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고대의 고문은 현대의 인간이 보기에 충격을 먹을 정도로 잔인한 면이 있었다. 인권 의식이 낮기도 할뿐더러 자백을 하게 만드는 방법이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원하는 말을 들어 내고야 마는 것’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 생각은 당염초 역시 다르지 않은지, 이각이 지나 눈엽각을 나온 그의 손에는 온갖 말린 독초와 씨앗, 그리고 짐승의 내장으로 보이는 것들이 바리바리 들려 있었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도 있는지 몇 겹씩 면포로 싸 두거나 상자에 넣어 둔 것도 있었다.
‘실제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게 역시 많구나.’
초윤은 예민한 감각으로 재료의 냄새를 맡아 정체를 파악하곤 이곳이 무협지 속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무슨 대자연의 기운을 나무나 돌멩이 몇 개로 비틀어 환각을 보게 하거나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술법인 ‘진법’도 그랬지만, 오래 산 영물의 몸속에 생긴다는 자연 내공의 집합체 ‘내단’도 신기하긴 마찬가지였다.
한국 무협 소설의 시초가 된 중국의 소설에선 그런 설정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오대세가나 구파일방 같은 것도 한국에서만 흔하게 통했다.
그런 걸 보면 한국의 신무협 소설은 거의 중국의 지형과 이름만 빌려 쓰는 판타지나 마찬가지였다.
‘근데 불귀 산맥에 있는 요괴한테도 저런 내단이 있을까? 있으면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싹 털고 애들한테 먹여 봐?’
초윤은 구비된 각종 기구들로 열심히 독을 만드는 당염초를 보며 딴생각을 했다. 손에는 어느새 따뜻한 매화꽃 차가 담긴 찻잔이 들려 있었다.
초윤과 아이 셋은 좀 심심한 마음으로 당염초를 지켜보았다. 초윤에겐 지루했고, 아이들은 제조 기술은커녕 독도 배우지 않은 터라 재미가 없을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관중들 중 그렇게 느긋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넷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가…… 문주님은 녹림왕을 아예 죽일 생각이신 건가! 진술을 하지 못할 정도로 사람을 망쳐 놓으면 실격이라 하였거늘!”
“진정하십시오, 형님. 분명 문주님께서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독을 다루는 기술은 당문의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분이 아니십니까.”
“그야 그렇다만 해담침주의 내단과 풍화당랑의 독샘이라니…… 사안의 중함을 봐선 어떤 수를 써서든 이겨야 함이 당연하나 그 정도가 과해 걱정이다. 보거라, 연녹의 아이들이 다들 죽어나고 있지 않느냐.”
문주 다음가는 위치에 있는 제2장로 당명초가 혀를 쯧쯧 차며 고갯짓을 하자 다른 장로들이 그리로 고개를 돌렸다. 확실히 연녹색의 무복을 입은 이대제자들의 낯빛이 좋지 않았다. 수행이 낮은 몇 명은 대놓고 헛구역질을 하다가 뒷간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당명초를 위로하던 막내 장로 당정초가 그 모습을 보며 멍하니 말했다.
“5장이 넘는 거리에서, 그것도 바람이 부는 야외에서 원재료를 가공할 때 나오는 약간의 독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저런 반응이라니…….”
“내가 문주님과 이 당문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낌새가 영 불길하다. 정초야, 저쪽을 보아라.”
당정초는 명초가 눈짓으로 가리키는 곳을 힐끗 보고 기함을 했다. 그곳에는 처음과 같이 평온하게 앉아 찻잔을 기울이는 약선과 그의 세 제자들이 앉아 있었다.
“아니, 어찌 저렇게 태연하답니까? 가장 어린아이의 연치를 보아선 금아와 비슷한 듯한데……!”
“약선의 제자 아니냐.”
당명초는 여러 의미를 담아 짤막하게 답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일적결 당염초가 강한 독을 쓸 것을 예상하고 당문의 막내인 운금에게 단단히 일러 방에 있게 했지만, 그 아이와 몇 살 차이가 나는 것 같지도 않는 약선의 제자들은 걱정은커녕 저렇게 멀쩡한 것을 보자 심기가 불편했다.
‘오늘을 위해 당문의 모두가 밤낮을 잊고 절차탁마했거늘.’
약선의 막내 제자가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을 빤히 쳐다보았다. 먹물처럼 빛 없이 새까만 눈동자가 어째선지 불쾌하게 여겨져, 당명초는 입술을 일그러트린 채 다시 경합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문의 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난리가 난 장로석에 관심이 없는 척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초윤은 조금 꽁해졌다.
‘아니, 그러면 할 수 있는 걸 하지 말까? 살다 살다 애들 잘 키웠다고 언짢아하는 건 또 처음 보네. 4년 동안 약욕 시킨다고 무슨 생고생을 했는지 알긴 알아?’
초윤은 아이들에게 대책 없이 독을 가르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정확히는 ‘독을 몰라도 상관없게끔’ 하고 싶어 노력했다. 지난 4년간 세 아이의 체질과 성장 정도에 따른 약재를 골라 매일 저녁 각각의 약욕 물을 우렸고, 이는 내력을 보하고 혹사당한 근육의 긴장을 풀어 주며 발육을 돕는 동시에 독에 대한 저항력까지 길러 주는 엄청난 효능이 있었다.
천오에게 만독불침을 운운한 것도 다 나름의 생각과 계획이 있어 저지른 일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 제 교육 방침과 목적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할 순 없으니 그냥 좋게 생각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자신이 키운 아이들이 얼마나 뛰어났으면 저 꼬장꼬장한 늙은이들이 저런 말을 다 할까. 이렇게 관점을 비틀자 좀 뿌듯하기도 했다.
그때, 천오의 전음이 대뜸 들려왔다.
[스승님, 해담침주와 풍화당랑이 무엇입니까?]
어?
초윤은 당혹감에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건 또 어찌 들었느냐.]
[스승님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 입 모양을 유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의 목소리와 발음을 흉내 내어 전음을 하려면 입을 읽는 법도 익히는 게 좋을 것 같아 진령 산맥을 넘을 때부터 노력을 해 보았는데…….]
어쩐지 며칠 조용하다고 했다. 전음을 가르쳐 줬더니 독순술까지 혼자 체득하고 있네. 무공의 경지가 올라가면 오감이 더욱 예민해져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기술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섭다. 저 재능이 무섭다.
초윤은 울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먼저 아이를 부드럽게 타일렀다.
[누군가를, 그것도 너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은 타인의 얼굴을 허락 없이 빤히 바라보는 것은 폐가 될 수도 있다. 연습에 열중하는 것은 좋으나 이곳은 한적한 무심서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거라.]
[예, 스승님.]
아이는 조금 기죽은 얼굴이 되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천오의 성격을 아는 초윤은 서둘러 덧붙였다.
[허나 가르쳐 주지도 않은 기술을 스스로 체득하고 발전시킨 것은 잘한 일이다. 수고했다.]
[예. 감사합니다, 스승님.]
천오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진 것을 기민하게 알아챈 초윤은 아이가 궁금해하던 것을 드디어 입에 담았다.
[해담침주는 이름과는 다르게 남만의 독곡에 사는 거미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로 태어나 점차 몸을 불리지. 광택이 도는 새까만 외갑을 두르고 있고, 몸통은 작지만 길고 가느다란 다리를 갖고 있다. 이 거미에게 물리면 몸속에서 성게가 자라나 피부를 뚫고 나오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하여 저런 이름이 붙었다.]
[성게가 몸속에서 자라는 것 같은 고통……입니까.]
[그래, 그런 놈이 최소한 수백 년을 살며 연성한 내단이니 독으로 가득할 게 분명하지 않느냐.]
그리고 저 할아버지는 그걸 아낌없이 팍팍 달이고 짜서 사발에 담고 있고 말이야.
백호철의 진을 빼 두는 건 좋은데, 내 차례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겠다. 초윤은 속으로 해탈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풍화당랑은 사천 바로 밑에 붙어 있는 귀주성에서 서식하는 독사마귀다. 크기는 내 손바닥만 하고 암놈은 특히 더 크다. 특이하게도 독샘을 갖고 있는데, 물리면 살점이 칼바람에 쓸려 흩어지는 것 같다고 해서 풍화당랑이다.]
[……상당히 아프겠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곁들인 다른 독초들도 전부 고통에 특화된 것들이었다. 과하면 죽을 테지만 적절히 조절하면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고, 어쩌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아픈 재료들. 당염초는 그걸 전부 한 그릇에 집어넣어 굉장히 극악스러운 독을 만들고 있었다.
대략 반 시진하고도 이각의 시간이 지나 모래시계의 모래가 사분의 일만 남았을 때, 드디어 당염초의 독이 완성되었다. 당문의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그 모습을 봐야만 했던 백호철의 몸은 아예 사시나무 떨리듯이 벌벌 흔들리고 있었다.
당염초는 새까만 독약이 가득 든 그릇을 쥐고 근엄한 얼굴로 백호철에게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굳이 이 극독약을 마시게 하기 전에 네 입으로 직접 털어놓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지 않겠느냐.”
“…….”
“내 독을 아등바등 견딘다 하여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이 뒤에는 약선 어른의 차례인데도 그리 고집을 부릴 수 있을 것 같으냐.”
“…….”
녹림을 호령하던 자로서의 자존심, 짓밟힌 기개가 뱉어 낸 오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군가’에 대한 크나큰 두려움이 백호철의 마음을 굳건하게 만들었다. 곧 다가올 고통에 생리적인 겁을 낼지언정 굴복하지 않는 그의 눈을 바라보던 당염초는 난처하게 제 수염을 쓸어내렸다.
“거참, 이 나이를 먹고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만…… 어쩔 수가 없구나. 네 인생의 운이 다했다고 생각하거라.”
“…….”
“혹시라도 털어놓을 생각이 든다면 꼭 말하거라. 고통을 멈춰 줄 테니.”
당염초는 마비된 백호철의 턱을 벌렸다. 그리고 쩍 벌린 입 안으로 그릇 안에 담긴 액체를 콸콸 쏟아부으며 나무 막대를 함께 쑤셔 넣어 혀 뒤쪽을 눌렀다.
백호철의 목울대가 반사적으로 움직여 입 안에 들어온 독약의 태반을 삼켰다. 턱으로 흘러넘친 것은 그의 너덜너덜한 옷과 수염을 적신 뒤 돗자리로 떨어졌다. 백호철은 구역질을 하는 것과 비슷한 소리로 목을 울렸다. 마지막 발악으로 토해 내려 해도 할 수 없었다. 제 입으로 독이 들어가는 모습을 직접 본 눈이 갈팡질팡 흔들렸다.
그릇이 비워지자 당염초는 검지와 중지를 꼿꼿이 세워 백호철을 구속했던 점혈을 풀었다. 백호철은 거센 기침을 토해 내며 두 팔이 뒤로 묶인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거친 돗자리에 엎드려 바르작거리며 어떻게든 삼킨 것을 토해 내려 했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배 속으로 들어간 독기가 구더기처럼 스멀스멀 기어 다니며 위장 벽에 뿌리를 내렸다.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입에는 재갈이 물렸다. 명치가 점차 알싸하게 아파 오고, 피부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백호철은 두려움에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막힌 입 때문에 숨이 다 빠져나가지 못해 뺨이 불룩하게 부풀기를 반복했다.
시계에 남은 모래는 이제 일각 반의 양.
독이 진가를 발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