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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32)화 (32/257)

32화

초윤은 정신을 차리고 안심하라는 듯 아이들의 손등을 엄지로 가만히 쓸어 주며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괘념치 마십시오. 의도를 알고 있으니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적지에서 나는 당문 소속이고 너는 약선이다 떠들 순 없었을 거 아냐. 음, 충분히 이해했다.

가볍게 납득하고 말한 거였지만 어째선지 난위정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포권을 푼 난위정이 허리를 펴며 슬그머니 웃었다. 귀공자처럼 반듯하고 훤한 얼굴에 이상한 희열이 번져 있었다.

“약선 어른께서 저희 쪽의 사람들을 구해 데려와 주셨을 때부터 이미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희들을 위해 이러한 경극에 어울려 주신 점, 깊은 은혜로 여기겠습니다.”

이거…… 고도의 돌려 까기 아닐까?

간만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옆에 있는 천오까지 ‘스승님께 그런 혜안이!’ 하는 눈으로 반짝반짝 올려다보고 있어 심히 부담스러웠다.

애까지 이러고 있다 보니 차마 오해를 풀어 줄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뻣뻣하게 굳어 있자, 다행스럽게도 난위정이 양팔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사천의 영역입니다. 먼저 약선 어른의 앞에서 언감생심 무도한 마음을 품은 이들을 정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위정은 한 손을 어깨 높이로 들었다. 상단을 호위하는 대형으로 퍼져 있던 상단의 무사들이 그의 수신호를 보고 절도 있게 모여 대형을 맞췄다. 옷깃 스치는 소리, 검집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아 역시 고도의 훈련을 거친 것 같았다.

“약선 어른께서 걸어가실 길에 핏자국이 남아선 안 되니 신경 써 주세요, 여러분.”

조직을 지휘하는 사람치곤 격의 없고 배려 깊은 말을 내뱉은 위정의 입꼬리가 둥근 호선을 그렸다.

“가세요.”

한 마디가 떨어지자 도열해 있던 무사들이 귀신같은 속도로 절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거의 90도 이상으로 기울어 있는 절벽의 단면을 맨손으로 잡고 발로 박찼다. 몸의 무게와 근육의 밀도가 다른 건지 가벼운 발길질로도 쭉쭉 고도가 치솟았다. 그들의 움직임에 부스러진 흙과 무른 돌 조각이 낭떠러지를 타고 작은 실개천을 이루며 떨어졌다.

무사들이 절벽 위에 낀 산안개 너머로 모습을 감추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렁찬 비명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마저도 중간에 목을 잘렸는지 뚝뚝 끊겨 메아리처럼 울리는 게 꽤 섬뜩했다. 협곡 밑으로 떨어지는 핏자국이나 시체는 하나도 없었고, 짐꾼들은 태평하게 위를 보며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아이들도 안개 속의 일이 궁금하긴 마찬가지인지 정신이 팔려 있었다.

‘지척이긴 하고 소리도 들리지만 애들이 못 봐서 그나마 다행인가.’

초윤은 와중에도 19세 미만 시청 금지 걱정을 하며 내심 한숨을 폭 쉬었다.

반 각이 지나자 명령받은 일을 마친 무사들이 협곡 밑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중간까지는 절벽을 뛰어 내려오다가 몸을 날려 바닥에 착지하는 이들도 있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발자국이 패였지만 다들 멀쩡하게 일어나서 대열을 맞추었다. 무협지 속 무림인들답게 쇼맨십이 장난 아니었다.

그 장면을 보자마자 초윤은 서둘러 아이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행여나 따라 할 생각일랑 꿈에도 하지 말거라. 너희들은 아직 성장기야.]

[…….]

[두망산에서 저런 짓을 했다간 무릎이 조각날 것이다. 그럼 키가 크지 않을 테지.]

[스승님…….]

[평생 지금의 눈높이로 살고 싶다면 그리하거라.]

가장 기대감 어린 눈을 하고 있던 사현이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래도 별말이 없는 것을 보아 알겠다는 뜻인 것 같았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모방 욕구가 꽤 크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초윤의 성공적인 선수 치기였다.

무사들이 다시 열을 맞추어 서자, 위정은 다시 한번 초윤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아이들을 보고 있던 초윤은 그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더불어 고두사죄를 드릴 것이 있습니다.”

위정은 아예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처음 들어 보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속아 넘어간 것도 위정의 잘못이 아니라고 납득한 초윤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게다가 도열해 있던 상단의 무사들까지 척척 무릎을 꿇고 땅에 이마를 대며 납작 엎드렸다. 무슨 황제에게 표하는 예절도 아니고,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당황해서 일어나라고 말할 타이밍도 놓치고 어정쩡하게 서 있을 찰나, 이어진 위정의 말에 뒷골이 찡하게 당겨 오기 시작했다.

“진령 산맥에서 변변찮은 이들이 상단을 습격했을 때, 약선 어른께서 사사로이 손을 쓰시게 만들어 면구스럽고도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제 알량한 의도는 우연을 가장해 저자를 쓰러트리고 화산에 공적을 미뤄 준 뒤 그사이 내막을 알아내는 것이었으나 약선 어른께서 직접 조치를 취하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초윤이 안 나서도 됐던 거잖아? 다 계획이 있고 생각이 있었다는 뜻이잖아?

화산과 녹림 사이의 일도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했고, 이걸 증명해 줄 사람을 손에 넣기 위해 일부러 백호철에게 싸움을 걸었단 거잖아? 수습할 능력도 있었다는 거잖아?

나만…… 전전긍긍했단 거잖아?

“가진 힘으로 능히 진령 산맥을 넘을 수 있었으나 하지 않은 것은 기밀을 요했기 때문입니다. 녹림의 깃발이 올라갔을 때 일개 상단에 불과한 무리가 멀쩡히 산을 넘어갔다는 것이 안강과 서안에 퍼진다면 의심을 받을 게 자명했습니다. 절대, 절대 약선 어른의 행보를 감시하고 넘겨짚으며 이용하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거야 알고 있었다. 초윤이 움직인 것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이 엄한 상황을 보게 될까 두려워서 그랬던 거지 딱히 상단을 지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별로 생각하지도 않은 걸 갖고 죽을죄를 졌다며 무릎 꿇고 사과하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는 상황은 상당히 곤란했다. 초윤은 난처한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위정은 초윤이 듣는 이를 우려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서둘러 몇 마디를 덧붙였다.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이들은 오로지 당문의 사람입니다. 위장을 위해 임시로 영입했던 담부와 무사들은 안강에서 전부 떼어 놓았으니, 약선 어른께서 염려하시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초윤은 딱히 목숨을 걸고 정체를 숨기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단금상단에게 괜한 죄책감과 부채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말하는 사람 앞에서 ‘그건 딱히 걱정 안 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결국 초윤은 무난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말씀드렸듯이,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아니요. 난가의 위정이 약선 어른께 감히 청하고 싶은 것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이를 위해 약선 어른을 사천에 모셔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 제 일생의 염원입니다.”

위정이 바닥에 쿵 이마를 찧고 대답할 틈도 없이 말했다.

“부디, 사천당문의 가주 일적결(一滴決) 당염초의 망집(妄執)을 꺾고 20년의 봉문을 파쇄해 주십시오!”

“…….”

초윤은 차마 처음부터 그럴 작정으로 사천에 왔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세간에 알려진 ‘초윤’의 성격으로는 절대 그럴 리가 없었고, 위정 또한 그를 알고 있어 간절하게 부탁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천오가 아까보다도 더 반짝거리는 눈으로 초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초윤이 서안에서부터 일이 이렇게 되리란 것을 전부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뻔했다. 전부 알고 있기는커녕 서안을 벗어나고서부터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초윤으로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키가 큰 사영과 사현 역시 죽립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도 비슷한 얼굴일 것 같았다.

“……갈 길이 남았는데 언제까지 시간을 죽이고 계실 겁니까. 일어나십시오.”

정말 도대체 어떻게 하면 ‘알았으니까 얼른 일어나세요’가 저 말이 되냐고. 정말 겹겹이 환장하겠다.

입 밖으로 나가는 전혀 다른 뉘앙스의 말에 초윤은 볼 안쪽의 살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래도 찰떡같이 알아들은 위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깊숙하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약선 어른. 오늘 내로 아무런 문제없이 청두에 도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위정의 뒤로, 조우일이 백호철의 몸에 커다란 자루를 뒤집어씌우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끼던 수하들을 전부 잃고, 자신을 중독시킨 사람이 다름 아닌 약선 초윤이라는 것까지 알게 되어 창백하게 질렸던 백호철의 얼굴이 갈색 밀가루 포대 속으로 쑥 사라졌다.

조우일이 잘 포장한 백호철을 빈 말 위에 대충 얹어 놓자 상단은 다시 본래의 진형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초윤은 수십 명의 선망 어린 시선을 받으며 어쩔 수 없이 부담감 가득한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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