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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7)화 (7/257)

7화

한참 머뭇거렸지만 아이는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미동도 없었다. 초윤은 결국 입을 열었다.

“……운한산에서 야명주의 광맥이 발견되었다. 야명주는 밤에도 홀로 빛을 내는 광물로,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값이 많이 나간다.”

“…….”

“정파가 움직이기 위해선 명분이 필요하지. 그래서 그들이 내건 명분은 바로 서문천오, 너다.”

아이가 새까만 눈을 물끄러미 들어 초윤을 보았다. 초윤은 목소리를 담담히 유지하려 노력하며 말을 이었다.

“네 아비가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

“……아니요, 잘 모릅니다.”

“네 아비는 마교의 소교주인 흑망검 주역이다. 네 집안의 사람들은 정파에 속한 몸으로 마교와 내통했다는 미명하에 죽은 것이다.”

조그만 손의 힘줄이 하얗게 도드라졌다.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바닥을 노려보며 입술을 짓씹다가 뚝뚝 끊어지는 음성으로 물었다.

“아, 아버지…… 주역은, 어머니를 구하지 않고…… 무얼 하고 있었습니까.”

“……글쎄, 그것까진 아직 알 길이 없다.”

주역이 원작에 언급된 것은 외전의 단 두 문장뿐이었다. 그 뒤 성장한 천오가 사파 최대의 단일 조직 ‘흑도천(黑塗天)’을 만들었다고만 되어 있을 뿐, 아버지를 만난 주천오가 무슨 대화를 나누었고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는지는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잠시 원작을 떠올리던 초윤은 다시 천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천오는 절망으로 가빠졌던 숨을 다잡고 다시 초윤에게 몸을 숙여 절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목소리는 이미 아플 정도로 쉬어 빠진 채 떨림이 가득했다.

“갈 곳 없는 저를 돌봐 주시고, 살려 주신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선인. 하지만 저는…….”

하지만…….

아이가 목이 메었는지 입을 다물고 목을 다듬었다. 초윤은 틈을 놓치지 않고 선수를 쳤다. 이제부터가 정말, 정말 중요한 대목이었다.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대뜸 떨어진 말에, 아이가 엎드린 상태에서 고개를 들어 초윤을 보았다. 초윤은 아이의 눈을 되도록 차분하게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그들을 죽인다고 이미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오나……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건 겪어 보지 못한 자들뿐이지. 아무런 소용도 없는 조언이다. 하늘 아래 내 사람은 이미 없는데 멀쩡히 잘 살아 있는 흉수를 용서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아니더냐.”

“…….”

아이가 다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갈라진 목으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마다 복수를 원하는 주인공에게 저런 말을 하는 조연이 참 마음에 안 들었지. 초윤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네가 복수를 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이것이 또 다른 피를 초래한다 하여도 어쩌겠느냐. 사람 사이의 인연은 본디 끊을 수 없이 뒤엉키는 것이다. 나는 너 혼자 참고 감내하거나 용서하란 말은 하지 않는다.”

“…….”

“다만 네 손과 다리를 보아라.”

아이의 눈이 반사적으로 명주 천에 싸인 자신의 손을 보았다.

“너는 어리고 약하다. 불탄 나무 조각에 닿았다고 상처를 입을 정도로 연한 살갗과 미숙한 몸을 가졌지. 그 몸으로 도와줄 이 하나 없는 산 밑에 내려가 홀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 홀로 장성해서 힘을 쌓아 복수할 수 있겠느냐.”

원작의 천오는 고아 신분으로 마교에 잡혀가 열악한 지하 동굴에 갇혀 죽기 직전까지 힘겨운 단련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본디 지니고 있던 인간성과 공감력, 동정심 같은 감정은 희미해지고 잔인함과 냉혹함만이 남은 것이었다.

사실상 초윤이 원작에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주인공의 여친 후보 중 하나쯤이야 마교의 수작이 없다면 중독될 일도 없었다. 입을 다물고 눈을 돌린다면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나서서 아이의 마음을 붙잡으려 하는 이유는…….

“내가 너를 키워 주겠다. 너의 신변을 보호하고 필요한 교육을 도맡아 하겠다. 네가 너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인물로 자라날 때까지 마땅히 내 할 도리를 다하도록 하겠다.”

정하윤이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었다.

무림에 닥칠 피바람을 막는 것을 떠나서, 초윤은 그저 어린아이가 그만큼 괴로운 일을 겪고 있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

이 아이가 나중에 염라군 주천오가 된다 해도 지금은 도움이 필요한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저 든든한 보호자가, 현명한 선생님이 필요한 어린아이였다.

‘그렇다면 이게 내가 해야 할 도리겠지. 어쨌든 무시하지 못하고 데려왔잖아. 사람을 키울 능력이 있냐고 하면…… 그건 장담할 수 없지만 최대한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

초윤은 업무 평가를 받는 교사의 심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아이의 선택을 기다렸다. 아이는 조용하게 있는 듯싶다가 벗겨진 손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꾹 주먹을 쥐었다. 다 갈라진 목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애끓는 증오로 가득했다.

“저는…….”

그래, 마교처럼 무식한 애들 말고 나랑 같이 있겠다고 해! 내가 어떻게든 잘해 볼게! 내가 진짜 애지중지 잘 키워 줄게!

“저는 그것들의 목을 전부 뽑아 버리고 싶습니다.”

뭐?

속으로 아이의 선택을 응원하던 초윤이 그대로 딱 굳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서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다 느끼게 해 주고 싶습니다. 생니를 뽑고 손끝 발끝부터 짓이기고 싶습니다. 살을 발라낸 뒤 뼈를 갈아 주고 싶습니다. 죽는다면 가축처럼 목을 자르고 배를 갈라서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싶습니다.”

누…….

누가 애한테 저런 말 가르쳤어! 누가 저런 극악무도한 표현을 애 앞에서 했냐고!

초윤은 저절로 이마에 올라가려는 손을 애써 눌렀다. 무엇이든 빠르게 흡수하는 아이들 앞에서 잔인한 비속어를 쓰면 안 되는 이유가 눈앞에 있었다.

초윤의 참담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바닥을 향했던 얼굴을 느릿느릿 들어 올렸다. 동공과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새카만 눈에 번들거리는 복수심이 일렁이고 있었다.

“선인께서는 그런 저를 키워 주실 수 있습니까?”

산속에 은거한 신선의 몸으로 세상에 잔학무도한 마음을 품은 자를 키울 수 있냐는 뜻일까, 아니면 자신에게 그만한 실력을 갖추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냐는 뜻일까.

아마도 둘 다겠지. 초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네가 나를 시험하는 것이냐.”

“……제게 필요한 것은 무공입니다. 선인께 가르침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할 영광은 없을 테지만, 오로지 압도적인 무력만이 기만자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 짧은 식견으로나마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약학에만 능통할 것 같은 스승은 딱히 필요 없다는 뜻이다. 죄스러운 것처럼 시선을 낮추고 있지만 할 말은 하는 당돌한 모습에, 초윤은 내심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초윤의 하얗고 매끄러운 손에는 약재를 담았던 종잇조각이 들려 있었다.

아이의 눈이 의아한 듯 종이에 닿았을 때, 갑자기 초윤의 손바닥 위에서 형태 없는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구구절절 말로 하는 것보다는 간단하게 보여 주는 게 낫겠지.’

초윤의 단전에 웅크리고 있던 공력이 관원과 잔중, 유부와 협백을 거쳐 손바닥 위에서 발현되었다. 얇은 종이가 순식간에 새까맣게 오그라들어 몇 점의 재가 되고, 그대로 공중에서 일렁이다 소복하게 바닥에 내려앉았다. 화경의 극의에 다다라야만 할 수 있다는 삼매진화(三昧眞火)였다.

“……서,”

“말해 두지만, 나는 선인이 아니다. 약학에 약간의 조예가 있는 일개 무림인에 불과하지.”

정작 ‘초윤’은 무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 것 같지만 정하윤이 이렇게 커다란 인연을 만들어 버린 이상 그의 계획은 완전히 뒤집혔다고 볼 수 있었다. 초윤은 선술(仙術)이 아니냐고 물어보려는 아이에게 선수를 쳤다.

“확실히 내가 익힌 무공은 천하패도에 뜻을 두지 않는다. 만극의 조화와 온건한 합일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무도(武道)보다는 오히려 선도(仙道)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 묵묵히 초윤의 말을 들었다. 거절의 뜻을 비치고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하지만 곧 이어진 초윤의 대수롭지 않은 말에 고개를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무공이란 본디 기본적인 틀에 지나지 않으니, 일정 수준이 되었을 때 너 알아서 개량하면 될 일이다.”

“……예?”

“나만 해도 뒤늦게 익힌 독공을 주로 쓰는데 아무렴 너를 막겠느냐. 너 하고픈 대로 하거라. 세상 제일 잔혹한 무공을 만들든, 무얼 하든.”

상고 시대의 무공이 최고로 여겨지는 무림에서 전통이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율법과 같았다. 선조의 가르침에 자신의 독자적인 기술을 더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무림 전체의 인정을 받을 실력자여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고, 조잡한 실력으로 선조의 무공을 더럽히는 것이었다.

그런 보수적인 사상이 팽배한 곳에서, 방금 초윤의 말은 지독하게 무심하고 패륜적이면서도…… 또 아이의 마음을 한결 청량하게 씻어 주는 구석이 있었다.

천오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멍하니 초윤을 올려다보았다.

“물론 네가 형(形)을 벗을 정도의 경지가 된 이후의 일이겠지만, 내가 보기에 너는 충분한 재능이 있다. 나를 쉽게 뛰어넘을 수도 있겠지.”

‘신무협 소설의 최종 보스잖아. 현경은 뭐 쉽겠지.’

초윤은 아이의 아연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작에서 서술된 염라군 주천오를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마교를 비롯한 사파의 모든 세력을 하나로 합쳐 거대한 단일 조직을 만들어 낸 흑도천의 초대 맹주. 주인공에게 치트키가 없었다면 다시 한 번 더 수월하게 무림을 정복했을 마교의 신. 버프 받은 주인공이 함께 맞서도 압박감을 안겨 준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그렇게 대단한 사람을 덜컥 맡겠다 나선 것이 새삼스레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이는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것 같았다. 초윤은 별다른 재촉 없이 아이를 기다렸다. 마침내 아이가 결심을 굳힌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을 때, 바깥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스승님! 목간 다 했어요!”

“드, 들어가도 될까요?”

어느새 약욕 물이 식은 건지 욕실을 나온 사영과 사현이 문 앞에서 허락을 구했다. 목소리에 생기가 가득한 것을 보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초윤은 그새 입을 딱 다문 천오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 준 뒤 문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들어오렴.”

“예, 스승님. 어, 깨어 있네?”

“스승님, 스승님처럼 모, 몸에서 약 냄새가 나요. 어, 깨…… 깼나 보다.”

저마다 재잘거리며 들어온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는 천오를 보며 각기 한마디씩을 던졌다. 죽은 눈으로 가만히 허공만 응시하고 있던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라서 그런지 시선을 끌었다.

누나인 사영이 먼저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숙였다.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스승님. 평안한 밤 보내세요.”

“그래. 동생과 함께 머리를 꼭 말리고 자야 한다.”

“예, 스승님. 창문은 꼭 걸어 닫고 포단은 가슴까지 덮을게요.”

저마다 밤 인사를 건넨 아이들이 제 방으로 돌아갔다. 초윤은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오도카니 앉아 있는 아이를 부드럽게 잡아 자리에 눕혔다.

“너도 이만 자거라. 달이 벌써 중천이다.”

“그런…….”

“자고 일어나서 답을 해도 늦지 않아. 아이는 이만 잠들 시간이다.”

초윤은 문답 무용으로 아이의 목까지 포단을 끌어 올리고 방을 밝히던 등잔불을 손짓으로 껐다. 찾아온 어둠에 눈은 금세 적응하고, 머리맡 창문에서 새어 들어오는 달빛으로 창백하게 밝아진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커서 무엇이 된다 하든 지금 눈앞에선 작고 여린 아이에 불과했다.

초윤은 안타까움을 담아 손등으로 아이의 뺨을 한 번 쓰다듬고 어린 새 같은 가슴을 도닥였다.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던 아이는 곧 할 수 없다는 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역시 피곤했는지 숨소리는 금방 고르게 변했다.

초윤은 잠든 아이를 확인한 뒤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아이의 손과 팔을 안쪽으로 넣어 주었다. 아이는 종종 악몽을 꾸었고, 초윤은 아이를 나쁜 꿈에서 건져 올릴 책임이 있었다. 다행히도 단련된 무인의 몸은 며칠이고 잠을 자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첩첩한 산중의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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