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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47)화 (47/257)

47화

“누, 누나는 거짓말 엄청 잘해요. 광동에 있을 땐 안 속는 어른들이 없었어요.”

“좋은 말로 할 때 입 다물어라. 네가 누구 덕분에 먹고살았는데?”

사현이 거짓말로 놀림당한 것을 그대로 갚아 주자 아이 둘이 그새 투덕거리기 시작했다. 싸운다고 해도 말로만 주고받는 귀여운 수준이었고, 본인들도 즐기는 것 같았다.

한결 진정된 마음으로 아이들 뒤를 따라가는데, 초윤의 옆에서 묵묵히 손을 잡고 걷던 천오가 돌연 말했다.

“……배우고 싶습니다.”

“음?”

조금은 우울한, 그러면서도 의기와 오기를 꾹꾹 담은 목소리를 들은 초윤이 천오를 내려다보았다. 천오는 입을 꾹 다물더니 고개를 들어 초윤을 올려다보며 한 번 더 명료히 말했다.

“스승님의 약학을 전부 배우고 싶습니다. 스승님께서 알고 계신 것이라면 다 사사받고 싶습니다. 해동의 약초까지 모두요.”

“…….”

학구열이 넘치는 아이는 정말 언제 봐도 기특했다. 일반적인 무협지의 스승이라면 제자의 이런 말을 오만하기 짝이 없다고 여겼을지도 모르나, 초윤은 그저 대견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오늘 네가 나를 여러 번 돕는구나. 초윤은 아이와 맞잡은 손에 살며시 힘을 주었다.

“그래, 네가 능력이 된다면 얼마든지 가르쳐 주겠다.”

“지금보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아니, 지금만큼만 하거라. 언제나 과한 건 좋지 않다고 말했지 않느냐.”

얘가 더 노력하면 난 금방 추월당한다…….

아이가 천천히 성장하기를 바라는 건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초윤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유용한 선생님이 되어 주고 싶었다. 우수한 후기지수를 키워서 자신의 무공을 전수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학생보다는 자식처럼 육아를 하다 보니 ‘더는 내가 가르쳐 줄 것이 없구나.’ 같은 상황이 다가오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니 이 시간이 나만의 욕심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자.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되는 알찬 경험과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자. 나중에 독립을 해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별다른 문제 행동이 없는 아이 셋만 계속 키운 덕분에 초임의 열정이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초윤은 새삼스레 다짐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전각에서 흘러나오는 맛있는 냄새도 초윤의 기분을 회복시켰다.

‘밥 먹고 독까지 받으면 더 할 일 없으니까 쌀만 사서 내일 바로 집으로 가자!’

가벼운 발걸음으로 안내인이 열어 주는 문으로 들어가자 온갖 음식들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져 있었다. 넷이서만 오붓하게 먹으라는 건지 외부인은 하나도 없었고, 안내인도 다 잡수신 뒤 불러 달라는 말만 남긴 뒤 바깥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당연히 잔뜩 신이 난 채 각자 자리를 차지했다. 나중 가선 배가 두둑하게 불러 힘겨울 정도로 엄청나게 먹어 댔다. 사천요리의 정석을 보여 주듯 알싸한 매운맛의 요리가 많았지만 입술이 빨갛게 부어 물을 들이켜면서도 좋은지 조잘조잘 이야기꽃을 피웠다.

초윤 역시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한 무리의 무림인이 사천당문을 급습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 일로 말미암아 두 아이를 손에서 떠나보낸 뒤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건 꿈에도 모른 채.

낮에 열린 경합에서 느꼈던 껄끄러움을 풍성한 저녁 식사로 풀어낸 초윤은 꽤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잘 먹는 것을 봐서 든든하기도 했고, 사천의 음식이 초윤의 미각을 만족시키기도 했다.

호기심에 눈을 반짝거리는 아이들에게 경합에서 사용된 약재나 중원 바깥의 땅을 이야기해 주며 산더미같이 쌓여 있던 음식을 기어코 전부 먹어 치우고 나오자 날은 이미 어둑하게 진 뒤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던 초윤은 아이들을 하룻밤 당문에 맡겨 놓고 독을 받으러 다녀오기로 했다.

“알았느냐, 사영아. 나는 해가 뜨기 전에 돌아올 것이다. 동생들을 데리고 노는 것은 괜찮다만 너무 늦게 자지 말고.”

“예, 스승님.”

“또 함부로 세가를 돌아다니며 방문을 열어 보거나 숨어드는 것은 객으로서의 예의가 아니다. 놀아도 네 침실에서만 놀아야 한다.”

“예, 스승님.”

[그리고 혹시 몰라 하는 말이다만, 나는 남의 입을 빌려 너희들을 부르지 않는다. 너희들을 데려와 달라 부탁받았다며 누군가가 따라오라 하거든 무시해야 한다.]

[예, 스승님!]

겨우 몇 시간을 떨어져 있는 건데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다. 심지어 일반적인 집도 아닌 사천당문에서 애들을 돌봐 주겠다고 한 건데도 영 마음이 편치가 않다.

애들이랑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는 게 처음이라서 그런가. 초윤은 걱정을 꾹 누르며 사현에게 다가갔다.

“사현이는 누나 말을 잘 듣고 있어야 한다. 짓궂기는 해도 누구보다 너를 아끼는 네 유일한 혈육이다. 언젠가 다 커서 세상에 나가면 대가 없이 누군가를 지켜 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너도 알게 될 것이다.”

“……예, 예. 스승님.”

“그래, 더불어 막내 사제도 잘 부탁한다.”

사현이 사영의 눈치를 힐끔 보고 대답했다. 초윤은 사현이의 손등을 도닥여 준 뒤 마지막으로 천오에게 향했다.

천오는 초윤에게 함께 따라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가 거절을 당해서 그런지 조금 의기소침해 보였다.

“스승이 어딘가로 영영 가 버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주눅이 들었느냐. 아직은 안 된대도.”

“…….”

“불안해하지 말고 사저와 사형을 믿어라. 잠시 자고 일어나면 금세 돌아와 있을 게다.”

“……정말입니까? 정말 금방 돌아오실 겁니까?”

“그럼.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요기만 하고 바로 돌아가자꾸나.”

천오가 머리를 수굿이 숙이고 끄덕였다. 평소와 같은 무표정을 하고 있지만 조금 비죽 튀어나온 입술이 불만스러운 심정을 저도 모르게 드러내는 것 같아 귀여웠다.

천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나서야 몸을 돌렸다. 당염초는 아까부터 저 멀찍이서 초윤이 용건을 끝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다녀올 테니 일러 준 것을 명심하고 있거라.”

“예, 스승님!”

초윤은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배웅하는 세 아이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손톱달이 뜬 하늘을 검은 구름이 메우기 시작하는 밤이었다.

사천의 땅은 7할의 산지, 3할의 분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커다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산들이 평평한 땅을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어 들어가기도 힘들고 나가기도 힘든 천혜의 요새나 마찬가지였다.

전체의 3할밖에 되지 않는 분지였지만, 전체에 비해서일 뿐이지 정하윤이 살았던 남한에 비하면 훌쩍 컸다.

이 말인즉슨 7할에 달하는 산지는 정말 장난 아니게 넓다는 뜻이었다.

“50년 전만 해도 당문의 모든 독은 세가 내의 만독각에서 관리했지만, 제 선대의 문주께서 자리하고 계실 때 사단이 벌어졌습니다. 잠행술에 특출한 재능을 보이던 일대제자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며 만독각의 최하층에 들어간 것입니다.”

초윤과 함께 몇 개째일지 모를 산을 넘어가던 당염초는 괜히 눈치가 보이는지 구구절절 사연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두고 온 아이들 생각으로 정신이 팔려 있던 초윤은 한 박자 늦게 당염초의 말을 듣고 시선을 들었다.

“다음 날 그 제자는 한 줌 핏물이 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적이 몇십 년마다 한두 번씩은 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천당문은 독을 연구하는 곳이니만큼 매해 기록이 상당히 잘되어 있는데, 선대와 그 선대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치기에 가득 차 주의를 듣지 않는 사람은 꼭 있는 건지, 참…….”

“꼭 있지. 꼭 있는 법이니 가르치는 쪽이 보안을 공고히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맞는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당시의 장로님들은 ‘이런 일도 한 번씩 있어 줘야 다들 정신을 차리지 않겠냐. 원래 수련을 하다 보면 동기 한둘쯤은 죽어 나가는 법이다.’ 정도로 생각하고 계셨기에…….”

무협지답다…….

초윤의 떨떠름한 심정을 눈치챘는지, 당염초가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결국 문주만이 위치를 알고 관리할 수 있는 보관 장소를 만든 것은 저입니다. 쉽게 찾아내지 못하도록 일부러 세가에서 먼 곳을 골랐고, 진법을 파훼하는 방법을 아는 것 또한 저뿐입니다.”

“그래, 현명하게 처신했다.”

이런 사람 밑에서 어떻게 그런 장로들과 제자들이 나오지?

초윤은 짧게 고민했다. 당염초는 첫인상이 안 좋긴 했지만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다. 하지만 학교도 교장 선생님 하나만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좋게 흘러가는 법은 없다는 걸 떠올리자 어느 정도 납득은 갔다.

학생들이 교장 선생님을 보는 기회라곤 학교 행사 때마다 있는 지루한 담화 시간밖에 없는 것처럼, 당염초도 수많은 당문의 제자들에게 밀접한 영향을 끼치진 못했을 테니까.

초윤의 발끝이 잡초의 이파리를 밟고 가볍게 나아갔다. 싱그럽게 자란 잎에 맺혀 있던 이슬이 도르르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졌다. 지나온 길에 흔적이라곤 실바람만 남기는 훌륭한 초상비(草上飛)의 보법이었다.

이조차도 마음만 먹으면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길을 안내해 주는 당염초를 앞질러 갈 순 없으니 적당히 따라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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