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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34)화 (34/257)

34화

초윤은 섬서성에서 약을 팔 때 자신의 말에 있던 어폐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양매창이 뭔지를 배우려면 기루에 같이 가야 하잖아. 애를 데리고 기루에? 정하윤! 생각이 있냐, 없냐!’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하고 싶던 것을 겨우 참았다. 물론 이 시대에, 이 남성향 무협지의 관습적인 인식 속에 ‘기루’가 얼마나 흔하고 당연한 장소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아이들은 여성이 술자리의 장식처럼 쓰이거나 비천한 취급을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했다.

세간에 팽배한 남존여비의 인식을 바꿀 수는 없어도 올바르지 않은 일이라는 것만은 알아주었으면 해서 기초적인 성 관념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고 있었는데…….

‘기루라니! 안 된다! 애가 아직 열한 살인데!’

하지만 약은 이미 만들어 놓았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생활비를 왕창 벌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고치기 힘든 병에 걸린 환자들이 즐비하고 치료도 절실하지만 동시에 돈이 많으며 합법적인 곳을 찾자니 기루 하나만 덜렁 남아 있었다.

결국 초윤은 사천에 온 날 밤에 점소이를 시켜 청두 안에 있는 모든 기루에 편지를 돌렸다. 그중 이를 무시하지 않고 긍정적인 답장을 준 기루는 단 하나뿐이었고, 초윤은 지금 그쪽에서 대관한 장소로 가기 위해 객잔을 나왔다.

‘들어갈 수 없을 땐 환자만 꺼내 오면 되지.’

간단한 생각의 전환이었다.

사영과 사현은 혹시 올지 모르는 당문의 연락을 기다리며 축기를 하라 시켜 두었다. 청두 전역을 신나게 누비고 온 남매는 운기조식을 마치고 곤히 잠에 들 것 같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서찰에 쓰인 장소로 물어물어 나아가자 어느새 시끄러운 도심을 벗어났다. 고즈넉하지만 늘어선 집이 큼직하고 길은 잘 닦여 있는 게, 청두에서도 부촌(富村)에 속하는 마을인 것 같았다.

초윤은 그중 마당에 붉은 자작나무 숲이 작게 조성되어 있는 집을 찾았다. 굳게 닫혀 있는 대문으로 다가가자 문고리를 잡아 두드리기도 전에 안에서 누군가가 나와 문을 슬쩍 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갈색 고수머리를 하나로 묶어 올린 남자는 새까만 무복에 복면을 쓰고 있었다. 드러나는 것은 매서운 느낌의 눈초리뿐이었지만 초윤은 그가 상당한 실력의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챘다. 날렵하고 단단한 어깨와 탄력 있는 허리를 봐선 검을 주로 익힌 듯했는데, 1 대 1로 붙는다면 백호철보다도 우세할 것 같았다.

‘환자분들의 호위 무사인가? 백호철이 산적 나부랭이라는 것을 감안한다 해도 저 정도의 실력자를 고용할 정도면 역시 기루가 돈이 많긴 한가 보네.’

“약사 초선입니다. 행수기녀 설도의 초빙을 받아 오게 됐습니다.”

“……아이는?”

“제자입니다.”

가져온 서찰을 품에서 꺼내 건네주자 남자는 꼼꼼히 서체를 확인한 뒤 초윤과 천오를 안으로 들였다. 바깥에서 본 것보다도 훨씬 큰 저택이었는지, 호화롭게 꾸며진 정원 사이에 본채로 가는 길이 있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초윤은 앞서 나가는 남자를 따라 조성된 돌길을 걸었다. 붉은 수피로 감싸인 자작나무 숲과 연못이 있는 집을 겨우 하룻밤 내진 장소로 잡다니 역시 기루를 상대로 장사를 결정하길 잘한 것 같았다.

이것저것 다 팔아서 약함을 돈으로 무겁게 만들어야지. 다짐하며 조금 걷자 거대한 본채에 도착했다. 달이 밝지 않은 밤이어도 우아한 선의 기와나 색칠된 단청이 굉장히 화려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옆으로 길게 늘어선 문 중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으로 환하게 일렁이는 격자문을 열자, 멀리서부터 들리던 도란도란한 목소리가 한순간에 사그라졌다.

초윤은 넓은 방에 들어서며 모여 앉은 십수 명의 여인들을 보자마자 대뜸 말했다.

“분을 지우십시오.”

“예?”

비어 있는 방석에 아이를 먼저 앉힌 뒤 약함을 내려놓았다. 그다음에야 정갈하게 정좌를 하고 앉은 초윤이 재차 말했다.

“낯빛과 궤양을 봐야 하니 화장을 하지 말고 오시라 행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물며 미분(米粉)도 아닌 연분(鉛粉) 아닙니까.”

납이 들어간 연분은 피부에 잘 붙고 발림성도 좋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납 중독의 위험성을 상식으로 알고 있는 초윤에겐 얼굴에 독을 바르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초윤은 이때다 싶어 가져온 죽통 중 하나를 꺼내 앞에 놓았다.

“연분에 들어간 납은 차곡차곡 체내에 쌓여 빈혈, 복통, 두통부터 심할 경우 내장의 손상과 사망에 이르는 경련까지 일으킬 수 있습니다. 허나 대체할 것도 없이 화장을 하지 마시라고 권할 수 없어, 대신에 몸에 쌓인 납을 배출할 수 있는 약을 가져왔습니다.”

“납이 몸에 쌓이고, 또 그를 내보내야 한다고요?”

하늘색 한복(漢服)을 입고 이마에는 붉은 갈매기 모양 화전을 그린 여인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화장과 옷이 가장 화려하고 나이가 있는 것을 보니 기녀들의 우두머리, 행수기녀인 것 같았다.

긍정적인 답장으로 날 불렀으면서 왜 저러지. 아직 믿질 못해서 그런가. 초윤은 조금 의아한 마음으로 행수기녀 설도를 가만히 관찰하다 불쑥 말했다.

“아래쪽 치은에 얼룩이 비치고 손끝이 푸르스름한 것을 보아하니 행수께선 이미 어느 정도 중독이 되신 듯합니다. 이전부터 입맛이 떨어지거나, 현기증이 느껴지진 않으십니까?”

“예…… 예? 뭐, 있기야 합니다만 그 정도야 나이가 들면 흔한 것 아니겠습니까.”

“방분이 어렵고, 손발이 저리며 온몸이 녹진녹진하게 권태롭진 않으십니까?”

“그야…….”

설도가 제 손을 내려다보며 두어 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잇몸의 착색도 일찍이 알고 있어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는데, 그와 비롯한 증상들을 족집게처럼 집어 주니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모양이었다.

초윤은 그에 쐐기를 박듯 말했다.

“납 중독은 초기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천천히 속을 좀먹다가 끝내는 뇌에 침범해 오성(悟性)을 떨어트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후환이 두려운 병입니다. 이 약은 몸속에 쌓인 작은 금속을 내보내 주는 해조, 대산, 수근, 적근채를 넣어 만들었으니 꾸준히 복용하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

설도가 약이 담긴 죽통으로 슬금슬금 손을 내밀었다. 손끝이 닿기 직전, 초윤이 냉큼 말했다.

“10전입니다.”

“……쯧!”

“약방문은 안에 들어 있으니 약이 다 떨어지면 그대로 만들어 달라 하십시오.”

설도는 혀를 차면서도 죽통을 집어 품에 안았다. 오늘 팔기로 한 약은 따로 있었으니 셈은 한꺼번에 치르기로 했다. 곧 갈색 머리의 호위 무사가 데운 물이 가득 담긴 대야를 갖고 들어왔고, 기녀들은 각자 무명천을 적셔 얼굴을 닦았다.

초윤은 그들의 세안이 끝나길 기다린 뒤 말했다.

“이곳에 모인 분들은 제가 행수께 서면으로 말씀드린 증상을 갖고 계시거나, 이전에 겪으셨을 겁니다. 제삼자에게 국부의 병증을 알리는 것은 쉽지 않을 테지만 모쪼록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이 자리에서 일어난 일은 반드시 기밀에 부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아니라 루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이에요. 혹여라도 그 말을 못 지켰다간 루주님이 가만 계시지 아니할 것입니다.”

설도가 예민하게 쏘아붙였다. 제 아래에 있는 기녀들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초윤은 손을 움찔거리는 천오의 등을 슬그머니 쓰다듬어 주며 기꺼이 수긍했다.

“물론입니다. 그럼 여러분의 병증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초윤은 잠시 뜸을 들여 환자들의 집중을 받은 뒤 청천벽력처럼 말했다.

“정확한 진찰을 해 봐야 하나, 증상으로 보았을 때 여러분의 병은 양매창, 즉 매독일 가능성이 큽니다.”

“뭐?”

“양매창? 창병이라고?”

순식간에 본채 안이 수군거리는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그중에는 초윤의 말을 믿지 못하고 경악하는 이들과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서글픈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하얀 한복을 입은 여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머리끝까지 화가 난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믿지 마. 괜한 말로 기루를 등쳐 먹으려 하는 모리배라고! 애초에 난 입술에 부스럼이 났을 뿐이고 예기라서 동침을 한 적도 없는데 매창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소소! 화내지 마!”

“마, 맞아. 나도 그냥 피부가 조금 헐어서 온 것뿐인데 매창이라니…….”

“난 손바닥이 울긋불긋할 뿐인데 매창은 무슨 매창이야!”

이 시기 매독이란 죽음에 이르는 것과 동시에 여인의 앞길을 막는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얼굴을 비롯한 전신을 빼곡하게 덮은 발진과 검붉게 곪은 고름들은 공포의 상징으로 통했다. 매독에 걸리면 빈민굴에 들어가서도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가야만 했는데, 기루는 말할 것도 없었다.

초윤은 이들의 두려움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담담히 결론부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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