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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31)화 (31/257)

31화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 된다. 누구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좋다고 홀라당 넘어가면 꼭 낭패를 보게 되어 있어.]

스승이…… 조금 이상했다.

아니, 이상하다는 말은 불경했다.

바꿔 말하자면, 스승의 언행이 오늘따라 낯설었다. 아침부터 어딘가에 몰두하듯 반응이 조금씩 느렸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작은 소리라서 전부 듣진 못했지만 ‘다 알고 있었는데 모른 척을 했다’라든지, ‘나만 몰랐다’ 같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단금상단이 맡겨 두었던 마차를 되찾고 도시를 종단하기 시작하자 전음으로 오늘의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는데, 그 주제가 인간 불신이었다.

사람 믿지 마라. 믿어 봐야 다 소용없다. 사람 속을 안다고 생각하지도 마라. 그렇다고 해서 다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또 멋대로 ‘이런 사람일 것이다’ 하고 생각할 이유도 없다. 아무튼 사람 믿지 마라.

아주 죄송스러운 생각이지만 밤새 누군가한테 큰 배신이라도 당하고 온 듯한 말씀이었다. 현명함이 극에 달한 스승이 쉽게 속아 주진 않았을 테니 상대가 만만찮게 교활한 작자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안에서 교활한 사람이라고 하면…… 저자밖에 없지.

천오의 새까만 눈이 행렬의 중간쯤에 있는 난위정의 마차를 향했다. 안강에서 고용한 짐꾼들의 계약이 끝나 규모가 사분의 삼으로 줄어들었고, 또 천장 없는 짐마차에 타고 있어 보기에 어렵진 않았다. 아이들의 다리가 아플 것을 배려한 짐꾼들의 배려였다.

화산파에서 온 일대제자들이 대뜸 돌아가게 된 것도 수상했다. 아무래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천오는 그쪽으로 잠시 시선을 고정하다가 혼자 생각하는 것은 무용하다 여겨 스승에게 전음을 보냈다.

[난위정이 스승님을 속였습니까?]

“…….”

옆에서 걷던 스승이 입술을 살짝 달싹였다. 천오는 죽립에 가려진 스승의 얼굴을 집요하게 살폈다. 저것은 당혹감인가, 배신감인가.

자신의 예측이 맞는다면, 천오는 난위정을 용서하기 힘들 것 같았다. 천오에게 배신과 위선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역린이었다.

스승은 잠시 침묵하다가 한결 평온하게 대답했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잘못 판단했을 뿐이지.]

[스승님께서 그러실 리가 없습니다.]

“…….”

스승의 입이 다시 한번 다물렸다. 그대로 한동안 말이 없는 모습에 괜한 토를 단 것이 불쾌하셨던 건가 싶어 설핏 불안해졌다.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자, 언제나처럼 부드럽고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느껴졌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이는 너와 나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게지. 난 단주가 우리를 해하려 한 것도 아니니 너그럽게 넘어가 주려무나.]

[……예, 스승님.]

순식간에 순한 양처럼 누그러진 스스로의 감정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천오는 가끔 스승의 육신과 기운에 기이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지 고민했다. 스승의 손이 머리에 닿거나 서로 손을 맞잡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스승의 몸에 배어 있는 약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불뚝불뚝 치미는 감정이 가라앉곤 했다.

스승은 본인이 선인이 아니라고 부득불 말씀하셨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스승을 향한 천오의 절대적인 믿음은 나날이 부풀어만 갔다.

안강을 건너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유한 상단답게 말과 마차를 넉넉히 이용해서 그런 것 같았다. 거기다 자꾸만 쓸데없는 소리를 하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흐리던 유명우도 없어 아주 쾌적했다.

금방 자양현에 도착한 이들은 하룻밤을 푹 쉰 뒤 새벽부터 일어나 대파 산맥을 넘을 채비를 마쳤다. 며칠을 꼬박 움직였는데도 다들 근육통을 호소하지 않는 것은 초윤이 저녁마다 먹이는 약주 덕분이었다.

특히나 체력의 소모가 심한 짐꾼들은 초윤의 술을 극찬하며 앞으로도 같이 다니거나 대량으로 술을 팔아 주길 간절히 바랐다. 사군자탕의 효과를 톡톡히 본 위정까지 은근하게 판매를 말할 정도였다.

강행군을 해낸 것답지 않게 기운이 넘치는 사람들은 씩씩하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마차를 끌고 산을 넘을 수는 없으니 말 몇 마리를 더 대여해 넘치는 짐의 일부를 지게 했다.

진령 산맥의 잔도는 워낙에 허술해 이조차 할 수 없었지만, 대파 산맥을 지나는 길은 협곡 밑에 위치해 있었다. 이전에 물이 흘렀다가 마른 길은 비교적 완만하고 넓으며 땅이 온전해서 별다른 위험 없이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간간이 보이는 풍경을 봐선 절벽 위에 굉장히 험준한 지형이 포진해 있는 것 같았다. 협곡 길이 없었다면 일반인이 넘을 엄두도 나지 않았을 듯했다.

양옆이 절벽으로 가로막힌 길을 걸어가며 초윤은 고개를 들었다. 죽립을 쓰고 있어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위로 뻗은 벼랑의 높이가 상당한 것 같았다. 이것도 흙이고 땅이라고 깎아지른 면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나무들이 대단할 정도였다.

도시에 며칠 있었다고 산 특유의 습하고 시원한 공기가 반가웠다. 눈을 감고 간만에 깊은 숨을 쉬는데…….

‘어?’

저 위에서 거슬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진령 산맥에서 마주쳤던 녹림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큰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쉰을 넘게 포진해 있었다. 몇몇은 절벽의 중간 부분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을 보아 노림수가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숨을 죽인 한편 정제되지 않은 거친 기세를 흘렸고, 이는 현재 일행에 합류한 한 사람과 아주 닮아 있었다.

초윤은 고개를 돌려 뒤에서 포박당한 채 걷고 있는 백호철을 보았다. 그는 자신을 돌아보는 초윤과 죽립 너머로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먼 곳을 보며 절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백호철 역시 숨어 있는 이들을 알아차리고 절대 습격하지 말라는 뜻을 어떻게든 전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백호철은 턱을 벌리는 근육이 아예 마비되어 말도 한 마디 하지 못했다.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고개만 흔들어 봤자 저 멀리서 보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절벽 위의 인기척들이 어수선해졌다. 백호철의 모습을 보고 경각심을 가지기는커녕 오히려 분노한 것 같았다.

‘하긴, 자기들 대장을 노예처럼 걷게 하고 있는데 화가 안 나면 이상한 거지. 백호철은 여기 고수가 있는 걸 아는데 전할 수가 없으니까 죽을 맛일 테고.’

아무래도 백호철은 자신의 계략이 자충수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아끼는 수하들은 대파 산맥에 놓아두고 홀로 진령에 온 듯했다. 지형적으로 고립된 사천의 얼마 되지 않는 통로를 철저히 막아 아예 고사(枯死)시킬 작정이었을 게 뻔했다.

상황 정리를 마친 초윤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기 시작했다.

애들 밥 사러 나온 길이 너무나 험난해진 것 같았다…….

며칠 전, 초윤은 난위정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위정은 초윤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섬서성에 자리 잡은 세력들을 속였다.

물론 난위정이 이미 전부 알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열심히 정체를 숨기고 나름의 조언도 했던 초윤으로서는 뜬금없이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막 배신감에 찼을 때 이를 기민하게 알아차린 천오를 달래며 잘 따져 보니 난위정에게는 의외로 잘못이 없었다.

난위정은 그저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 초윤을 성심성의껏 도왔을 뿐이었고, 사심이라고 하자면 본인들의 정체도 비밀에 부치고 싶어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본인들의 정체라고 한다면…….

‘역시 당문이겠지. 그냥 당문과 긴밀한 관계가 있던 상단이 아니라, 이번 상행 자체가 당문에서 계획한 일일 가능성이 높다.’

조우일과 난위정, 그리고 상단의 무사들이 무공을 익힌 것쯤이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초윤이 여태껏 봐 온 중에 제대로 된 무림인은 오직 ‘초윤’ 하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아직 성장 중이었고, 화산의 일대제자들은 초윤에 비해 너무나 미력했다.

즉, 초윤은 이백 년간 살아온 현경의 고수인 ‘초윤’을 무림인의 기준으로 잡은 탓에 단금상단의 무력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어차피 ‘초윤’에 비하면 전부 약해 빠졌으니까.

단금상단의 무력을 상당한 수준이라고 친다면, 이들은 당가에서 비밀스러운 목적으로 만든 조직일 게 분명했다. 무사들이 당가의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도 그렇게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됐다.

이 정도의 당가 출신 실력자들이 일부러 상단으로 위장해 섬서성으로 온 데에는 여러 목적이 있을 터였다.

초윤은 당연하게도 그런 머리 아픈 싸움에는 끼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섬서성에는 화산파가 있고 가까운 곳에 무당파까지 있으니 기를 쓰고 정체를 숨겨야 했겠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사천에선 그런 공작을 부릴 필요가 없단 뜻이었다. 아무리 이십 년에 달하는 봉문을 하고 있었다 한들 당문이 사천에서 수백 년 동안 쌓아 온 저력은 엄청났다.

이 말인즉슨 저 절벽 위에서 기다리는 녹림패들을 상대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초윤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숨어 있는 녹림과의 거리가 50장도 남지 않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다가오자 맨 앞을 걷던 무사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선 채 주먹을 쥔 손을 올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열을 맞추어 걸어가던 행렬이 전부 제자리에 섰고, 중간에서 보호를 받던 난위정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전략적으로 최악의 지형에 몰려 있는 것치곤 느긋한 웃음과 유유자적한 걸음걸이였다.

사천 토박이밖에 남지 않은 짐꾼들은 능수능란하게 옆으로 비켜섰다. 순식간에 초윤의 일행과 난위정 사이에 직선의 길이 만들어졌고, 초윤에게 가까이 다가온 위정은 깍듯이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굽혔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약선 어른. 이제껏 알고 있되 알지 못한 체를 할 수밖에 없었던 미력함을 관용해 주십시오. 더불어 처음 만나 뵈었을 때 무례한 말을 지껄였던 점, 백번 사죄드려도 모자랍니다. 더할 나위 없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

얘는 참…….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면 어떻게 하려고…….

며칠 전까진 전혀 눈치도 못 채고 있었는데…….

그나저나 처음 만났을 때 했다는 무례한 말이라는 건 뭐지? 설마 약선 때문에 사천이 죽어 간다고 푸념했던 그거 말하는 건가? 그걸 계속 마음에 담아 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약간 해탈한 기분으로 가만히 서 있자 돌아가는 상황에 긴장한 아이들이 가까이 붙어 왔다. 천오와 사영은 초윤의 손을 하나씩 잡았고, 사현은 누나의 손을 잡아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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