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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29)화 (129/257)

129화

“누, 누나가 먼저 친하게 지내라고 했잖아!”

“그걸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그냥 친구가 되는 자식이 어디 있어?”

“그렇지만 누나가 편지에…….”

“그럼 모용세가의 근거지나 다름없는 곳에, 그쪽 막내아들이 의심스러우니 뭐라도 알아내라고 구구절절 적어 보낼까?”

주전부리로 가져온 녹두전병을 조금씩 먹던 초윤의 속이 턱 하니 막혔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서로를 마주 보고 탁자에 앉은 남매는 아옹다옹 말다툼을 계속했다.

“하, 하지만 그 뒤로 딱히 하라고 한 것도 없고…….”

“수상한 게 있으면 네가 연락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 설마 그놈한테 단단히 휘말려서 연락도 하나 제대로 못하는 맹추가 됐을 줄 알았겠어?”

“아…… 아까는 나한테 화 안 났다고 했으면서.”

“화가 나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네 일 처리가 너무 허술하다는 거야! 방해가 들어왔으면 어떻게든 떨쳐 낼 생각을 해야지 여기까지 바보처럼 털레털레 끌고 와? 그래서 다른 임무를 믿고 맡길 수 있겠어? 모용서는 스승님께서도 자그마치 팔 년 전부터 주시하시던 인물이라고! 그런 자식을 벗겨 먹진 못할망정!”

열변을 토한 사영이 손바닥으로 초윤을 가리켰다. 이런 이야기가 오갈 줄 알았다면 간식을 먹지 말 걸 그랬다. 초윤은 전병을 내려놓고 차를 마시며 목에 걸린 녹두 소를 간신히 위장으로 넘겼다. 사현이 모용서와 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한꺼번에 들려온 정보가 너무 많아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지금…… 사현이가 모용세가 사람들과 함께 오면서 연락을 못한 게 모용서의 방해 때문이라는 거지? 내가 주시하고 있었단 소리는 또 뭐야? 주인공이니까 신경을 쓰긴 해도 딱히 찾아보진 않았는데……. 그것보다 모용서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걸 일부러 숨겼다고? 어째서지? 행선지를 들켜선 안 되는 일이 벌써 벌어졌나?’

생각에 잠긴 초윤이 가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지금은 원작에서도 생략된 시기였고, 산에만 박혀 산 초윤이 유추할 수 있는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래도 희에게 전해 둔 말이 있으니 조만간 만나서 제대로 물어볼 수 있으리라 애써 안심하는데, 동생의 우유부단함에 단단히 질려 버린 사영의 질책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애초에 친한 게 맞긴 해? 그놈들이 왜 여기 왔는지도 모른다면서. 막내 공자에 소가주까지 한꺼번에 날 보러 왔다는 말을 믿어? 어떻게 된 애가 의심을 못 해?”

“그, 그럼 누나는 누구를 만나든 의심만 하고 살아? 친구 맞아!”

“실컷 이용당해 놓고 친구는 무슨 친구야!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그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말싸움이 과격해지고 있어 황급히 사영의 말을 끊었다. 남매는 잔뜩 인상을 쓴 채 입을 다물었고, 사현의 옆에 앉아 있던 천오는 전병만 우물우물 먹다가 초윤을 빤히 응시했다.

분명 처음에는 화기애애하게 시작했던 것 같은데 왜 이 각도 못 가서 이렇게 되냐. 꼬마였을 적부터 자주 다투긴 했지만, 아무래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탓이 큰 듯했다.

초윤은 차분하게 중재를 시작했다.

“동생이 우습게 여겨진 듯하여 화가 나고 속상한 심정은 이해한다만 과했다. 당한 사현을 나무랄 게 아니라 가한 저쪽을 질타해야지. 사현에게 주의를 주는 건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알았어요, 스승님.”

“너도 나름대로 느낀 점이 있을 것이다. 네 사저의 야멸찬 발언을 전부 이해하고 넘어가라는 말은 아니지만, 무작정 감정부터 앞세워 이기려 든다면 네 손해밖에 되지 않는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머릿속부터 정리하거라.”

“……네, 네. 스승님.”

올해로 스물세 살, 스물한 살이 되는 아이들을 양쪽에 앉혀 놓고 아이 다루듯 하고 있자니 약간의 위화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이 좀 먹었다고 갑자기 인간관계에 능숙해질 수 있나. 밀접하고 소중한 사이일수록 한순간의 마찰로 단단히 틀어질 수 있었고, 초윤은 자신이 키운 아이들이 소원해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단단히 글러 먹은 사람이 아닌 이상 솔직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면 대부분의 일은 해결할 수 있었다. 찻잔을 내려놓은 초윤이 이어서 권유했다.

“사영, 네가 사현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과 염려하는 일을 다시 말해 보거라.”

“……모용서는 무언가 숨기고 있고, 어쩌면 위험한 사람일지도 몰라. 그러니 나는 네가 그를 대할 때 좀 더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어. ……심한 말을 해서 미안하다.”

“아, 아니야. 내가 안일했으니까.”

파도치듯 어지러웠던 분위기가 어색하면서도 원만하게 정돈되었다. 잠깐의 침묵 속에서 멋쩍은 듯 뒷목을 매만지던 사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서하는…… 확실히 조금 이상한 면이 있어.”

“서하라니?”

“원래는 어머니랑 둘이서 살았는데, 모용세가에 들어가면서 이름을 외자로 바꾸느라 모용서가 된 거래. 나한테는 서하라고 부르라 하던데.”

듣고 보니 그런 설정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뒤늦게 주인공의 기원을 떠올린 초윤이 미세하게 끄덕였다. 친한 친구나 히로인한테 본래 이름을 가르쳐 주는 일도 없으면 허전한 클리셰 중 하나였다.

“서하는…… 굉장히 강해.”

“강하다고? 아까 봤을 땐 평범하던데.”

“아니야, 누나. 서하는 나보다도 강해. 서하의 도움으로 벽을 넘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사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자, 사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열네 살밖에 안 된 꼬맹이가 화경을 넘어서 반박귀진(返朴歸眞)이라도 되었다는 소리야?”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그 애가 강하단 걸 알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거든. 겉으로는 전혀 안 보이니까 모용세가의 장로들도 전혀 모르고 있어.”

그야 주인공이니까 충분히 그럴 법도 하지. 초윤은 속으로 마구 끄덕였다. 무공의 경지 중 하나인 화경(化境)은 ‘검강’이라는 기술을 쓸 수 있는 위치로, 문파의 장문인 수준으로 강하고 희귀했다. 하지만 동시에 양산형 무협 소설 속 주인공이라면 약관이 되기 전에 기본으로 이룩하는 단계이기도 했다.

덕분에 화경은 이제 주인공의 환골탈태를 위한 장치나 마찬가지였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천오를 만난 뒤로 4년이란 시간이 더 흘렀으니 더 빨리 강해진 것 같기도 했다.

먼치킨 무협지에 익숙한 초윤은 이 사실을 당연하다는 듯 쉽게 받아들인 반면, 화경이 어떠한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영은 영 믿기 어렵다는 듯 스승을 돌아보았다.

“하오문이 이걸 모르고 있었다니 말도 안 돼. 스승님, 정말인가요? 그래서 문주님에게 모용서를 주시하라고 하신 건가요?”

“……말해 두지만, 그를 지켜보라고 말한 적은 없다.”

“예? 그럴 리가요. 사천에서 문주님을 처음 대면하셨을 때 그렇게 말씀하신 것 아니었나요? 4년 전에는 모용서보다 먼저 섬서성에 퍼질 뻔했던 독을 제거해 주셨고요.”

“4년 전이면…… 사, 삼보대회 아니야? 그때 나도 섬서성에 있었는데, 도…… 독이 있었어?”

“……사형도 섬서성에 계셨습니까?”

“‘사형도’라면…… 너도 섬서성에 있었어? 너 혼자 무심서에서 거기까지 갔을 리는 없고, 설마 스승님이랑 함께 간 거야? 난 불귀 산맥의 강을 통해 퍼질 뻔했던 독을 제거했다기에 거기서 다 해결된 줄 알았는데.”

“스, 스승님도 섬서성에 계셨다고?”

“…….”

초윤은 늘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임기응변으로 행동했다. 모용단을 치료하는 약이 계륵으로 남을 것 같다기에 모용서의 존재를 귀띔해 주었고, 뒷산에 죽어 있는 짐조를 치우다가 대량 학살을 막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런 단순한 대처가 도대체 어떻게 와전되면 이 난장판이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일단 희가 내 말을 또 이상하게 들은 것 같긴 한데…… 뭐, 그래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나.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아이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들려왔다. 못 본 동안 핵심만 골라 묻는 법만 배웠는지, 그중에서도 날카롭게 중점을 후비는 사영이의 목소리가 가장 선명했다.

“짐조는 불귀 산맥의 강에 있었던 게 맞지?”

“원익산을 넘으면 나오는 연파강의 바닥에서 인면수사 한 마리와 짐조가 죽어 있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직접 입수하시어 짐조를 꺼내신 뒤 처리하셨습니다.”

“당시에 독은 어디까지 퍼져 있었는데?”

“불귀 산맥을 넘어 진령 산맥의 아래까지 퍼져 있었습니다. 마을로 새어 들어가기 전엔 정화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섬서성까진 왜 간 거야?”

얌전히 사영을 바라보던 천오의 시선이 매끄럽게 옆을 향했다. 그 끝에는 단정한 자세로 앉아 사색하고 있는 초윤이 있었으며, 사제를 따라 스승을 보게 된 남매는 어리둥절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천오는 알 듯 말 듯 미묘한 얼굴로 한동안 뚫어져라 초윤을 응시했다. 멀뚱히 눈을 마주치던 초윤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입을 벌렸다. 무언가를 미처 말하기도 전에, 천오가 냉큼 선수를 쳤다. 초윤은 천오가 고자질을 할 때 짓는 뒤끝 가득한 표정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스승님께서는 처리할 시간이 여의치 않다며 극독을 지닌 짐조를 날것으로 섭취하셨으며, 이 여파로 인해 결국 혼절하셨습니다. 저는 스승님께서 정신을 잃기 전 하신 말씀에 기대어 스승님을 모시고 섬서성으로 향했을 뿐입니다.”

“뭐라고?”

“서, 섭취?”

이제야 자세한 내막을 전해 들은 남매가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초윤을 돌아보았다. 오래전부터 벼르고 있었다는 듯 초윤을 보는 천오의 얼굴이 얼핏 태연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바보 같았던 선택을 막을 틈도 없이 들켜 버린 초윤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거 단단히 혼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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