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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2)화 (12/257)

12화

‘그래도 벌써부터 영약을 이렇게나 많이 먹으면 내력이 충돌해서 도리어 화를 입을 수 있으니까…… 식사에 조금씩 넣어서 흡수하게 해야겠다. 우리 애들이 편식하는 애들도 아니고, 이 정도 양이면 몇 년은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럼 천오한테도 운기조식을 먼저 알려 주고…….’

자고로 애 키우면서 가장 즐거운 건 상상과 보답이라고 했다. 이 아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될지 무럭무럭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과 아이의 사소한 성장으로 벅찬 마음에 보답을 받는 것.

그중 하나를 하고 있는 초윤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볍기만 했다. 쏟아지는 비에 머리카락이며 옷이 축축하게 젖었지만 짜증조차 나지 않았다.

초윤이 천궤산부터 두망산까지 산 하나를 넘어 돌아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무심서에 가까워지자 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려오는 대화에 얼굴이 설핏 굳었다.

“……책임이니까 내가 갈 거야! 넌 여기 있어. 따라 나오지 말고!”

“그, 그렇지만 누나! 지, 지금 가면 안 돼.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

“……도 있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그냥 찾아만 보고 오겠다는데 왜 계속 징징거려! 이러다 스승님이라도 오시면……!”

“내가 오면?”

초윤이 발소리도 하나 없이 무심서 앞의 마당에 내려섰다. 옷자락을 잡고 실랑이를 벌이던 아이 둘이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우뚝 굳은 채 초윤을 보았다.

남매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본 초윤은 재차 물었다.

“내가 오면, 그 뒤엣것을 말하거라.”

“스, 스승님…….”

일단 어떤 잘못을 했어도 애를 이 빗속에 둘 이유는 되지 않았다. 초윤은 쫄딱 젖은 아이 둘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비를 피해 들어갔다.

그리고 바깥에서부터 느낀 대로, 방 안에 있어야 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초윤은 불안감을 삼키고 바닥에 자루를 내려놓은 뒤 개어 놓은 마른 수건을 꺼내며 물었다.

“천오는 어디 있느냐.”

“그, 그것이…….”

사현이 고개를 푹 숙이고 모아 잡은 손을 꼼질거리며 눈을 굴렸다. 대답을 못 하는 게 어지간히 숨기고픈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젖은 생쥐 꼴을 한 사영이 사현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제가 폭포에 놓고 왔어요. 곧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안 와서 가 보려던 참이었어요.”

“……폭포에 놓고 왔다니?”

“……걔 혼자 물고기를 못 잡았거든요. 그래서 사현이와 먼저 들어왔어요. 돌아오는 길은 알고 있다고 해서 괜찮을 줄 알았어요.”

사영이 혼나기를 각오한 아이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일련의 흐름을 이해한 초윤은 자신이 인상을 쓰지 않았길 바라며 잠시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무엇을 말해야 할까. 너를 믿었다? 네게 실망했다? 너는 가장 나이가 많은데 동생 하나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느냐?

아니, 사영은 고작 열한 살이었다. 그리고 지난번의 일로 생긴 앙금을 아직 다 풀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린아이에게 어린아이를 돌보라고 말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아직 불안정한 애들을 두고 자리를 오래 비운 제 탓이었다.

“젖은 옷을 벗고 이것으로 몸과 머리를 닦거라. 그다음 새 옷을 꺼내 입고 얌전히 기다리렴. 밖으로는 절대 나가면 안 된다. 이 날씨에 고뿔이라도 들면 큰일 나.”

둘째, 셋째가 생기면 큰애는 아무리 어려도 다 큰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키워야 하는 날이 한참 남았는데 벌써 이런 실수를 해서 어떡하지. 초윤은 아이들에게 수건을 넘기고 자조하며 문밖으로 나섰다.

“알았느냐. 절대 바깥으로 나오면 안 된다. 나머지는 다녀와서 얘기할 테니 화로에 불을…… 아니, 함부로 불을 만지진 말고 이불 속에라도 들어가 있거라.”

그런 뒤 아이들의 대답을 듣지 않고 몸을 날렸다. 금세 멀어지는 무심서에서 따라붙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응대할 여유가 없었다. 초윤의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다.

다쳤으면 어떡하지?

마음이 급박했다. 가장 먼저 아이들이 있었다던 폭포를 향해 달려갔다. 빗줄기가 구슬처럼 뺨과 몸을 때렸다. 단련된 무인의 몸은 미끄럽고 험한 산길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스쳐 지나갔지만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굼벵이처럼 느껴졌다. 산속이라는 것도 위험한데. 더군다나 이곳이 어디인가. 온갖 요수와 요물은 다 모여 있다는 불귀 산맥이 아닌가!

이를 악물고 달리다 보니 폭포에 다다랐다. 그새 불어난 물이 흙탕물이 된 연못에 떨어지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작은 모닥불이 꺼진 흔적과 바닥을 나뒹구는 생선 뼈가 보였지만 아이는 없었다. 초윤은 순간 머릿속이 텅 비는 듯한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아이가 없다. 잃어버렸다.

묻어 두었던 과거의 편린이 해일처럼 일어나 온몸을 덮쳤다. 식어 버린 채 하얗게 질린 손을 들어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온몸이 볼썽사나울 정도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니야. 정신 차려야 해.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어. 찾을 수 있다.’

빠르게 이성이 돌아온 것은 어디까지나 고강한 경지를 이룬 ‘초윤’의 정신력 덕분이었다. 짝 소리가 나도록 제 양쪽 뺨을 내리쳐 정신을 차린 뒤 눈을 감았다. 이렇게 된 이상 초윤의 능력을 믿고 집중해야 했다.

사영과 사현은 초윤과 같은 심법으로 내력을 쌓은 덕분에 비슷한 기운을 갖고 있어 찾아내기 수월했지만 천오는 달랐다.

아직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천오는 그저 일반적인 일곱 살 아이 수준의 미미한 내공만을 담고 있었고, 숲의 나무들마저 영험한 기운이 있는 불귀 산맥에서 그런 아이를 찾아내기란 굉장히 어려웠다.

결국 벌레 한 마리까지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쏟아지는 비와 폭포 소리에 소리도 전부 묻혀 버렸지만 오히려 더욱 감각을 곤두세웠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했다. 현경이라면 입신(入神)이라 불리는 화경도 뛰어넘은 경지다. 빌린 몸이지만, 지금만큼은 초윤이 되어야 했다.

산의 청량한 기운을 닮은 단전의 내력이 천천히 소용돌이치며 경맥을 타고 올라왔다. 감각 기관이 자리한 머리의 섬세한 혈도를 가득 채우며 세차게 흘러갔다. 기감이 촘촘한 그물처럼 발밑으로 퍼져 나갔다. 간만에 내린 비로 약동하는 생명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초윤은 그 모든 생명의 기척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제외하며 점점 더 영역을 넓혔다. 오래 지나지 않아 드디어 이건가 싶은 기운이 걸려들었을 때, 그 근처에 도사린 것을 감지한 눈이 번쩍 뜨였다. 미처 생각을 하기도 전에 급박한 몸이 먼저 산길을 뛰어 내려갔다.

‘큰일 났다!’

천오는 웅크려 앉아서 토굴 밖으로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손끝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깨닫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빨갛게 언 손은 흙과 빗물로 지저분했다. 기껏 나은 흉터 위로 또 다른 상처가 생겨 피가 비치기도 했다.

젖은 옷에 손을 슥슥 문지르며 다시 바깥을 보았다. 토굴 밑으로는 약간의 턱 말고는 가파른 경사가 이어졌다. 위에서 떨어졌을 때 나무에 걸려 멈췄기 망정이지, 그대로 굴러갔다면 죽거나 죽음에 가까운 부상을 입었을 게 분명했다.

비를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 무성한 나무들은 거대한 비석처럼 스산해 보였다. 아침만 해도 전부 아름다운 산경(山景)의 일부분으로 보였는데, 미력한 몸으로 혼자가 된 지금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고, 체온이 떨어진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엉금엉금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제 몸을 끌어안았다. 손발은 이제 차갑다 못해 뜨겁게 느껴졌고, 퉁퉁 부어오른 발목에서는 열기가 느껴졌다.

이 발로는 바닥을 딛거나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어나 나간다고 해도 나무뿌리나 돌부리를 붙잡고 한참 위로 기어 올라가야 했다. 즉, 이곳에서 날이 개기를 기다리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오겠지?’

올 거야. 생각하기도 전에 불쑥 답이 나왔다.

‘언제?’

조금만 기다리면. 그러니까…… 숫자라도 세고 있으면 오지 않을까.

아니, 숫자는 세고 싶지 않다. 생각만 해도 거미가 등줄기를 기어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주변은 꽉 막혀 빛이 들지 않는 것 같고,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곳에 홀로 남겨진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생각밖에 없었다. 천오는 자연스럽게 방금까지 겪은 일을 하나하나 되짚게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자신은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혹여라도 홀로 나와 헤맬 생각은 하지 마렴.

바로 얼마 전에 스승이 말했다. 요괴나 요수가 많이 나온다고 듣기는 했지만 실체를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기문진법을 쳐 두었다고 했으니 그 덕분이겠지. 그렇다면 그 사슴 요괴는 스승의 진법을 파헤치고 들어올 만큼 강했다는 건데, 눈이 마주쳤을 때 자아가 없어진 것처럼 압도당했던 일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그리고 남매와 함께 있을 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혼자가 되자마자 폭포에 나타난 것을 보면 그들에게 무언가 예방책이 있을 수도 있었다. 남매는 자신보다 오랫동안 스승과 함께 살았고, 스승은 배려 깊으며 꼼꼼한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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