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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30)화 (130/257)

130화

오랜만에 만나 왁자지껄 시끄럽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찬물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 아이들끼리 다투는 일이라면 중재자로서 원만히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초윤은 변명도 못 할 짓을 저지른 입장이었다. 기가 찬다는 듯 입을 떡 벌린 아이 둘의 시선이 아프게 꽂혔다. 당시에는 자신이 잘못했다며 울고불고 걱정하던 천오마저도 마음을 다르게 먹었는지, 새까만 눈동자로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그야 걱정이 될 만도 하겠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면 더욱 이해가 가기에 뻔뻔해질 수 없었다. 만약 아이들이 제 튼튼한 몸 하나 믿고 무모한 짓을 한다면 초윤은 그날 밤 잠도 못 이루고 속병을 앓았을 게 분명했다.

몇 년이나 지난 일인데 정말 오랫동안 발목을 잡힌다. 일단 그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 보자. 아무런 말도 없이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무섭게 느껴진 초윤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좋은 발상이 있다면 말해 보거라.”

“…….”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라고!

속으로 소리쳤지만 이미 물 건너간 일이었다. 단박에 말문이 막힌 아이들이 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초윤은 이럴 때마다 제 얼굴을 후려치고 싶었다.

화술이 부쩍 좋아진 사영이 붕 뜬 침묵을 깨트렸다.

“문주님이 해부를 키우시는 덕분에 신수의 능력이 과장이 아니란 사실은 알아요. 짐조라면 깃털 끝이 스친 술 한 잔만 마셔도 즉사한다는 맹독의 신수잖아요. 멀리 떨어진 고도산에 두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요?”

“먹고 남은 뼈만 버려도 성을 내던 산이다. 산맥을 망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후유증은 없으시고요?”

“전혀.”

아이들이 차라리 화를 냈다면 지금보단 나았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기색도 없이 그저 속상한 표정만 짓고 있으니 당장의 질타를 걱정하던 초윤의 머리에도 얼핏 당혹감이 스쳤다.

그때, 사영은 초윤을 힐긋 염탐하고 있었다. 평소와 별다를 것 없이 소슬하고 담담한 스승이었지만 어째선지 제 계책이 먹혀들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무리 스스로를 믿었다지만 이런 일을 냅다 저지르고 알리지도 않았다니, 사영은 스승에게 약간의 배신감마저 느꼈다. 늘 흘러가는 구름처럼 사는 스승의 죄책감을 자극하기 위해선 도리어 약한 태도가 필요할 것 같았다. ‘이미 몇 년은 지난 사건이고 스승님이 인세를 벗어나신 분이란 사실도 잘 알지만, 그럼에도 염려가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정도의 말이라면 쐐기를 박을 수 있을 듯했다. 사영은 초윤의 내적 갈등이 적절히 심화될 찰나를 뾰로통하게 기다렸다.

꾸준하게 눈치 없는 사현이 어깃장을 놓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 근데 그런 걸 드시고 어떻게 괜찮으신 건가요?”

사영이 잠시 간극을 둔 틈을 타, 사현이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사영은 식탁 밑으로 동생의 정강이를 걷어차려던 발을 애써 참고 스승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노려보았지만, 사현은 영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우리 스승님은 한번 말씀하신 건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 이번에 확답을 얻어 놓았어야 했는데! 사영의 속에서 소리 없는 활화산이 터졌다.

반면, 자신이 정말 멀쩡하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된 초윤은 숨통이 트인 기분이었다. 마침 남매에게도 말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정보가 있었다.

초윤은 말없이 빈 찻잔을 들어 눈 밑에 가져다 댔다. 흰나비 같은 속눈썹을 지그시 깜빡이자 눈물 몇 방울이 도르르 굴러 찻잔 바닥에 작게 고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의아한 남매가 그저 가만히 바라본 반면, 스승이 무엇을 할지 예상한 천오는 희미하게 인상을 썼다.

이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초윤은 식탁 위에 내려놓은 찻잔을 손끝으로 밀었다. 부드럽게 밀려 나간 찻잔이 정확히 사현의 앞에 멈췄다. 초윤의 단출한 목소리가 그 위로 떨어졌다.

“긴장한 채 먼 길을 왔으니 몸에 여독이 그리 쌓였지. 마셔라.”

“예, 예?”

당황한 사현이 스승과 사형제를 두리번거렸지만 마땅히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친누나라는 사람은 오히려 궁금하다는 듯 손바닥을 까딱이며 종용했고, 사제는 부럽기라도 한 것처럼 사현 앞에 놓인 찻잔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새까만 시선에 약간의 무섬증을 느낀 사현이 엉거주춤 잔을 들어 올렸다.

스승의 말을 받들어 모시는 건 몰라도 눈물을 받아 마시는 일은 상식적으로 명백히 이상한 일인데, 어째선지 이 안에 자리한 사람들은 그런 인식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진짜 하냐는 듯 초윤과 누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사현이 울상을 짓고 잔에 입술을 댔다. 몇 방울 되지도 않는 짭조름한 액체가 입술과 혀를 적셨다. 잔을 내려놓고 제 입을 막은 사현은 자신이 삼킨 액체가 그저 소금물일 뿐이라고 되뇌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를 작은 양이었지만 괜히 속이 메슥거리는 듯했다.

아니…… 정말로 몸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었다.

혀 위에서 침과 함께 섞였다 생각했던 액체가 볼의 점막과 입천장을 통해 몸에 흡수되는 느낌이 들었다. 위장으로 넘어간 미량의 눈물도 기이한 온기를 품고 있어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따듯한 기운이 더 얇게, 더 넓게 퍼지며 내장과 혈관을 감쌌다. 피로에 둔해진 머리를 일깨우고 눈앞을 맑게 했다.

온기가 사라지고 난 뒤 미미한 약초 향이 구강에서 코끝으로 올라왔다. 사현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숨을 들이켰다. 성격 급한 사영이 득달같이 말을 걸었다.

“뭐야? 뭔데? 뭐기에 그런 표정을 해?”

“이, 이게…… 이게 뭔가요, 스승님?”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겠는 건 사현도 마찬가지였다.

못내 아까운 듯 완전히 비어 버린 잔을 바라보던 천오가 시선을 들었다.

“사형은 이전에도 한번 경험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내가 뭘 경험해?”

“스승님을 섭취하는 것 말입니다.”

“섭취?”

천오의 경악스러운 단어 선정에 입을 떡 벌리는 사현을 놔두고, 무언가 짐작한 듯한 사영이 설마 싶은 얼굴로 스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역시 눈치라면 빠지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육신은 이제껏 받아들인 모든 약과 독을 함유하고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약과 독을 받아들여 몸에 정착시키는 것 또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짐조의 독기는 이미 다스린 지 오래이니 더 이상 경망스레 굴지 말거라.”

“와, 정말요?”

“이런…….”

사영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것처럼 신음을 내뱉으며 한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그대로 생각에 빠져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와 다르게, 자신의 스승이 인간을 벗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현은 마냥 신이 난 것처럼 직설적인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야, 약초와 독초를 많이 접하고 독공으로 현경에 오르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건가요?”

“아니,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그런 체질이 되신 건가요? 타, 타고나신 건가요?”

“타고날 리 없지. 기이한 것을 우연히 먹게 된 탓이다.”

“와, 기연 같은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무, 무엇을 드신 건가요? 공청석유? 금령지과? 아니면 만 년 묵은 거미의 독주머니 같은 건가요?”

“아니.”

“잠깐만, 잠깐만, 사현아.”

짤막한 문답이 오가는 와중, 생각 정리를 끝낸 사영이 손바닥을 들며 끼어들었다. 그제야 사영의 심각한 표정을 보게 된 사현이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스승의 말씀을 흥미롭게 듣고 있던 천오의 눈도 힐긋 사영을 향했다.

사영은 들어 올린 손을 천천히 쥐더니, 초윤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말을 골랐다.

“스승님, 그러니까…… 지금 스승님의 존체가 일종의 약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눈물뿐만이 아니라 피부나 근육…… 기골까지도요?”

“너는 일찍이 보지 않았더냐. 당시에는 사현의 몸이 받쳐 주지 않아 독만 될 뻔했지.”

“그럼 그때 그것이…… 아니, 이것을 이렇게 알려 주시면.”

사영이 낭패를 봤다는 듯 이마를 감싸고 오만상을 썼다. 왜 저 정도로 과민 반응을 하나 싶었던 초윤은 태평하게 한 마디를 했다.

“누설되지만 않는다면 귀찮을 일도 없다.”

“누설할 리가요. 절대 그러지 않을 겁니다!”

득달같이 대답한 사영은 곱게 올려 묶은 머리를 쥐어뜯다 한 음절씩 힘을 주어 말했다. 정말 아무런 고민 없이 ‘우리 애들도 다 알고 있으면 나쁠 건 없겠지. 셋 중에 혼자만 알고 있어도 뭐하잖아.’ 정도로만 생각했던 초윤은 괜스레 무안해졌다.

“다만 제가 하는 일이 새를 보내 낮말을 듣고 쥐를 풀어 밤말을 듣는 것이라……. 아무리 숨기려 한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밀을 뜯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스승님. 저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스승님께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테지만, 그럼에도 이 비사를 온전히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요.”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네가 위험하다면 얼마든지 팔아도 좋으니 알려 준 것이다.”

“…….”

초윤의 대답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곧장 튀어 나갔다. 물론 무림에 새어 나가면 좋을 것 하나 없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제 아이들의 안전이 훨씬 중요했다. 간이 붓지 않고서야 멀쩡히 산속에 틀어박혀 사는 현경의 고수를 떼거지로 죽이러 오겠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스승의 즉답을 듣고 다시 고민하던 사영이 확인하듯 물었다.

“……저희 셋 말고 또 누가 이를 알고 있나요?”

“너희 이외에 아는 자는 다 죽은 지 오래다.”

“후,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렇다면 이건…….”

사영이 침착하게 앞으로의 행동 방침을 모색하고 있을 때, 초윤이 갑작스레 고개를 들며 검지를 올렸다. 스승의 신호를 본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기감을 펼쳤다.

초윤은 해무당을 중심으로 펼쳐 놓은 차음막을 거둬들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이 오셨구나. 시간이 된 듯하다. 나머지는 다녀와서 하자꾸나.”

그에 맞추어 해무당 대문을 두들기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초승달이 밤 허리에 걸린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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