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29화
“……네, 그럴게요.”
수겸의 대답에 그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이 말을 하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고민하고 가슴앓이를 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수겸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한 것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유찬을 지켜주고 싶었고, 그의 곁에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고마워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유찬의 아버지의 말에 수겸은 민망함에 도리질을 쳤다. 감사 인사를 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뭐가 ‘아니에요’예요?”
수겸이 무어라 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때마침 유찬 본인이 나타난 바람에 유찬의 아버지도 수겸도 모두 입을 다물었다.
“무슨 이야기 했어요?”
이상함을 느꼈는지 유찬이 가져온 과일을 내려놓으며 집요하게 물었다.
이대로라면 유찬이 그가 없는 동안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을 눈치챌 것만 같았다. 물론 비밀로 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유찬에게 드러내 놓고 말하기에는 어딘지 민망한 구석이 있었다.
게다가 유찬의 부모님 또한 유찬이 없는 틈을 타 이야기를 하신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래서 수겸은 얼른 분위기를 전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와, 딸기 맛있겠다. 저 딸기 좋아하는데, 잘 먹겠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많이 들어요.”
“네, 감사합니다!”
수겸이 화제를 전환하려고 하는 것을 그녀 또한 알아차린 것인지 수겸의 말에 얼른 화답해 주었다. 수겸은 안도하며 얼른 딸기를 먹었다.
유찬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듯했지만, 더 별말 하지는 않았다.
* * *
과일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의 수겸이라면 어른들과의 대화가 편치 않았을 텐데, 워낙 두 분이 다정하게 대해주셔서 그런지 편안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술술 잘도 흘러갔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다른 일정도 있을 텐데, 얼른 가요.”
“아니에요, 괜찮…….”
“전화드릴게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
다른 일정이 없다고 괜찮다고 대답하려던 수겸의 말은 유찬에 의해 잘리고 말았다. 결국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억지로 떼서 일어나려니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언제든 와요. 유찬이 없이 와도 되니까 수겸 씨 편할 때 들러요.”
“헤헤, 그럴게요.”
수겸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두 사람은 배웅을 받으며 가게를 나섰다.
“형, 아까 무슨 이야기 했어요?”
부모님과 헤어지기 무섭게 유찬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까의 일을 물어보았다. 수겸은 그런 유찬을 가볍게 흘겨본 후에 앞장서서 걸었다.
“같이 가요.”
긴 다리로 금세 자신을 따라잡은 유찬을 보며 수겸은 괜스레 번지는 미소를 갈무리하고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하고 갑자기 부모님께 데려오면 어떡해?”
“많이 불편했어요?”
걱정이 담긴 유찬의 얼굴을 본 수겸의 눈매가 사르르 녹았다. 화난 척해보려 했지만, 유찬을 상대로는 무리였다.
“아니, 불편하기는. 오히려 너무 편하게 잘해주셔서 죄송할 정도였지. 미리 말해줬으면 뭐라도 사 왔을 거 아니야. 빈손으로 온 게 죄송해서 그러지.”
“괜찮아요. 신경 안 쓰세요.”
“내가 신경 쓰여서 그래, 내가. 다음에 올 때 뭐라도 사 들고 와야겠어. 어머님께서는 뭐 좋아하셔? 아버님은?”
“……또 올 거예요?”
수겸의 물음에 유찬이 멈칫하며 물었다.
조심스러운 물음에 수겸은 왜 유찬이 저렇게까지 제 눈치를 보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언제든 오라고 하셨잖아. 오라고 하셨는데 와야지.”
“……고마워요.”
“뭐가?”
갑작스러운 유찬의 감사 인사에 수겸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찬은 조금은 촉촉해진 눈으로 수겸을 응시했다.
“그렇게 말해줘서요. 싫을 수도 있잖아요.”
“엥, 무슨 소리야. 오히려 난 너무 좋은데? 갈 곳이 생겼다는 게. 집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쉬는 날에 다들 집에 갈 때 부러웠거든. 아, 걱정하지 마. 그렇다고 명절에 너희 집에 쳐들어가는 상식 없는 짓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수겸은 얼른 뒷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유찬은 가볍게 도리질을 쳤다.
“명절에 와도 돼요. 아무 때나, 정말 아무 때나 와도 돼요.”
“그렇게 말하면 나 진짜 아무 때나 간다?”
“고마워요, 정말.”
“뭐가 자꾸 고맙다는 거야?”
수겸은 유찬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 그러자 유찬은 슬쩍 다가와서 수겸의 어깨를 감쌌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제게 소중한 사람들을 좋게 봐준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요.”
“나야말로 네 소중한 사람들을 믿고 소개해 줘서 고마워. 원래 소중한 사람은 아무한테나 소개하는 거 아니잖아.”
“…….”
“만약 나한테도 가족이 있었다면 유찬이 너를 꼭 소개해 줬을 거야.”
수겸은 다소 쓸쓸해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러자 유찬이 수겸을 꼭 끌어안았다.
갑자기 그의 품에 안기게 된 수겸은 토끼 눈을 떴다. 그러다가 이내 그의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심장박동에 편안함을 느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따스한 감정을 공유했다.
* * *
두 사람은 모처럼 만에 외출한 김에 바로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신나게 놀기로 했다.
사실 수겸은 한솔이나 태원이랑은 따로 만나 논 경험이 많았지만 유찬과 단둘이서 노는 것은 처음이라 뭘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러다가 마침 근처에 영화관이 있었기에 영화관에 가기로 했다.
평일 낮이라 영화관은 한산했다.
수겸은 얼굴을 가린 채로 키오스크로 발권을 하고 팝콘을 사면서 최대한 다른 사람과 접촉이 없도록 했다.
영화 시작 전까지 누가 알아볼까 봐 고개를 푹 숙이고 대기석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은 입장 시간이 되자마자 얼른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맨 뒤, 제일 구석 자리에 앉고 나서야 수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람 없어서 다행이다, 그치?”
“네. 다행이에요.”
수겸의 말에 유찬이 소곤거리며 대꾸했다.
수겸은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따금 유찬의 시선이 느껴졌고, 그때마다 수겸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유찬을 마주 보며 웃었다.
수겸이 제 머리통만 한 팝콘을 한 손으로 꼭 품에 안고, 다른 한 손은 유찬에게 슬쩍 내밀었다. 그러자 유찬은 놀란 듯하더니 이내 수겸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2시간 후, 두 사람은 다른 관객들이 다 나갈 때까지 얌전히 자리에 앉아 있다가 다음 회차 준비가 시작되기 전에 얼른 상영관을 빠져나갔다.
다음으로는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갔고, 저녁은 유찬의 숙소에 가서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그날 밤, 수겸은 유찬과의 셀카를 올리면서 낮에 있었던 일을 SNS에 적었다.
* * *
[사진]
안녕하세요, 올빗 여러분~
저 오늘 유찬이네 @Milkchan_0612 집에 갔어요.
따스하게 반겨주셔서 정말 행복했어요.
언제든 오라고 말씀해주셔서 기뻤어요.
가고 싶을 때 갈 곳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올빗 여러분도 오늘 부모님께 전화 한 통 하는 거 어때요?
자취하시는 분들은 주말에 본가에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 *
그리고 그와 비슷한 시간대에 각종 커뮤니티에 몇 개의 글이 올라왔다.
* * *
[나 오늘 보면 안 될 걸 봐버린 것 같아....]
작성자 : 김부장졸라짜증나
그... 이걸 뭐라 그러지......
연옌들 연애 현장 봐버린거 같아
둘이 길바닥에서 끌어안고 있던ㄷ데....,
디스패취에서 깔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누군데
└연옌 누구? 유명해???
└작성자: 여자 쪽은 몰겠고 남자쪽은 아이돌 음방에서 몇 번봄
└하..... 또 어떤 새끼가 더쿠 억장 무너트리냐.... 연애하는 티 좀 내지 말라고ㅓ.....뭘 씨 길바닥에서 스킨십인데
└제발 누군지 알려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 새낀지 아닌지 알고 싶어 나 지금 심장 벌렁거려 제발 초성 힌트라도 주라 아니면 쪽지로라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엥 나 연옌 본 듯]
김두팔@kimdoo888
└블랙맘마@lee12900921 님에게 보내는 답글
엥 두팔님 누구요?
└잠만여 아이돌인데,, 사진 찾아옴
└[사진] 찾았다 도유찬이래
└gjf 얘 걔잖아요 유피트
└헐 진짜????? 데이트하고 있던데.....;;;;;;;
└ㅇㄴ ㅁㅊ진짜여?????????? 누구랑요????
└몰라 둘 다 마스크 쓰고 잇어서,,,
[미쳤냐,,,, ㄷㅇㅊ 연애한단다]
작성자 : 오늘도유찬하세요
미친거 아니냐,,,,
스무살되자마자 연애라니 돌았냐...
길바닥에서 끌어안고 영화관에서 영화보고 난리도 아니래.....
내 세상이 무너wutek,,,,
tlqkf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