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드워프와 마나 하트 (3)
정갈하면서도 아름다운 마을을 지나쳐 걷다 보니, 마을의 한 귀퉁이에 자리한 대장간까지 금세 닿았다. 드워프는 우리를 대장간 너머에 있는 건물로 안내했다.
우리가 대장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대장간 안에 있던 드워프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를 향했다.
개중 가장 체격이 좋고, 수염을 멋스럽게 기른 드워프가 물었다.
“태그, 그놈들은 뭐야?”
“마나 하트를 보러 오셨단다.”
“그걸?”
그 말을 듣자 드워프가 손에 쥐고 있던 망치를 내려놓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일행의 앞을 가로막았다.
“진짜로 그걸 보러 왔소?”
“그대의 하루에 영광이 있기를. 그렇습니다.”
“시답잖은 인사 집어치우고. 그걸 왜 보러 온 게요? 죽고 싶어서 환장했소?”
……얘들아, 제발 인사 좀 멀쩡하게 받아 주면 안 될까? 어떻게 인사를 받아 주는 놈이 한 명도 없을 수가 있어?
‘우악스러운 종족이라더니…….’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려 사회인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죽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래 놓고 시체 치우게 한 놈이 한둘인 줄 아시오?”
“…….”
드워프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마나 하트는 함부로 만질 수도, 다가갈 수도 없소. 그래서 황궁에서 나온 놈들도 차마 남은 용의 사체를 회수해 가지 못한 거요. 용의 가슴이 열려서 마나 하트가 영향력을 펼치는 탓에, 죽기를 각오한 놈들이 아니면 다가갈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는 건, 다비 알테아르의 사체는 전부 여기에 남아 있는 거구나.
그 말을 듣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드워프를 설득했다.
“방책이 있어서 온 것이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이오?”
“네, 정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드워프의 표정이 순식간에 침착해졌다.
“마탑에서 파견되기라도 한 모양이군. 알겠소. 데려다주리다.”
“감사합니다.”
나는 굳이 그의 말을 정정해 주지 않고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두 명의 드워프에게 안내를 받으며 대장간을 벗어나, 마을에서 동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로 향했다.
건물은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지 무척이나 고요했고, 문 역시 몇 개나 되는 잠금장치로 굳게 잠겨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굳게 잠긴 철문을 두 번이나 통과한 뒤, 지하로 내려가 유리로 된 문을 마주했다. 두꺼운 유리로 만들어진 문은 잠금장치가 달려 있지 않았고, 무척이나 투명해서 그 너머가 들여다보였다.
우리를 안내한 두 드워프가 설명했다.
“우리는 여기까지밖에 들어갈 수 없소.”
“……예. 알고 있습니다.”
나는 정면을 응시한 채로, 입술을 달싹여 대답했다. 한 겹 유리문 너머로 들여다보이는 광경이 너무나도 처참했기 때문이었다.
은빛의 용은 썩지도, 흙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드문드문 잘린 갈빗대 사이로 찬란하게 빛나는 마나 하트만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처참하군요.”
“처참하지.”
태그라고 불린 드워프가 내 곁으로 다가와 섰다. 그가 손을 뻗어 내 등을 두어 번 툭툭 쳐 주며 말했다.
“우리라고 좋아서 용의 시신으로 검을 만든 게 아니오. 한때 살아 있던 존재에게 못 할 짓을 하는 게니까.”
“…….”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소. 우리는 마을에 살고 있는 드워프 모두가 죽는 결과를 피하고 싶었을 뿐이외다.”
나는 그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돌려 칼서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 곁에 서서 무표정하게 유리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무덤덤하다고 할 만큼 건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속은 엉망이야.’
무감정한 얼굴이지만, 내게는 가면 너머의 동요가 느껴졌다.
나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쉰 뒤,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칼서스.”
“네?”
“다, 단장님?”
그 이름을 들은 린과 오르가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며 손을 뻗어 칼서스의 옷깃을 붙잡았다.
“혼자 있을 시간을 드리면 될까요?”
다비의 모습을 한 칼서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네가 함께 있어 줬으면 한다.”
“다른 사람들은요?”
“위험하니 나가 있는 게 좋겠지.”
칼서스 특유의 무심한 어투를 듣자마자, 두 사람은 깨달은 바가 있는지 득달같이 달려들어 나와 칼서스를 떼어 놓으려 했다.
“아니, 잠깐…… 단장님!”
“서, 설마 이 자식이?!”
“진정해, 괜찮아.”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두 사람의 손길을 밀어 냈다.
“미리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설명은 애도가 끝나면 해 줄게.”
“단장님…….”
린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다시금 붙잡았다. 그녀의 흔들리는 시선이 칼서스를 곁눈질했다.
나는 그 모습을 들여다보면서도, 한 번 더 조심스럽게 린의 손을 떼어 내었다. 그리곤 평소와 다름없이 밝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탁해.”
“…….”
린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내쳐진 자신의 손을 바라보더니, 이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해는 안 가지만, 알겠어요. 나가 있을게요.”
“고마워.”
“이따가 꼭 설명해 주셔야 해요!”
“꼭 그럴게.”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뻗어 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린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힘없이 오르가의 손목을 붙잡고 뒤돌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도 설명해 줘야 할 게요.”
“물론이죠.”
대답을 들은 두 드워프도 린과 오르가의 뒤를 따라 다시 계단을 올랐다. 조금 뒤, 육중한 철문이 두 번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지하에 완전한 적막이 찾아왔다.
칼서스는 두 번째 문이 닫히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 유리문을 열어젖혔다.
“칼서스…….”
다급한 걸음걸이로 형제에게 다가가는 남자의 모습이 서서히 바뀌었다. 은빛으로 반짝이던 머리칼은 점점 어둡게 물들었고, 둥글던 귓바퀴는 뾰족하게 변했다.
익숙한 엘프의 모습이었다.
“다비, 다비…….”
칼서스는 먹먹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눈을 감은 용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차갑게 식어 버린 형제의 뺨을 끌어안고 이마를 맞대었다.
“너는 유독 외로움을 잘 타는 녀석이었는데, 더 일찍 와 줬어야 했는데…….”
“…….”
칼서스는 먹먹해진 목소리로 숨이 멎은 다비에게 연신 사과를 건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언제나 아름답고 위풍당당하던 그의 어깨가 위태롭게만 느껴졌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늦어 버렸어……. 너무…….”
형제를 끌어안은 손끝이 파르르 떨렸고, 다비와 이마를 맞댄 하얀 얼굴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홀로 살아남은 나를 용서하지 말아 다오……. 너무나도 늦게 찾아온 나를 원망해…….”
죄책감으로 얼룩진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욱신거리는 통증이 몰려왔다.
나는 조용히 칼서스의 뒤로 다가가, 그의 허리춤을 끌어안았다. 그와 동시에 진창에 처박힌 듯한 비릿하고 눅눅한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코가 아릴 정도의 향기가 그의 참담한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칼서스의 목덜미에 고개를 기댄 채로,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 * *
칼서스가 평정심을 되찾은 건 한참이 지난 뒤였다. 그는 눈과 코가 발갛게 된 꼴로 다비의 시신에서 이마를 떼어 내었다.
그가 허리에 감겨 있던 내 손을 쥔 채로,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해일.”
“네, 칼서스.”
“……내 동생을 인도해 줘.”
사랑했던 인간들에게 배신당했기에 죽어서도 편안히 잠들지 못한, 안타까운 나의 동생을 거두어 줘.
차마 입으로 내뱉지 못한 생각이 시선을 통해 흘러들어 왔다.
“평온히 잠들 수 있게, 다비 알테아르를 인도할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칼서스는 고맙다는 인사 대신, 고개를 숙여 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키스를 해 준 칼서스는 유리문 근처로 물러났고, 나는 다비의 사체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따듯한 손바닥에 서늘한 비늘이 닿자, 그의 마나 하트에 남아 있던 마나가 스르르 내 몸으로 흘러들었다.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이미 죽어 버린 몸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영혼이 기뻐하고 있다. 그리워하던 세계수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다려 왔던 형제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에…….
‘그 사소한 사실에 기뻐하고 있어…….’
잠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 뺨을 타고 흘러내려, 다비의 뺨 위로 떨어졌다.
“다른 형제들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칼서스의 곁을 지킬게요.”
나는 칼서스가 했듯, 다비와 이마를 맞댄 채로 중얼거렸다.
“……그러니 걱정은 내려 두고, 이만 편하게 쉬어요.”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웅대하던 용의 몸이 천천히 빛무리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흩어진 빛무리는 춤을 추듯 내 주변을 맴돌다가, 내 몸속으로 파고들어 잠들었다. 그 직후 머릿속에서 ‘뚝’ 하고 무언가가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다비가 잠들었어요.”
내가 흐느끼며 중얼거리자, 칼서스가 다가와 내 어깨를 끌어안고 다시금 뺨에 입을 맞췄다. 나는 그 품에 고개를 기댄 채로 가슴을 들썩이며 가쁘게 호흡했다.
“이렇게…….”
“…….”
“세계수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뻐하는데…….”
가쁜 숨소리 사이로 내뱉어지는 목소리가 점점 더 엉망으로 변했다.
“다비 알테아르는, 그저 인간을 좋아했을 뿐인데…….”
칼서스는 품에 안은 나를 달래 주듯, 말없이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 주었다. 나는 그의 품에 안긴 채로 말했다.
“칼서스, 나……, 다른 용들도 인도해 주고 싶어요.”
“…….”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끝이, 반사적으로 칼서스의 허리춤을 꼭 끌어안았다.
“당신만큼은 내가 인도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제발 나를 두고 떠나지 마요…….”
그 말을 끝으로, 텅 빈 지하의 방에 오열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칼서스는 내가 진정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