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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화 (1/257)

1화

까마귀의 불길한 울음소리가 적막한 하늘을 가득 메웠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거대한 세가가 자리 잡았던 땅은 이제 불타 버린 잔해로 가득했다. 벽이란 벽, 기둥이란 기둥은 모조리 무너진 채 새까맣게 그을렸고 구름 같던 지붕은 폭삭 내려앉아 거대한 돌무덤이 되었다.

그 위 묘비처럼 꽂힌 대들보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라 남쪽으로 흩어졌다. 어느새 북풍이 불어오는 계절이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장장 칠 주야를 타오르던 불길이 사그라진 지 반나절,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피처럼 붉은 노을이 하늘을 적셨다. 남아 있는 산 것이라고는 남의 살로 배를 불린 까마귀 무리밖에 없었다.

불모지가 된 서문의 운소무애(雲消霧靄)는 이대로 길이길이 남을 본보기였다. 세상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두려움을 안겨 주어야 했다.

그렇게 몰락한 모습으로 고정된 채 바람에 풍화되기만을 기다리던 땅의 한구석이 어느 순간 조그맣게 들썩였다.

바싹 타서 날카로워진 나무 조각, 조그만 돌과 깨진 사기그릇이 밑에서 올라오는 작은 진동에 흐트러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숨겨져 있던 작은 문이 위를 향해 빠끔히 열리고, 회색의 고운 재가 지하의 좁은 공간으로 우수수 흘러 들어갔다.

그 안에서 더듬더듬 바깥으로 나온 손은 어린아이의 것이었다.

일곱 살쯤 되었을까. 아이는 폐허에 어울리지 않는 군청색의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일주일 내내 좁은 곳에 웅크려 있던 탓에 극도로 쇠약해져 있어 일어나기도 어려웠다. 어찌어찌 무릎으로 바깥을 디뎠을 때 아이의 손과 팔꿈치는 이미 잔뜩 잔해에 쓸리고 찔려 있었다.

아이는 야윈 얼굴로 앉아 처참한 주변 광경을 한참 눈에 담았다. 그러다 이곳을 벗어나려는 듯 바닥을 기어 나아갔다. 일어나려 했지만 무릎이 푹푹 꺾여 어쩔 수 없었다.

손바닥과 정강이 아래로 타고 남은 잔해가 바작바작 으스러졌다. 여린 살이 금세 피로 물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아이의 눈은 어느 순간부터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 처음 보는 물체가 우뚝 서 있는 세가의 앞마당이었다.

계단이었던 돌무더기를 굴러떨어지듯 내려왔다. 가까이서 보니 그것은 훌쩍 큰 기둥이었다. 굵기는 아이의 다리만 했고, 끝은 뾰족하게 벼리어진 채 하늘을 향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팔다리와 머리의 형태만 간신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바짝 불탄 사람의 시체가 꽂혀 있었다.

아이는 땅에 꽂힌 목창으로 엉금엉금 다가갔다. 검붉게 익어 오그라든 시체의 발에 머뭇머뭇 손을 얹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시체는 머리카락이 없었고, 고통스럽게 벌린 입에선 창의 끝이 튀어나와 있었다.

만져 본 피부는 딱딱하고 우둘투둘하며 차가웠다. 아이는 이 감촉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 직감했다.

시선이 천천히 내려와 시체의 가슴 가운데에 머물렀다. 주먹보다 작은 비취옥 하나가 옷과 살점에 엉겨 박힌 듯 붙어 있었다. 아이는 그 장신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이는 발작적으로 시체에서 손을 떼고 뒤로 넘어졌다. 흙바닥을 짚고 허겁지겁 물러나며 차오르는 역겨움을 여러 번에 걸쳐 왈칵 토했다. 진흙 같은 토사물이 앞섶을 더럽혔지만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끔찍하게 죽은 혈육의 모습이 자신을 보라며 머리채를 잡고 당기는 것 같았다.

도망칠 수 없었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대로 죽을 때까지 그들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아이는 살아남은 게 아니었다. 그저 조금 늦게 따라갈 뿐이었다.

그때, 아이의 두 눈을 가리는 손길이 있었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오래 달인 약재의 냄새였다. 그다음은 얼굴에 닿은 서늘한 체온이었고, 마지막으로는 소슬바람 같은 목소리였다. 아이는 그제야 바싹 마른입을 다물고 제 위액이 시큼한 맛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하는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침을 한 번 삼키니 가슴의 응어리가 걸렸고, 그것은 곧 목구멍 위로 올라오더니 오열로 터졌다. 그러자 약초 향을 풍기는 품이 자신을 보듬어 안았으며 아이는 그를 절벽 위 동아줄처럼 정신없이 붙잡아 매달렸다.

아이는 그렇게 한참 속엣것을 토해 냈다. 입술이 찢어지고 목에서 피비린내가 나도 멈출 수 없었다. 얇은 손톱이 뒤집어지도록 그의 옷을 움켜쥐었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몸이 뻣뻣해지도록 발광했다. 나중에 가선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눈물 대신 피가 흐를 지경이었다.

아이가 기억하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언제 혼절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 전 어슴푸레하게 보인 하얀 머리 타래가 백로의 깃털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만 기억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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