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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52)화 (152/257)

152화

그리고 임사현은 자신의 일상과 스스로의 인간성이 고작 이런 작자 때문에 뒤바뀌길 바라지 않았다.

“…….”

사현이 천천히 진정하면서, 남궁옥리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도 조금씩 밑으로 내려갔다. 정신을 잃은 옥리는 움켜쥐고 있던 검도 놓친 채 실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사현은 무력하게 혼절한 과거의 악인을 내려다보며 조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 스승님이 궁금하다고 했잖아. 알려 줄 테니까 일어나.”

“…….”

틀어쥔 옷깃을 흔들어 보아도 옥리는 의식을 찾지 못하고 맥없이 흔들렸다. 어째서인지 모를 허탈감이 뱃속에 가득 차 거북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어리고 약했던 과거엔 태산처럼 보였던 자가 그저 졸렬하기 그지없는 인간이었단 사실이, 그런 자에게 휘둘려 벌벌 떨고 두려워하던 자신이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스승님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주실 수 있을까. 잠시 입을 꾹 다문 사현은 옥리를 다시금 끌어 올린 뒤 무감정한 눈으로 시선의 위치를 맞췄다.

“요녕의 모용세가도, 광동의 하오문도 당신한테 별것 아니라면…….”

“…….”

“약선 초윤은 어때. 그분이 내 스승님인데.”

스승과 떨어지게 된 날 밤, 사현의 누이는 안온했던 무심서가 벌써부터 그리워 눈물을 삼키는 동생을 붙잡고 당부했었다. 우리 스승님은 속세를 떠나길 바라시는 분이야. 우리가 힘을 충분히 기르지 않고 무작정 스승님의 정체를 밝힌다면, 나쁜 사람들이 우리와 스승님을 감히 이용하려 들 거야.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돼. 어디서 배웠냐 하면 그냥 존함조차 모르는 분께 사사했다고 해.

그 뒤로 사현은 정말 한 번도 약선 초윤을 입에 담은 적 없었다. 하오문주 희의 옆에서 다양한 사료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영은 스승의 기록을 찾아보기라도 했지만, 누이만 한 오성은 없던 사현은 그저 우직하게 단련에만 집중했다. 몇 년 되지 않아 결패도 팽치정을 따라 하북으로 떠나게 되었으니 약선 초윤과의 관계성을 드러낼 일은 더욱 없었다. 모용 형제가 사현의 방을 염탐하지 않았더라면 누구도 몰랐을 비밀이었다.

그러니 사현으로선 하산한 뒤 처음으로 스승의 정체를 밝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폐허에는 옥리와 자신밖에 없었고, 혼절한 사람의 귀에 들릴 리 없으니 이마저도 혼잣말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남궁옥리를 이만큼 구타했는데도 누구 하나 오지 않았으니 이 주변엔 아무도 없을 게 확실했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 역시. 냄새가 닮았다고 했잖아.”

너무 놀란 탓인지 정체를 묻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현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온 목소리를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펄쩍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일절 쓸모없는 남궁옥리 대신 사슬을 움켜쥐고,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들었다. 애써 진정시킨 게 무색하도록 쿵쿵 뛰기 시작한 심장이 뻐근한 긴장감으로 조여들었다.

시선이 닿은 대들보 위에는 장난스럽게 쪼그려 앉은 인영이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하얀 머리카락과 기묘한 분위기, 작은 몸집과 밝은색의 눈.

이곳으로 오기 전 저잣거리에서 만났던 소년이었다.

“도대체…….”

“아윤(兒昀)이 네 스승이었구나. 평생 제자 같은 건 들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언제 그렇게 컸을까.”

소년이 쓰던 정체 모를 금술(禁術)이 떠오른 사현은 애써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치웠다. 대신 손에 사슬을 감아 꽉 움켜쥐고 언제든 문을 박차고 나갈 준비를 했다. 위기에 몰려 예민해진 본능이 외쳤다. 저건 단순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초윤(肖淪)이라고? 내가 준 건 분명 윤(昀) 자일 텐데. 이름을 바꿨다는 게 정말이구나.”

“……그런 건 몰라. 당신에게 할 말도 없어.”

“너무 경계하지 마.”

잔뜩 날을 세운 사현의 말에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젓던 소년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육신에 아무런 무게도 없는 것처럼 이질감이 드는 동작이었다.

그렇게 발을 딛고 선 소년은 소리 한 톨 없이 매끄러운 걸음으로 사현에게 다가갔다. 정신을 잃기 전에도 소년에게 도검을 들이밀었던 사현은 망설임 없이 그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여전히 내공을 끌어 올릴 순 없었지만 무쇠도 잡아 뜯었던 맨손의 위력은 절대 범상치 않았고, 단순한 만큼 정면에선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오랜 연마로 다져진 기술이 공기를 가르며 풍압을 일으켰다. 소년의 풀어 헤친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사현의 권골 끝에 감촉이 와 닿았다.

하지만…….

“설마 아윤이 키워 낸 제자가 이런 유형일 줄은 몰랐는데. 가르치면서 작히도 애를 먹었겠어. 아는지 모르겠지만, 아윤은 힘으로 누르는 무공에 영 약하잖아.”

툭.

사현의 손이 소년의 복부에 정말 ‘툭’ 닿았다. 허리와 어깨, 팔을 거쳐 담고 있던 강대한 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영문 모를 일에 당황한 사현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서둘러 좀 더 물러났다. 그러나 태연한 얼굴의 소년이 사현의 뻗은 팔뚝을 꽉 움켜쥐고 손톱을 찍어 넣었다. 깨끗하고 흰 손톱이 옷과 피부를 뚫고 들어가 근육에 고정되자 못을 박은 듯한 통증이 사현을 관통했다.

“윽……!”

폭력적인 방법으로 점혈을 당한 팔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오싹한 저림이 타고 오르며 감각조차 무뎌지자, 사현은 서둘러 소년의 손목을 겨냥하고 반대쪽 무릎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팔의 가죽이 벗겨지더라도 벗어날 요량으로 어깨를 뒤로 뺐다.

하지만 이번에도 소년의 몸에 닿은 공격은 ‘툭’ 건드리는 것에 그쳤다. 오히려 사현의 다리가 가까워진 틈을 타, 소년의 희고 얇은 엄지손가락이 무릎 관절의 옆 부분을 한 치 깊이로 푹 파고들었다. 손톱에 뼈가 긁히는 끔찍한 감각과 함께 발끝과 장골까지 전류 같은 소름이 흘렀다. 사현은 서둘러 자세를 바로 했지만 무릎이 풀썩 꺾였다.

이제 멀쩡한 건 사지 중 두 짝밖에 없었고, 내공은 여전히 느껴지지도 않았으며, 소년이 쓴 수법이 무엇인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어, 어떻게…….”

“아, 미안. 나도 사질(師姪)을 상처 입히고 싶진 않은데, 이 몸이 워낙 약해서 과민한 반응을 하게 되는 것 같아.”

태연하게 말한 소년은 엄지에 묻은 사현의 피를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덥석 제 입에 넣고 쪽 소리를 내어 가며 핥았다. 정말 맛이라도 보는 것처럼 혀를 움직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괴상망측한 행동에 당혹감을 느낀 사현의 등이 축축이 젖어 들어갔다. 다 마른 줄 알았던 식은땀이 이해할 수 없는 자를 만나 다시금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약 내음이 강하구나. 하루 이틀 배워서 될 게 아니야. 약을 빚어 먹였다기엔 강렬하지 않고…… 혹시 약욕을 했나?”

광택 없이 반들반들한 눈이 고민하듯 한 바퀴 돌아 사현을 내려다보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무릎을 바닥에 댄 채, 잡힌 팔 한쪽에 기대 간신히 몸을 세우고 있던 사현은 조금 멍하니 그를 응시했다. 그의 눈에 걸려 있던 금술을 상기하며 경각심을 가지려 해도 자꾸만 충격적인 말이 들려왔다.

사질? 이따위 사악한 술법을 쓰는 자가 내 스승님의 사형이라는 말인가? 자그마치 이백 년을 넘게 산 스승님께 아이의 모습을 한 사형제가 있다는 뜻인가?

이자와 옥리는 무슨 관계고, 왜 광동성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지?

하지만 사현은 절대 자신의 누이가 될 수 없었다. 많은 정보를 듣고 파악해 떠올리고 취합하는 능력 따윈 없었으며, 인고의 노력으로 가진 것이라곤 오로지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혼란스러워하던 사현은 곧 이를 악물었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피 맛이 입 안에 감돌았다. 하나 남은 무릎을 세우고,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땅이 패도록 박차고 튕기듯 일어나며 소년의 목을 향해 이를 세웠다.

이미 한 번 해 본 짓이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조금 치는 정도의 타격만 입힐 수 있다면, 그대로 물어뜯으면 될 일이다. 사현은 스승의 껍데기만을 닮아 불쾌한 이자의 겉가죽을 짐승처럼 찢어 버릴 요량이었다.

그러나 고지를 눈앞에 둔 찰나.

“……이렇게 무식하게 싸우는 건 또 어디서 배웠어. 아윤이 가르쳐 주진 않았을 텐데.”

몸이 굳었다.

바람 빠지듯 내쉰 날숨이 소년의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사현은 자신의 가슴에나 간신히 올 법한 아이의 손에 목을 틀어잡힌 채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우드득, 머리를 울리는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입술 사이로 꺽꺽거리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소년은 사현의 거구를 한 팔로 가벼이 감당하고 대수롭지 않게 그의 정강이뼈를 걷어찼다. 간신히 바닥을 딛고 있던 다리의 뼈가 뚝 꺾이며 힘을 잃었다. 여전히 팔을 쥐고 있던 손에도 점토 주무르듯 힘을 주었고, 굵기로만 소년의 배를 넘던 사현의 아래팔은 시뻘겋게 멍들다 못해 으스러졌다.

숨과 고통이 한계에 다다른 사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축 늘어졌다. 월량은 기절한 사질의 목을 놓고, 대신 목덜미 부근의 옷깃을 쥐었다. 저질렀다는 듯 폭 내쉬는 한숨이 가관이었다. 사현의 맥이 아직 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월량이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위치를 바꿔야겠어. 저놈은 남궁영에게 잘 말해 둬.”

이윽고 문을 열어 바깥을 향하는 월량의 뒤로, 사현의 두 다리가 질질 끌려 나갔다. 폐허에 남은 건 모든 상황을 숨죽인 채 보고 있던 자와 목숨만 붙어 있는 남궁옥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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