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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61)화 (61/257)

61화

사영이와 대화를 나눈 날의 모레 아침, 초윤은 아이 둘에게 심부름을 부탁했다. 천오는 약방에 약재를 사러 갔고, 사영은 선물을 담을 용기를 사러 목공과 도자기공에게 갔다.

그리고 홀로 남은 사현은 초윤과 단둘이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사영이나 천오면 몰라도 사현과 면담을 하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현은 최근 사춘기를 겪으며 누나의 과보호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자신보다 월등한 성장을 보이는 천오에게 불편한 기색을 보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조금만 주의를 환기시켜 주면 금세 밝게 웃었고, 여전히 호기심에 눈을 반짝거리는 아이였다.

사현은 초윤이 시킨 것만 딱 맞춰 열심히 하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4년간 사현이 사고를 친 전적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월등히 적었다. 덕분에 초윤과 진중하게 상담을 한 적도 적었는데…….

‘그러지 말 걸 그랬다. 일이 없어도 대화는 자주 했어야 했어.’

이제 와선 후회되는 결정이었다. ‘초윤’은 필요 없는 말을 굳이 하지 않는 성정이라 말수가 극히 적고 무뚝뚝하다는 것도, 셋이서 함께 있을 때는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는 사실도 자책 중인 초윤에겐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무튼 지금은 그 ‘일’이 벌어질락 말락 하는 시점이었다. 사영이 희를 따라가는 게 거의 확정된 다음 날부터 사현은 눈에 띄게 말이 없어졌다.

처음 사현을 데려왔을 때 아이의 막힌 말문이 트이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아는 초윤은 마음이 급해졌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마다 입부터 다무는 버릇은 스스로의 감정 표현에도 제약을 거는 것이니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낌새가 보일 때 서둘러 속에 든 것을 토해 내게 만들어야 했다.

초윤은 마주 앉아서 울적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말없이 앉아 있는 사현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사영이 이곳에 남는 게 걱정스러운 것이냐.”

“……그런…… 네,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니에요. 누나는…… 잘할 테니까요.”

사현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뭉뚱그려 대답했다. 누가 봐도 아닌 얼굴이 아니었다.

초윤은 아침상에 함께 들어온 월병을 아이의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나는 네게 왜 누나를 웃는 얼굴로 배웅하지 못하는지 추궁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조리 있는 말을 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아직도 사영과 떨어져서 살지 못하겠냐며 타이르려는 것도 아니다.”

“…….”

“그저 네가 그리 복잡한 낯을 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싶을 뿐이다.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정리할 필요는 없다. 두서없으면 두서없는 대로, 모르겠으면 모르겠는 대로 말해 보거라.”

사현의 얼굴이 얼핏 울기 직전처럼 일그러졌다. 아이는 잔뜩 인상을 쓴 채 습관적으로 손에 든 월병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을 다과상 위에 올려 둔 뒤 나머지 한쪽을 만지작거리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이…… 누나가, 아니…… 누나는…….”

“그래, 듣고 있다.”

“누나는…… 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 저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저는 아무것도 모, 못 하는데, 누나는 매번…… 음식을 가져오면 저, 저부터 먹게 했고, 대, 대신 화내고, 대신 맞고, 매번 그래서…….”

부풀어 오른 고름을 바늘로 톡 찌른 것처럼 사현이 중얼중얼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희의 제안이 단 하루 만에 사현의 상처를 곪게 만든 것 같았다.

빨리 물어봐서 다행이다. 초윤은 속으로 안도하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현은 결국 월병을 꽉 쥐고 팔뚝으로 제 눈두덩을 거칠게 쓸었다.

“그래서…… 제가 다 크면, 누, 누나보다 크면…… 이제 제가 누나 지켜 주려고 했는데.”

“…….”

“제가…… 저는…… 전 아무것도 못 해요. 누, 누나보다 강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고, 마…… 말도 아직 제대로 못하고, 무공도, 막내가 더 잘하고, 그, 글자도 다 못 읽고. 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 나도 누나랑 광동에 있었는데, 그…… 그 사람은 누나만 데려가고 싶다고 하고.”

“아니지, 사현아. 그는 사영만 데려가고 싶다고 말하진 않았다.”

초윤은 기어코 눈물이 터진 아이를 안아 무릎에 앉혔다. 사현은 스승의 이례적인 접촉에 놀랄 정신도 없이 훌쩍이기만 했다. 초윤은 우악스러운 아이의 손을 잡아 내리고, 방에 있던 비단 손수건으로 살짝살짝 아이의 눈가를 눌러 주었다. 엉망이 된 월병도 놓게 했다.

“잘 듣거라, 사현아. 그는 너를 데려가고 싶어도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입장이었다. 엊그제 사영이 그 사람을 몰상식하다 칭한 것을 잊었느냐. 내가 더 잘 가르칠 수 있으니 제자를 내놓으라는 말은 본래 상당히 무례한 말이다. 염치가 있다면 너까지 탐낼 수 있을 리가 없지.”

“하, 하지만…… 제가 아, 아무것도 못 하는 건 맞잖아요.”

“아무것도 못 한다니. 내가 너를 가르쳤는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

아이가 입을 딱 다물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이를 전부 한다면 자신을 가르친 스승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얼굴에 훤히 보였다.

예의는 중시하지만 스승이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아는 초윤은 사현의 등을 팔로 받쳐 주며 말했다.

“너는…… 말하자면 두 천재의 사이에 끼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것이다. 너는 안간힘을 써야 하는 것을 네 누나와 동생은 너무나도 가볍게 해치우고 이걸 왜 못 하냐는 듯이 굴겠지. 압박감과 자괴감을 느낄 게 당연하다.”

“……저, 저는 천재가…… 아니니까요.”

“그래, 너는 천재가 아니지. 단순한 자질로만 보자면 범재와 수재의 중간쯤 될 것이다.”

초윤의 확답을 들은 사현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자신보다 아득히 높은 경지에 있는 스승의 말이라면 틀렸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수재도 아니고 범재를 웃도는 정도라니, 어렴풋이 느끼고 있긴 했지만 기분이 곤두박질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초윤이 빨갛게 물든 사현의 코끝을 톡 두드렸다.

“그렇지만 네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이건 정말 희귀하고 관철하기 어려운 능력이다. 갈고 닦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긴 해도 끝내 성공한다면 모두가 우러러볼 만한 업적을 남길 것이다.”

“예? 제, 제가요? 어, 어떤…… 재능인가요?”

“말해 두지만 피워 내는 데에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네가 이를 해낼 의지가 없다면 말해 주지도 않을 테고.”

아이가 코를 훌쩍 먹고 꿋꿋한 얼굴로 초윤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자신이 스승의 허벅지에 올라앉게 된 것을 깨닫고 허둥지둥 내려가려 했다. 초윤은 그런 사현을 딱 잡은 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너는…… 꾀를 부리지 못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성정을 지녔다.”

“…….”

지금 그걸 재능이라고 말씀하시는 건가? 아이의 불손한 눈이 말하고 있었다. 초윤은 내심 피식 웃은 뒤 조곤조곤 이어 말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줄 아느냐. 이는 굉장히 찾아보기 어려운 재능이다. 너는 마음만 먹으면 삼십 일을, 석 달을, 일 년을 꾸준히 빼먹지 않고 정해 둔 만큼 노력하지. 압박은 나날이 강해지고 눈에 보이는 성과는 미미한데도 홀로 속상해 울어 버릴지언정 노력을 그만두진 않는다.”

“그…… 그것이 재능인가요?”

“그럼. 무엇이든 쉽게 해내는 이들은 절대 갖지 못할 재능이다.”

사현은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이게 정말 좋은 건지, 아니면 스승이 자신을 달래기 위해 말을 갖다 붙이는 것인지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표정에 다 드러내는 것만 뺀다면 제 누나와 비슷한 사고방식이었다.

초윤은 아이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는 어느새 눈물을 그치고 울음의 여파로 간간이 훌쩍이기만 하고 있었다.

“너는 아무것도 못 하는 게 아니다. 훗날 거대한 나무를 키워 내기 위해 오랫동안 땅을 다질 뿐이지. 그리고 너만 모를 뿐 이는 꽤 성공적이다.”

“예, 예?”

“이 안에 얼마나 거대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지 아느냐.”

초윤은 아이의 아랫배를 손끝으로 가만히 짚었다. 아이의 몸과 동화된 채 잠자코 웅크려 있던 기운이 초윤의 인도를 따라 슬며시 기어 나와 전신을 돌기 시작했다.

거대한 내력을 담을 수 있는 튼튼한 몸을 만들고, 거센 흐름에도 버틸 수 있도록 기맥을 질기게 하며, 무엇보다도 심법을 공고히 하는 데에만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뒤로 1년 동안 영약의 힘을 빌려 거침없이 쌓게 한 아이들의 내력은 훌쩍 큰 무림인들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는 모르는 게 오히려 좋은 거지. 그만큼 자연스럽게 몸에 녹아들은 거니까.’

초윤은 아이가 어떤 것을 배우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단단히 다진 일만큼은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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