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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40)화 (40/257)

40화

그리고 녹색 계열의 옷을 입은 당문의 사람들이 준비된 좌석을 전부 채웠을 때, 멀찍이서 드디어 오늘의 경합 주제가 나타났다.

며칠 만에 거지꼴이 된 구양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꼬질꼬질해진 채 질질 끌려 나오는 백호철이었다.

‘어? 쟤는 왜? 설마 독으로 참신하게 죽여라 이건가?’

초윤의 등에 오랜만에 식은땀이 흘렀다. 곳곳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백호철은 당문으로 온 뒤 더욱 강도 높은 고문과 점혈을 당했는지 퀭하니 피폐한 안색이었다.

그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돗자리 위에 풀썩 무릎을 꿇자, 진행을 맡은 당문의 장로 한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자, 조용! 조용! 경합에 대해 설명하겠소이다!”

당염초의 형제로 보이는 장로가 부채를 착 잡고 뒷짐을 졌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점차 수그러들었다. 장로는 오랜만에 한곳에 모인 문도들의 모습이 만족스러웠는지 주위를 휘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갑작스럽게 개최된 경합에 응해 주신 약선 대협께 감사의 말씀을 표하오. 약선 대협의 배려로 우리 당문은 오늘 한층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소.”

그렇게 말한 장로가 초윤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그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들이, 즉 상석에 앉아 있는 이들을 제외한 당문의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초윤에게 절도 있게 똑같이 포권을 해 보였다.

하오체를 쓰는 걸 보면 나한테 반감이 장난 아니게 많은 것 같은데…….

형식적이어도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웃어른 취급을 받아 보는 건 처음인 초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앉아 있는 사이,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장로가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 당문은 수백 년 전, 이 땅이 전란에 휩싸여 수많은 나라가 세워지고 스러질 때부터…….”

사족이 길었다.

당문에 대한 사랑이 넘쳐 나는 듯한 장로는 사천당문의 역사를 줄줄이 읊고 선조가 되는 당씨 사람의 영웅적인 행적과 당문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는 신념, 그리고 당문에서 배출한 무림 고수 등을 연달아 소개했다. 이게 경합 진행인지 당문 자랑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초윤은 여기서 ‘너네 집안 자랑은 딱히 듣고 싶지 않으니 본론이나 말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일각이 지난 뒤, 초윤의 눈치를 보다 못한 당염초가 보란 듯이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초윤은 경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흠! 아무튼 오늘 벌어질 경연의 주제는 바로 ‘자백’이오. 다들 이자를 보시오!”

장로가 무릎을 꿇은 백호철을 부채 끝으로 가리켰다. 꼴이 말이 아닌 백호철이 독기 어린 눈으로 그를 노려보자 쯧 혀를 차기도 했다.

“모르는 이도 있을 테니 이 자리를 빌려 말하오. 이자는 바로 중원의 몰염치한 사도 무리, 녹림을 이끄는 녹림왕 백호철이오!”

“헉!”

“녹림왕 백호철? 그런 자가 이곳에 있었다고?”

이 일을 먼저 알고 있던 장로들과 일대제자 몇 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다들 경악스러운 듯 입을 벌렸다. 강호에 악명이 드높은 녹림의 우두머리가 봉문을 당한 사천당문의 옥사에 갇혀 있었다니 믿기 힘든 일이었다.

저 백호철을 잡은 것이 약선 초윤이라는 사실까지는 전해 듣지 못한 채 위정이 데려왔다고만 알고 있는 장로는 뿌듯한 웃음을 슬그머니 짓고 말을 이었다.

“얼마 전 당문의 사람에게 해를 입히려던 것을 막 잡아 온 참이오. 이 비열하고 나약한 자가 홀로 일을 도모했을 리는 없고, 분명 섬서성의 세력이 사주를 했다는 정황 증거는 있으나 제대로 된 진술이 없어 벽에 부딪혔소. 며칠에 걸쳐 심문을 했지만 이 흉수가 악독한 심성으로 입을 열지 않고 있소이다.”

아직 확실하게 증명할 수 없어서 ‘섬서성의 세력’이라고 뭉뚱그려 얘기했지만 다들 이 정도의 단서만으로도 어디인지 금방 떠올리는 것 같았다.

쉽고 빠르게 분노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바라보며 장로는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므로! 오늘 이 독의 대가이신 두 분께 청하는 경합은! 바로 ‘독을 이용해 일정 시간 내에 이자가 내막을 자백하게 만드는 것’이외다!”

“오오오오!”

“좋다!!”

좋긴 뭐가 좋아!

초윤은 박수까지 쳐 가며 좋아하는 관중들을 보며 속으로 트집을 삼켰다. 결국 당염초가 이기든, 초윤이 이기든 당문에게는 이득인 일이었다.

‘난위정이 이 집 사람은 맞나 보네. 다들 지독하게 실리주의잖아.’

어쩐지 이용당하고 있는 것만 같은 마음이 들어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백호철은 초윤이 나타난 뒤로 독에 중독되고, 점혈을 당하고, 전쟁 노예처럼 끌려다니기만 해서 좀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지 잘 따져 보면 아주 나쁜 산적 두목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물건을 강탈하는 범죄를 당연하듯이 직업으로 삼고 장려하며 필요할 땐 살인조차 거리낌 없이 행하는 악인이었고, 이곳은 그런 이들에게 물리적인 폭력과 고문을 행사해도 용서받는 무협지 안이었다.

또 독에 대한 박학한 지식과 제조 실력, 교묘하고 섬세한 조절력, 응용력까지 두루두루 견주기 좋은 종목이기도 했다. 단순히 독과 해독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를 이용해 특정 목적을 이루기까지 해야 했으니까.

더불어 ‘약’에 능통한 약선보다 약간 유리한 위치에 섰다는 듯 비릿한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장로의 표정이 일품이었다. 옆에 앉아서 근엄하고 깐깐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당염초가 끝내 이마를 짚었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장로는 희희낙락 웃으며 옆에 있는 전각을 부채로 가리켰다.

“이 전각은 눈엽각으로, 우리 당문에 들어오는 모든 재료들을 가공을 거치지 않은 상태로 보관하는 곳이오. 경합을 하시는 두 분은 저 안에서 재료를 골라 독을 직접 제조하고 저자에게 먹여 제대로 된 진술을 받아 내시면 되오. 단, 모든 과정을 한 시진 이내로 해낼 것!”

한 시진이면 두 시간으로, 독을 만드는 과정까지 고려한다면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갈고, 찌고, 끓이고, 식히고, 가능한 모든 가공이 들어가야만 나오는 것이 정교한 독이기 때문이었다.

경합의 종목을 들은 백호철의 안색이 시커멓게 변했다. 안 그래도 끌려와서 진술하랍시고 온갖 독은 다 먹었을 텐데, 이제 당문의 문주와 약선이 만든 독까지 견뎌야 한다니 좌절할 만도 했다.

“자, 그럼 궁금하신 점은 없소이까?”

초윤은 백호철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피다가 말했다.

“……진술을 받아 내려면 필연적으로 점혈을 풀어야 할 텐데, 저자가 스스로의 기맥을 틀어막아 자해를 하거나 혀를 씹는 상황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턱을 마비시켜 놓은 채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죄다 뽑아 버릴 수도 없고(사실 무림인들의 행동 양식을 봐선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쯤 되면 초윤은 도망칠 생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백호철에게는 이 경합을 견딜 이유 또한 없었다. 잘 견뎌 봤자 죽기 직전까지 당문의 지하실에 갇혀서 고문당하는 것밖에 더 있나.

그러자 장로가 대답했다.

“마땅한 의견이오. 그래서 생각해 보았는데, 백호철 저자에게도 나름의 조건을 거는 것이 좋겠소이다. 바로, ‘경합이 끝날 때까지 진술을 하지 않은 채로 버틴다면 그 기개를 높이 사 당문의 관할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오!”

“오오…… 어? 그래도 되나?”

“그건 좀…….”

흉악한 녹림의 무리를 그렇게 풀어 줘도 되는 건가?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장로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정도를 알고 행하는 정파의 사천당문이외다. 아무리 악하고 무도한 자라고 한들 인정과 도리 없이 잔혹하게 굴어서야 신강의 괴악한 놈들과 다를 게 무엇이 있겠소. 존중할 것은 존중하고, 지켜 줄 것은 지켜 주어야 하는 법이오.”

“그래도…….”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경합을 벌이시는 두 분을 알고 있지 않소! 무려 일적결 문주님과 약선 대협이오!”

장로가 열변을 토하며 상석에 앉아 있는 둘을 가리켰다. 저런 쇼맨십 강한 성격 때문에 진행을 맡은 것 같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 사람들은 하나둘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며칠 가둬 두고 고문한 것 정도는 딱히 잔혹하게 군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니 서두르겠소. 먼저 연소자이신 일적결 문주님부터 시작했으면 하는데, 약선 대협께선 이에 이의가 있으신지……?”

“…….”

초윤은 상관없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사실 들어 있는 알맹이는 이제 이십 대 중반이었으니 조금 억울했지만 빠득빠득 우길 수도 없었다. 또, 초윤에게 떠오른 아이디어는 후발 주자여야 의미가 있었다.

“자, 시작이오!”

장로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단상에 올려져 있던 모래시계를 들어 거꾸로 세우며 경합의 개시를 알렸다. 의자에서 일어난 당염초가 근엄한 얼굴로 눈엽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바야흐로 백호철 수난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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