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초윤은 분명 모든 언행을 조심했다. 물론 부임도 해 본 적 없고, 자식을 가져 본 적도 없고, 사람인 이상 실수를 아예 안 할 수도 없으니 완벽한 육아를 해냈다고 단정할 순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초윤은 아이가 잘 자라기만을 바라며 지난 8년간 무던히 애를 썼다. 자신과 이 세계의 가치관이 다른 것을 느낄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고, 해가 지면 잠든 아이를 지켜보며 오늘 하루 자신이 실수한 것은 없는지 되새겼다.
그렇게 키운 아이가 초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토록 다쳐 있다. 아플 텐데도 아무렇지 않다며 눈썹 하나 까딱 안 하고, 오히려 더 잘 싸우지 못해 죄송하다 말한다.
초윤은 당연하게도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에게 무공을 가르치며 ‘잘 싸워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은연중에 오해를 품을 수 있는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려는 말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으니 어쩌면 처음부터 곡해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여전히 무뚝뚝한 몸을 벗어나지 못해서, 칭찬이 적어서, 표현이 드물어서 아이를 자꾸만 위축시켰을 수도 있다. 혹은 아이의 입장을 너무 고려한 게 오히려 벽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고, 타인과 어울릴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지 못한 것도 전부 초윤의 오판이며 잘못일 수 있다.
원작의 주천오가 오만하고 무심한 안하무인의 성정이었던 것은 그럴 만한 배경이 있어 납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천오가 이토록 자존감 낮은 발언과 생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생에서 천오의 배경이 되어 준 것은 초윤 자신밖에 더 있나.
함께 지내는 보호자가 아이의 대부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초윤은 천오가 과할 정도로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자꾸만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았다.
제갈세가에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천오가 다치기 전에, 모용서가 나타나기 전에 무사히 동관을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때늦은 후회가 무럭무럭 자라났다. 옅은 수심이 그림자처럼 얼굴에 드리웠다. 초윤은 아이의 흉부를 가로지른 상처에 손을 뻗으며 되뇌듯 말했다.
“너는 하나도 부족하지 않다. 미력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아. 도리어 넘치도록 잘 자랐으니 다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거라.”
마음 같아선 이대로 앉아 아이의 속을 알아내고 싶었다. 왜 이렇게 매번 미안하다 하는 건지, 설마 내가 은혜를 베풀어 너를 거둬 주었다고 생각하는 건지, 언젠가 이에 보답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가진 건지 꼬치꼬치 캐물은 뒤 조곤조곤 일러 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시가 급했다. 점혈을 해 두었다곤 하나 주인공이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를 먼저 치료한다는 무리수를 이미 던져 버렸다. 가진 비밀이 많은 탓에 꼬여 버린 전개를 해결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도망치려 하는데 깊은 대화를 나눌 짬이 있을 리 없었다.
이건 돌아가서 마저 얘기하자. 아무도 없고, 무엇도 재촉하지 않는 무심서에서 얘기하자. 초윤은 무거운 감정을 목구멍 너머로 삼키며 재차 면포를 헹구고 비틀어 짰다. 어느 정도 물기를 덜어 낸 천을 아이의 다친 허리로 가져가자 천오가 우물쭈물 팔을 들어 몸을 드러냈다. 초윤은 환부를 닦으며 짐짓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아픈 것을 숨기지 말라고 했더니 이젠 아파도 견딜 수 있다고 대답하는구나. 영악한 건지, 미련한 건지.”
“……심기를 상하게 해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내 기분을 풀어 줄 요량으로 그런 말을 했다면 명백한 실패다. 나는 네가 고통에 무디다고 해서 손을 대충 놀릴 생각도 없고, 안심을 하지도 않았다.”
울적한 기분을 숨긴 대신 뾰족한 어조가 섞였다. 고민하다 건넨 말이 도리어 스승을 심려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천오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초윤은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아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허벅지에 있는 상처를 치료하려면 하의를 걷어야 했다. 서슴없이 아이의 바짓단에 손을 가져가자 흠칫 굳는 종아리와 움츠러드는 발끝이 보였다. 역시 아프겠지. 초윤은 최대한 조심하며 밑단부터 신중하게 접어 올리기 시작했다.
“네 고통의 한계가 얼마나 높든 상관없다. 네가 아예 아픔을 느끼지 못해도, 지금보다 훨씬 가벼운 부상이어도 똑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처 하나 없이 이겨야 하는 겁니까?”
“…….”
잠시 할 말을 잃어 입을 다물었다. 이건 또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는지 앞길이 막막했다. 시간이 없어 가장 중요한 대화도 뒤로 미뤄 두고 치료부터 하고 있는데 첩첩이 과제가 쌓이는 기분이었다.
초윤은 아이의 바지를 허벅지 위까지 바투 접은 뒤 다시 의자에 앉았다. 드러난 무릎 뒤의 오금을 잡고 다른 손으로 베인 자리를 깨끗이 했다. 마음이 복잡한 탓에 손끝이 닿을 때마다 천오의 대퇴근이 긴장한 듯 조금씩 도드라지는 것도 별다르게 생각되지 않았다.
불안정한 침묵 끝에 초윤이 짧은 한숨을 삼켰다. 이번만큼은 제 목소리가 평소처럼 무감정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네가 이기고 지는 것 또한 내겐 중요하지 않다. 이는 네 인생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네게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제게 원하는 것이 있으십니까? 말씀만 해 주신다면 무엇이든 해내겠습니다. 목표로 삼아 정진하겠습니다.”
득달같이 되묻는 말에 이마를 짚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내가 애를 키운 게 아니라 세뇌를 시켰나 싶은 의구심까지 치고 올라왔다.
결국 들고 있던 것을 놓고 아이의 멀쩡한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훌륭히 성장 중인 몸에 비해 젖살이 덜 빠진 볼은 아직 말랑말랑했고, 스승의 돌발적인 행동에 당황한 듯 초윤을 직시하는 눈동자도 여전했다.
왜 이렇게 내게 무언가를 해 주고 싶어 해서 안달일까. 나는 네가 정말 잘 커 주기만 하면 되는데.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은 죄다 잊어버렸느냐. 술 취한 작자의 주정쯤으로 들렸나 보구나.”
“예? 그런 것이 아니라…….”
“네가 아무런 걱정 없이, 괜한 불안도 없이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한다. 무언가를 실패해도 늘 네 편이 되어 줄 사람과 돌아갈 장소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으면 하고, 네 어릴 적 기억이 언젠가 너를 지탱해 줄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게 바로 가족이잖아. 네가 잃어버린, 내겐 없었던 아주 이상적인 가족.
처음 천오를 데리고 온 이유는 그저 현대의 교육 관념을 지닌 성인으로서의 안타까움에 가까웠다. 인간적인 동정심과 치기 어린 자신감도 섞여 있었으며 무작정 저지르고 본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초윤은 언제부턴가 책임감과 직업 윤리와는 결이 다른 감정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었다. 이를 너무나도 늦게 깨달았다.
“나는 네가 너덜너덜한 몰골로 힘겨운 승리를 쟁취하기보단 멀쩡히 도망치기를 무심코 바라고 마는 사람이다. 과한 보호는 도리어 해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과 머리가 매번 상충하는데 오죽할까. 나를 위해 이기고, 나를 위해 매진하겠다는 말은 내 속을 단단히 잘못 짚어야만 나올 수 있는 소리다.”
발갛게 물든 뺨을 두어 번 도닥인 뒤 손을 거뒀다. 주정(酒精)이 담긴 병을 열어 새 천에 적시자 진한 알코올 냄새가 훅 끼쳤다. 이번에는 좀 더 아플 것이다, 운을 띄운 뒤 손등의 상처로 돌아갔다.
“그러니 부디 아프지 말거라. 너 스스로가 피 흘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도 말거라. 내가 이리 말한다고 해서 다칠 때마다 내 말을 어겼다 생각하지도 말고, 그저 조금만…….”
“…….”
“내가 아끼는 서문천오라는 이를 너도 조금만 더 아껴 다오. 그리고 네 스승을 조금만 더 믿고 의지해 주련.”
차라리 아프지 않은 걸 아프다며 어리광을 부리고, 힘겹지 않은 걸 힘겹다며 투정을 부리는 게 낫지.
아이가 조숙해 봤자 좋을 건 없었다. 남들보다 일찍 성숙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어린 시절을 누리지 못했다는 말이었으며, 자신을 위하기도 전에 남의 눈치를 살피는 방법부터 배웠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자란 반동은 결국 어떻게든 당사자에게 돌아왔기에 초윤은 천오가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사고와 행동을 하며 차곡차곡 튼튼한 자아를 쌓길 바랐다. 이미 큰일을 겪었으니 적어도 자라는 것만큼은 어떠한 굴곡도 없이 원만하길 원했다. 앞으로 부딪힐 수많은 역경에도 와르르 무너지지 않도록, 지칠 때면 지나간 기억을 떠올리며 안정할 수 있도록.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난 못 했으니 너는 해라, 이 마인드 상당히 위험한 거 아닌가. 다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이기심이 될 수 있다는 건 아는데 그 선을 모르겠단 말이지. 어렵다, 정말. 애 키우기 너무 어려워…….’
내심 쓴웃음을 지으며 손등에 이어 팔과 가슴, 허리의 상처를 소독했다. 상처에 닿아도 덜 아픈 과산화수소수나 포비돈요오드 용액을 만들 수 있는 지식이 있을 리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들어 둔 독한 술이었다.
쩍 벌어진 환부에 높은 도수의 알코올이 닿고 있으니 굉장히 아플 게 분명한데도 티 하나 내지 않는 천오의 모습에 보는 사람의 가슴만 미어졌다. 초윤은 볼 안쪽 살을 지그시 깨물며 마지막으로 허벅지의 검상에 손을 뻗었다.
어느 순간부터 시선을 떨어트리고 있던 아이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