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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51)화 (51/257)

51화

“다른 분들은, 사현 님과 천오 님은 안 계십니까? 어디 계신 겁니까?”

“예, 예? 홍풍각의 앞마당에 있을 거예요.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면 저 혼자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동생들은 거기 두고 왔는데.”

“이런!”

위정이 난처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듯 부산스럽게 짧은 거리를 연신 오갔다. 사영은 영문도 모르고 자신이 판단을 잘못했나 싶어 덜컥 내려앉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아니, 아니지. 오히려 괜찮을 수 있습니다. 홍풍각은 사력지와 먼 곳에 있으니까요.”

“사력지라니요? 제대로 말씀을 해 주세요!”

“자갈밭 말입니다. 당문의 뇌옥이요!”

끄응, 앓는 소리를 낸 위정이 사영에게 척척 걸어와 눈엽각과 연령각을 번갈아 가리키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냈다.

“사영 님, 지금 불이 난 두 곳은 당문에서 ‘적당히 중요한 곳’입니다. 불이 나면 절대 가만히 둘 수 없으나 만독각이나 녹주각만큼 보안을 철저히 할 수도 없지요. 게다가 연령각은 눈엽각과 가깝지도 않은데, 바로 가까이 있는 전각을 두고 저쪽에 불이 옮겨붙은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연령각은 이대제자들이 거주하는 곳이라서 터질 물건이라곤 하나도 없단 말입니다!”

“그럼…….”

“누가 불을 지른 겁니다. 당문의 인력을 이곳에 집중시키기 위해서요!”

이제껏 봐 온 불이라곤 아궁이의 불이나 조그만 모닥불밖에 없어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사영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위정의 말을 너무나도 잘 알아들은 게 독이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곳으로 모으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혼란을 틈타 쳐들어오겠다는 뜻 아닌가!

정체 모를 흉수가 당문의 담장을 넘을지도 모르는데 고작해야 열두 살 남짓한 애들을 야외에 남겨 두고 왔으니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위정 역시 침입을 막으러 가자니 집안의 귀중한 것을 모아 둔 곳과 기숙사가 홀라당 타면서 인명 피해가 날지도 모르게 생겼고, 그렇다고 해서 화재에 집중할 수도 없는 난관에 봉착해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마 사력지에 있을 백호철이 목적일 겁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노릴 거라곤 그자밖에 없어요. 이곳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있으니, 경비 인력까지 이쪽에 쏠린 틈을 타 그를 빼내려는 속셈일 게 분명합니다.”

“그럼 적어도 사람들이 많은 이곳은 안전하겠네요. 저는 동생들을 데리고 와야겠어요.”

“잠시만요, 사영 님. 아무리 그래도 혼자 가시면 위험하실 테니…… 도사님!”

위정이 고개를 쭉 빼어 구양선을 불렀다. 양손에 빈 물통을 두 개씩 들고 머리에도 하나 인 채 우물가로 달려가던 구양선이 그대로 행선지를 틀어 위정에게 달려왔다.

“예, 단주님!”

“그건 일단 내려 두고 사영 님과 함께 형님의 제자 분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 주세요. 사영 님, 저는 장로님들께 가서 도움을 구해 보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고 서둘러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위정은 사영의 양손을 꼭 모아 잡은 뒤 구양선에겐 시선도 한 점 주지 않고 급하게 뛰어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먼저 정신을 차린 사영은 입술을 꽉 깨문 뒤 위정과는 반대 방향, 홍풍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뭐 해요. 얼른 와요!”

“아, 알겠습니다!”

얼이 빠진 구양선을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영은 있는 힘껏 경공을 전개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잠잠하던 내력이 다리의 혈도를 막힘없이 흐르며 속도를 가했다. 사영과 사현이 무공을 배웠다는 걸 모르고 있던 구양선이 함께 뛰어가며 놀라운 기색을 보였지만 그를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과격한 자괴감이 사영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과거의 일은 사영의 정신에 깊은 외상을 남겼다. ‘자신의 판단 미숙으로 동생이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사영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하물며 동생이 하나뿐인가. 4년을 함께 살아온 그 까마귀 같은 녀석도 있다. 과연 네가 변하나 보자, 이런 심보로 경계를 다 늦추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 이후로 큰일은 일으키지 않은 놈이다. 어미 새처럼 따르는 스승님만 정정하시다면 앞으로도 별다른 사고는 치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안다.

‘아니,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백호철이 감금된 곳은 홍풍각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했어.’

불안정한 감정에 영향을 받은 내력이 출렁거리자 사영은 필사적으로 마음을 다독였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홍풍각이 눈에 들어왔다. 사영은 전각과 전각 사이에 있는 어깨 높이의 담장이나 계단을 훌쩍훌쩍 뛰어 넘어가며 그곳으로 직진했다.

마침내 홍풍각의 앞마당과 그곳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두 소년이 보이자 사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 가야 한다니까! 사, 사제는 사형 말을 들어야지!”

“스승님께선 사저의 말을 잘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멋대로 가시는 건 단독 행동입니다.”

“이, 이거 놔!”

“현아야!”

“누나!”

사영이 당도하자 천오가 꽉 잡고 있던 사현의 옷을 탁 놓았다. 사현은 반동으로 앞으로 철퍼덕 넘어졌다가 허둥지둥 일어나 사영에게 다가갔다.

“누, 누나, 부, 불, 어디.”

“눈엽각이랑 연령각에 불이 났는데 아무래도 누가 일부러 방화를 한 것 같아. 사람 많은 곳이 안전할 것 같으니까 그리로 가자. 서문천오, 너도 이리 와.”

당황하면 말을 더듬는 증상이 더욱 심해지는 사현을 대신해 사영이 상황을 간략하게 요약해 말한 뒤 천오를 불렀다. 사현은 방화범이 있을 것 같다는 소리에 질겁하며 누나의 손을 꾹 잡았다.

하지만 천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새까만 눈이 사천당문의 높은 외벽 너머로 보이는 먹색의 산등성이를 훑었다. 약간의 뜸을 들인 뒤 흘러나온 천오의 목소리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지극히 담담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늦은 것 같습니다, 사저.”

“뭐?”

스르릉, 듣기만 해도 서늘한 쇳소리가 울렸다. 사영의 옆에 서 있던 구양선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세검을 뽑는 소리였다.

구양선은 한 번 꺾였던 검을 단단히 쥐고 남매와 천오의 앞으로 나서며 결연하게 말했다.

“소저, 동생 분들을 데리고 난 단주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가십시오.”

“무슨…….”

그때, 사영의 눈에 기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그것은 거미처럼 소리도 기척도 없는 사람이었다. 새까만 잠행복으로 눈조차 보이지 않게 온몸을 둘둘 싸맨 이들이 높은 담장을 기어 내려왔다. 그들은 수직의 벽에 아무렇지도 않게 붙어 있었고, 바닥에 발이 닿아도 자취를 남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바로 앞에 있는데도 달그림자처럼 생기가 희미했다. 기괴한 움직임을 직접 목도하지 않았다면 어스름이라 여기고 지나칠 만큼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게 다섯 명에 달하는 이들이 연달아 월담을 하는 모습은 은밀하다 못해 기괴하게 느껴졌다.

사영은 그 장면을 보자마자 흡, 숨을 삼키고 천오의 손을 낚아챈 뒤 눈엽각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다. 반대쪽 손을 잡고 있는 사현이 속도를 맞추지 못해 자꾸 무릎을 찧어도 사정을 봐줄 여유가 없었다.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는 사현이 두려움에 힉힉거리며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누, 누, 누나, 쪼, 쫓아와!”

“뒤 보지 마! 앞만 보고 달려!”

챙!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여러 번 들려왔다. 구양선이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부 막아 내진 못했는지 세 명의 복면인이 사영을 뒤쫓았다.

사영은 문득 섬찟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옆으로 푹 꺾었다. 소름이 돋는 파공음과 함께 새까맣게 칠한 비도가 사영의 뺨을 스치고 날아갔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지척까지 접근한 살수가 장검보다는 짧고 단검보다는 긴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비도와 마찬가지로 빛이 반사되지 않도록 새까맣게 칠해 날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사저, 앞에!”

“윽!”

천오의 외침에 앞을 본 사영이 황급히 걸음을 멈췄다. 어언간 사영을 앞지른 복면인 한 명이 앞길을 단단히 막아서고 있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사영은 양팔에 뜨끔한 느낌이 들어 신음을 흘렸다. 날아온 비도에 깊게 베인 상처에서 뜨거운 피가 울컥울컥 흘러 손을 적셨다.

사영은 동생 둘을 자신의 등 뒤로 밀어 넣고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앞과 뒤가 막혔으니 옆에 있는 담벼락으로 가까이 붙었다. 복면인들은 반원 대형으로 사영을 에워싸며 접근했다.

‘젠장, 아까 그 비도를 잡았어야 했는데.’

무기가 없다. 비도집은 침상의 머리맡에 있다. 천오의 앞에서 침의를 풀어 헤치며 비도집을 찰 순 없어 무슨 일이 있겠냐는 심정으로 그냥 나온 게 천추의 한이며 가장 큰 패착이었다.

심지어 동생 둘은 아직 진검을 잡아 본 적도 없었다. 진검은 몸이 전부 자란 뒤 자신에게 적합한 길이와 무게로 세심하게 맞추어야 하며, 그 전에 맞지 않는 검을 들게 된다면 나쁜 버릇이 생길 수 있다는 스승의 지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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