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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38)화 (38/257)

38화

아무튼 당염초는 20년 만에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지혜로운 이를 만났다고 생각하는 건지 당문의 사람들에겐 하지 못하는 신세 한탄을 한참 했다. 초윤이 별다른 대꾸 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마냥 좋은지 줄줄 말을 늘어놓았다.

마치 아파트의 정자에서 또래 어르신들과 해가 지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 할아버지 같았다.

이리저리 옮겨 가던 대화의 주제가 당운금의 자랑에 일각을 머물러 있었을 때, 초윤은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네가 뒤늦게 본 손녀딸에 사족을 못 쓰는 건 잘 알겠다. 이만 신물의 이야기를 해 보거라.”

“아, 예. 제가 약선 어른 앞에서 너무 주책없었습니다.”

아니, 기꺼이 들을 순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키우는 애 셋을 생판 모르는 곳에 덜렁 내버려 두고 남의 손녀딸 배밀이나 뒤집기 시기를 알고 싶진 않았다. 사영이에겐 금방 끝난다고 얘기해 두었는데 계속 시간이 지체되고 있어 조금 초조하기도 했다. 당염초면 몰라도 다른 당문의 사람들은 약선 초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으니까.

무안한 듯 웃은 당염초는 이 방에 막 들어왔을 때보다 한결 편해진 얼굴로 진중하게 말을 시작했다.

“약선께서 어디까지 알고 계실지 모르니 당문이 이 일을 알게 된 경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넉 달쯤 전에 아미파의 반야장이 비밀리에 보낸 승려가 와서 ‘섬서성으로 가라’ 딱 한 마디만 전해 주었습니다. 눈총을 받을 걸 알면서도 휘하의 비구니를 이곳까지 오게 한 걸 보면 무언가 있겠다 싶어, 별말 없이 위정을 미복시켜 보냈습니다.”

아미파는 사천의 아미산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세력이었다. 사천당문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욕심 없는 비구니들만 모여 있는 문파인 덕분에 당문과의 사이는 꽤 좋았다. 목숨을 해치면 안 된다는 가르침 아래 주로 장법(掌法)을 익혔고, 문파의 크기는 작지만 구성원 하나하나가 전부 수준급의 실력을 갖춰 백협맹 명문의 구파일방에 꼭 꼽히는 집단이었다.

사찰에서 잘 벗어나지 않는 비구니들이 번화한 청두에 왔다면 뭔가 일이 생겼단 뜻이지. 초윤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당염초는 지금부터가 본론이라는 듯 목소리를 낮추고 차음막을 단단히 덧씌웠다.

“그렇게 제갈세가에 다녀온 위정에게서 요녕성의 신물 이야기를 막 들은 것입니다. 모용세가, 하북팽가, 제갈세가, 소림사, 개방, 아미파가 모여 무술 대회를 여는 식으로 인재를 모집하고 있다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궁 측에 신물에 대한 말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며,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신물에 어울리는 인물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아, 갑자기 웬 신물 얘기냐 했더니 그거였어?

드디어 아는 내용이 나와 초윤의 가슴에 기쁨이 번졌다. ‘초윤’은 몰라도 초윤은 원작을 읽은 적이 있으니 얼마든지 아는 척을 할 수 있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당염초가 다 비운 잔을 내려놓고 은근슬쩍 물었다.

“그런데…… 제가 이 나이가 되도록 약선 어른께 제자가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혹시 그 아이들이 신물의 적합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다. 신물을 가질 사람은 따로 있다.”

초윤의 아이들은 함께 쌀을 사러 내려왔을 뿐이고, 신물은 주인공의 손에 들어가야만 눈을 뜨게 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원작 스토리가 언제부터인가 궁금하긴 했는데 그리 먼 일이 아니었구나. 지금부터 인재를 찾는다면 앞으로 몇 년 안에는 시작하겠네.

성장형 주인공이니까 다 커서 염라군 주천오랑 대립할 때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해 보면…… 원작에서 천오랑 주인공의 나이는 그렇게 차이가 크지 않았구나.

여기까지 생각한 초윤은 내심 굉장히 놀랐다. 원작에 서술된 주천오가 엄청난 능력의 절대군주인 만큼 겉모습은 젊어 보여도 주인공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줄 알았는데, 정말 그냥 이십 대의 새파란 청년이었다는 것을 막 깨달은 덕분이었다.

그럼 가진 재능은 얼마나 뛰어났고 그걸 갈고 닦은 천오는 또 얼마나 독했다는 건지……. 그리고 그런 아이를 앞으로 몇 년 동안 도맡아 가르치고 키워야 하는 초윤은 얼마나 더 고생을 해야 하는 건지, 생각만 해도 벌써 골치가 아팠다.

아무튼 전부 나중의 일이었다. 지금은 천오가 아이로서 누릴 수 있는 것을 가능한 한 누리며 살게 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초윤이 잡념을 정리하자, 당염초가 기쁜 기색으로 말했다.

“역시 약선 어른께선 이미 적합자를 알고 계시는군요! 그럼 일러 주시겠다 하신 게 적합자의 정체입니까? 혹시, 당문에서 신물에 어울리는 자가 나오는 겁니까?”

“……어서 봉문을 풀고 그를 핑계 삼아 성실하게 인재를 모으는 편이 좋을 게다. 어느 쪽이든 너와 네 당문에 도움이 된다는 건 자명하지 않느냐.”

적합자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비밀로 해야 했다. 신물에 어울리는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정파 무림이 발굴해 낸 인재가 몇이고, 그들이 전부 주인공의 동료가 될 텐데 벌써부터 초를 치면 안 되니까.

당염초는 흐지부지 맺은 말에도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예, 약선 어른. 작금의 정파는 가히 정파라 할 수 없는 행태를 보여 주고 있으니,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힘을 쌓을 생각입니다. 위정의 말에 의하면 남궁과 화산, 무당의 짓거리가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악독하다 했습니다. 이를 도려내기 위해 당문은 저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래, 그렇게 주인공의 든든한 빽이 되어 주어야지. 초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렁뚱땅 이야기를 시작한 것치곤 꽤 유익한 정보를 많이 들은 것 같았다.

용건이 일단락됐다고 생각한 초윤이 빈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당염초가 갑자기 조심스럽게 초윤을 불렀다. 의기양양하게 선언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어쩐지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저기, 약선 어른…….”

초윤은 나가는 문으로 향하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있던 당염초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더니 뜬금없이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누가 핏줄 아니랄까 봐 대파 산맥의 협곡 길에서 흙바닥에 오체투지 하며 초윤을 종용하려 했던 난위정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당황스러운 해프닝은 다 끝난 줄로만 알았던 초윤의 몸이 다시 뻣뻣하게 굳어졌다.

머리가 새어 버린 70대의 노인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으로 마룻바닥을 짚고 절박하게 외쳤다.

“몰염치한 것을 알지만, 부디 한 번만 더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이 당문의 사람들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재차 깨우치게 해 주십시오!”

“…….”

초윤의 마음이 편해질 날은 아직 먼 것 같았다.

“여기는 당문의 장로 할아버지들이 사시는 녹옥각이에요. 문주 할아버지는 저쪽에 있는 녹주각에 사시고요.”

아이가 종알종알 말하며 짤막한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보자 붉은 기둥과 초록 단청의 커다란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사영은 숙맥인 동생과 무뚝뚝한 사제 대신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웅혼한 모습이 과연 사천 제일의 당문을 대표하는 것 같습니다. 제 스승님께서도 저 안에 계실까요?”

“움, 안에 위험한 게 많다고 저는 못 들어가게 하시지만……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저곳에만 계시니 그럴 것 같아요. 전에 오신 손님도 녹주각에 바로 데려가셨거든요.”

그 말에 묵묵히 뒤를 따르기만 했던 천오가 고개를 홱 돌려 녹주각을 보았다. 스승님과 떨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촉촉하고 아련한 눈을 하는 천오에게 속으로 혀를 찬 사영은 활짝 웃으며 운금을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아, 당 소저. 저쪽에 있는 전각은 무엇인가요? 녹주각보다 안쪽에 있는데도 외진 것 같고, 주변으로는 아무것도 없네요.”

‘이런, 실수했다.’

운금과 남매, 천오의 뒤를 감시하듯 따르는 당문 이대제자들의 눈초리가 순식간에 사나워진 게 느껴졌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그들의 눈빛이 살갗에 날아와 꽂히는 것 같았다.

‘스승님과 당문의 사이가 영 좋지 않은 게 분명한 상황에서 괜한 질문은 하지 말 걸 그랬나. 어지간히 중요한 곳인가 보지.’

하지만 이왕 말해 버린 것을 철회할 순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철저히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처럼 굴자. 사영은 빠르게 결정한 뒤 말주변 없는 애물단지 남동생 둘에게 전음을 날렸다. 며칠 동안 부단히 노력한 끝에 어눌하게라도 몇 단어는 들려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반응하지 마. 아무것도 모르는 척한다. 너네는 그냥 가만히 있어.]

“아, 저기는 당문의 모든 독이 가득한 만독각이에요! 당문 비전의 독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저는 아직 본 적이 없어요……. 손님 분들이 들어가실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이런, 생각보다 더 대단한 곳이었잖아. 사영이 난감함을 숨기고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운금은 만독각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게 꽤 속상한 건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러자 뒤따르던 이대제자들이 앞다투어 운금의 말에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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