에요. 진짜로…….”
수겸은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말을 하면서 억울함에 주먹으로 제 다리를 콩콩 때렸다. 그러나 선욱은 여전히 본 적이 없는 무서운 얼굴로 수겸을 응시할 뿐이었다.
“수겸아, 잠깐 얘기 좀 하자. 다녀올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예요?”
선욱이 수겸을 일으키자 한솔이 선욱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한솔답지 않게 잔뜩 날이 서 있는 모습이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한솔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전생에 그가 스태프를 때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한솔이 선욱에게 그럴 리 없을 테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괜찮아! 솔아! 나 다녀올게!”
수겸은 한솔을 달래며 진정시켜 주는 동시에, 손으로는 선욱의 팔을 잡아끌었다. 멤버들의 불만스러운 시선이 쏟아졌지만, 빨리 선욱을 데리고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인 수겸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어, 어디로 가요……?”
수겸은 야무지게 선욱을 끌고 나와 놓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아직도 자신이 선욱의 팔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 손을 놓았다.
“헉, 죄송합니다, 죄송…….”
“가자.”
“네, 에…….”
사과에 괜찮다는 말을 하는 대신, 짤막하게 ‘가자’라고 제 할 말만 하는 선욱에게 서운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수겸은 시무룩해진 채로 앞서 걷는 선욱을 따라 쭐레쭐레 걸었다.
도착한 곳은 선욱의 차 앞이었다. 파란 번호판의 하얀색 자동차는 수겸 역시 두 번 정도 본 적이 있는 차였다.
“타.”
“네에…….”
아까보다는 많이 누그러진 말투였지만, 여전히 평소보다는 딱딱한 느낌이었기에 수겸은 눈치를 살피며 앞자리에 탔다.
“……수겸아.”
“네?”
고개를 숙이며 걱정에 잠겨 있던 수겸은 선욱의 부름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선욱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수겸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맞닿는 순간, 수겸은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는 것을 느꼈다. 걱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까.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면 그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혼내려고 부른 거 아니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정말요……?”
“음…… 아니.”
“네……?”
혼내려고 부른 건 아니라고 하더니, 정말이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라니. 그렇다면 역시 혼내려고 부른 게 맞다는 뜻 아닌가.
수겸은 푹 삶은 물만두처럼 한껏 부루퉁해졌다. 선욱은 그런 수겸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수겸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수겸아.”
“네에…….”
“내가 지금 생각이 많아.”
“무, 무슨 생각이요?”
“내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을까. 너는 어디까지 참을 수 있을까. 내가 한계에 도달하면 어떻게 될까. 그때가 되면 네가 날 미워할까.”
“그게 무슨…….”
순식간에 여러 말이 쏟아졌다. 수겸은 그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말끝을 흐리며 입만 벙긋거렸다. 선욱은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수겸을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몰라도 돼. 내 몫이니까. 수겸이 너는 알 필요 없어.”
“아…….”
수겸은 선욱의 말에 짧게 감탄사를 흘리며 말끝을 삼켰다. 아무리 제 몫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미 부풀어 오른 호기심은 꺼질 줄을 몰랐다.
비록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말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는 소속사 대표이사였고, 자신은 한낱 신인 가수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한계에 도달해서 계약 해지라도 하겠다고 하면? 그러면 어떡하지?
더럭 겁이 난 수겸이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선욱의 옷소매를 간절하게 붙잡았다.
“이, 이사님, 저, 저 버리시면 안 돼요……. 쫓아내시면 안 돼요, 정말……. 잘못했어요, 저는 진짜 그게 그렇게 보일 줄 모르고……. 장난으로 그런 거예요……. 저 여기서 나가면 갈 곳도 없어요, 아시잖아요. 제발요, 살려주세요, 네?”
비록 이제 막 이름을 알리고 있다고는 하나, 날고 기는 연예인이 넘쳐나는 이 바닥에서는 수겸 정도의 연예인은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었다.
수겸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팬들도 금세 대체할 연예인을 찾아낼 것이고, 수겸은 잊혀질 것이다. 전생처럼.
그 생각이 들자, 수겸은 울고 싶어졌다. 두려움이 수겸을 덮쳤다. 잊혀진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잘 아는 수겸이기에, 절벽 끝에 내몰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까 울지 마.”
한층 누그러든 선욱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그의 손이 수겸의 눈가를 훔쳤다. 어느새 방울방울 맺혀 있던 눈물이 그의 손에 옮겨 갔다.
그제야 자신이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는 생각에 수겸을 얼른 제 눈가를 손등으로 벅벅 문질러 닦았다. 그러자 선욱이 수겸의 동그란 머리통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우리 수겸이, 울보네.”
“울보인 게 아니라……! 진짜 무서웠단 말이에요.”
“내가 널 왜 버려. 어떻게 버려. 그런 말도 안 되는 걱정 하지 마.”
“정말요……?”
“정말.”
확신에 찬 대답에 수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나자 더럭 울음부터 터뜨린 게 마냥 부끄러워져서 수겸의 낯이 발갛게 익었다.
그때였다. 잠자코 수겸을 바라보던 선욱이 느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네? 네.”
“내가 지금 너한테 키스 마크를 만들면, 나를 미워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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