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며칠간을 굶주린 듯 허기진 속을 달콤한 맛이 삽시간에 채우는 느낌에 세이아드는 인내심을 잃었다. 다급히 레사스의 입술을 삼키고, 다시 핥았다.
세이아드의 움직임이 과감해질수록 품에 안긴 레사스의 몸이 잘게 떨렸다. 마치 닿는 것만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듯 구는 떨림이 음험한 욕망을 부채질했다. 순진하게 구는 모양에 더한 반응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 짓궂은 충동을 따라 세이아드는 레사스의 입 안을 맛보기로 했다. 치열 너머로 드러났던 야릇한 안쪽으로 혀를 밀어넣자, 내내 조심스럽던 레사스의 팔이 세이아드의 등을 꽉 껴안았다. 얌전히 안겨 있던 잠시간은 속임수였던 양, 레사스가 몸을 딱 겹쳐 오며 세이아드를 만졌다.
하아, 거칠고 성마른 숨을 내뱉은 레사스는 상체를 한층 더 수그리곤 세이아드의 허리와, 그 아래를 팔로 받쳐 단숨에 들었다. 갑작스레 확 들린 몸은 이내 세이아드가 등지고 있던 탁자에 반쯤 걸쳐졌다. 균형을 잡고자 세이아드는 절 안은 레사스의 옷깃을 구기며 잠시 떨어진 입술을 다시금 겹쳤다. 이 빌어먹게 기분 좋은 행위를 멈추기가 싫었다.
허리를 잡았던 팔을 놓고 세이아드는 레사스의 옷깃과 그의 어깨를 움켜쥐곤 그를 탐했다. 살결이 비벼지고 문질러질 때마다 그 마찰된 표면으로 스며드는 감각이 소름 끼치게끔 짜릿했다. 폐허가 되어 있던 까만 내면이 풍성하게 차오르고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조금 부족했다. 많이, 뭔가, 좀 더 다른 것이 있었으면 싶어졌다. 세이아드를 제지하던 이성이 자리를 감춘 사이 본능이 그를 부추겼다. 한참이나 입술을 맛보던 세이아드는 방향을 틀었다. 뜨거워진 입술이 레사스의 길고 흰 목을 목표로 삼았다. 닿기만 해도 녹아내릴 것 같은 흰 눈 같은 살결의 맛이 진즉부터 궁금했었던 탓이다.
“이드, 잠, 시만…!”
입술로 목의 빗근을 베어 물고 혀를 대자, 레사스의 너른 어깨가 움찔 떨렸다. 가슴팍이 크게 들썩이며 세이아드를 제게서 뗴어 내려고 그의 움직임이 언짢아, 세이아드는 이를 세워 그의 목덜미를 씹었다. 앞니로 자국을 내자 붉게 꽃잎이 피어올랐다. 그게 만족스러웠다.
“잠, 시만, 이러면…, 이드, 내가….”
레사스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무시하고 세이아드는 점점 목 아래로 움직였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신을 붙들기만 하는 레사스를 씹어 삼키고 싶었다. 쇄골 위에 입을 맞추며 그는 어깨를 붙들던 손을 내려 레사스의 옷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손바닥에 매끈한 등 근육이 닿는 그 찰나, 레사스가 세이아드의 팔을 낚아채며 그를 제지했다.
“이드…!”
열중하던 행위가 방해받은 것이 언짢아, 세이아드는 초점이 없는 눈으로 레사스를 노려보았다. 그리 바라본 레사스의 얼굴은 호숫가에서 봤던 것보다 더, 남자같은 얼굴로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다. 짙은 열망이 어린 보랏빛 눈이 형형하게 세이아드를 삼키고 있었고, 그의 입매는 무언갈 꾹 참는 듯 일자로 굳어진 채였다.
“그대가 이렇게…, 이렇게 굴면, 참는 게…, 어렵습니다.”
갈라지고 잠긴 음성으로부터 한계라는 게 느껴졌다. 세이아드를 앉혀 놓고 붙들고 있는 레사스의 다른 손이 아까부터 움찔거리며 허리를 쥐었다가, 놓는 감각이 생생했다. 등허리의 탄탄한 근육을 레사스의 큼직한 손이 꾸욱 쥐더니, 이내 그 아래로 점점 내려갈 듯하다 움찔거리며 멈췄다. 레사스가 잠시 손을 떼며 주먹을 꽉 쥐었다 푸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대는 다쳤으니…, 그대를 조금이라도 무리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불행하게도 나의 힘은 그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어요. 그럴 수만 있었다면 진작….”
이상한 일이었다. 아스테르와는 이 정도만으로도 항상 충분하다고 여겼던 것과 달리, 세이아드는 아직도 한참이나 욕망을 충족하고 싶은 갈증을 느꼈다. 그것은 그저 살결을 맛보고 핥는 것보다 더한 행위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여자를 안을 때에나 느낄 수 있던 그런 쾌감을, 가이드로부터 얻는다면 얼마나 황홀할지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고작 등을 다친 걸로 무리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화를 받는 쪽이 차라리 회복에 도움이 되니, 가만히 계십시오.”
제정신이었다면 진즉 물러갔겠지만, 지금의 세이아드는 어떻게든 가이드와 더 연결될 수 있는 행위가 필요했다. 레사스에게 반박할 기회를 주지 않은 그는 붙들린 팔에 힘을 주고는, 레사스의 복부에 손을 뻗었다. 아까 전 옷을 헤집은 탓에 느슨해진 틈으로 손을 밀어넣자 그의 외양과 어울리지 않는 딱딱한 복부가 만져졌다. 그 아래로 손이 향하려는 순간 레사스가 세이아드를 숨조차 쉬기 어렵게끔 껴안았다.
“그만.”
팔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끔 안아 버린 레사스가 세이아드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거친 숨이 쇄골 위로 내려앉았다. 뜨거워 데일 듯한 열띤 숨소리였다.
“이 이상 만지면, 그대를 아프게 할지도 몰라요. 나도 내가 어떻게 굴지 모르겠으니, 차라리… 차라리 내가 다른 방식으로 달래드리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자꾸만 제지당하는 것이 성가신 나머지 이성이 조금 돌아왔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열기에 휩싸인 채라, 세이아드는 눈을 찌푸리며 그에게 말했다.
“정화하는 가이드와 티테르가 입맞춤보다 더한 행위를 하는 걸 모르시는 것처럼 구시는군요.”
“아뇨,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렇기에 참고 있는 것이 그대의 눈에는 보이지 않나요?”
레사스가 돌아 버리겠다는 듯 속삭이자 세이아드 또한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를 보았다. 참을 것이 뭐가 있는가? 레사스는 그저 가만히 누워 있으면 된다. 남자를 상대한 적은 없지만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어차피 가이드와 티테르라면 아는 일이다. 아프지 않게 풀어 주고, 충분히 느낄 법한 행위를 해 주면 그만 아닌가. 그것은 여자든 남자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참을 것이 대체….”
“당장이라도 대공의 안에 나를 파묻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대의 아름다운 나신 곳곳에 나의 흔적을 새기고, 그대의 안에도 나를 가득 채우고 싶은 것을 당장 돌아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인내하고 있다고요.”
지금, 무슨 말을…?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돌아왔다. 세이아드가 흠칫 어깨를 떨자, 레사스가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어 그를 내려다보았다. 두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 안에 고인 열망의 정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으니, 분명 그대를 아프게 할 거예요. 그대가 나의 품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지금보다 더한 것을 맛본다면 내가 어떻게 참을 수 있겠습니까? 그대의 다리를 벌리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짐승이 될 게 확실한데요.”
고상하게 생략된 말 안에 포함된 뜻이 선명했다. 안 그래도 뜨거웠던 몸에 열이 확 오르며 세이아드는 안긴 몸을 살짝 움직였다. 그의 배를 만지던 손을 들어 단단한 복부를 밀어내려다가, 만지는 것 자체가 미친 듯이 의식되었다.
자신을 욕정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야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 방향이 지금 같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질 못했다. 조금만 파고들어 보면 레사스가 운운하던 ‘남자’로서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 법했음에도, 세이아드 자신을 그가 품을 거라고 상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어제도 말했듯이, 대공의 마음이 나와 같아지기 전에는 그대를 품지 않을 겁니다. 욕망 따위는 대공을 향한 나의 마음을 눈멀게 하지 않아요. 그대가 숨을 쉬고 내 곁에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의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니까요.”
혼란스러운 세이아드의 얼굴을 눈길로 다정히 쓰다듬은 레사스가 꽉 안을 몸을 놔주었다. 누가 봐도 흥분한 사내의 표식을 곳곳에 내비치고 있는 주제에,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세이아드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탁자에 걸터앉은 세이아드의 다리 사이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솔리아스의 빛이, 무릎 꿇은 채 저를 올려다보는 광경이 기이했다. 순간 어지러운 기분이 들어 세이아드가 흠칫하자, 레사스가 화사하게 웃으며 그의 무릎을 쥐었다. 큼직한 손이 단단한 무릎뼈를 꽉 움켜쥐며 다리를 벌렸다.
“그러나 대공께서 이리 예쁘게 나를 보시니, 다른 식으로 그대를 달래 드리겠습니다.”
무엇을 할지가 자명했다. 레사스를 취할 생각을 하긴 했어도, 그에게 이런 짓을 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던지라, 세이아드는 황급히 상체를 숙였다. 이번에는 그가 레사스를 말릴 차례였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전하, 그냥…!”
그만둬도 된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레사스가 행동하는 것이 더 빨랐다. 뜨거운 손의 감촉이 아래에서 느껴지더니 감당하기 어려운 쾌감이 올라왔다. 레사스를 말리려던 손이 그의 어깨를 꽉, 쥐었다.
“아…!”
입술이 벌어지며 들끓는 신음이 짤막하게 흘렀다. 턱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열기가 토할 듯 밀려들었다. 존귀한 핏줄이 절 위해 하는 외설스러운 행위는 자극이 지나치게 과했고, 세이아드는 도저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지 못하고 그저 몸을 빳빳하게 굳혔다.
한 번도 경험이 없다는 말을 증명하듯 아주 서툰 행위가 이어졌으나, 그 자체가 사람을 돌아 버리게 하는 자극이 되었다. 막사 안으로 야릇한 소리가 울려, 세이아드는 그 적나라한 소음에 자신의 신음을 더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끝은 금방 다가왔다. 긴 시간 자극을 받지 않은 몸은 쾌감을 오래 견뎌 내지 못했다. 허공을 배회하던 손이 도저히 참지 못하고 레사스의 부드러운 흑발을 움켜쥐었다. 그 무엄한 행위를 다정히 내버려 둔 레사스는, 달콤한 끝을 확실히 선사하듯 하던 짓을 마저 이었다.
“아, 아…!”
전신을 강타하는 정신 나갈 듯한 감각과 함께 세이아드는 턱을 젖혔다. 등골이 자르르 떨리고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맨발로 내내 바닥을 밟고 있던 발가락이 한껏 곱아들었고 그의 창백한 얼굴엔 도홧빛 열기가 홧홧하게 돌았다. 냉랭하고 차갑기만 하던 대공의 면모는 온데간데없이 달뜬 모습만이 남았다.
자신의 흔적을 잘도 삼킨 레사스가 입을 떼고 지금 제 모습을 눈에 담는 것이 느껴졌다. 시선으로 만져지는 듯한 기분에 미칠 듯한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세이아드는 헐떡이며 상체를 세웠다. 말간 땀이 맺힌 이마에 검회색 머리칼이 달라붙은 채로 레사스를 내려다보자, 그의 불긋한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레사스가 눈을 휘며 요사스럽게도 말했다.
“대공께서 단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흔적조차 꿀처럼 달군요.”
그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무어라 대꾸를 해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그는 레사스의 머리칼을 쥔 손을 내려 그의 얼굴을 가렸다. 기쁘다는 듯 낮게 웃는 소리에 세이아드는 그대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물러나려는 그를 레사스가 뒤따라와 붙잡았다.
“이드, 잠시만. 옷이요.”
“괜찮습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방금 전의 일로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탓에 레사스를 확 밀어낼 수가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온 그가 세이아드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며 속삭였다.
“이리 예쁜 모습으로 나가면 그대를 눈에 담을 이들이 많아 두렵습니다.”
몸에 드문드문 레사스가 닿을 때마다 그가 지나치게 의식되었다. 앞서 그와 닿을 때는 전혀 이런 기분이 아니었던 탓에, 세이아드는 빠르게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아까까지 정신이 나가 있던 것이 당혹스러워 미칠 노릇이었다. 불필요한 짓을 했다. 정화는 앞서 받은 걸로도 충분했는데, 이제보니 욕정에 눈이 먼 것은 자신이 아니었던가.
잘도 그런 제안을 했다, 세이아드 프로시어스.
스스로를 질책하며 세이아드는 레사스와 최대한 시선을 마주치지 않게끔 했다. 어머니의 말이 비로소 뒤늦게 떠올랐다. 충동에 눈멀어 해선 안 될 짓을 한 것 같았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에 입술을 달싹거리는데, 다행스럽게도 바깥에서 소리가 들렸다.
“전하, 그, 저, 중요한 순간에… 죄송합니다만…! 브레드히트 공작께서 막 도착하셨다는 걸 알려드리려고요…!”
바인의 곤혹스러워하며 알리는 말에 세이아드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