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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33)화 (33/257)

33화

면양 시에서 말과 마차를 더 빌려 하루 종일 걷자 밤이 다 된 시간에 청두에 도착했다. 미식과 환락의 도시답게 곳곳에 화려하게 매달린 붉은색 등과 볶고 지지는 기름 냄새가 거리에 가득했다. 호객을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목청을 높여 사람들을 불렀고, 술에 취한 이들은 기분 좋게 비틀거리며 일행을 스쳐 지나갔다.

서안이나 안강보다 오밀조밀 모여 호화롭게 번창한 모습에 아이들이 연신 고개를 돌려 가며 도시를 구경했다. 초윤도 신기하긴 매한가지였지만 보호자가 정신을 팔고 있을 순 없으니 애써 이성을 잡았다.

번화가를 벗어나니 어느새 아이들의 손에는 각자 서너 개의 간식이 들려 있었다. 초윤의 정체를 알고도 여전히 아이들을 아끼는 짐꾼들이 말없이 쥐여 준 참새 튀김, 콩가루 떡 같은 주전부리였다.

비교적 조용한 객잔 거리에 들어섰을 때, 초윤은 기다렸다는 듯 걸음을 멈추고 난위정을 돌아보았다.

“저희들은 이곳에서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상행을 정리하신 뒤 초대해 주십시오.”

“예? 약선 어른을 일개 객잔에 모실 수는 없습니다. 당문으로 함께 가시지 않고…….”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일적결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텐데.”

난위정에게는 꼬박꼬박 존대를 붙이면서 사천당문의 장문인에겐 예의를 차리지 않는 것은 맹세코 초윤의 의지가 아니었다. 이는 본래의 ‘초윤’이 당염초에게 가진 감정 때문이었다.

초윤의 말을 들은 난위정은 다행히 호칭에 대해 별 반감을 갖진 않은 것 같았다. 대신 예상대로 난처한 얼굴을 했다.

‘녹림왕이 버티고 있는데 사람을 미리 보낼 수도 없고, 전서구는 산을 넘기도 힘드니까 전할 방법이 없었겠지.’

문파의 자존심을 풍비박산 낸 장본인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대문으로 떡하니 들어가면 칠십이 넘어가는 당염초는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게 분명했다. 이전 ‘초윤’이 저지른 짓에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초윤은 노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유를 더 보탰다.

“따로 해야 할 일도 있어 그렇습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20년 동안 바뀐 당문을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요. 조만간 모시러 오겠습니다.”

끈질기게 매달릴 거라 생각했던 위정은 의외로 깔끔하게 물러났다. 그가 다시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포권을 취하는 모습을 보며, 초윤은 다분히 충동적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형님으로 충분합니다.”

“……예?”

“호칭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위정이 단박에 얼굴을 활짝 폈다. ‘약선에게 인정받은’ 내지는 ‘약선의 동생’ 이런 식으로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다 보였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약선 어른이라는 말은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차라리 그냥 약선이면 어느 정도 견디겠지만 약선 어른은 정말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이름이 좀 팔리고 마는 게 훨씬 나았다.

기분이 좋아진 위정은 초윤과 아이들이 머물 객잔을 주선하고 숙박 요금과 식대까지 기어코 지불한 뒤 싱글벙글 웃으며 사라졌다. 남겨진 초윤이 내심 깊은 한숨을 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복작복작 화려하고 정신없던 밤에 비해 대낮의 청두는 비교적 한산했다. 거리에는 부지런히 일을 하는 사람들만 남았고, 밤새 사치스럽게 빛나던 전등은 불이 꺼진 채 가게 밖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초윤은 햇빛이 들어오는 격자창 앞에 앉아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죽립 없이 낮을 보내는 건 간만이다 보니 시야가 탁 트여 편안했다. 조금 들뜬 마음에 방 안에 욕조를 들여 목욕까지 하고 나온 참이었다.

끓인 물을 가져올 필요는 없다고 해서 점소이에게 이상한 눈빛을 받긴 했지만, 무림 고수 특유의 가공할 능력으로 목욕물을 데우는 것쯤은 손쉬운 일이었다. 찰랑거리는 물에 손을 집어넣고 내공을 운용하며 이거야말로 재능 낭비가 아닌지 잠깐 고민하기도 했다. 그래도 뜨거운 물을 어린애한테 퍼 나르게 하는 것보단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물기를 말린 머리카락을 어깨 앞으로 넘겨 손가락으로 슥슥 빗자 안 그래도 나풀거리는 머리카락에 정전기가 돌았다. 초윤은 결국 아이들에게 쓰기 위해 가져온 계화유(桂花油)와 참빗을 꺼내고 탁자 위에 면경을 세웠다.

“저…… 스승님.”

그때,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침상에서 운기조식을 하던 천오가 서둘러 내려오고 있었다. 사영과 사현이 용돈을 받아 사천을 유람하러 갔을 때 따라 나가지 않고 초윤과 함께 남아 있던 아이였다.

“무슨 일이더냐. 축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진 않던데.”

“저기…….”

신발을 꿰어 신은 천오가 초윤에게 다가오더니 양손을 모아 잡고 우물쭈물하다 말했다. 한참 머뭇거리던 것치곤 귀여운 부탁이었다.

“머리 빗는 일을…… 도와 드리고 싶습니다.”

“음?”

이건 그건가? 아빠 안마해 주고 싶어 하는 그건가?

초윤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물론 얼굴이 움직일 리는 없었으니 마음으로만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귀엽다, 귀여워. 이 맛에 애를 키우는구나!’

“손을 내밀어 보거라.”

뛸 듯이 기쁜 마음과는 달리 목소리는 차분하게 나왔다. 초윤은 아이의 조그만 양손 위에 계화유를 한 방울 떨어트렸다.

“손을 비벼 고르게 기름을 묻힌 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빗듯이 중간부터 쓸어내리거라. 머리 뿌리는 되도록 건드리지 말고, 끝부분은 모아서 문질러도 좋다. 이제껏 해 준 게 있으니 알겠지.”

천오는 손바닥에 떨어진 기름을 유심히 보다가 들은 대로 열심히 양손을 마주 문지르며 초윤의 뒤에 섰다. 깍지를 끼며 손가락 사이에도 계화유를 묻히는 걸 보니 정말 잘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초윤은 면경 너머로 심각한 문제를 앞에 둔 것처럼 진지한 표정의 아이를 응시했다. 하얀 머리카락 타래에 정신이 팔린 천오는 초윤이 자신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천오가 마침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초윤의 머리카락에 손을 댔다. 아이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어 너무 긴장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동시에 귀엽게 느껴져서 흐뭇하기도 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엉킨 곳을 풀고, 손바닥을 이용해 정전기로 부슬부슬한 바깥쪽 머리카락에 기름을 충분히 발랐다. 잔뜩 뜸을 들인 것치고 천오의 손길은 생각보다 능숙했다. 사영과 사현의 머리를 만져 주는 것은 본 적이 없으니 그만큼 정성을 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천오가 어설퍼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던 초윤은 의외의 실력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며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으로 들어오는 환한 햇빛은 탁자 위에 살포시 놓인 초윤의 손등에 격자무늬의 그림자를 남겼다.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조용한 마을에 내려가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초윤이 하산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안온한 오후였다.

스승이 눈길을 돌린 틈을 타, 천오는 면경에 비치는 초윤의 옆모습을 보았다. 흰나비처럼 지그시 깜박거리는 속눈썹, 황금색 빛 무리를 조각조각 뿌리는 눈동자, 정갈한 이마의 선과 담백한 표정을 새까만 눈에 집요하게 담았다.

물론 찰나에 불과했다. 스승은 그의 이목을 느꼈는지 금세 천오를 다시 보았다. 아차 하는 사이 면경을 통해 눈이 마주쳤다. 천오는 황급히 고개를 푹 숙여 얼굴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햐…… 향기가 좋습니다.”

변명처럼 나온 목소리는 까끌했다. 천오는 자신이 왜 시선을 피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언가를 잘못하긴 한 건지 이유도 모른 채 가슴을 졸였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뛰어 허파까지 저릿했다.

다행스럽게도 스승은 천오의 심정에 관심이 없는지 담담하기만 했다.

“계화유 말이냐. 들기름에 계수나무 꽃을 넣어 잠시 쪄 낸 뒤 압착해 만드는 것이다. 다른 꽃보다 향이 맑아서 괜찮지. 네 머리를 만져 줄 때도 자주 썼다만.”

입이 있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스승이 제 머리를 빗어 줄 때에는 기름의 향기보다 손길에 집중했고, 지금 좋다고 말한 것도 스승에게서 흘러나오는 약 향이라는 것을 어떻게 말할까. 오래 달인 약재의 달고 쓴 향에 꽃 내음이 섞여 더욱 묘하다는 것을 어떻게 말할까.

“……이전부터 좋았습니다.”

귀와 뒷목이 후끈했다. 어설픈 구실을 덧붙였더니 한층 더 부끄러웠다. 천오는 손을 뻗어 탁자 위에 있던 참빗을 가져왔다. 이제 빗으로 빗어도 될 것 같았다.

스승에게선 별다른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내심 안도한 천오는 초윤의 깃털 같은 머리카락을 끝단부터 빗기 시작했다.

스승의 손길을 기억해 내며 묵묵히 열중하길 잠시, 누군가가 객실의 문을 두드렸다.

“저, 나리! 서신이 왔습니다요!”

그 말에 스승이 탁자 반대편에 놓여 있던 죽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천오는 서둘러 빗을 돌려 놓고 자신이 나가 보겠다며 말한 뒤 문으로 다가갔다.

굳게 닫힌 문을 조금 열자, 객잔의 점소이가 천오에게 굽실거리며 양손으로 공손히 서찰을 내밀었다. 가장 좋은 방을 잡아 묵고 있으니 어린아이에게도 깍듯이 대해 주는 것 같았다.

천오는 냉랭한 무표정으로 점소이의 손에서 종이를 받아 든 뒤 마음 없이 고맙다 말하고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았다.

손에 묻은 기름이 서찰에 얼룩지지 않게 조심히 들고 스승에게 건넸다. 아무래도 이곳에 온 날 밤, 스승이 써서 어딘가로 보낸 몇 통의 편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서신을 받아 빠르게 속독을 마친 초윤은 얌전히 서서 기다리는 천오를 보며 말했다.

“양매창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했었지.”

“예, 스승님.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당귀, 감초, 고삼, 치자, 작약, 연교, 금은화, 괴화, 우방자, 백강잠, 방풍, 백선피, 형개, 황금.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양매창에 듣는 약이라며 여러 종류를 다수 만드는 모습을 보았다.

“오늘 밤에 환자를 보러 갈 것이다. 피부에 궤양이 나타나며 끝내 뇌와 심장에 파고드는 병인데, 전염성이 강하니 너는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알았느냐.”

“예, 스승님.”

“절대로 궤양을 만져선 안 된다. 만진 손을 입에 넣어서는 더 안 되고. 너를 데려가는 이유는 치료를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병의 증상과 치료법을 익히고 경각심을 갖길 바랄 뿐이다.”

천오는 고개를 마구 주억였다. 스승이 이렇게까지 이르는데 거스를 생각은 없었다. 초윤은 비교적 안심한 듯 처음처럼 몸을 돌려 앉았다.

무언의 허락 아래, 천오는 다시 빗을 들어 스승의 머리카락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환한 객실 안에선 한동안 조용한 빗질 소리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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