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드래곤의 항우울제가 되었다-43화 (43/101)

43.

인도하는 자 (4)

해일은 칼서스의 능력을 이용해 찻잎을 담은 함 하나를 러드에게 보내 주었다.

그는 찻잎을 받자마자 함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냄새도 색도 통상의 홍차와 별다를 게 없는데.’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 러드가 바로 물을 끓여 차를 우려 보았다. 그럼에도 특이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색도 예쁘고, 향기도 그윽한 데다 떫지도 않아. 공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평범한 차야.’

러드는 슬쩍 다른 잔에 찻물을 따라 한 모금을 마셔 보기까지 했으나, 몇 분이 지나도 이상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찻물을 빤히 내려다보며 한 번 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이걸 가일에게 먹인다고 해서……. 대체 뭐가 달라지는 거지?’

의심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러드는 ‘공자님이 생각한 바가 있겠거니’ 여기며 우려낸 차를 들고 가일에게로 향했다.

그가 문을 두 번 노크한 뒤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가일 단장님, 러드입니다.”

“그래.”

유리 벽 너머에 선 가일은 어김없이 땀으로 흠뻑 젖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가일이 뒤를 돌아보더니, 턱짓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후우……. 유리문을 열어야 하니, 거기 두고 가거라.”

“네, 단장님.”

러드는 준비한 차와 수건을 탁상 위에 올려놓고, 바로 방을 빠져나와 한숨을 푹 쉬었다.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고 하셨지만, 대체 뭐가 재미있는 건지를 모르겠으니 답답하네……. 대체 무슨 계획을 꾸미고 계신 걸까?’

그렇게 몇 걸음을 떼었을 때였다.

러드의 뒤쪽에서 문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더니, 그 안에서 가일이 뛰쳐나왔다.

깜짝 놀란 러드가 반사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왜, 왜 그러세요?”

“너, 너!”

“네?!”

러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자, 가일이 미간을 잔뜩 일그러트리고는 거센 기침을 토해 냈다.

“쿨럭! 커헉!”

“가, 가일 단장님?!”

러드가 당황스러워하며 쩔쩔매고 있을 때였다. 기침을 하던 가일의 잇새로 붉은 선혈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피를 토해 낸 가일이 그르렁거리며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러드를 노려보았다.

“너, 크흑, 차에…… 독을 섞었, 지!”

“네?!”

놀란 러드는 손사래를 치며 필사적으로 가일의 말을 부정했다. 한때 독을 먹이려 했던 건 사실이지만, 이번에 그에게 우려 준 차는 정말로 ‘평범한 차’였기 때문이다.

러드가 억울해하며 소리쳤다.

“절대 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찻잎을 우려서 가져다드린 거예요. 제가 시음도 해 보고 가져다드렸다고요!”

“그럼, 큭, 왜……!”

가일은 거기까지 읊조리더니,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금 기침을 토해 냈다. 기침을 터트리는 소리가 어찌나 거센지, 다른 방에서 연구를 하던 연구원들이 나와 가일과 러드를 바라볼 지경이었다.

가일은 괴로워하며, 또다시 기침과 함께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

“우욱!”

그 모습은 본 러드의 시선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진짜 독을 먹였을 땐 멀쩡하더니, 왜 멀쩡한 차를 우려다 주니까 피를 토하지?’

트레클리프 공자는 대체 어떤 원리로 가일에게만 통하는 독을 만들 수 있었던 걸까?

* * *

의사가 환자용 침대에 걸터앉은 가일을 보며 탄식을 터트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를 못 하겠군요.”

의사가 은 스푼으로 가일이 마시던 찻물을 휘저었다. 하지만 아무리 휘저어도 스푼의 색은 검게 물들지 않았다.

의사가 깨끗한 스푼을 들어 가일의 눈앞에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그저 평범한 홍차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걸 먹고 내가 피를 토했다. 복도에 남은 혈흔이 마르지도 않았을 텐데, 다른 독을 사용한 게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가일 단장님.”

거기까지 말한 의사가 찻잔에 찻물을 따르더니, 미지근하게 식은 차를 홀짝이며 들이켰다.

“저희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

“모두가 차를 한 모금씩 마셔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의사는 시험 삼아 차를 먹여 본 사람들의 이름을 쭉 나열했다. 러드, 빈, 제인, 쇼와……. 다 외우기도 벅찬 인원수였다.

“그들이 차를 먹은 지 30여 분이 지났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차를 먹고 30초도 지나지 않아 반응이 일어난 가일 단장님과 전혀 다른 반응입니다.”

그 설명을 들은 가일이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찻물이 든 주전자를 바라보았다.

“그 말은…….”

“독이 들지 않았다는 의미이지요.”

의사는 침대 곁에 마련된 협탁 위에 찻잔을 내려놓은 뒤, 협탁의 첫 번째 서랍에서 작은 함 하나를 꺼내 보였다. 함의 안에는 잘 덖어진 찻잎이 소복하게 들어 있었다.

“시종이 우렸다는 찻잎을 확인해 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저 평범한 홍차 잎이었습니다.”

“…….”

“그 말인즉, 가일 단장님이 섭취하셨을 때에만 독이 된다는 의미이지요.”

가일은 눈앞의 찻잎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넋을 잃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수로 나에게만 통하는 독을 만들었단 말이냐.”

“생각해 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입니다.”

의사는 침착하게 자신이 낼 수 있는 결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마나 코어에 과다하게 노출되어서 몸이 쇠약해지셨다.”

“…….”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되죠.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지 않으셨습니까. 마나 코어에 노출되어서 점점 몸이 망가지신 거라면 이렇게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진 않았을 겁니다.”

심지어 그렇다고 한들 고작 홍차를 마시고 피를 토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러니 독성 반응은 차를 매개로 나타났다고 봐야 할 터.

“그렇다면 남은 경우의 수는 한 가지뿐이죠.”

의사가 함의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누군가가 가일 단장님을 노리고, 가일 단장님에게만 영향력이 나타나는 독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제국 내에서 단 한 사람, 가일에게만 독이 되는 물질을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한 자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 허무맹랑한 설명을 들은 가일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닌가. 대체 이 세상의 누가 그런 짓을…….”

의사의 가설을 비웃듯 이죽거리던 가일의 말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얌전히 다물렸다. 그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가일의 생각을 눈치챈 듯,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네, 이 세상에서 그게 가능한 종족은 하나뿐이죠.”

의사가 손에 들고 있던 함을 협탁 위에 올려놓고는, 손을 뻗어 가일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가일 단장님. 단장님은 지금…….”

“…….”

“용에게 저주받으신 겁니다.”

그게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의사는 그렇게 말하며 가일을 다독였다.

가일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바닥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해일이 겉면이 바삭한 크루와상을 와삭 베어 물었다. 칼서스가 해일의 입맛에 맞춰 담백하게 만들어 준 덕분에, 크루와상은 해일의 입맛에 꼭 맞았다.

그는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크루와상을 씹어 삼킨 뒤, 입을 열어 말했다.

“용의 마나 하트에서 발산되는 마나를 해독할 수 있다는 건 사실…….”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해일이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용을 가이딩할 수 있다는 것과 엇비슷하죠. 어찌 되었건 용이 전달하는 타격을 소화할 수 있다는 거니까요.”

“그렇지.”

해일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자, 찻잔 받침에서 맑은 달그락 소리가 울렸다.

“그래서 한 번에 두 용을 가이딩 하려 들면 어떻게 될지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과부하가 일어날지, 아니면 아무런 영향이 없을지가 궁금했거든요.”

해일은 제 맞은편에 턱을 괴고 앉은 칼서스에게 눈길을 던졌다. 하염없이 파란 눈동자를 바라보던 칼서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차에 내 피를 섞었군.”

“그런 셈이죠.”

해일이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헤헤, 하고 웃었다. 그 모습이 천진난만하면서도 맹해 보여서, 잔머리를 굴려 가일이 피를 토하도록 만든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마침 칼서스가 권능을 연달아 쓴 뒤여서 다행이었어요. 덕분에 당신이 최고로 지쳐 있던 시점의 피를 사용할 수 있었잖아요.”

“그만큼 지친 걸 알면, 슬슬 키스해 줄 때가 되지 않았나?”

“……칼서스, 일부러 놀리는 거죠.”

“들켰군.”

황당하리만치 순순하게 대답을 한 칼서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해일의 바로 옆으로 끌어와 앉았다.

그가 해일에게 어깨를 붙이며 고개를 드밀었다.

“그래도 키스해 달라는 건 진심이었어. 슬슬 한계야, 닿고 싶어.”

“어휴…….”

한숨을 터트린 해일이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이젠 아주 응석받이가 다 됐다니까.”

“네가 받아 주니 응석을 부리는 게지.”

칼서스는 그런 해일의 목덜미에 뺨과 코끝을 비비적거리며 아양을 부렸다. 해일은 그 모습에 또 마음이 녹았는지, 아랫입술을 삐죽거리며 웅얼거렸다.

“철이 언제쯤 들려나.”

“기왕이면 평생 응석 부리게 해 줬으면 하는데.”

“꿈 깨세요. 린이나 오르가도 안 부리는 응석을 칼서스가 부리면 어떡해요.”

해일은 짐짓 엄하게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숙여 칼서스와 입술을 마주 대었다.

엄한 건 엄한 거고, 그의 응석을 받아 주는 건 별개의 일이라는 듯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