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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46)화 (46/257)

46화

미치광이풀에 자백제로 쓰이는 성분이 들어 있었던가.

정하윤은 고등학생 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면서 귀밑에 붙이는 멀미약을 처음으로 써 봤다. 차 안에서는 핸드폰도 못 할 만큼 멀미를 하는 체질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잔뜩 들뜬 고등학생이 대체로 그렇듯, 도착하면 패치를 곧장 떼야 한다는 사실은 비행기에서 잠시 자고 일어나자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렇게 귀밑에 온종일 멀미약을 붙이고 다니다가 다음 날 아침부터 착란 증세를 보여 결국 병원으로 실려 간 적이 있었다.

정하윤은 제정신이 돌아온 뒤 병원 침대에 누워 울적한 마음으로 검색을 했다. 어떤 연유로 이 꼴이 돼서 수학여행을 망치게 됐는지 제대로 알기라도 해야 덜 억울할 것 같았다.

‘그게…… 그러니까 붙이는 멀미약에 있던 성분이 자백제로도 쓰이는 거였고, 거기서 미치광이풀로 연관 검색을 했던 것 같은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

정신적으로 몰려 있을 백호철에게 자백제를 쓰는 것은 ‘초윤’이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초윤은 그저 떠오르는 대로 따라가다가 문득 깨달았을 뿐이었다.

현대에서는 비윤리적이고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용이 금지된 약물을 이렇게 직접 쓰게 되다니 입맛이 썼다. 이러면 고문을 한 사람과 뭐가 다르나, 싶은 마음도 컸다.

하지만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 없는 이상 투정만 부리고 있을 순 없었다. ‘초윤’의 기억이 도출한 길을 걸어가기로 결정한 것은 결국 초윤 본인이었다.

‘현대와 가치관 자체가 다른 세계에 떨어진 이상 적당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내 정신 건강과 자아에 좋다. 더 고민하지 말자. 언젠가 사람을 직접 해쳐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결론을 내린 초윤은 당문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내가 낭탕근을 이용해 억지로 진술을 하게 만드는 방도를 보여 주긴 했으나 너희들은 절대 이를 악용해선 안 된다. 독기를 어떻게 억눌렀는지 알려 주지도 않을 테지만, 무엇보다 이것으로 제대로 된 정보를 캐내긴 어려울 것이다. 낭탕근은 어디까지나 총기를 흐리게 하여 변별력을 떨어트리는…….”

털썩!

뒤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초윤은 속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느릿느릿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당염초가 또 바닥에 납작 엎드려 절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지켜보던 장로들을 비롯한 당문의 무사들, 제자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박았다.

연장자를 공경하라고 배워 온 초윤의 심장이 다시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왜 이래! 왜 또 이래!’

“당문에……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승리를…… 앙축 드립니다.”

“일없으니 일어나라.”

‘이러지 좀 마! 자백제 써서 이겨 먹은 게 무슨 은혜야!’

울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말은 냉랭하게 나갔다. 당염초는 툭 치면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로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한번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함께 일어나 공손하게 선 채 양손을 모았다.

당염초가 초윤의 속내는 전부 알고 있다는 듯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제발 이상한 오해는 그만해 줬으면 했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말했다.

“독과 약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보여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약선 어른께선 혹시 당문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희귀한 약재라면 어떻게든 구해 오고, 무공이라면 어떻게든 알아 올 것이며 사람이라면 데려오겠습니다.”

“필요 없…….”

부담스러운 선물을 즉각 거절하려던 초윤이 갑작스레 잠시 말을 멈췄다. 애들이 나중에 장성하면 당문에게 뭔가 부탁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아니면 이 기회를 아이들에게 나눠서 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초윤은 자연인처럼 속세와의 교류 없이 살고 있다 해도 아이들은 다른 삶을 살 수 있고, 응당 그래야 했다.

그래, 애들한테 넘겨야겠다. 결심한 초윤이 말했다.

“20년 동안 파훼할 수 없는 독을 연구한 결과물이 있겠지.”

하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한 것과 전혀 딴판이었다. 당염초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깊숙하게 끄덕였다.

“예. 개중에는 다루지 못할 정도로 독기가 강해 봉인해 둔 것 또한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 가도록 하겠다. 조금이면 족하다.”

“예, 약선 어른. 다만 이곳으로 가져올 수 없을 정도로 독한 것이 있어 약선 어른께서 직접 발걸음을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상관없다.”

막힘없이 오가는 대화 속에서 혼란스러운 것은 초윤 하나뿐이었다.

말투가 바뀌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말하려던 내용이 미묘하게 변질되어 나오는 것도 몸에 밴 성격이다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아예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튀어나오는 일은 오늘로 처음이었다. 연구한 독을 보여 달라니 그 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인가. 초윤은 관심도 없는데!

아까와는 또 다른 의미의 두려움이 순식간에 초윤을 덮쳤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말하지도 못하고, 행동하지도 못한다면 그저 남의 몸에 갇힌 채 생각만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고 판명 나는 것보다 이것이 더 무서웠다.

그때, 얼어붙은 초윤을 달래듯 한 줄기의 생각이 떠올랐다.

‘당문은 기본적으로 기회주의자들의 집단이다. 보답이라 할지언정 엮이는 것은 좋지 않다. 그것이 막 경험을 쌓을 나이의 아이들이라면 특히.’

그야……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 인간관계에 무던한 편인 초윤도 구성원 두어 명을 제외하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조직인데 나서서 주선을 시켜 줄 필요는 없지.

어느 정도 납득은 갔지만 보통 행동이 앞선 뒤에 생각이 떠오르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조금 진정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해 보려 할 때, 당염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까지는 반 시진이 걸리니, 석반을 드신 후에 바로 가실 수 있도록 채비를 해 두겠습니다.”

“알았다.”

간단하게 대답하자 당염초가 포권을 취한 뒤 빠르게 경합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백호철은 당가 무사의 등에 업힌 채 어딘가로 사라졌고, 바닥에 깔려 있던 돗자리와 의자들도 우수수 빠져나갔다.

초윤은 착잡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경험은 요즘 들어 흔했지만 오늘은 특히 더한 것 같았다. 이제껏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근본적인 의문들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후죽순 떠올랐다.

자신은 왜 이곳에 오게 된 건지. 왜 하필 약선 초윤의 몸인지. 어째서 이 시기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초윤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을 때, 문득 도다다닥 하는 귀여운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초윤의 세 아이들이 상석을 내려와 초윤이 있는 곳으로 거의 뛰어들 듯 달려오고 있었다.

“스승님! 어떻게 하신 거예요?”

가장 먼저 초윤의 앞에 도달한 사영이 흥분으로 상기된 얼굴에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물었다. 약학을 따로 배우지 않은 사영과 사현이 이렇게 신기하게 여길 정도면 천오도 만만치 않겠다 싶어 내려다보자 옷자락을 꾹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천오는 아무 말 없이 초윤의 옷을 쥔 채 올려다보고 있었다. 채근하는 것보다도 압박이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초윤은 짧은 심호흡으로 근심을 잠시 털어 버린 뒤 아이들의 머리를 양껏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거짓말은 생각보다 고도의 사고 능력을 요구한다. 특히나 정교한 거짓말이라면 더욱 어렵지. 예닐곱 살의 아이들이 다섯 살 때와는 몰라보도록 질이 다른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하! 네가 그래서 거짓말을 못하는구나?”

“누, 누나!”

“사영, 동생을 놀리면 못 쓴다.”

다행스럽게도 초윤의 아이들은 거짓말로 속을 썩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초윤이 끈질기게 교육을 했을 테지만 여태껏 잠잠한 것을 보아 천성이 정직한 것 같았다.

초윤은 양손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당가의 사람이 안내해 주는 대로 걸어가며 이어 말했다.

“오랫동안 피로와 고통에 노출된 사람의 정신은 연약해진다. 이때 사고하는 능력을 조금만 마비시켜 준다면 조리 있는 거짓말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절대 즐겨 쓸 방법은 아니다. 말하는 것의 8할이 헛소리가 될 텐데 들을 가치가 어디에 있겠느냐.”

“백호철은 고분고분 잘 대답하지 않았나요?”

“간단한 대답만 하면 되도록 상황을 이끌어 갔던 게지. 공감하기 쉽게 그자가 평소에 쓰던 말투를 쓰고, ‘맞다’는 말만 나오는 질문을 던졌지 않느냐.”

“그럼 새로운 사실을 캐내는 것은 어렵겠네요?”

“그렇지.”

사영이 홀로 생각에 빠져 고개를 주억거렸다. 왠지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 지레 겁이 난 초윤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관심을 돌려 주었다.

“가장 좋은 것은 이렇게 할 필요를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것이다.”

“맞아요, 스승님. 억지로 입을 열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게 만드는 게 제일 좋지요.”

사영이 주먹을 불끈 쥐며 의욕이 넘치듯 말했다. 초윤이 말한 것과는 뭔가 많이 다른 것 같았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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