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천오의 발목은 심한 염좌였다. 하지만 스승의 치료와 간호 덕분에 빠른 회복세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치될 수 있었다. 비가 온 다음 날부터 스승이 직접 가져와 계속 먹이는 거대한 뱀 고기 덕분에 기운도 넘쳤다.
그 밖에 스승은 길고 검은 가죽도 가져와 남매와 천오의 새로운 신을 만들어 주었는데, 파충류 같은 비늘 자국과 금속성의 광택을 보아 그날 마주했던 토굴 속의 괴물 같았다. 사영과 사현은 신이 튼튼하고 가볍다며 우스갯소리로 이무기가 아니냐 했는데 사실 살짝 의심이 가기도 했다. 다리 네 개가 달리고 이빨이 그토록 뾰족한 뱀이라니, 이무기밖에 없지 않은가.
사영은 스승과 이야기를 한 뒤로 천오에게 짤막한 사과를 건넸다. 이후 특별히 살갑지는 않았지만, 또 이전만큼 날카롭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별다른 감상이 없었던 천오는 이를 무던하게 받아들였다.
건강을 회복하고 나서는 드디어 염원하던 무공을 익히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다. 규칙적이고 충실한 나날은 일어날 때면 기대감을, 잠들 때면 충만감을 안겨 주었다.
“뻐근하진 않더냐?”
“더…… 할 수 있습니다.”
기마 자세를 취하고 있는 천오의 허벅지와 두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송골송골 맺힌 땀이 얼굴과 등을 적셨고 심장은 쿵쿵 뛰었다.
그저 건강한 일곱 살이었던 몸에 매일 하는 운동은 상당히 벅찼지만 저녁마다 약욕을 하고도 모자라 스승의 안마를 받는 덕분에 어딘가 뭉친다거나 후유증이 남는 일은 없었다.
천오에게 다가온 초윤은 아이의 자세를 가볍게 교정해 준 뒤 말했다.
“반각만 지나면 자세를 풀어라.”
“일……각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 돼. 반각만.”
더 많이 해야 더 빨리 몸을 만들 수 있고, 하루빨리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울 수 있다.
조급함이 차올랐다. 얼마 전 스승이 보여 준 초식이 분명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데 몸이 따르지 않아 아직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억울했다. 일곱 살이면 명가에서는 이미 무공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취급을 받는 나이였다. 자신은 한참을 뒤처져 있었다.
하지만 스승은 말한 반각이 지나자 단호하게 천오를 앉혔다. 천오는 빨개진 얼굴로 바닥에 턱 하니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스승은 천오의 다리를 끌어 허벅지 안쪽의 혈 자리를 눌러 풀어 주며 말했다.
“근육과 인대는 가늘고 긴 섬유로 되어 있다. 무리를 하면 끊어지고 말지. 그렇게 되면 다시 이을 방법이 없다. 아문다고 해도 이전만큼의 힘을 내지 못해.”
“…….”
“무엇이든 적당히 독하게 하거라. 독하지 않으면 성취하지 못하고, 너무 독하면 몸을 망친다. 급한 마음을 버리고 차근차근 쌓아야 사상누각(砂上樓閣)이 되지 않는 법이다.”
“……예, 스승님.”
조곤조곤 일러 주는 말을 듣다 보면 끓어오르던 마음이 가라앉고 이성을 되찾았다. 스승이 하는 말에는 조금도 잘못된 것이 없었다. 혹사당한 근육을 전부 풀어 준 스승은 소리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이라도 마시고 있으렴. 잠시 들어갔다 오겠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말을 마친 스승이 몸을 돌려 무심서로 걸어 들어갔다. 사영과 사현이 글자를 잘 익히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천오가 몸을 단련하기 시작한 날부터 사영과 사현은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반면 천오는 이미 글을 읽을 수 있었기에 단련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천오는 땀에 젖은 얼굴을 소매로 문지르며 천천히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어찌어찌 걸을 수는 있었다. 비척비척 주방에 가서 물독의 윗물을 떠 마시자 짜릿한 시원함이 온몸을 내달렸다.
그대로 간단히 세수를 하고,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울타리 한구석에 비스듬히 놓여 있는 목검이 눈에 들어왔다. 손잡이에 까마귀 오 자가 새겨진 저 검은 천오의 것이었다.
검을 보자 자연스럽게 얼마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 장면은 그만큼 천오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너는 타고난 힘이 있고 날렵한 근골을 가졌으니 무엇을 들어도 잘할 것이다. 검이 가장 무난하게 잘 어울리겠구나.
그렇게 말한 스승은 패검을 꺼내 유려한 움직임으로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기본이 되는 열 가지의 초식과 심화라는 열여섯 가지 동작은 천오가 눈으로 따를 수 있도록 빠르지 않으면서 동시에 경이로웠다.
검극이 일으킨 바람에 둘러싼 나무들이 흔들렸고, 발끝은 구름 위에 올라선 것처럼 둥실둥실 가벼웠다. 원을 그리는 팔과 휘날리는 하얀 옷자락은 백로의 날개 같았으며 머리카락이 사르륵 내려앉을 때는 안개 위에 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스승은 여타 무림인과는 다르게 자신이 어떤 문파인지도, 사조가 어떤 이였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무공을 소개할 때도 어떠한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게 설명하기만 했다. 하지만 직접 보고 나니 문외한인 천오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초윤이 펼치는 무공은 남궁세가의 창궁무애 검법처럼 정교하지도, 하북팽가의 오호단문도처럼 패도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자연을 눈앞에 둔 것처럼 배경과 일체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때로는 벅차오르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초윤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영에게는 비도가, 사현에게는 환도가 어울렸기에 각기 다른 무술을 가르쳐 주었지만 너는 이것을 배워도 될 것이다.
그 말인즉슨 천오가 직전제자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스승에게도 사형이나 사제가 있을지도 모르고, 일인전승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지만 스승의 주된 무공을 오롯이 전해 받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검을 휘두르기엔 근력이 모자라 좀 더 미루게 되었지만 그날 본 스승의 모습은 어디 하나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몸만 받쳐 준다면 고스란히 따라 할 자신도 있었다.
아무튼 미력하고 어린 몸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나이가 다 차지 않아 당연한 일이라지만 가끔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천오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다리를 일자로 펼치고 앉아 근육과 관절을 유연하게 늘려 주며 스승을 기다렸다.
조급하게 굴지 말고 적당히 독하게. 속으로는 스승이 남긴 말을 몇 번이고 되뇌고 있었다.
◇
아이는 생각보다 잘 먹고, 잘 잤다. 충격적인 일을 연달아 두 번이나 겪었음에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담담하게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초윤만큼은 아이가 그렇게 평안하고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흐으…… 읏, 흐윽…….”
“쉬잇, 괜찮다.”
천오는 잠에 들면 꼭 악몽을 꾸는지 한참을 뒤척였다. 일어나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밤마다 낑낑대는 모습을 보면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었다.
초윤은 식은땀을 흘리는 아이의 이마를 닦아 주며 작은 손을 꼭 잡고 손등을 도닥였다. 아이가 잠시 편해진 듯 찌푸린 미간을 폈지만 임시방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약욕 물과 식사에 질 좋은 수면을 위한 약재를 넣어도 아이는 항상 앓았다. 그렇다면 이건 몸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은 묻어 두고 있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큰일을 겪은 충격이 아직 심저에 도사리고 있단 뜻이었다.
그리고 초윤이든 정하윤이든 사람의 정신을 치유하는 법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아이가 하루하루를 건강하고 충실하게 보내며 언젠가 내면의 어둠을 마주할 수 있도록 성장하길 바랄 뿐.
달빛이 잠을 깨울까 저어되어 창을 닫았다. 등불도 켜 놓지 않은 깜깜한 방 안에서 초윤은 밤새 아이의 곁을 지켰다. 단련된 무인의 몸은 빛 한 줄기 없어도 아이의 얼굴을 보았고, 잠을 자지 않아도 거뜬했다.
역시 하드웨어가 튼튼해야 뭐든 할 수 있구나. 초윤은 아이의 손을 잡은 채 그대로 벽에 몸을 기대고 어둑한 방을 멍하니 보았다.
아침과 낮에는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바빴다. 제일 먼저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사영과 사현에게 글을 가르쳤다. 천오는 눈을 떼면 금세 무리를 해 버리니 수련할 때 꼭 지켜봐야 했다. 그러다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또 가르치고, 저녁을 준비하고, 목욕을 준비하고, 준비하고, 준비하고…….
얼떨결에 시작한 육아지만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몇 번이고 은혜를 느끼고 있는 무인의 몸이 아니었다면 정말 버티기 어려웠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해가 떠 있는 동안은 딴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그 말은 반대로, 이렇게 혼자 깨어 있고 할 일이 딱히 없는 밤이 되면 딴생각이 무럭무럭 떠오른다는 뜻이었다.
‘……잘 지낼까?’
본래 세상의 자신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다 보면 끝은 언제나 가족으로 귀결됐다. 대학을 졸업한 이십 대 초중반, 아직 다 컸다고 할 수 없는 나이에 갑자기 전혀 다른 세계에 떨어져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으니 그립지 않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유혈이 동반된 칼싸움과 폭행과 살인이 당연한 무협지 속이라니. 초윤의 강철 같은 정신이 아니었다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것은 천오가 아니라 자신이었을지도 몰랐다.
돌아갈 방법도 요원했다. 게다가 당장 돌아갈 수 있다 해도 키우는 애들을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결국 최소한 십 년은 육아에만 집중하고, 애들이 독립을 하면 그때부터 방법을 찾아봐야 했다.
물론 천오가 크고 나면 본래의 스토리가 시작할 테니 그것 또한 신경을 쓸 필요가 있었다. 마교에 가야 했을 천오를 중간에서 빼돌린 결과가 어떻게 될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지만, 생각만큼 마냥 좋게 끝나리라고는 확신할 순 없었다.
복잡하고 막막하고 걱정스럽다.
정신이 없을 때는 이런 걸 떠올릴 여유도 없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어두워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우두커니 앉아 울적해하고 있는데 문득 잡고 있던 따뜻한 손이 움찔거렸다. 또 악몽을 꾸는 건가. 초윤은 퍼뜩 상념에서 벗어나 아이를 살폈다. 천오는 다행히도 별다른 이변 없이 새근새근 깊게 잠들어 있었다.
그래도 반 시진도 못 가 다시 앓겠지.
초윤은 손을 뻗어 아이의 앞머리를 조심조심 쓰다듬었다. 어떻게 보자면 이 아이와 지금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 남매 덕분에 초윤이 우울한 사고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협지 최고 보스가 과연 말을 잘 들어 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천오는 굉장히 예의 바르며 온순했고, 또 초윤을 신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무기에게서 지켜 준 건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이무기…….’
그 사건은 다시 생각해도 좀 황당했다. 집 근처에 이무기라니. 아무리 요괴가 넘치는 산이라지만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니. 게다가 ‘초윤’은 어린 이무기 따위는 위협으로 느끼지도 않아서 구제 작업은커녕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다.
뒤늦게 알게 된 초윤이 진법을 보강하고 활동 반경 근처의 요괴를 전부 쫓아냈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뒀으면 얼마나 더 큰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무튼 잡은 이무기는 아이들의 배 속으로 사라졌다. 잘 벗겨서 말려 둔 가죽으로는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의 신발이나 겉옷을 해 줄 생각이었다. 비교 대상이 없어서 그렇지, 몸에 너무 좋은 것만 먹고 꼬박꼬박 약욕을 하며 자라는 아이들은 또래에 비해 심각하게 건강하고 강했다. 비교적 최근에 합류한 천오도…….
‘아니, 천오는 그냥 타고난 거야. 누가 최종 보스 아니랄까 봐.’
초윤이 전개하는 초식을 보고 대뜸 자연의 모습을 비춘 것 같다고 말한 천오에게는 정말 놀랐다. 초윤의 무공이 지향하는 바를 단번에 꿰뚫은 눈은 그저 밥 좀 잘 챙겨 먹었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천재, 무공의 천재다. 정말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무재(武才)다.
‘초윤’의 본능이 그렇게 말했다. 검을 쥐여 주면 당장에라도 초윤의 초식을 똑같이 베껴 낼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윤이 아는 모든 것을 쪽쪽 빨아먹을 재능으로 보였다.
그게 무서워서 일단 몸을 만들자며 근육 트레이닝을 시켰는데, 애가 이걸 또 너무 열심히 했다. 초윤은 이제 매일 있는 수련 시간이 두렵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으응…….”
“그래, 더 자렴.”
아이의 잠꼬대에 또 제멋대로 튀던 생각에서 벗어났다. 아이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니 드리웠던 우울도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다.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아이의 동그란 이마나 포동포동하게 젖살이 오른 뺨, 뾰족한 입술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느낌에 아이 키우는 사람들이 힘들다 하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빠져드는 건가. 이해가 갔다.
초윤은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시원한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앞으로도 수도 없이 많을 혼자만의 밤은 작고 고른 숨소리 덕분에 외롭게만 느껴지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