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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131화 (133/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31화

“차이겸, 아, 아니, 태원이 형, 어, 솔아, 헉, 이사님 안녕하세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네 사람을 본 수겸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네 사람이 갑자기 찾아왔다는 사실에 놀란 것은 둘째치고, 네 사람 모두 흉흉한 기운을 풍기고 있어서 솔직한 말로는 쫄았다.

처음에는 유찬과의 열애설 때문인가 싶었는데, 그랬으면 유찬을 찾아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한 일에 다들 이렇게 무섭게 굴 일인가 싶어 억울하기도 했다.

수겸은 그러면서도 쪽수에서부터 밀리는 싸움을 하자니 겁이 나서 커다란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다, 다들 이른 아침부터…… 어쩐 일이신지…….”

수겸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물론 당당하게 말을 이어나갈 용기까지는 없어서 점점 말끝을 흐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유찬이야?”

“어?”

뭐가 유찬이라는 건지, 수겸은 많은 것이 생략된 것 같은 이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태원이 끼어들었다.

“수겸아, 정말 유찬이야?”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잘…….”

여전히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수겸은 조금 더 설명을 해달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대꾸했다.

“형의 결정이 유찬이냐고.”

그러자 이번에는 한솔이 물었다. 아까보다는 정보가 추가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수겸은 마지막 바람을 담아 간절한 눈빛으로 선욱을 바라보았다.

선욱은 잠시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늘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수겸을 대하던 선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수겸아,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유찬이야? 그게 네 결정이야?”

그러나 평소와 다른 선욱의 모습에 놀랄 틈이 없었다. 그의 질문이 더 당혹스러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수겸은 그제야 네 사람이 왜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무서운 기세로 제게 찾아온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들은 수겸이 유찬과 난 열애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즉, 네 사람에게는 이 열애설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중요한 문제였다.

이 사실을 깨닫자 수겸은 절로 몸이 굳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당황이 밀려들었다.

제 감정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었다. 한 번에 여러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자신도 받아들일 수 없는 걸 이들이 수용해 줄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건 아니에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수겸은 우선 할 수 있는 대답부터 했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시키는 것은 다음의 문제였다. 일단 아닌 것은 아니라고 대답하는 게 먼저였다.

“……정말?”

한솔의 물음에 수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내내 굳어 있던 한솔의 얼굴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그 변화에서 그가 느끼는 안도감이 전해졌다. 그래서 수겸은 그에게 더 미안했다.

한 번에 두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인데, 동시에 다섯 명이나?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런 제 감정을 들으면 한솔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이 되고 무서웠다.

“그럼 열애설은 잘못 난 거지?”

태원의 물음에 수겸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태원이 다행이라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럴수록 수겸의 마음은 무거워지기만 했다.

“그래, 그럼 됐어.”

선욱의 말에 수겸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거면 됐다고 했지만, 수겸의 입장에서는 전혀 아니었다. 양심이 쿡쿡 찔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이 안심하면 안심할수록 수겸은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뭐라도 말을 해야만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이 상황을 이대로 넘겨서는 안 된다. 그건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수겸은 위장이 마구잡이로 꼬이는 것 같아 질끈 눈을 감았다. 그래도 말해야 했다.

“저기…….”

수겸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여는 그 순간이었다.

♩♪♩♪♩♪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수겸은 놀란 눈으로 현관을 바라보았다. 그때 이겸이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왔네.”

“누가 와?”

“유찬이. 내가 문 열 줘?”

이겸은 비디오폰도 보지 않고 밖에 있는 사람이 유찬이인 것을 알고 있었다.

수겸은 차이겸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나 싶어 얼떨떨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이겸은 폭 한숨을 내쉬며 문 열림 버튼을 눌렀다.

“혀, 엉, 허억, 헉.”

“유찬아……. 왜 그래? 뛰어왔어?”

현관문이 열리는 동시에 가쁜 숨을 몰아쉬는 유찬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거친 숨을 내쉬는 걸 보아하니 정신없이 뛰어온 모양이었다.

수겸은 유찬이 왜 이렇게까지 달려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유찬아, 괜찮아? 물이라도 줄까?”

“아, 아니요. 괜찮아요.”

유찬은 여전히 쌕쌕 숨을 몰아쉬면서도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수겸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유찬을 바라보다가 아차 싶었다. 자신이 굉장히 중요한 말을 하려던 참이라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먼저 온 네 사람이 진지한 눈으로 수겸을 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유찬마저 어느새 호흡을 정돈하면서 수겸을 올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유찬 역시 수겸이 중요한 말을 할 것이라는 걸 알아채고 달려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쯤 되니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수겸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저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지만, 수겸의 입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첫마디를 떼었다.

일시에 다섯 쌍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는 것을 느끼며 수겸은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생각나는 대로, 솔직하게 제 감정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사실 시작은 성공하고 싶다는 내 욕심이었는데, 그걸 알면서도 나를 좋아해 줘서…… 정말 고마워.”

숨이 가빴다. 가만히 있는데도 백 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수겸은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런데 내가 너무…… 너무 쓰레기라…… 미안해.”

수겸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여전히 눈을 꼭 감고 있는 상태였다.

소중한 이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원망 어린 시선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 나는…… 다, 다 좋아…….”

결국 그 말을 하고야 말았다.

수겸의 목소리가 속절없이 떨렸다. 아니, 사실 떨리는 것은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몸도 부들부들 떨렸다.

“마, 말도 안 되는 일인 거 아는데, 정말 쓰, 쓰레기인 것도 아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 좋아…….”

거의 울기 직전이 된 수겸은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그러다가 머리를 토닥이는 다정한 손길에 놀란 수겸이 눈을 뜨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사님……?”

“괜찮아, 수겸아.”

상냥하기 그지없는 말에 수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쁜 것은 자신이니 지금 울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도 눈물은 눈치 없이 자꾸만 고였다.

“울지 마.”

태원이 엄지로 수겸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그의 말대로 울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도 이상스레 자꾸만 눈가는 젖어들어 갔다. 수겸은 벅벅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형이 울면 속상하잖아, 울지 마.”

한솔까지 수겸을 달래주자, 수겸은 할 수만 있다면 땅으로 푹 꺼져서 사라지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그러니 이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수습해야만 했다.

“다, 다들 왜 이렇게 다정해? 화를 내야지, 욕을 해야지……!”

“왜?”

이겸의 물음에 수겸은 할 말을 잃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그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수겸은 너무 당황스러워서 주책없이 나오던 눈물도 쏙 들어갔다.

“그, 그야 내가…… 다, 다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어쨌든 날 좋아한다는 거 아니야?”

“어, 그, 그게 그렇긴 한데…….”

수겸은 당혹감에 말을 더듬었다. ‘다 좋아한다’를 ‘어쨌거나 나를 좋아한다’로 받아들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수겸은 놀란 마음에 다른 사람들을 차례로 돌아봤다. 그런데 누구 하나 화가 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형이 저만 좋아해 주면 좋겠다는 욕심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형이 절 좋아해 주면 됐어요.”

유찬이 담담하게 덧붙였다. 이어서 선욱이 쐐기를 박았다.

“내 눈에 사랑스러운 사람이 남의 눈에도 사랑스러운 걸 어쩌겠어. 이렇게 사랑스러운 수겸이를 좋아했으니, 받아들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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