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사실적시에 의한 멘탈파괴 (6)
부드럽게 엉겨 붙었던 혀가 미끄러지며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다가와 입 천장을 간지럽혔다. 입술과 입술 사이에서 울리는 젖은 소리 사이로 흐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읏, 으응…….”
나는 숨이 막힐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키스에, 입을 벌려 할딱이며 생각했다.
‘가이딩이 안 되고 있어…….’
하나 그것까진 익숙하다. 칼서스가 저를 놀리기 위해 가이딩을 억누르고 키스한 적이 제법 잦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입맞춤에선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몸이 저려…….’
행위가 길게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참을 수 없는 저릿함과 가려움이 몸을 덮쳐 왔다.
입 천장을 핥아지며 느낀 짜릿함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자 어깨가 흠칫거렸고, 뒤이어 발끝이 오므라들며 허공을 쥐었다.
나는 결국 도망치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흐으, 하……. 자, 잠깐만…….”
“안 돼.”
그러자 칼서스가 손을 뻗어 내 뒷덜미를 부드럽게 쥐더니, 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
“도망가지 마.”
묘한 열기로 달뜬 듯한 눈이 나를 직시했다. 그러자 저항하려고 했던 몸에서 저절로 힘이 빠져나갔다.
“으읍…….”
그 직후 다시 입술이 겹쳐지고, 혀가 얽혀 들었다. 다시금 아찔한 감각이 순식간에 몸을 점거했다.
‘머리가 몽롱해…….’
숨이 차올라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심장이 시끄러울 만치 쿵쿵거리며 뛰어 댔다.
‘이상해, 고작 키스로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아질 리가 없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혀가 부드럽게 얽힐 때마다, 그의 손끝이 옷 위로 가볍게 움직일 때마다 머리가 아뜩해졌다.
“흣, 윽…….”
몸이 점점 열로 달아오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칼서스의 목덜미에 매달린 채 밀려 들어오는 감각을 견디기만 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떠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달콤한 향기…….’
달큼한 향기는 케이크에서 느껴지는 시럽 향기 같기도 했고, 꿀에서 풍기는 오묘한 향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전에 칼서스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쾌감이나 희열을 느낄 때엔 달콤한 향기가 맡아진다.
나는 삽시간에 내가 맡은 향기의 정체를 알아채고 화들짝 놀라며 칼서스를 양손으로 밀어 냈다.
“아……!”
“해일?”
그러자 얽히던 입술 사이로 길게 은실이 이어지다가 툭, 끊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그걸 멀거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쾌, 쾌감을 느끼면 진짜로 달콤한 향기가 나는구나.’
다른 감정들도 느껴질 때마다 매번 신기하긴 했지만, 이건 정말…….
“……으으.”
그 사실을 자각하고 나니, 아직도 저릿한 감각이 발끝과 손끝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치 부끄러워졌다. 나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수그려 칼서스의 가슴팍에 이마를 꿍 박았다.
‘가이딩이 안 되고 있던 게 아니라, 칼서스가…….’
우울도, 슬픔도 잊을 만치 황홀해하고 있었던 거구나.
그걸 이해한 순간 얼굴이 볕에 그을린 것처럼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괜찮은가?”
칼서스가 손바닥으로 벌게진 내 뺨을 매만지며 물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던 탓에 조심스러운 그의 말투를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당황한 상태였다.
“……해일?”
고작 키스일 뿐인데, 대체 왜 그런 쾌감을 느낀 거지?
대체 뭐가 칼서스를 그렇게까지 달아오르게 만든 거야?
‘용이랑 세계수라고 하지만, 이건 꼭…….’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을 언어로 정리하려고 하니, 오류가 난 것처럼 머릿속이 버벅거렸다.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 미묘한 감정을 말로 정리할 수 있었다.
‘……정말 서로를 깊게 사랑하는 연인들이나 느낄 황홀경이잖아.’
내가 한참이나 가슴팍에 머리를 박고 끙끙거리자, 칼서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해일, 내가 너무 집요했어?”
“…….”
“아니면, 입술이 쓰라려? 내가 너무 강하게 빨아 당겼나?”
그가 뱉어 내는 단어가 노골적이어서 점점 더 머리로 열이 몰렸다. 나는 개미가 기어가는 것처럼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러자 칼서스가 안심한 것처럼 얕은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금 내 뒷덜미를 붙잡고 시선을 맞췄다. 도가 지나칠 정도로 아름다운 미남이, 꿀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듯한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아니었다면 더 예뻐해 줘. 아직 부족해.”
그 미소를 보자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부끄러움이 온몸을 벌겋게 물들였다.
‘미쳤어, 진짜!’
나는 결국 몸서리치면서 다시 칼서스의 가슴팍에 이마를 박고 낑낑거렸다.
정말이지……, 버틸 수가 없는 달콤함이다.
* * *
“히이익, 히익…….”
“허억, 끄윽…….”
황궁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별채의 내부에 피 냄새가 진동했다. 주변은 붉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고, 피부를 찌르는 살기가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선 가일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가 권태로운 표정과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일견 태평하게 보이는 표정과 달리, 가일의 그을린 피부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검붉은 피가 가득 묻어 있었다. 가일은 피만큼이나 붉은 머리칼을 한 손으로 쓸어 올리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위대한 아르테스께서 내린 명령에 기뻐하면서 따라도 모자랄 판에, 고국의 백성을 죽일 수 없다면서 항명을 해?”
그가 발을 들어 바닥에 쓰러진 기사의 옆구리를 호되게 걷어찼다. 그러자 쓰러진 남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허억, 끄으윽…….”
“네놈들은 에텔의 기사가 아니라, 아르테스 제국의 번견이다. 주제를 알아야지.”
가일이 냉담한 표정으로 기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주인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변변찮은 개새끼는 제국에 필요 없다.”
“괴, 괴물 새끼…….”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한 사람이 튀어나와 쓰러진 제 동료를 등 뒤로 숨기며 소리쳤다.
“너는 사람도 아니야, 이 악마 새끼야!”
겁먹은 듯한 표정과는 다르게, 그의 목소리는 더욱더 크게 터져 나와 별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사치에 빠져 사는 황제가 뭐라고 우리를 이렇게 벌레처럼 죽여! 그딴 놈이 무슨 신이야?! 왜 우리가 배부른 돼지 새끼 때문에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느냐고!”
신랄한 비난을 들은 가일의 이마에 핏대가 불거졌다. 가일이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소리친 기사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감히 신성하신 그분을 모독해?!”
거구의 가일에게 옷깃을 붙잡힌 남자가 허공으로 붕 들리나 싶더니, 무섭게 내던져져 기둥에 호되게 내리쳐졌다.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렸다.
“으윽, 아아아악!”
“사죄해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해!”
가일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며 한 번 더 기사를 들어 벽에 내던졌다. 벽에 억세게 부딪혔다가 바닥으로 나동그라진 기사가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끄윽, 끄으으윽…….”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찬 독기만큼은 여전히 혁혁했다. 기사는 터진 잇새로 새어 나오는 피를 뱉어 내며 중얼거렸다.
“……지랄.”
그러고는 비척거리며 다시금 쓰러진 동료의 앞으로 다가와 가일을 가로막았다.
“이런다고 네 동료가 살 수 있을 것 같나?”
“아니.”
녹색의 눈이 가일의 붉은 눈을 견제하듯 선명하게 빛을 내었다.
“알면서도 저항하는 거다.”
“…….”
“나는 제국의 개새끼가 될 생각이 없고, 동료의 죽음을 넋 놓고 지켜보는 비겁자가 될 생각도 없거든.”
에텔 출신의 기사가 피로 젖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는 제국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그러니 죽여.”
그 말이 도화선이 된 듯, 가일이 분노를 터트리며 검을 빼 들어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주변으로 뜨듯한 핏물이 사정없이 튀었다. 허나 이미 피로 웅덩이를 이룬 바닥인 터라 큰 변화가 없었다.
“빌어먹을 새끼!”
한 사람을 참혹하게 살해한 가일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가 노기등등한 얼굴로 숨을 씨근덕거리며 중얼거렸다.
“하나같이 신앙심이 부족해, 하늘 같은 황제 폐하의 수족으로 삼기엔 너무도 부족하단 말이다…….”
피를 머금은 듯 새빨간 눈동자가 기사의 등 뒤에 쓰러져 있던, 그의 동료를 직시했다.
“네놈은 어떻지?”
“후윽, 훅…….”
“네놈도 이단이냐?”
동료의 죽음을 목도한 기사가 패닉을 일으키며 덜덜 떨었다. 그의 잇새에서 치아가 부딪치는 ‘딱딱’ 소리가 울렸다.
한참이나 바들바들 떨던 기사가, 이윽고 울음이 가득한 흔들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에텔의 왕족은 헌신의 상징이오, 백성을 위한 토석. 지고하신 에텔의 군주께서 백성들을 굽어살피시니 대지에는 축복이 가득하노라. 아아, 기꺼이 제 몸을 불태워 땅을 밝히는 고귀한 존재를 어찌 태양이 아니라 할 수 있으리까.”
에텔의 왕족이 베푸는 헌신과 애정을 찬미하는 노래였다. 그 노래를 들은 가일이 미간을 사정없이 일그러트리며 혀를 찼다.
“……이놈도 이단이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은 가일이 피로 젖은 검을 들어 올리더니,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아르테스께 영광 있으라.”
서걱,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건물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