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불귀 산맥의 초목이 땅 밑에서 단단하게 얽혀 있는 덕분인지, 아니면 초윤이 재빠르게 짐조의 시체를 건져 낸 덕분인지, 혹은 둘 다인지. 상정했던 최악과는 다르게 산 밑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독기는 확연히 옅어졌다. 강물을 흡수하고 시름시름 앓는 물가의 나무들 역시 하류로 가면서 그 수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짐조의 시체가 직접적으로 물에 노출되지 않고 인면수사의 배 속에서 한 번 걸러진 몫도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초윤은 약낭을 간간이 뿌리며 쭉 밑으로 달렸다. 불귀 산맥과 진령 산맥을 가르는 짙은 안개를 지나 산 아래의 마을이 가까워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초윤에게는 별것 아닌 독도 일반인 상대로는 치명적일 수 있어 영 불안했다.
행여나 산속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중독당해 쓰러진 사람이 있을까 싶어 기감도 예민하게 곤두세웠다. 산의 모든 생명체가 강한 기운을 갖고 있는 불귀 산맥에 비하면 속세의 산은 미약하기 그지없어 천오를 잃어버렸을 때처럼 어렵지도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평지를 밟을 때까지 이상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팔팔하게 산을 누비는 약초꾼과 사냥꾼 몇 명은 있어도 제일 걱정스러웠던 아이들의 기척은 없었다.
게다가 산 밑에는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초윤은 천천히 멈춰 서선 안도의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쪽으로 쭉 가면 그대로 섬서성의 중심이잖아. 하남에 버금가도록 번화한 도시인데 짐조의 독이 하천에 섞여 들어갔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야말로 엄청난 수의 사망자를 낼 수 있는 재해가 아닌가. 요괴를 자연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쉬이 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재난이 됐으리라는 사실은 명확했다. 자칫하면 섬서성 사람 대부분이 죽어 나갔을 정도로…… 어, 잠깐만.
‘왜 기시감이 들지?’
문득 느낀 감정에 스멀스멀 불안감이 들었다. 섬서성에 닥친 심각한 사태, 자연 재해, 궤멸에 가까운 피해…… 잇따른 가정이 어째선지 익숙했다. 하지만 정하윤이 살던 현대에서 이와 흡사한 참사가 일어난 적은 없었고, ‘초윤’의 기억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섬서성에 뭐가 있더라? 화산파가 아슬아슬하게 있고, 제갈세가가 있고…… 제갈세가?’
“스승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알 것 같은데. 분명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눈앞이 가물가물하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긴장이 조금 풀린 틈을 타 극성스러운 독기가 전신의 혈류를 타고 온몸을 팽팽 돌았다. 무림 고수의 몸에 들어온 뒤로는 처음 느껴 보는 욕지기가 목 끝까지 치밀었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느낌에 초윤은 반사적으로 입을 막았다. 시야가 기울어지는 것이 단순한 어지럼증 때문인지, 아니면 몸이 비틀거리기 때문인지도 알 수 없었다.
“스승님, 스승님!”
“괜찮…….”
역시 내가 아니었으면 다 죽었어. 나야 무슨 독이든 조금만 버티면 알아서 해독이 되니 괜찮지만 무공 한 자락 모르는 애들이 이걸 먹었어 봐. 분명 역사에 길이 남을 법한 대참사가 났을 거라고.
잠깐만. 대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