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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8)화 (8/257)

8화

단언컨대 서문세가의 적자 서문천오는 이렇게나 사람 말을 들어먹지 않는 또래 아이들이 처음이었다.

“누, 누나. 다 아물었어.”

“아직 살이 여릴 테니까 천은 감아 두자. 야, 목은 좀 어때?”

“…….”

머리를 하나로 단정히 묶은 사현과 풀어 헤친 사영이 천오의 다리를 각자 하나씩 맡아 명주 천을 감으며 그를 보았다. 천오는 빤히 마주쳐 오는 곧은 시선에 결국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아, 아직 안 좋은 것 같은데.”

“아님 원래 목소리가 이런 건가?”

당사자를 앞에 두고 조잘조잘 잘도 말하고 있다. 스승님이 그러셨는데 본래 내장의 치유는 비교적 느리다느니, 혈도가 뚫리고 기맥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운기요상으로 치료할 수도 없어 약에 의존해야 한다느니, 닭을 그렇게나 먹였는데도 살이 안 붙는다느니, 애가 귀염성이 없다느니 하는 말까지 나왔다.

듣다 못한 천오가 입을 열었을 때, 사영과 사현이 다시 한번 동시에 고개를 돌려 천오를 보았다.

“그, 그래도 이제…… 말하게 됐으니까.”

“이제 말해 봐. 보름을 넘게 돌봤는데 네 이름도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스, 스승님도 안 알려 주셔서…….”

“은혜를 안다면 이름 정도는 재깍재깍 대야지.”

천오는 잠시 입을 뻐끔거리다가 포기한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서문천오입니다. 천오라고 불러 주십시오.”

“천아구나. 잘 알았어.”

“천아가 아니라 천오…….”

“잠깐 손 좀 내밀어 봐. 얼른.”

갑자기 애칭이 생긴 천오가 당황하며 하는 말을 중간에 뚝 끊은 사영이 가지고 들어온 보따리를 뒤지며 말했다. 사현도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아, 소리를 내며 나무 대야에 손을 씻고 자신의 주머니를 뒤졌다.

천오는 정말 알 수 없단 얼굴로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주춤주춤 양손을 내밀었다.

곧 호박 모양의 당과와 산사자(山査子)로 만든 당호로가 천오의 조그만 손 위에 덥석 올라왔다.

“이게……?”

“이, 이름…… 알려 준 거 고마워서. 어, 어제 산 밑에 자…… 장이 섰거든. 허락받고 내, 내려갔다 왔어.”

“오늘부터는 닭 말고 염소 고기를 먹을 거라는 건 들었어? 염소 뼈도 사 오라고 하신 걸 보면 또 탕이 나올 것 같은데 닭보다 맛있을까?”

“그, 그러지…… 않을까? 염소가 훠, 훨씬 크니까.”

“기대된다. 염소는 처음이잖아. 소나 돼지도 먹게 될까?”

남매는 다짜고짜 쳐들어왔던 것처럼 또 순식간에 방을 나가 버렸다. 남겨진 천오는 떨떠름하게 간식이 들린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당과를 먼저 조심스레 한 입 물었다.

당과는 속이 텅 비어 있었고, 입 안에서 바삭하게 부스러졌다. 며칠 내내 맑은 탕과 뭉근한 죽 같은 것만 먹어 이런 식감은 꽤 오랜만이었다. 산사나무의 열매인 산사자에 걸쭉한 설탕물을 씌워 굳힌 당호로도 혀를 찌르듯 새콤했다.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 천오는 잠시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윽고 오독오독 소리를 내며 당호로를 전부 끝까지 먹었다. 주먹만 하지만 속이 비어 있는 탕과도 와작와작 먹었다. 그런 뒤 침상 아래에 놓인 단화를 주워 신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발이 조금 헐렁하긴 했지만 몸은 가뿐했다. 이곳에 있는 내내 극진한 간호를 받은 덕분이었다. 일주일을 굶은 데에 더불어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는데도 몸만은 건강했다.

그리고 무릇 인간이란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따라오는 단순한 생물이었다.

천오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있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고강한 무공을 가진 이가 머무르는 곳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소소하고 학구적인 공간이었다. 오랫동안 써서 그런지 반들반들한 나무 가구를 보자 자연스럽게 그 위를 쓸어내리던 하얀 손이 떠올랐다.

세가를 드나들던 무인들은 전부 거칠고 단단하며 돼지 발톱 같은 손톱과 우악스러운 손가락을 갖고 있었는데, 선인의 손은 그것과는 전혀 결이 달랐다. 치료를 받을 때 느꼈던 감촉은 굳은살 하나 없이 보드랍고 섬세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선인이 아니라고 했지.

그는 스스로를 약을 공부하는 사람이며 일개 무림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잘 믿어지진 않았다. 선인이 아니고서야 어떤 이가 그런 향을, 분위기를 자아내며 그런 자태와 그런 목소리로 돌아다닐까.

천오의 어휘로 그를 다 설명할 순 없었지만 그의 주위를 감도는 비현실적인 공기만은 느끼고 있었다. 인세(人世)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것 같지 않으며 언제라도 미련 없이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 버릴 것 같은 사람. 천오가 그에게 갖는 감상이었다.

천오는 방 바깥으로 걸어 나가며 초윤의 무심한 눈이나 변하지 않는 무표정 같은 것을 계속 떠올렸다. 얼마 전부터 홀로 있을 때면 초윤에 대한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나 천오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건지, 왜 이곳에서 은거해 살고 있는지, 두망산이라면 이전에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인지, 머리카락은 어쩌다 하얗게 새어 버린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백화인(白化人)이었던 건지.

물론 초윤과 한 방에 함께 있을 때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으로 쫓으며 알아내려 애쓰게 되었다. 온 신경이 그에게 쏠린 덕분인지, 천오를 좀먹는 기억들은 어느새 잠잠한 밑바닥에 가라앉았다.

나무 문을 밀고 바깥으로 나오자 선선한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산속의 공기는 시원하면서 깨끗했고, 생생한 나무와 풀의 향기가 폐부를 가득히 채웠다.

보고 싶던 사람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천오는 나무로 만든 울타리의 문을 밀고 한 걸음 한 걸음 바깥으로 나갔다. 고르지 않은 돌과 부드러운 잡초가 신발 밑에 밟혔다. 그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등을 돌린 채 하얀 머리카락만 나부끼고 있었지만, 어린아이의 기척 따위 진즉 눈치채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를 증명하듯,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고개를 돌려 천오를 내려다보았다. 밝은 연갈색의 눈동자는 햇빛 아래서 호박 같았다.

“이번에는 넘어지지 않았구나.”

얼핏 칭찬하는 것 같았지만 어조가 무심했다. 천오는 손을 앞으로 모아 잡고 만지작거리며 머뭇머뭇 말했다.

“돌보아 주신 덕분에 쾌차하였습니다. 지난번에는 경황이 없어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넘어지는 아이 붙잡아 주는 게 무어 대단한 일이라고.”

초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의 움직임만 눈으로 쫓던 천오는 그제야 자신의 옆에 약초를 널어놓은 바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바싹 마른 만병초 이파리 하나를 집어 들어 손안에서 부스러트린 초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하면 충분하구나. 걷어야겠다. 안에 들어가서 개어 놓은 자루를 갖고 와 주련. 약서랍 옆의 상 위에 있는데…….”

“아…… 알고 있습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그를 생각하며 수십, 수백 번이고 방 안을 둘러보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는 이미 훤했다. 허락 없이 서랍을 열어 보거나 뒤져 보진 않았으니 겉모습에 한정된 것뿐이었지만, 그래도 그가 찾는 자루가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천오는 걸음을 빨리해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뛰지 말고.’ 하는 목소리가 들려와 달리려던 것을 애써 참았다. 자루는 예상했던 자리에 알고 있던 모습으로 차곡차곡 개어져 있었고, 천오는 그중 하나를 들고 다시 초윤에게로 돌아갔다.

공손히 내민 자루를 받아 든 초윤이 말했다.

“몸도 성치 않은데 수고했다. 고맙구나.”

과장 하나 하지 않고, 천오는 그 말 한마디가 어쩐지 굉장히 좋았다. 인사치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잘한 것 같았다. 무엇이든 더 하고 싶었고, 더 돕고 싶었다. 불쑥불쑥 독처럼 치미는 복수심에 난도질 되던 심장이 이때만큼은 평범하게 기뻐했다.

그런 천오를 아는지 모르는지, 초윤은 자루를 펼치더니 천오에게 내밀고 연이어 말했다.

“이 안에 만병초를 담아 보거라.”

천오는 재깍 고개를 끄덕이고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바싹 마른 약초를 쓸어 담아 자루에 넣었다. 잎이 부스러지지 않게 아주 심혈을 기울이고 있자, 초윤이 ‘부서져도 괜찮으니 너무 조심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마음을 고스란히 읽은 것 같아 천오는 내심 그가 독심술과 같은 선술을 쓰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천오가 약초를 전부 담자, 초윤은 말없이 천오의 어깨를 두어 번 도닥이고 아래에 펼쳐 놓았던 대나무 돗자리를 돌돌 말아 챙겼다.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천오의 입에서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선인께서는 제게…… 무엇을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천오는 말하고서도 화들짝 놀라 제 입을 막았다. 그리 주의를 하였건만 또 초윤을 시험하는 듯한 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세 번이나 이렇게 말해 버렸는데 이번에야말로 화가 나지 않았을까. 천오는 호된 말을 들을 것을 각오하고 다시 초윤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초윤은 놀랍게도 화가 난 기색이라고는 일절 없이, 정말 자신이 천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처럼 입가를 만지작거리다 말했다.

“글쎄…… 적어도 세상의 모든 독을 이겨 낼 수 있게 해 줄 순 있지.”

만독불침(萬毒不侵).

비현실적인 말을 태연히 하는 초윤의 머리 위에 황금색 햇살이 비쳤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온 산의 나무들이 부산스러운 이파리 소리를 냈다. 광막한 하늘에서 유유자적 흘러가던 구름들은 그를 위해 멈춘 것 같았고, 하늘거리는 머리카락은 백금으로 뽑은 실보다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순간 정말로 구전 설화 속의 선인처럼 보였다. 고난을 겪는 천오를 위해 천계에서 내려온 것 같았다.

천오는 그날 그 한마디, 그 한순간으로 일생을 바꿀 마음을 굳혔다.

일곱 살 아이의 마음을 대책 없이 들뜨게 한 초윤은 자신이 치를 대가는 꿈에도 모른 채 애가 많이 밝아진 것 같다며 마냥 좋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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