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거센 풀무질로 키워 낸 가마 안의 불길이 몸부림을 치듯 일렁였다. 붉은색, 노란색을 넘어 하얗게 달아오른 불꽃은 같은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정도로 맹렬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이라고는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밖에 없는 어둑한 대장간이 번개를 맞은 것처럼 간헐적으로 밝아졌다. 그 가운데, 가마를 마주 보고 앉은 사내의 태산 같은 등이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사람의 손은 인생을 대변한다고 했던가. 고온의 불길을 가장 가까이서 견디고 있는 사내의 두 손은 오랜 시간 쌓인 흉터로 처참했다. 녹인 금속에 데고, 버걱1)이 튀어 상하고, 세운 날에 베이는 건 더 이상 아프지도 않을 정도로 경험했다. 손끝과 손바닥은 사람의 피부라기보다는 흙바닥에 가까울 정도로 거칠었으며 투박한 손톱은 남들의 절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닳아 버렸다. 그마저도 엄지에는 새까만 줄이 그려져 있었고,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 손톱은 더 이상 자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는 남자가 평생에 걸쳐 만든 도구였다. 이제 와선 사내의 전신이 장인의 연장이나 다름없었다.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피부, 숨을 쉴 때마다 고통을 호소하는 목구멍, 아직 여유가 있는 허파, 과할 정도로 발달된 두 팔의 근육도 모조리 이 일만을 위해 단련해 왔다.
나이가 들면서 혼탁해진 사내의 두 눈이 불길 속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아픔을 느낄 정도로 밝았지만 눈살을 찌푸리는 기색도 없었다.
불꽃을 신앙하는 고대의 인간처럼 경건하게 가마 안을 바라보던 남자는 이윽고 그 안에 넣어 두었던 것을 끄집어냈다. 이미 검의 형태를 하고 있는 쇳덩이는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남자는 미완성된 검을 옆에 두었던 물통에 슬쩍 가져갔다. 가장자리만 살짝 조심스레 수면에 갖다 대자 맹렬한 소리와 함께 구름 같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아주 조금만 실수해도 금세 균열이 생겨 버리는 섬세한 작업. 불량을 방지하려면 물 대신 기름으로 온도를 낮추는 게 좋지만, 열산유를 쓰면 필연적으로 쇠가 무르게 굳기에 좋은 검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남자 또한 이 정도로 실수할 인간이 아니었다.
담금질이 끝나면 틀어진 칼날을 바로잡아 준 뒤 검신의 울퉁불퉁한 부분을 하나하나 깎아 내야 했다. 검을 만드는 과정은 그저 인내, 인내, 그리고 또 인내의 반복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다루는 신철(神鐵)은 이제껏 만져 본 것이 아니었기에 지겨운 시행착오를 감안해야 했다. 그나마 오랫동안 두드려 온 감각이 있어 본능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안다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 반복 작업을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건 대체로 장인으로서의 자긍심이지만, 대부분의 명검은 장인의 절실한 감정을 탐욕스레 집어삼키고 태어났다.
그렇다면 이 검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까.
보름 전의 망치질에는 그득한 원한을 쏟아부었고, 칠 일 동안의 연마에는 감사를 담았는데.
새까맣게 탄 쇠의 겉을 줄칼로 긁어내자 새하얀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틈으로 빛나는 눈부신 몸체가 어딘가 불온하게 느껴졌다.
순간 이 검이 햇볕 아래서 둥그스름한 반사광을 내비치는 모습이 남자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검의 이름이 정해졌다.
◇
대장장이 황추가 대장간을 나온 건 그로부터 사흘이 꼬박 지난 뒤의 아침이었다. 반쯤 센 수염과 구레나룻이 덥수룩하게 자란 얼굴을 대충 문지르며 밖으로 나선 황추는 간만에 마주한 햇빛을 만끽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집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
머지않아 도착한 황추의 사가(私家)는 현시대 최고의 장인이 거주한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 쓰러져 가는 폐허였다. 하지만 황추는 아랑곳 않고 다 떨어져 가는 안방의 문짝을 벌컥 열었다. 그와 동시에 조급한 물음이 튀어나왔다.
“홍아는 괜찮소이까?”
좁고 낡은 방의 가운데에는 얇은 이불이 깔려 있었고, 황추의 아들 황홍이 그 위에 죽은 듯이 누워 잠들어 있었다.
이부자리 바로 옆에 단정히 정좌를 한 채 앉아 있던 사람이 나직하게 답했다.
“네가 방정맞게 들어오지만 않는다면 더 깊게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아…… 알겠소이다.”
우람한 덩치에 험상궂은 얼굴을 한 황추는 한없이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홍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자 평안하게 잠든 아들의 얼굴이 한눈에 보였다.
이렇게 고통 없이 쉬고 있는 자식을 보는 게 얼마 만인가. 울컥 치미는 감격에 황추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었다. 황추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들어 아들의 뺨에 가까이 가져갔다.
그때, 바로 옆에서 불어온 가는 실바람이 황추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고개를 돌리자 원인일 게 분명한 남자가 하얀 소맷자락 바깥으로 손끝을 살짝 내보이고 있었다.
“아이 얼굴에 쇠 독 오르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먼저 손부터 씻거라.”
“그, 그러면 안 되지. 알겠소이다.”
쇠 비린내가 풀풀 풍기는 손을 어정쩡하게 든 채 허둥지둥 일어나려 하자 남자가 가만히 황추의 옆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물동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황추는 물동이에 황급히 손을 씻으며 떠오르는 대로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기껏 깨끗해진 손을 검댕 묻은 바지에 슥슥 문질러 닦는 모습을 보고 아주 미세하게 미묘해지는 남자의 표정은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말씀하신 대로 완성은 했소만…… 정말 그 검으로 괜찮은 것이오이까? 만든 사람이 할 말은 아니오만, 그건 자칫 잘못하면 마검이 될 거요. 내 원한은 사라진 게 아니니까.”
“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하긴…… 당신이라면 그 검을 충분히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겠지.”
마지막으로 나온 말은 황추의 혼잣말에 가까웠다. 눈앞의 남자와 만난 지는 고작해야 일주일, 결코 그를 전부 안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어쩐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이라면 분명 그 검에 담긴 원망과 분노를 정제해 가라앉힐 수 있으리라고.
아니…… 어쩌면 사람의 몸을 했을 뿐 정말 선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당장 숨이 넘어가도 이상할 것 없었던 아들을 어찌 치료해 줄 수 있었을까.
황추가 남자의 표정을 볼 수 없었던 건 이 세상 사람답지 않은 그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노인처럼 세어 버렸으나 초라하지 않은 하얀 머리카락, 그에 반해 노쇠한 흔적이라곤 전혀 없는 얼굴, 고상한 몸가짐과 차분한 목소리, 그리고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약초 향까지.
야금술 말고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 본 적 없는 황추의 어휘력으로는 그를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심지어 처음 그를 보았을 땐 그저 압도된 채 바닥에 나부죽이 엎드려 절을 올렸을 정도였다.
황추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남자가 요구한 유일한 조건에 대해 줄줄이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운석으로 검을 만들고 있었단 걸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성공했소이다. 곤오강보다 단단하고, 오금철보다 유연하고, 설화빈철보다 빛나면서 묵강한철보다 어두우니 내 인생에 다시없을 걸작이오. 코등이에는 구름 문양을 넣었고, 검신은 어떠한 상감도 하지 않았소. 이곳으로 가져오면 안휘성 일가의 눈에 띌 수 있어 대장간에 놓아두고 왔소이다.”
“그래, 수고가 많았다.”
“오랫동안 두들기던 놈을 마무리 지었을 뿐이니 수고라 할 것도 아니오이다. 그 검도 원망만 가득 담은 채 태어나지 않게 되어 오히려 감사할 일이지.”
단조롭게 돌아온 대답에 황추가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곧장 검을 받으러 가겠다는 말도 없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약간의 침묵 끝에 먼저 말을 꺼낸 건 이번에도 역시 황추 쪽이었다.
“그, 그래서…… 홍아는 나을 수 있는 것이오이까? 이, 이 녀석이 내게 남은 유일한 자식이오. 안사람도 딸내미도 전부 역병으로 죽고 이 녀석밖에 남지 않았단 말이오.”
이곳은 절강성의 온주시, 도검 장인들이 모여 사는 여수시와는 거리가 있는 해안 도시였으나 다양한 분야의 수공업자들이 월등히 많은 지역이었다. 대장장이로서 굴지의 자리를 이룩한 황추는 바다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대장간을 옮겼다. 여수시가 남궁세가의 세력권인 안휘성의 바로 옆에 있었던 탓에 불온한 손길이 뻗어 오기 시작했던 것도 한몫을 했다.
그 뒤로 몇 년은 평화로웠다. 돌아가는 정세에 관심이 없는 대장장이였기에 남궁세가에게 야금야금 먹히는 절강성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무역선에서 시작된 역병이 온주시 전역에 퍼져 나갔다. 여름 한철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유명을 달리했고, 황추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내와 딸을 허무하게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갑작스럽게 나타난 남궁세가의 사람들은 삶의 의지를 잃어 가던 황추를 더욱 깊은 나락으로 밀어 버렸다.
“그런 귀한 자식을 짐승만도 못한 남궁세가 놈들이 감히…… 감히 그 꼴로 만들어 놓은 것이오. 다음번에 올 때까지 검이 완성되어 있지 않는다면 이 가느다란 목숨마저 끊어 놓겠다고, 그놈들이 감히…….”
전신에 성한 뼈가 없었고, 상하지 않은 오장육부가 없었다. 눈앞에서 정말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는 아들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황추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나를 때려라, 나를 죽여라. 미친 사람처럼 외쳐도 돌아오는 건 냉랭한 비웃음밖에 없었다.
도시 제일가는 의원도 아들의 상태를 보고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죽지 않은 게 용하다고, 아버지를 닮아 타고난 강건함이 있어 그나마 목숨을 건졌다고 했다. 모든 일이 그저 황추의 거절 한 마디 때문에 일어났다. 황추는 이를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정말 검을 만들어 주려고 했다. 눈 한 번 제대로 뜨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아들을 뒤로한 채 대장간에 틀어박혔다.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신철(神鐵)을 꺼내 망치를 들었다. 내리치는 동작 하나하나에 들끓는 원망을 박아 넣었다.
그게 고작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볼품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황추는 쿵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