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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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겸이 유찬의 열애설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어째 간밤에 이상할 정도로 유난히 잠이 잘 오고 잠자리도 편안하더라니, 오늘 벌어진 일의 충격을 두 배로 주기 위한 하늘의 우롱인 모양이었다.
밤사이에 수십 개도 넘게 쌓여 있는 메신저 표시에 수겸은 졸린 눈을 비볐다. 민성이 형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다 함께 모여 있는 톡방이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이지? 뭐가 많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수겸은 톡방에 연달아 있는 인터넷 링크를 보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평소에 유피트 기사가 나거나, 각종 커뮤니티에 유피트와 관련된 재밌는 글이 올라오면 스태프들이 링크를 보내주고는 했다.
물론 스태프들도 직장인이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업무 시간 외에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밤사이에 링크를 몇 개나 보냈다.
수겸은 의아해하며 가장 최근에 온 링크를 클릭해 보았다.
[유피트의 막내 유찬, 미모의 여성과 길거리 데이트]
“이, 이게 뭐야……?”
쿵, 무언가 머릿속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수겸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기사를 찬찬히 읽어내려갔다.
[인기 아이돌 그룹 유피트(U-PITE)의 멤버, 유찬이 미모의 여성과 길거리 데이트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7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유찬이 한 여성과 데이트를 했다는 목격담이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
유피트(U-PITE)의 소속사인 DP엔터테인먼트는 유찬의 열애설에 관련하여 사실 확인 중이라고 답했다.
한편, 유피트(U-PITE)는 20XX년 <낫 배드(Not Bad)>로 데뷔하여, <소원꽃잎>과 <그리다>로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는 정규 1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유찬이가…… 길거리 데이트를 했다고……?”
수겸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기사 내용에 적힌 글을 꼼꼼히 따라 읽었다. 그래도 좀처럼 머릿속에 기사 내용이 와닿지 않았다.
유찬이 미모의 여성과, 그것도 길거리 데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그가 평소 알고 있는 유찬이라면 그럴 리 없었다. 유찬의 성격상 그렇게 경솔하게 굴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유찬은…….
“나, 나를…… 조, 좋아하잖아……?”
수겸은 듣는 이도 없는데 혼자 부끄러워서 더듬거리다가 문득 뭔가를 깨닫고는 표정을 굳혔다.
바로 기사에 적힌 날짜였다.
“7일? 7일이면 어제잖아?”
어제 유찬은 하루 종일 수겸과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유찬이 여성과 길거리 데이트를 했다고 목격 글이 올라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목격담이 하나뿐이라면 착각을 했다거나, 루머라고 넘기면 된다. 하지만 여러 커뮤니티에 목격담이 올라왔다는 점은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때마침 단체 톡방에 민성의 메신지가 도착했다.
[유찬아 일어나면 이거 어떻게 된 일인지 해명 좀 해줘라]
꿀꺽, 수겸은 마른침을 삼키며 초조하게 유찬의 답을 기다렸다.
실시간으로 읽음 표시가 떴다. 그리고 마침내 유찬의 답이 왔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1분도 되지 않았는데, 체감으로는 몇십 분은 지난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아니에요 저 어제 수겸이형이랑 있었어요]
[그리고 저 만나는 사람 없어요]
단호한 유찬의 대답에 수겸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사이 민성이 이번에는 수겸을 부르며 톡을 보냈다.
[수겸아 네가 너 어제 유찬이랑 있었어?]
민성은 사실 확인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수겸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네’ 한 글자를 보냈다. 그러자 민성은 조금 더 세부적인 내용을 묻기 시작했다.
[둘이 어제 어디 갔어?]
[몇시쯤 만나고 몇시쯤 헤어졌어?]
[수겸이 어제 옷 뭐 입었어?]
[유찬이 너도 뭐 입었는지 말해줘]
수겸은 지은 죄도 없는데 취조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하도 당황스러워서 불쾌하다는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수겸은 여전히 떨리는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터치하여 답신을 적었다.
[점심 전에 만났어요.]
[유찬이네 집에 가서 점심 먹고]
[영화보고 카페갔어요]
[유찬이네 숙소 가서 저녁 먹고 헤어졌구요]
[옷은 베이지색 바지에 청재킷 입었어요 모자 썼구요]
[아, 아니 아이보리색 바지였어요]
수겸의 대답에 민성은 곧바로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멀리서 찍은 것처럼 보이는 사진은 유찬의 옆모습과 누군가의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
유찬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수겸은 그 사람이 누군지 금방 알아차렸다.
바로 자신이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어제 찍힌 사진 같았다.
왜 지금 시점에 이 사진을 보내는 것인지 의아한 마음에 눈을 가늘게 뜨는데, 민성에게서 톡이 왔다.
[그럼 이거 너 맞는 거지?]
[네 저 맞는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치겠다ᅟᅵᆿㅋㅋㅋㅋㅋㅋㅋ]
[이 무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십년감수했네ㅠㅠᅟᅲᆿ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겸이가 잘못했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겸이 답변을 보내자마자 단체 톡방은 ‘ㅋ’으로 도배가 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심각하다가, 단번에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달라진 상황에 수겸은 놀란 눈을 끔뻑거리다가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돌겠넼ㅋㅋㅋㅋㅋㅋㅋㅋ유차니 수겨미랑 열애설 났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무색하게도 타이밍 좋게 송화가 메신저로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팬들이 알아볼까 봐 얼굴을 꼭꼭 감쌌더니, 잘 숨기다 못해 오히려 여자로 오해받은 모양이었다.
수겸은 밀려드는 민망함에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그때 때마침 유찬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겸은 벌게진 얼굴로 고민하다가 이내 깊은 한숨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형, 괜찮아요?
“응……. 괜찮아.”
-미안해요, 놀랐죠?
“아냐, 미안하긴. 네가 더 놀랐을 텐데.”
알고 보니 해프닝에 불과한 일이니 유찬이 사과할 만한 것은 조금도 없었다. 외려 웃어넘길 만큼 재미있는 오해였다.
그렇더라도 수겸 입장에서는 갑자기 미모의 여성이 된 셈이니 부끄러워 미칠 노릇이었다.
“솔직히 좀 쪽팔리긴 한데…… 괜찮아. 진짜 열애설은 아니니까 됐어.”
-저는 진짜 열애설이어도 괜찮은데.
“어?”
수치심에 열 오른 뺨을 손등으로 식히던 수겸은 훅 들어온 유찬의 진심에 고리눈을 떴다.
얼핏 듣기에는 담담한 말투였지만, 목소리만큼은 뭣 모르는 수겸이 듣기에도 퍽 유혹적이었다. 나직하게 귓가에 감기는 목소리에 수겸은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은 아니에요?
“…….”
-아직은 아니구나…….
당황해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만 벙긋거리자, 서운한 듯 유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실망한 유찬의 얼굴이 눈앞에 선했다. 수겸은 그의 침울한 얼굴을 떠올리자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수겸은 유찬이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손까지 내저어가며 부정했다.
“아냐, 아냐, 유찬아! 그런 게 아니라!”
-그러면 우리 연인…… 맞아요?
“그게…….”
수겸이 발갛게 익은 얼굴로 입을 열려던 차였다.
♩♪♩♪♩♪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아침부터 누가 왔을까 싶어 수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안, 유찬아. 이따가 전화할게. 누가 왔나 봐.”
-……알았어요.
실망한 듯한 유찬의 목소리에 아차 싶었지만, 이미 한 말을 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자면 유찬의 말에 선뜻 대답하자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유찬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유찬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이렇게 시간을 번 게 다행이었다.
수겸은 아무렇게나 뻗친 머리를 손으로 대충 빗으며 방을 나서 거실 비디오폰 앞에 섰다.
막연히 열애설에 놀란 유찬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나 이사님이 찾아왔으리라고 생각했던 수겸은 비디오폰을 보고는 경악했다.
“뭐, 뭐지……. 무슨 일이야……?”
수겸이 당황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와중에도 초인종은 울리고 있었다.
수겸은 얼떨떨한 채로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는 조심스럽게 현관 쪽으로 다가섰다.
타이밍 좋게 벌컥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