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드래곤의 항우울제가 되었다-37화 (37/101)

37.

드워프와 마나 하트 (2)

칼서스에게 시달리는 동안 하늘에 드리워져 있던 검은 그림자가 걷히고, 해가 떠올랐다. 그는 동틀녘이 되어서야 나를 놓아주고는 만족한 것처럼 방 밖으로 나가 내가 깨어났음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미친 새끼, 왜 저러는 거야…….’

나는 부르튼 입술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드, 드워프를 만나 보고 싶으시다고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셋이 놀란 토끼처럼 눈을 부릅떴다. 어벙한 표정을 하고 있던 린이 되물었다.

“드워프는 왜 만나려고 하시는 거예요?”

나는 대답을 하기 전에 클램차우더 스프를 한 술 떠 삼켰다. 약간 묽게 끓인 스프는 담백하면서 고소해서 입맛에 잘 맞았다.

“용의 사체를 어떻게 가공했는지 궁금해서.”

“그게…… 왜 궁금하세요?”

“용의 비늘은 질겨서 오러를 두른 검으로 공격해도 막아 낼 수 있다고들 하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수저로 스프에 들어가 있던 조갯살을 골라 칼서스의 입에 집어넣었다. 칼서스는 싫은 내색도 없이 얌전히 내 편식을 도왔다.

나는 다시 수저로 스프를 한 술 떠먹은 뒤 설명을 이어 갔다.

“그런 용의 몸을 제련해서 검으로 만들어 냈다는 건, 용의 허점을 찾았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잖아?”

“아……!”

린이 손뼉을 치며 외쳤다.

“용을 찾아서 끝장내실 생각이시군요!”

“…….”

“기꺼이 돕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도울게요!”

그러자 묘하게 기가 죽은 표정으로 앉아 있던 황태자가 몸을 앞쪽으로 기울이며 내게 말을 붙였다.

“피, 필요하시다면 폐하께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폐하께 이런 사사로운 일로 폐를 끼칠 수는 없지요. 린과 오르가의 도움이면 충분합니다.”

“그런가요…….”

그렇게 중얼거린 황태자는 곁눈질로 칼서스를 한 번 바라보고는, 이내 푸우 하고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왜 저러지?’

묘하게 시무룩해 보이기도 하고, 칼서스를 견제하는 것 같기도 한데…….

‘뭐, 둘 사이에 일이 있었나 본데,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겠지.’

나는 기가 죽은 황태자를 무시해 버리고는, 린에게 말을 걸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용을 제련해 낸 드워프를 볼 수 있을까? 내 쪽에서 이동하는 게 조건이더라도 찬성이야.”

“제가 아버지와 카일로스 백작님께 전언을 넣어 둘게요.”

“고마워.”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린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주의하실 점이 있어요.”

“응?”

주의할 점이라니? 혹시 드워프들에게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건가?

나는 의아하게 린을 바라보며 ‘뭘 주의해야 해?’라고 질문했다. 린은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드워프들은……, 굉장히 깐깐하고 우악스러운 종족이에요. 성격도 좀 나빠요.”

“우리 아버지보다?”

내가 그 한마디를 던지자마자 방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

“…….”

멋쩍어진 나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왜들 그래?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그……, 맞긴 한데…….”

린이 무척이나 심란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툭 떨구며 웅얼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걸 기점으로 내 주변을 둘러싼 세 사람과 용 하나의 표정이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번에도 이유를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 * *

우리가 드워프들이 모여 산다던 마을로 향한 건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였다. 어느덧 7월이 된 덕분인지 나무 사이로 내리쬐는 볕이 뜨겁고, 불어오는 바람이 후끈했다. 나는 린이 불러낸 말 형태의 정령 위에 올라탄 채로 중얼거렸다.

“수도에서 그리 멀지 않구나.”

린이 덤덤한 표정으로 답했다.

“황실에서 의뢰를 자주 맡기는 편이니까요. 원래는 남쪽에 있었는데 중앙으로 옮겨 왔다고 들었어요.”

“……고향을 두고 중앙으로 옮겨 온 거야?”

“네. 폐하의 부름이라 어쩔 수 없었대요.”

……저번에 드워프들이 깐깐하고 우악스러운 종족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런 특성을 가진 종족이 중앙으로 옮겨 와야 했다고?

‘인간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족도 황제의 간섭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겠구나…….’

나는 남몰래 한숨을 삼키며 생각했다.

‘남쪽에서 중앙으로 옮겨 왔으면 날씨도 많이 바뀌었을 텐데……. 드워프들도 고생이 많네.’

빵을 굽는 것만 해도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하물며 대장간은 어떻겠는가. 아마 새로운 날씨에 맞춰서 용광로를 달구느라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심란해하고 있는 사이, 린이 손으로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여기를 돌면 나와요.”

린의 말대로 숲길을 벗어나자, 대리석으로 정갈하게 포장된 도로가 나타났다. 도로는 울퉁불퉁하게 마감된 중앙과는 달리 가지런했고, 빗물이 빠져나갈 수 있게 홈까지 파여 있었다. 거의 현대의 시설에 필적하는 도로였다.

‘와, 역시 드워프…….’

도예부터 제련, 건설이나 공예에 엄청난 두각을 나타내는 종족이라더니……, 그게 사실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도로의 끄트머리로 시선을 던지자, 키가 백오십 센티 정도 되어 보이는 드워프 한 명이 보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서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민소매 옷 바깥으로 드러난 어깨며 팔뚝이 온통 근육으로 꽉 차올라 있어서, 덩치가 작음에도 카리스마가 있어 보였다.

우리가 마을의 입구로 가까이 다가가자, 드워프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이시오?”

“그대의 하루에 영광이 있기를. 용을 제련한 드워프가 있다 하여 만나러 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드워프가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트리며 소리를 내질렀다.

“우리더러 그 짓을 또 하라는 거요?!”

“네?”

“그 검을 만드느라 몇 명의 드워프가 죽어 나갔는데! 어떻게 그 짓을 또 시킬 수가 있어! 당신네들 인간에게 정녕 자비란 없는 거요?!”

드워프가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자, 린이 말 아래로 훌쩍 뛰어내리며 마주 소리쳤다.

“말씀이 심하시잖아요! 저희는 그냥 용을 제련한 드워프 분을 만나러 온 것뿐이에요.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온 거라고요!”

“죽었소! 없단 말이오!”

그 말에 순식간에 린의 표정이 얼떨떨하게 바뀌었다. 그녀가 되물었다.

“……죽다니요?”

“용을 제련한 대장장이들은 다 죽었소! 그 빌어먹을 검 세 자루를 만드느라 서른이 넘는 목숨이 사라졌지.”

검 세 자루를 만들다가 서른이 넘는 드워프가 죽었다고? 대체 왜?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에서 내리며 질문을 던졌다.

“설마……. 마나 하트 때문인가요?”

“그래! 그놈의 마나 하트 때문에 다 죽었단 말이오!”

드워프는 구릿빛 피부를 온통 시뻘겋게 물들이고 부리부리한 눈매에 잔뜩 힘을 주어 눈을 홉뜬 채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뭔 놈의 마나 하트가 그리도 살아 있는 것처럼 구는지, 용의 부속물이 아닌 다른 물질과 닿으면 기운을 방출해 대서 대장장이들이 여럿 죽었소. 죽지 않고 살아 나온 놈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결국 죽어 버렸지.”

“…….”

씨근덕거리는 드워프의 잇새에서 이가 갈리는 바드득 소리가 났다. 홉뜬 눈의 흰자에도 붉은 실핏줄이 도드라졌다. 분노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듯했다.

나는 침착하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쉰 뒤,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제가 좀 보러 가도 될까요?”

“뭐?”

“그 마나 하트를 보러 가도 되느냐고 묻는 겁니다.”

드워프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소?”

“아닙니다.”

살갑게 눈을 접어 웃어 주자, 드워프의 인상이 다시 와작 일그러졌다. 그가 경계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아니면, 우리를 더 죽일 셈인가?”

“그것 또한 아닙니다. 마나 하트에 접근하는 건 저 하나뿐입니다. 죽는 이는 더 나오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세요.”

드워프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앞에 섰다. 딱 가슴팍까지 간신히 올라오는 키였다. 드워프는 목을 꺾어 나를 올려다보며 내 얼굴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당신 때문에 우리 동족이 더 죽어 나간다면 저놈들도 목을 내놓고 가야 할 거요!”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가급적이면 제 목으로 만족해 주셨으면 해요. 제가 욕심을 부려서 생긴 상황이니까요.”

“단장님! 목을 내주겠다고 하시면 어떡해요?!”

그러자 이번에는 린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괜찮아. 그런 일은 안 생길 테니까.”

린에게 건넨 말을 들은 드워프가 표정을 괴상하게 일그러트리고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영 마뜩잖게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러는 게요? 당신은 목숨이 아깝지도 않소?”

“믿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 주세요.”

“…….”

드워프가 재차 질문했다.

“정말 다른 이들은 마나 하트에 접근하지 않아도 되는 거요?”

“정말입니다. 제가 볼 수만 있다면 충분합니다.”

내가 미소 지으며 말하자, 드워프가 체념한 듯 팔짱을 풀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럼…… 따라오시오.”

“감사합니다.”

“나는 정말 위험하다고 말렸소! 나중에라도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없어야 할 거요!”

“그럼요. 말리셨죠. 모두가 들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흘긋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다비의 모습을 한 칼서스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 몇 초간 말없이 얼굴을 마주 보고 있다가, 동시에 쓴웃음을 짓곤 드워프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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