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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8)화 (18/257)

18화

“당문에서는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까?”

“봉문을 한 지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당문 타령이야. 처박혀서 뱀 몸뚱이라도 헤집고 있겠지.”

“자숙의 의미로는 충분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닙니까?”

“내가 일적결(一滴決) 집안 일을 어떻게 알아? 궁금하면 네놈이 찾아봐야지.”

“……요녕은 사천과 거리가 너무 멉니다.”

“요녕 바로 밑에 붙어 있는 하북은 가깝겠냐? 집에만 처박혀 있으니 모르는 거지.”

쨍하게 돌아오는 대답에 모용단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회의장을 돌아보자 비어 있는 열다섯 석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결패도 대협께서 가장 먼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집에만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제서야 부른 겁니다만.”

“뭐? 뭐라고? 그럼 다시 나갈까? 아앙?”

“그저 지난 300회에 달하는 정기 회의의 출석률과 지각률만 보면 상상할 수 없는 이른 시간에 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입니다. 오늘 오신 것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저렇게 보여도 사소한 우격다짐은 통 크게 넘어갈 인물인 것을 알기에 모용단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담담히 앞에 놓인 찻잔을 들자 팽치정의 얼굴이 조금씩 붉게 달아올랐다.

“이 빌어먹을 애새끼가 어른 무서운 줄 모르고……!”

“무슨 말씀들을 그리 재미있게 나누고 계세요?”

팽치정이 막 노성을 터트리려 할 때, 들어오는 문이 갑작스레 양쪽으로 열리더니 가사를 입은 중노년의 비구니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모용단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하고 반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미산의 불법(佛法)을 인도하시는 반야장 승려님을 뵙습니다.”

“오늘도 칠성검 대협이 대신 나오셨군요. 모용의 기둥이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염합니다.”

“감사합니다, 승려님. 편히 불러 주십시오.”

“그놈이 무슨 칠성검이야! 기관폐인이나 기괴뇌면 모를까.”

모용단은 팽치정이 성을 내든 말든 반야장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착석했다. 그 뒤로 한 식경이 더 지나는 동안 주인을 찾은 의자는 고작 다섯 개밖에 되지 않았다.

시간이 되자, 조금 시끌벅적해진 회의장 안을 가만히 지켜보던 모용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간을 할애해 주신 모두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공사다망하신 분들을 모셔 놓고 보잘것없는 안건을 꺼내서 죄송합니다만, 오늘의 목적은 정보 교환입니다. 지체할 여유가 없으니 더는 기다리지 않고 시작하겠습니다.”

“좋아요. 나중에 못 들은 이들만 억울한 거지요.”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말해, 애송이!”

반야장은 담담히 끄덕이고, 팽치정은 다 식은 백차를 한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소림사의 주지승 정선도 말없이 모용단을 바라보고 개방의 방주 추노는 다 빠진 앞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모용단은 다시 자리에 앉아 말을 이었다.

“정보를 최대한 제한하고 있어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삼 개월 전 저희 모용세가가 자리 잡은 요녕성의 동쪽에 기관진식으로 가득한 비동(秘洞)이 발견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문자가 새겨진 흔적도 없고 난해한 장치로 가득해 민간의 출입을 제한한 뒤 제갈세가와 협동하여 찬찬히 안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기관진식? 엉덩이 무거운 네놈이 여기까지 기어 나온 이유가 있구나.”

모용세가의 첫째가 검을 배우다 말고 기관진식에 빠져 몰두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유명했다. 어설픈 실력이라면 비웃음만 당하고 금방 그만두었겠지만, 모용단은 유례없는 오성(悟性)을 보이며 제갈세가에서도 따를 자가 얼마 없는 일취월장을 이루었다.

이렇다 보니 모용세가 쪽에서도 모용단의 교육에서 손을 놨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검은 이미 같은 세대에서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고 교양 부분에서도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기 때문에 그 이상 뭘 배우든 간섭할 명분이 없었다.

진법과 기관진식의 유구한 대가라고 불리는 제갈세가 쪽에서도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모용단의 지적 능력을 직접 본 뒤에는 호의적으로 돌아섰다. 팽치정이 기괴뇌(奇怪腦)라고 부르는 이유였다.

모용단이 품을 뒤지더니 손바닥보다 큰 석판을 하나 꺼내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이곳저곳 깨지고 닳긴 했지만 인위적으로 글자 같은 무언가가 새겨졌다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드디어 발견했습니다. 읽어 보십시오.”

“……왕(王)? 그것 하나밖에 모르겠는데.”

“예, 맞습니다.”

팽치정이 인상을 쓰며 석판에 눈을 고정했다.

“왕이 뭐 어때서? 개나 소나 가진 재주가 약간이라도 뛰어나면 왕을 붙이고 다니는데.”

“하지만 요녕성을 차지하고 있던 300년 전의 왕이라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고구려?”

무적의 기마대와 불패의 군단을 지녔던 동쪽의 왕국을 떠올린 팽치정이 중얼거렸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모용단은 석판에 새겨진 한자를 손끝으로 쓸다가 다시 품에 넣었다.

“예, 맞습니다. 무구와 그림도 다수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그 시기의 유적 같습니다. 제갈세가의 사람들은 지금 그곳을 파헤치느라 정신이 없어 참석하지 못한다는 말을 전해 달라 했습니다.”

“쟤미가 있긴 한뎨, 쟈랑을 하려구 불렀남? 맹랑한걸.”

“물론 아닙니다.”

추노의 말에 당당히 대답한 모용단의 눈이 대들보 위와 문의 바깥을 휘 둘러보았다. 한순간에 긴 탁자를 중심으로 작은 차음막이 펼쳐지고, 모용단은 목소리를 낮추어 빠르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곳에 신물(神物)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려면 아직 한참이 남았지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기이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세 발 달린 까마귀 신수에 관한 문구가 계속해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신물?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인가?”

“제갈세가의 만서각을 속속들이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었습니다. 중원의 것이 아니니 더욱 어렵기도 합니다만.”

신물이라는 얘기를 듣고도 이 안에서 욕심을 내비치는 자는 없었다. 모용단은 모인 이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것을 발굴해서 조사한 뒤 가장 적합한 사람에게 넘길 생각입니다.”

“모용 공자가 직접 갖지 않고 말인가요?”

“예, 저는 신물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반야장은 한창 혈기가 넘칠 나이답지 않게 자신의 그릇이 그만큼 크지 않다는 말을 하는 모용단을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모용 공자, 그것을 어째서 우리에게 알리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정확히 무엇을 부탁하시는 건지도요.”

반야장이 속내와는 다르게 시침을 똑 떼며 말하자 모용단이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 알면서 이 이상의 시험이 필요하냐는 듯 차분하기만 한 얼굴이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 상황에 신물마저 넘어간다면 중원을 구할 길은 없습니다.”

“…….”

“이 자리에 오실 수 있는 모든 분께 연락을 돌렸지만 정말 오실 분은 여러분밖에 없을 것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즉, 저는 처음부터 이곳에 모이신 여러분께 부탁을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부디 신물의 존재를 숨기기를 도와주시고, 비밀리에 적합한 자를 찾아 주십시오.”

“어뗜 신물인지두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러니 되도록 많이 찾아 주셔야 합니다.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과 무공의 재능, 또 양분된 백협맹이 잃어버린 의협심을 갖춘 인재가 필요합니다.”

“인쟤가 길거리예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아니구…….”

“그렇지만 이미 웃고 계십니다, 노협.”

“그런감?”

추노가 낄낄 웃었다. 중원 최대의 정보 조직인 개방의 용두로서 기대가 되는 모습이었다.

모용단은 양손으로 깍지를 끼고 시선을 내리깐 채 고해하는 것처럼 평온한 목소리를 이어 나갔다.

“여러분이 도와주신다면 그만큼 인재를 찾을 시간은 길어집니다. 몇 년이 걸려도 괜찮으니 천천히 중원의 보석들을 모아 주십시오. 아마도 이곳에 오지 않으신 분들은 등잔불 밑에서 이런 이야기가 오간 것도 모르고 계실 겁니다.”

“쟈네도 챰 대단햬. 이런 댬대한 얘기를 다른 곳도 아니고 백협맹의 졍중앙에서 하댜니.”

“감사합니다.”

모용단은 차음막을 걷고 태연히 말했다.

“이만큼 기다려 보았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조만간 다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에잉, 괘씸한 것. 늙은이를 오랴가랴 하댜니.”

능청스레 주고받는 데에는 도가 튼 추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그 뒤를 생각에 잠긴 듯한 반야장이 이었고, 재수 없는 꼬맹이라며 연신 욕을 하는 팽치정도 자리를 떴다.

아직까지 입을 열지 않은 소림의 주지승 정선만이 처음의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모용단은 그를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마침내 입을 연 정선의 목소리는 세간에 광불(狂佛)로 소문난 사람답지 않게 고요하고 차분했다.

“4년 전에 나타난 천살성은 아직 빛을 발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시주.”

“그렇습니까.”

대뜸 나온 말에도 모용단은 담백하게 대꾸했다. 고매한 주지승 정선이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은 바로 이 천살성 타령 때문이었다.

정선은 본디 현기가 깊어 천문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십 년 전만 해도 정선의 한 마디에 백협맹이 들썩거릴 정도로 영향력 있고 영험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4년 전 어느 날, 사색이 되어 모두를 불러낸 정선은 갑자기 흉흉한 천살성이 떠올랐다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물론 정선의 점성술은 절대 좌시할 수 없어 한동안 백협맹의 많은 무사가 갓 태어난 갓난아기들을 찾아다녔다. 아기를 죽인다느니, 무공에 쓴다느니 불명예스러운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에 상관하지 않고 천살성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난리를 치기 시작한 지 석 달 후, 정선은 갑자기 천살성이 혈기(血氣)를 죽였다며 제 말을 철회했다. 그렇다고 죽은 것은 아니지만 천살성이 흉성답지 않은 영롱한 빛을 뿌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더는 천기(天氣)를 읽을 수가 없다고, 이미 어질러지고 뒤죽박죽이 된 하늘이라 무엇도 장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 뒤에는 매일같이 천살성 타령이었다.

그렇다 보니 몇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선 그저 미친 스님 취급을 받고 있었다. 가주인 모용정의 대리로 정기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용단으로서는 영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숭산을 굳건히 다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 망설임 없이 불렀지만…….

‘아니, 잘한 일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해도 좋다. 들어 줄 수 있으니까.’

하남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천살성이 다 무엇인가. 삼십육천강을 다 말해도 좋다. 모용단은 이어질 말에 집중했다.

정선은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결국 흉성을 흉성답지 않게 만드는 것도, 상성을 상성답게 만드는 것도 전부 사람입니다, 시주. 아무리 올바른 심성을 가졌다 할지언정 바른 것을 듣고 보며 자라지 못한다면 무용합니다.”

“…….”

너는 영웅을 영웅으로 키울 자신이 있느냐.

나직한 목소리가 내포한 물음에 모용단은 영문도 모른 채 입을 다물었다. 정선은 그를 보며 작게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주가 가장 아끼는 사람은 귀인이 되어 돌아올 것이고, 신물의 주인은 이미 가까운 곳에 정해져 있으니 찾기에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마음을 다하면 그만한 결과를 얻으실 수 있을 테지만 시주께선 정도가 조금 과한 면도 있군요. 하지만 이조차 기껍게 여겨질 때가 올 겁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의미심장한 말만 남기고 떠난 정선을 포권으로 배웅한 모용단이 자리에 다시 앉았다. 등받이에 기대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 손으로는 이마를 짚었다. 습관적으로 달고 살던 두통은 요즘 정도가 심해진 탓에 뇌를 파먹는 벌레가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광불답게 역시 뭔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오늘 들은 말이 두고두고 자신을 힘들게 하리란 예감이 들었다.

해결한 일에 대한 압박은 더 먼 미래를 바라볼수록 무거워졌다. 하지만 가주 모용정이 정체 모를 독에 당해 앓아누운 처지에 대외적으로 모용을 지킬 수 있는 이는 모용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위험한 외줄 타기다.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이 자리에 앉는 것은 내가 아닌 그 아이가 될 테고, 보호해 줄 이 하나 없이 이리저리 휘둘려 말라 죽는 모습을 지옥에서 지켜보기만 해야 할 것이다.

입 안쪽의 살을 깨물며 다짐을 단단히 하는 모용단의 머릿속에 티끌 한 점 없이 밝게 웃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숨죽이고 있던 모용단을 걸어 나오게 한, 어둠 속의 등불 같은 단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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