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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32)화 (132/257)

132화

하지 말라는 말씀은 없으셨으니 괜찮겠지. 고민은 짧았다. 제갈설린과 엮인 경험은 홀로 간직하고 싶은 기억에 포함되지 않은 탓도 컸다.

“……제갈설린이라는 진법가를 아십니까? 열다섯 살 남짓한 나이에 절맥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제갈설린? 모를 수가 없지. 걔 비운의 천재 같은 거잖아.”

“오는 길에 스승님께서 그자의 절맥증을 낫게 해 주셨습니다. 혈액으로 치료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고 들었습니다.”

“……뭐?”

사영이 당장 뒤로 넘어갈 것처럼 가슴을 쥐어뜯었다. 혈압이 올라 숨을 쉬기도 어려워 보였다. 천오는 사저의 뒷골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4년 전 섬서성의 독을 해결한 뒤 만날 이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때 제갈설린과 안면을 트신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저는…… 객잔에만 있어 몰랐고요. 스승님을 은인이라고 부르던데, 퍽 따르는 듯했습니다.”

“절맥증을…… 혈액으로 치료했다고?”

“예. 막힌 기맥을 억지로 뚫고 이어 붙이시는 과정을 직접 보았습니다. ……아, 그리고 절강성의 대장장이 황추의 아들도 낫게 하셨습니다. 집단 구타로 죽기 직전이던 몸을 단 며칠 만에 되돌리셨는데, 이도 혈액을 쓰셨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이번에 하신 일이지?”

“예.”

임사영은 초윤의 비밀을 듣자마자 이를 어떻게 숨겨야 할지 격렬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연달아 터져 나오는 폭로는 그야말로 경악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 백 보 양보해서 황추의 아들을 살린 것은 민간인에게 인술을 베풀었다고 이해할 수 있었다. 황추를 만나고 오셨다니, 그래서 천오의 검이 눈에 익었구나. 약간 납득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천혜지봉 제갈설린을 살렸다고?

다른 병도 아닌 절맥증을 고쳤다고?

사영은 진심으로 제갈설린을 멸구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마지막 희망을 품고 물었다.

“제갈설린이 치료 과정을 봤어?”

“아니요. 일찍이 수혈을 짚어 재웠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다…….”

‘약선 초윤은 절맥증을 치료할 수 있다’와 ‘약선 초윤의 피는 절맥증도 낫게 하는 영약이다’는 전혀 달랐다. 아무래도 제갈설린을 죽일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았다. 그나마 운 좋은 구석이었다.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한숨을 내쉰 사영은 식탁 위에 엎드리며 그제야 동생의 질문에 대답했다. 발음이 웅얼웅얼 뭉개진 탓일까,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가 죽어 보였다.

“네 말이 맞아. 스승님은 강하시지. 거기다 심계까지 깊으시고, 이젠 그냥 인간 같지가 않으신 분이야.”

“그, 그렇지? 그럼 누나가 그렇게 어, 엄청 걱정할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하지만, 현아야. 그런 분이 어쩌다 그 깊은 산속에 틀어박혀 살게 되셨는지 생각해 봐.”

이윽고 고개를 든 사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턱을 괴었다. 그러나 사현은 타지에서 생활하며 한 번도 약선 초윤에 대한 말을 꺼낸 적이 없어 스승에 대해 아는 게 딱히 없었고, 천오는 스승의 곁에서만 살아온 덕분에 현재의 초윤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다.

즉 이 중에서 ‘초윤’을 아는 사람은 사영뿐이었다. 사영은 동생들의 반응을 슥 훑어본 뒤 이번에는 피곤한 한숨을 푹 내뱉으며 말했다.

“스승님은 정파연합과 함께 광천마제 초월량을 봉인하신 후 잠적하셨어. 세간에 알려진 정보는 여기까지지만, 스승님이 갖고 계신 자료에 따르면 동 시간대에 다른 곳에서 벌어진 불화가 또 있어. 바로 백협맹의 내부 분열이야.”

“그건 항상 있는 일 아니야? 지금도 딱히 통합됐다고는 할 수 없잖아.”

“분열의 이유가 문제지. 이때 백협맹은 스승님의 거취를 두고 미친 듯이 싸웠어.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고수가 그리 없는 것도 아닌데, 암존이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와중에도 스승님을 놓고 분쟁을 벌인 거야. 어째서일 것 같아?”

“……그만큼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분이시니까요.”

사영은 천오의 말에서 본능적으로 미심쩍은 기운을 느끼고 홱 돌아보았다. 하지만 막내 사제는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이었고, 지금은 얘 말고도 산재한 문제가 산더미 같았다. 엄지와 검지로 양쪽 눈의 앞꼬리를 꾹꾹 누른 사영이 말했다.

“스승님께서 아까 말씀해 주셨잖아. 독공으로 현경이 되어서 그리 되신 게 아니라, 그저 기이한 걸 드셨다고. 현경에 오르신 건 잠적하신 뒤의 일이니까 이때도 비슷한 능력을 지니셨을 가능성이 있어. 아니라면 문제가 더 커져.”

“……‘아는 자는 다 죽은 지 오래다’라고도 하셨습니다. 만일 백협맹의 인물들이 스승님의 존체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여태껏 대대로 물려져 내려왔을 테고, 이를 스승님께서 모르실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유출됐을 확률은 지극히 적지 않습니까.”

“난 지금 전례를 이야기하고 있어. 스승님께서 왜 입산하셨는지 생각해 보라고. 이 당시에 못 볼 꼴을 너무 많이 봐서, 질리셔서 그런 거라니까. 즉 스승님의 육신이 약이라는 정보가 퍼지지 않았는데도 환멸을 느낄 만한 상황이 빈번히 벌어졌던 거야.”

분산된 정보를 취합하고 중심인물의 성정을 짜 맞추어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은 오롯이 희의 특기였다. 이를 오래도록 옆에서 보며 흡수한 사영은 제법 능숙하게 설득력 있는 가설을 세웠다.

“내가 생각하기엔 스승님께서 누군가를 살리신 것 같아. 이번에 보여 주신 행적을 봐선 절대 살아날 수 없는 사람을 이 능력으로 낫게 하셨겠지. 그게 곧 죽은 자도 일으킬 의술을 쓴다는 소문이 되어 퍼지고, 여기에 혈안이 된 정파 세력들이 물밑으로 싸운 거야. 광천마제가 활개치고 다니던 시기인데 다친 사람이 오죽 많았겠어?”

“……그럴 법도 합니다.”

“이 분쟁은 스승님께서 현경에 오르시고 난 뒤에야 잠잠해졌을 게 분명해. 아무래도 현경의 고수는 포섭하기 부담스러우니까. 근데 이제 더 큰 문제가 생겨 버렸어.”

사영이 검지를 들어 사현 앞에 놓인 찻잔을 콕 가리켰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대화의 정보량을 미처 따라잡지 못한 사현이 몸을 움츠렸다.

“알고 보니 스승님이 그런 능력을 지니신 게 아니라, 스승님 자체가 그런 능력이신 거잖아. 심지어 몸만 낫게 하는 게 아니라 불치병도 싹 고치고 체질도 바꿀 수 있어! 무공 경지가 곧 인생의 목표인 무림인들이 이걸 가만히 놔둘 거라고 생각해? 현경이고 뭐고 스승님 피 한 방울만 마시면 인생이 바뀐다는데? 떼거지로 눈 뒤집혀서 칼부림할 게 뻔해. 우린 지금 엄청 부담스러운 정보를 떠맡은 거라고!”

“체, 체질을 바꾼다니?”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네가 무공에 갑자기 재능을 보이게 된 일이 우연일 것 같아? 현아 너는 기억에 없겠지만 스승님의 피를 마신 적이 있어. 아마 그걸 계기로 몸이 달라졌을 거야.”

절맥증은 불치병이지만 체질이기도 하니 말이 돼. 사영이 심각한 얼굴로 납득하며 끄덕였다. 사현은 뒤늦게 경악했다.

“내, 내가 스승님의 피를? 왜?”

“그럴 일이 있어. 깊게 생각하지 마.”

“왜?”

“아, 씨. 그냥 생각하지 말라고.”

짜증스럽게 말한 사영은 동생의 주의를 돌리려는 듯 빠르게 말머리를 틀었다. 얼굴에 물끄러미 붙어 오는 천오의 시선이 얼른 스승님의 이야기를 해 달라는 재촉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셋만 알고 끝나는 거면 차라리 괜찮아. 자그마치 백오십 년이 지날 동안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니까 잘하면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이대로 묻힐 수도 있어. 민간인을 치료하신 것까지도, 그래. 괜찮아. 근데 도대체 제갈설린은 왜 살리신 거야? 걔는 무림인이잖아. 그것도 머리 비상하기로는 따를 자 없다는 애라고. 그 나이에 천혜지봉이라는 별호가 괜히 붙은 줄 알아?”

“8년 전 사천당문에서 금제에 걸린 백호철을 살리실 때도 존체를 이용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아악!”

연달아 터진 발언에 머리를 쥐어 싸맨 사영이 짤막한 비명을 지르다가 고개를 들었다. 산발이 된 사영의 시선을 받게 된 사현이 흠칫 떨었다.

“문제를 알았어. 우리야. 우리가 문제야.”

“뭐, 뭐?”

“지금 행적을 봐선 스승님은 이 사실을 숨기는 데에 익숙하신 분이 아니야. 세상과 동떨어진 분이시잖아. 일이 귀찮아지면 그냥 등선하실 요량이셨겠지. 그런데 그분과 속세를 연결하는 접점이 생겨 버렸어. 사천당문에 가게 되신 이유, 절강성을 찾아가신 이유, 하오문까지 긴 여행을 하게 되신 이유가 전부 뭐야. 우리 때문이잖아.”

초윤이 알았다면 극구 부인하며 잘못은 부주의한 내게 있다고 온종일 해명하고도 남을 추론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건 스승을 대상으로 무한히 약해지는 사람들뿐이었고, 자책 섞인 오해는 걷잡을 수 없이 깊어졌다.

“맞아, 스승님은 이전부터 계속 우리 때문에 하산을 하셨어. 지난 백오십 년보다 최근 십여 년 동안 노출되신 횟수가 더 빈번해. 이전에는 약재를 찾으러 다니긴 하셨어도 누군가를 치료해 주신 적은 딱히 없었거든? 내가 알아. 가장 먼저 스승님에 대한 자료부터 찾아봤단 말이야. 그런데…….”

“잠시만, 사저.”

중얼중얼 이어지던 사영의 말을 가로막은 건 천오였다.

천오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벽 너머의 어딘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사형제 관계치곤 격 없이 자란 남매는 아무런 불만도 표하지 않고 재깍 입을 다물었다. 스승의 뒤를 이어 차음막을 펼치고 있던 사영이 숨을 죽였고, 사람의 기감으로 닿을 수 없는 먼 거리의 인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천오가 작게 말했다.

“누군가 이리로 곧장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손님이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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