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수상하고 아름다운 가정 교사 (3)
나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칼서스의 어깻죽지에 주먹을 휘둘렀다. 어이없게도 한 번 때릴 때마다 칼서스의 몸에서는 상큼한 향기가 퐁퐁 솟아올랐다.
[행복][기쁨][감동]
“으으아아악!”
그리고 동시에 머릿속으로 감정이 계속해서 공유되었다. 한 번 연결해 둔 블루투스 이어폰이 계속 자동으로 연결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 듯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칼서스의 멱살을 잡았다.
“그만 좀 행복해해! 얻어맞고 있는데 왜 기뻐하는 거야!”
“푸, 큭큭큭…….”
“웃지 말라고!”
“아하하하……!”
아무리 윽박을 질러도 칼서스는 온몸으로 행복해하며 웃을 뿐이었다. 망할 도마뱀 새끼가 진정한 건 장장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 * *
두렵거나 혼란스러울 땐 씁쓸한 향기가, 슬프거나 절망스러울 땐 매캐한 향이 나고, 짜증이 났거나 예민해졌을 때는 후추같이 알싸하고 매운 향기가 나는 등, 자극적인 향이 난다. 반대로 행복하거나 기쁠 땐 상쾌한 향기가, 쾌감이나 희열을 느낄 땐 달콤한 향기가 난다고 하고, 우울할 땐 비처럼 눅눅한 향기가 난다……,
“……는 거지?”
“잘 외웠군.”
칼서스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내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다니……. 내심 내가 신경이 쓰였던 건가?”
저 뻔뻔한 새끼.
아껴 주는 티를 내자마자 또 능글거리면서 사람을 떠보려고 들어? 나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읊조렸다.
“감히 또 그딴 소리를…….”
“…….”
“또 나를 떠보려고? 진짜 나랑 얼굴 보고 살기 싫어? 그래서 일부러 이러는 거야?!”
화가 난 나는 냅다 손을 뻗어 칼서스의 멱살을 쥐었다. 고운 실크로 만들어진 튜닉의 깃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뜯어졌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다. 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잘못을 했으면 잘못했다고 사과부터 해야 할 거 아냐. 대뜸 잠입하는 게 말이나 돼? 너 정말 누구 놀려?!”
“놀리려고 한 게 아니라…….”
칼서스가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한참이나 망설이던 그가 잔뜩 기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가 자꾸 무언가를 두려워하기에, 걱정이 되어서…….”
“…….”
자신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태도였다. 그 모습이 꼭 꼬리를 말고 낑낑거리는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네게 상처를 입혔으니, 너와 이전처럼 지낼 수 없다는 점.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
“네가 타인의 죽음에 유달리 민감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이용해서 너를 시험했다. 네가 내게 가지는 애정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풀 죽은 도마뱀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러자 다시 온 사방에 눅눅한 냄새가 폴폴 풍기기 시작했다.
“그건 용서받지 못할 잘못이 맞아. 해서는 안 될 짓이었어. 정말 미안해.”
칼서스는 감정을 다잡으려는 것처럼 눈을 질끈 감고, 억눌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시는 접근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마. 다만…….”
“…….”
“적어도 널 지킬 수 있게는 해 줘.”
“지켜? 날 지키겠다고?”
내가 황당해하며 반문하자, 칼서스가 허둥지둥 변명을 덧붙였다.
“물론, 널 지키기 위함이란 명목으로 다른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저기요.”
“……응?”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손가락 끝으로 칼서스의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칼서스 당신이 눈치가 없다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눈치가 없는 줄은 몰랐네.”
“……어?”
칼서스는 여전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눈을 느리게 깜빡거렸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아는 거 아니에요?”
“그야, 네가 나를 걱정해서…….”
“아는데 왜 여기서 접근하지 않겠단 소리가 나오는 건데요? 혹시 좀 모자란 편이에요?”
“…….”
애초에 나는 네가 가이딩을 거절해서 화가 난 거잖아. 그런데 왜 아직도 이해를 못 하는 건데?
나는 잡고 있던 옷자락을 더 끌어 내렸다. 그러자 칼서스의 등이 굽으며, 그와 나의 시선이 맞아떨어졌다.
금빛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나를 직시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나는 칼서스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누군가가 죽는 게 싫은 게 아니라,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어서’ 싫은 거예요. 특히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아픈 건 끔찍하리만큼 싫어요.”
“…….”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남은 나는 평생 동안 그 빈자리를 느끼면서 살아가야 하니까.”
함께하면서 행복했던 만큼의 공백이 생기는 건 끔찍하게 괴로운 일이다. 온기로 차 있던 일상은 하루아침에 떠나간 자들의 발자취로만 느껴지게 되고, 나는 그 ‘행복했던’ 시간에 갇혀 과거를 곱씹기만 하는 삶을 살게 된다.
“나는 그래서 가이딩이 되지 않는 게 무서웠어요. 칼서스는 지금 내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잖아요.”
눈앞의 칼서스도 그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무려 여덟의 형제를 떠나보낸 용이니까.
그 공백이 얼마나 시리고 아플지 알고 있을 텐데. 당신은 왜 나한테 그 공백을 떠넘기려고 하는 거지?
“나는 당신을 책임지려고 하는데, 왜 자꾸 당신은 나를 시험하려 해요? 왜 나한테 더 정보를 주지 않아요? 왜 더 적극적으로 내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
“정작 소통은 안 하는 주제에, 나를 지킨다느니 가일을 죽이겠다느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나는 당신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곁을 내주었던 사람이 나를 위해 희생했을 때, 그때 느낄 마음의 짐이 싫다. 차라리 내가 내 몸을 불살라 한 줌의 재가 되는 것이 낫다.
정말 기묘하게도, 나는 그 이유만으로 ‘이기적이기에 이타적인’ 인간이 되어 버렸다.
“눈치가 없으면 입으로라도 주절거려요. 내 관심이 받고 싶었으면 가이딩을 거절할 게 아니라, 나한테 관심이 받고 싶었다고 말로 했으면 됐잖아요!”
“해일…….”
“표현이랄 건 하나도 안 해서 사람 헷갈리게 해 놓고는, 사과한답시고 멀어지겠다는 소리를 해?”
그래서 칼서스가 나를 떠나가는 게 싫었다. 곁을 내어 주고, 삶을 공유한 만큼. 그가 사라졌을 때의 공백이 사무치게 아플 걸 예감하고 있으니까.
“당신은 내가 없으면 죽잖아요. 나도 그 사실을 알고 당신도 그 사실을 아는데, 지금 나한테 어떻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마 칼서스가 보고 있는 내 모습은 퍽 꼴사납겠지.
훈계하면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사람이라니. 이래서야 누가 혼나는 건지 구분이 안 갈 텐데.
“당신이 그렇게 나오면…… 당신이 죽는 게 무서워서 발악한 내가 뭐가 돼?”
오롯이 칼서스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기에 발버둥 쳤다. 그런데 돌아오는 게 이런 말이라니.
나는 힘없이 그의 어깨에 고개를 툭 기대었다.
“불안하게 만들지 좀 마요.”
“…….”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만 골라서 하냐고요…….”
너 때문에 내가 제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잖아. 미친 사람처럼 날뛰다가, 화를 내다가, 울다가, 넋이 나갔다가. 대체 왜 이렇게까지 나를 괴롭히려는 거냐고.
“나는 정말 무서웠다고요…….”
결국 눈가를 타고 눈물이 뚝 떨어져 내렸다. 나는 양팔을 뻗어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이렇게 닿아 있어야만, 그가 지금 내 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살아 있어. 아직 살아 있어…….’
사람들은 으레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고인은 묻어 두고 앞을 바라보라고 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건 죽음과 삶의 경계뿐. 그렇기에 나는 죽은 사람을 가슴에 묻어 둘 수가 없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서는 안 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아직은 사람을 묻어 두는 법을 몰라. 내 잘못으로 네가 죽게 되면, 그 죄책감에서도 영영 도망칠 수 없을 거야.’
나는 훌쩍거리며 칼서스의 목덜미에 완전히 고개를 파묻었다. 그러자 칼서스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내가 미안해.”
“…….”
“솔직하지 못해서, 너를 두렵게 만들었어. 미안해.”
칼서스의 입술이 눈물로 엉망이 된 눈가에 닿았다. 이어서 눈물이 흘러내린 뺨에 가벼운 키스가 닿고, 그 뒤에는 입술 위에서 따듯한 체온이 느껴졌다. 살짝 고개를 기울인 칼서스가 입술을 완전히 겹쳐 왔다. 잇새가 벌어지고, 달큼한 향기가 나는 혀가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아, 으읍…….”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건지, 칼서스의 손이 내 뒷덜미를 가볍게 끌어당겼다. 입술이 가볍게 떨어지며 뜨거운 숨이 얽혔다가, 다시금 맞붙었다. 혀를 감아올려 빨아 당겼다가, 연한 살을 헤집듯이 입 천장을 문지르는 야릇한 동작이 이어졌다. 진득한 춥춥 소리가 귓가를 온통 울리는 탓에, 귀가 홧홧해졌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이상해…….’
눅눅한 향기와 달큼한 향기, 청량한 과일 향기가 온통 뒤섞여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기분이, 나쁜데, 이상하게 좋기도 해…….’
공유되어 오는 감정이 뒤죽박죽이었다.
마냥 우울하고 괴로운 감정만이 넘어오는 게 아니라, 기쁨과 환희, 고마움과 미안함이 모두 뒤섞여서 전달된 탓에 내 마음도 고양되었다가, 암울해졌다가, 다시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뭐, 딱 하나 확실한 건…….
기뻐하는 게 느껴지니, 가이딩이 마냥 괴롭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