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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72)화 (72/257)

72화

천오는 스승의 두 걸음 뒤에서 그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따랐다. 무릎 높이까지 자란 잡초들도 스승이 지나가면 사뿐히 옆으로 몸을 뉘이며 길을 만들었다. 발에 밟혀도 생생한 들풀들은 천오가 그 자리를 지나치면 슬그머니 줄기를 일으켜 처음과 같이 무성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식물들이 의지를 가진 하나의 유기체처럼 천오의 행보를 방해하지 않는 것도, 여태껏 이렇다 할 요괴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전부 스승의 조화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기묘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천오는 한 손으로 가슴께를 꼭 눌렀다. 언젠가 스승님만큼 고강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로 지난 4년을 부단히 노력했고, 또 일취월장하고 있다고 스스로도 생각했지만 바닥이 보이지 않는 스승의 능력은 여전히 경이로웠다.

이따금 산바람이 불어 높이 솟은 나무들을 뒤흔들었다.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치며 사부작사부작 경쾌한 마찰 음을 냈다. 천오는 그럴 때마다 멍하니 고개를 들어 요동치는 숲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떨어져 나온 나뭇잎들은 바람이 일으킨 소용돌이에 휘말려 솟구쳤고 새파란 상공에는 얇게 바른 듯한 구름이 떠 있었다.

차츰차츰 물 흐르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새 떼의 울음소리도, 멀찍이서 이곳을 피해 돌아가는 네발 동물의 발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다 시선을 내려 앞서 걸어가는 스승을 보자 하얗게 나부끼는 머리카락 밑으로 마른 어깨와 꼿꼿한 등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개를 젖혀야만 볼 수 있었던 스승의 얼굴은 이제 자신의 눈높이와 비슷한 곳에 있었다.

자신이 그만큼 작았던 건지, 아니면 몸뚱이뿐이어도 자라 버린 건지.

아니면 스승이…….

천오가 스승의 목덜미와 어깨선을 눈으로 더듬으며 막 생각에 빠지려고 할 때, 초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불쑥 말했다.

“불귀 산맥에 있는 여섯 개의 산에 관해선 이미 이야기해 준 적이 있었지. 기억하고 있느냐?”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속세와 가까운 순서대로 외공산, 재천산, 두망산, 원익산, 천궤산, 고도산이 늘어서 있으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지형지물이 험하고 자연진법은 악랄하며 요괴들은 간악하기 짝이 없으니 함부로 깊이 발을 들여선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건지, 과연 잘못한 게 맞는지도 모른 채 그저 지레 찔린 천오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줄줄 대답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천오를 보는 스승의 눈길 하나에도 나쁜 일을 하다 걸린 것처럼 마른침이 넘어갔다.

초윤은 다시 앞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더불어 산맥이 깊어질수록 동식물들은 오래전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띠며 더욱 몸집이 커진다. 산이 내포한 기운만이 그 동식물들을 먹여 살리는데, 가장 안쪽에 있는 고도산은 풀 한 포기만 캐어 먹어도 한 달을 살 수 있을 만큼 땅의 영양분이 막대하다. 어찌하여 그럴 수 있을 것 같더냐?”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아서 그런 겁니까? 이전에 인간은 자연을 빼앗아 취하기만 할 뿐 돌려주는 것은 극히 미미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극히 근본적인 까닭 때문이다.”

초윤이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의아한 얼굴로 스승의 곁에 다가선 천오는 그제야 밑으로 펼쳐진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어쩐지 물소리가 가까워진다 싶었더니 야트막한 낭떠러지 밑으로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폭은 어림잡아 오십 길쯤 되는 것 같았고, 잔잔한 물살이 있어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곳이 스승이 말했던 연파강인 것 같았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물결에 눈이 부셨지만 천오는 좀 더 먼 곳까지 시야를 넓혔다. 그러자 강 변두리에 줄지어 낙엽을 뿌리고 죽어 있는 나무들과 힘없이 고개를 숙인 풀꽃들, 그리고 물과 가까운 곳에 널브러져 있는 동물들의 시체가 보였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원익산과 천궤산 사이에는 연파강이 있고, 천궤산과 고도산 사이에는 망망강이 있어 수분과 양분을 원활하게 공급한다. 두망산에서 외공산까지 흐르는 물줄기는 다 이곳에서 오는 것이다.”

초윤은 강의 모습을 조용히 눈에 담은 뒤 낭떠러지 아래로 사붓이 내려섰다. 한낮의 햇볕에 따뜻하게 익은 강변의 모래가 부드럽게 밟혔다. 천오도 그를 따라 백사장에 발을 들였고, 초윤은 손을 들어 더 가까이 오려는 아이를 막았다.

“이제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얌전히 있거라. 이 물에 닿아선 안 된다. 알겠느냐.”

“……예, 스승님.”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자신이 미욱한 것을 어찌할 순 없었다. 괜히 고집을 부려 봤자 스승의 일만 늘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독의 근원지인 강으로 오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청명해야 할 물 내음에서 어쩐지 역한 비린내가 났고, 맑게 찰랑이는 물결은 눈의 즐거움과는 다르게 가슴을 섬뜩하게 죄여 왔다.

무심서로 흘러들어 오는 물은 독기가 상당히 빠져 있어 알아차리는 게 늦었지만 연파강은 모를 수가 없었다. 천오는 스승의 예상대로 이곳에 굉장한 독이 풀어져 있고, 자신은 이를 이겨 낼 수 없음을 직감했다.

아이에게 확답을 받아 낸 초윤은 강물에 발목을 담그고 선 채 말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 단순히 독을 풀기만 했다면 여태 독기가 남았을 리 없다. 독의 근원이 어딘가에 묶여 있거나 강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것 같구나.”

“……누군가가 고의로 저지른 짓입니까?”

“아직은 모를 일이다. 다만 이 독이라면…….”

초윤이 말끝을 흐리며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물살을 헤치며 수심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천오는 순간 너무나도 놀라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스승님!”

“괜찮으니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허리까지 물에 잠긴 초윤이 잠시 뒤를 돌아보며 천오를 안심시켰다. 천오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갈팡질팡 고민하다 물었다.

“허공섭물의 묘리로 꺼내실 순 없는 겁니까? 스승님께선 내공을 다루는 데에 있어 따를 자 없이 초출하시지 않습니까.”

“독물을 다룰 땐 항시 주의에 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내공은 근본적인 힘에 불과하니 섬세한 독물이 이에 닿아 무슨 반응을 일으킬지 모른다. 그리고 저 밑에 정확히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구잡이로 손을 뻗어서야 되겠느냐. 이것이 낚시도 아니고.”

초윤은 평온한 목소리로 설명하며 다시 물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면 밑으로 물의 흐름을 더듬으며 독물이 가라앉아 있을 곳을 가늠했다. 아이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이 독이 정말 ‘그것’이라면 직접 내려가서 두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내 초윤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수면 위로 하얗게 일렁이던 인영도 모습을 감추고, 공기 방울조차 올라오지 않았다.

흐르는 강물과 바람, 새소리로 가득한 자연 그대로의 풍경 속에 천오는 홀로 남았다. 불안한 손이 목에 걸고 있던 장명쇄로 올라갔다. 백옥으로 만들어 구름을 새긴 자물쇠는 툭하면 문지른 탓에 따로 닦지 않아도 반질반질했다.

물 밑에서 일어나고 있을 일을 조금이라도 유추하기 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물면을 응시하고, 입술을 물어뜯고, 심호흡을 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강 가운데의 그림자가 점차 짙어지더니 애타게 기다리던 스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오는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스승……!”

하지만 그 목소리는 끝을 맺지 못하고 휘청휘청 사그라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뒤돌아 있는 스승의 등이었다.

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봐 온 스승의 곧은 뒷모습. 때로는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위안을 주고, 때로는 길잡이가 되어 무한한 동경을 품게 했던 불가침의 성역.

그랬던 것이 지금은 본연의 선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초윤을 언제나 동여매고 휘감았던 세 겹의 얇은 무명옷이 척척하게 젖어 들러붙었다. 물기가 스며들어 반투명해진 겉옷 너머로 얇은 허리가 비쳤다. 새까만 눈동자가 초윤의 옴폭 패인 척추 선과 균형 잡힌 견갑골, 반듯한 어깨에 차례로 머물렀다.

초윤은 파리한 손을 들어 물먹은 머리카락을 한쪽 어깨 앞으로 모았다. 단정한 손끝이 스쳐 지나가며 고상한 목덜미가 드러났다. 투명한 물 한 방울이 손등을 미끄러지듯 타고 내려와 수면에 퐁당 떨어졌다.

귀가 먹먹해진 가운데 물방울 튀기는 소리만 청아하게 울렸다. 그를 제외한 세상의 모습이 문질러 지운 듯 흐려졌다. 천오는 숨을 삼켰다.

심장이 쿵,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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