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초윤은 강의 반대편으로 걸어 나가며 내공을 일으켜 불쾌하게 달라붙는 옷의 물기를 날렸다. 그리고 다급하게 겉옷을 벗어 들고 나온 것을 꽁꽁 감싼 뒤 저편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천오에게 전음을 보냈다.
[천오야, 장명쇄는 가져왔느냐.]
[예, 가져왔습니다. 스승님, 어찌 이리로 오지 않으시고…….]
[먼저 최대한 들숨을 자제하거라. 가능한 한 적게 공기를 들이마시며 장명쇄를 쥐고 무심서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이것을 처리한 뒤따라가겠다.]
[무엇입니까? 강에 있던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천오의 초조한 심정이 전음으로도 전해져 왔다. 초윤은 외투에 둘둘 만 것을 품에 안고 뒤돌아 멀리 있는 제자를 보았다. 투명한 초록빛 물이 그새 옷을 적시고 뚝뚝 떨어져 모래사장에 자국을 남겼다. 내기를 품고 짙어진 약 향과 짙게 두른 내공이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는 독기를 막고 있었지만 곧 한계에 다다를 것 같았다.
초윤은 손에 든 것을 잠시 내려다보며 고민하다가 말했다.
[짐조(鴆鳥)다. 짐조와 인면수사(人面水蛇)가 죽어 있었다.]
초윤의 무명옷이 덮고 있는 것은 바로, 술잔에 깃털 하나만 담가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알려진 극독의 요괴였다.
막대한 독기가 흘러나오는 강 밑으로 내려가자 보인 것은 거대한 푸른색 물뱀이었다. 몸체의 지름만 해도 이 장을 넘어갔고, 구불구불한 몸체는 강의 끝까지 쭉 이어져 있어 길이를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뱀의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인간의 얼굴이 달려 있었는데 어쩐지 입 주변과 턱 부근의 살이 다 녹아 있어 끔찍한 형상이었다.
초윤은 ‘초윤’의 지식으로 이 요괴가 연파강의 밑에 사는 인면수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독의 근원이 인면수사의 몸속이라는 사실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얘는…… 물고기나 산짐승밖에 안 먹고 따로 독샘이 있지도 않잖아. 이 독은 짐조의 독 같은데 물속에서 사는 애한테 왜 이런 독이 나와?’
이대로 둘 수 없었던 초윤은 인면수사의 몸통을 짚어 가며 이상한 점을 찾았다. 그리고 내장이 다 녹은 것처럼 손이 푹 들어가는 위치를 어렵지 않게 찾아 배를 갈라 보았더니 대뜸 들어 있던 것이 짐조의 시체였다.
설마 이게 여기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초윤이 당황했던 것도 잠시, 인면수사의 몸속에서 바깥으로 나온 짐조의 시체가 곧장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초윤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물 밖으로 빠져나오며 이 생물학 병기와도 같은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를 굴렸다.
[더불어 내가 일러 주는 약재를 꺼내 놓은 뒤 며칠 머무를 짐과 여비를 챙겨 산 밑으로 내려가거라. 아무래도 너는 잠시 여기서 벗어나…….]
“스승님!”
그때, 천오의 목소리가 흐르는 물소리를 뒤덮고 산중을 울리며 크게 퍼졌다. 항상 예의 바르던 제자가 자신의 말을 중간에 끊고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처음 본 초윤은 순간 멍해졌다. 하지만 곧 인상을 쓰며 아이를 타일렀다.
“들숨을 자제하라 하지 않았느냐!”
“한 말씀만 올린 뒤 숨을 죽이겠습니다. 혼자 멀리 도망가고 싶지 않습니다. 스승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을 배우고 싶습니다. 제자가 더욱 노력할 테니 부디 기회를 주십시오!”
쟤는 또 왜 갑자기 저렇게 막무가내야?
천오가 마지막으로 외친 말에 산이 다 들썩이는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골치가 아팠다. 이 순간에도 독기에 잠식된 초목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강 너머의 저 아이도 곧 위험해질 터였다. 하지만 천오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바라는 바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결국 급하고 아쉬운 초윤이 뜻을 굽혔다.
“알았다. 알았으니 어서 무심서로 가거라.”
[예, 스승님. 무작스러운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악하게도, 초윤이 요구를 들어주자 천오는 재깍 전음으로 답했다.
어쨌든 아이를 훈계하는 것은 나중에 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은 실시간으로 죽어 가는 산천초목과 그에 따라 위험해질 수도 있는 아이, 그리고 요괴 헹군 물을 생활용수로 쓸 수도 있는 강 하류의 사람들을 구해야만 했다.
초윤이 몇 가지 약재를 알려 주자 천오는 보중하시라는 말을 남긴 채 곧장 몸을 날렸다.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던 초윤 역시 이를 악물고 뒤로 돌아 발을 굴렀다. 훌쩍 날아오른 신형이 험준한 산 속으로 재빠르게 사라졌다.
시간이 없었다.
◇
초윤은 순식간에 천궤산의 능선을 넘어 내리막길을 달렸다. 고개를 들자 하늘을 뚫고 올라갈 듯이 솟아 있는 고도산이 멀리 보였다. 생명력이 느껴지는 다른 산들과 다르게 고도산은 빼곡하게 자란 초목의 색부터 그림자가 진 것처럼 짙었고, 음산한 산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하지만 초윤은 그것이 고도산에 압축되어 있는 기운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장 원초적인, 가장 영험한, 가장 정결한 자연 그대로의 기운은 그 자체만으로도 지성체에게 치명적이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은 산이 뿜어내는 상생과 동화의 성질에 속절없이 휘말려 자아를 잃고 거대한 생태계의 일부가 되기 일쑤였다.
그중에서도 고도산은 제일 무겁고 밀도 높은 기운을 가진 장소였다. 요괴를 포함해 이곳에 사는 모든 생명체에게 자유 의지란 없었다. 저 산안개 안쪽은 오로지 생태계의 존속, 자연의 영달만을 위해 돌아가는 세계였다.
그런 위험한 곳으로 망설임 없이 발을 들이는 초윤의 머릿속은 딴생각으로 가득했다.
‘짐조는 불귀 산맥의 요괴가 아니야. 광동성의 단하산이면 모를까…… 잠깐만, 광동성?’
광동성을 본거지로 삼은 하오문과 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지만 초윤은 금방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희가 이런 짓을 저질러서 볼 이득은 없어. 게다가 짐조를 잡아 불귀 산맥에 풀어놓는 건 웬만한 실력으로는 못 해. 아마 희 옆에 있던 여와라는 무사도 불가능했을 거야.’
아무리 원작의 기억을 뒤져 보아도 이런 짓을 고의로 저지를 수 있는 실력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작중 독의 최강자로 불리던 건 약선 초윤 본인이었고, 사천당문은 주인공에게도 지고 마교에게 독을 빼앗겨 개량당할 정도로 상대적 약체였다.
‘잠깐, 마교?’
주인공에게 위기를 안겨 주기 위해 온갖 설정의 악역들이 급조되어 튀어나오는 마교라면 정하윤이 아직 보지 못한 독의 고수가 있을 법도 했다. 하지만 배후가 누구든 갑자기 불귀 산맥에 짐조를 갖다 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두망산에서 타인의 기척을 느끼진 못했으니 누가 와서 수작을 부린 거라면 최소한 원익산의 진법을 뚫었거나, 아니면 기척을 가려 주는 기물을 썼다는 소린데…… 아니, 지금 중요한 건 배후가 아니라 수습이다.’
어쨌든 당장 우선해야 하는 건 이 상황을 헤쳐 나갈 방도였다. 까딱하면 산 밑에 사는 사람들이 다 죽을 지경이니 다 큰 성인에겐 무심한 면이 있는 초윤도 마음이 조급해졌다.
게다가 이는 어른들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오락과 즐길 거리가 부족한 이 시대에서 강 가까이 사는 또래집단기의 어린아이들이 놀 만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상류의 계곡밖에 없다.
또 이 시간에 강가에 있을 법한 이들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여인들일 테고, 이 물로 농사를 짓고 있던 땅도 다 죽을 테고…… 생각하면 할수록 큰일이었다.
일단 불귀 산맥을 거쳐 내려가면서 독이 어느 정도는 걸러질 테니 약간의 시간은 남아 있다. 짐조의 시체부터 빨리 처리하고 강을 정화하면서 산 아래 마을로 쭉 내려가자.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사이 초윤은 어느새 고도산의 중턱까지 올라와 있었다. 손바닥보다 커다란 나뭇잎들이 햇볕을 가린 탓에 주위는 저녁처럼 어둑했다. 사람 열 명이 양팔로 감싸도 모자랄 듯한 지름의 나무들은 얼기설기 얽힌 채 굳건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무겁게 내려앉은 기운이 폐 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이쯤이면 충분히 깊은 곳에 들어온 것 같았다. 초윤은 고개를 돌려 두망산 쪽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독기를 억누르고 있던 내공을 단번에 풀어 버렸다. 이 극악한 독이 공기 중에 새어 나가지 않도록 무형의 기운을 유형이 될 정도로 압축해 두껍게 두르고 있다 보니 내공의 소모가 막대해서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
아지랑이 같은 독기가 한순간 사방팔방으로 뻗쳐 나갔다. 동시에 세찬 바람이 불며 산이 치를 떨었다. 흔들리며 서로 부딪치는 나무들의 소리가 어찌나 날카로운지 짐승의 위협처럼 들렸다.
초윤은 심호흡으로 허전해진 단전에 고도산의 기운을 채우며 시끌시끌한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그러자 믿기 힘든 광경이 보였다.
주변의 초목이 초윤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의 눈에 성장이 보일 정도면 전혀 느린 게 아니었다. 줄기가 있는 식물들은 천천히 초윤이 있는 쪽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고, 예리하게 벼려진 나뭇가지는 악귀의 손아귀처럼 하늘을 덮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도산은 짐조의 시체와 초윤을 ‘생태계를 망치는 것’으로 단단히 간주한 것 같았다.
‘자…… 잠깐만. 이건 좀 심한데.’
가장 기운이 강한 산이니 짐조의 독이 외부로 퍼지는 걸 막아 주고 자정 작용도 잘할 것 같아 이리 가져오긴 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산의 반응이 예민했다. 산천초목이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처럼 꾸물꾸물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판타지 호러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았다. 까딱하면 초목에 아예 매몰될 기세였다.
원래는 이 산에 짐조의 시체를 묻어 놓고 빠르게 도망치려 했지만 산이 이렇게 민감해서야 문제가 생길 게 뻔했다. 땅에 스며든 독기에 놀란 요괴들이 고도산을 벗어나 다른 산을 덮칠 수도 있었고, 아니면 짐조의 시체를 위험으로 간주한 고도산의 영기가 산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리고 고도산의 막강한 요괴가 다른 불귀 산맥에 풀려난다면 심각한 생태계 불균형을 초래할 게 분명했다. 산사태가 일어나서 짐조의 시체가 쓸려 내려간다 해도 천궤산과 고도산 사이에 있는 망망강에 빠져 똑같은 사태가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컸다.
어떡하지. 사면초가다.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새 자라난 새순들이 발목을 슬며시 휘감았다. 초윤은 진저리를 치며 자신을 구속하는 식물들을 털어 낸 뒤 축축하게 젖은 하얀 보따리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됐다면……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