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서문천오는 해가 뜨기 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전복을 씻고 내장을 분리한 뒤 바다 냄새 물씬 나는 죽을 마닐마닐하게 끓였고, 입천장이 데이지 않도록 잘 식혀 소담하게 담았다. 밑반찬으로는 식초와 설탕, 고추기름에 볶은 가지와 오이 무침을 준비했고 뜨거운 찻물도 원첩 위에 올렸다. 이곳이 산속이었다면 인삼이니 당귀니 오가피와 대조, 백년향심과 백과까지 가득하게 넣었겠지만 가능할 리 없었다. 장소도 물론이거니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자신의 그릇까지 겸손하게 소반에 올린 천오는 수저를 챙기고 상을 들어 올렸다. 천오는 자신이 정성 들여 준비한 식사가 스승의 입술 사이로 사라질 모습과 스승의 숟가락이 그릇의 바닥과 마찰하며 낼 소리를 상상했다. 기분이 가벼워진 덕분인지 꽤 높은 주방의 문턱을 지나면서도 찻주전자 속 물조차 넘치지 않았다.
이윽고 스승이 체류하는 방 앞에 도착한 천오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문틀의 틈새로 새어 나온 미풍이 발목을 간질였다. 방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천오는 오히려 더욱 거대한 존재감을 느꼈다. 아직 주천화후 중 주천(周天)밖에 대성하지 못한 서문천오였지만 이 너머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원융무애(圓融無碍), 심법의 경지와 내공의 운용이 극에 다다르면 오장육부가 내쉬는 숨이 곧 유형의 바람이 되어 자연과 동화한다는 현상이었다.
천오는 목소리를 내어 스승님께 허락을 받는 것과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적은 폐가 될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자신의 기척을 스승님이 모르실 리 없다는 생각을 하고, 마음을 다잡은 뒤 조심스레 여닫이문을 당겼다. 예상했듯 아무런 잠금도 되어 있지 않았고, 식탁은 을씨년스럽게 비어 있었다. 그리고 열어 둔 창문의 앞에는 등을 돌리고 의자에 앉은 스승의 뒷모습이 보였다.
새벽 그림자에 묻힌 채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스승은 서문천오에게 약간의 공포심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약선 초윤이 해무당에 칩거한 지도 벌써 나흘째, 저 자세로 꼼짝 않고 호흡만 이어간 지는 오늘로 사흘째였다. 천오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며 평정을 되찾았다.
탁자에 소반을 올려놓으며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가 울렸지만 스승은 어깨 하나 움찔하지 않았다. 천오는 신중하게 상을 차리고, 몸가짐을 단정히 한 뒤 스승에게 다가갔다. 의자 옆 바닥에 무릎을 꿇고 어슴푸레한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눈을 감고 허벅지 위에 양손을 모아 잡은 초윤은 꼿꼿한 자세와 약 내음만 아니라면 얼핏 잠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스승님.”
천오는 나지막이 초윤을 불렀다. 간결한 간청에도 스승은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속으로 충분한 수를 세며 기다리던 천오는, 이번엔 손을 뻗어 스승의 발목을 슬며시 쥐고 다시 입을 열었다.
“스승님, 조반을 잡수셔야 합니다.”
“…….”
담담하고 간결한 채근 끝에, 초윤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천오는 그저 스승의 형태를 띤 자연물이 천천히 약선 초윤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눅눅한 푸른색이 덧씌워진 눈동자가 고동색의 광채를 발하고, 창백했던 입술과 뺨에는 핏기가 돌아오며 김서린 한숨을 내쉬는 순간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무아지경에 빠졌던 스승이 돌아오며 철없이 들뜨던 심장은 초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납처럼 쿵 추락했다.
“……느껴지지 않는구나. 이곳을 빠져나간 마차는 전부 들춰 보았다고 했으니 여전히 이곳에 있을 게 분명할진데.”
“……사형 말입니까?”
“그래.”
그야 알고는 있었지만, 사흘에 걸쳐 광동성을 들쑤시고 돌아다니던 스승이 갑작스럽게 해무당에 틀어박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럼 서른여섯 시진에 걸쳐 그리도 강조하셨던 식사까지 마다하고, 빤히 곁에 있는 제자와 눈 마주침도 저어하며 말 한마디 섞지 않으신 이유가 오로지 자신의 사형 때문이었던 것인가. 스승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나서야 겨우 성음(聲音)을 들을 수 있게 된 천오는 이 모든 상황이 솔직히 불만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게 그렇게나 마음을 쏟으실 일인가?
임사현은 이미 일찍이 하산을 했다. 스승과 유년기를 전부 보내지도 않았으며, 스승의 무공을 물려받지도 않았다. 스승의 입맛에 맞추어 음식을 지을 수도 없고 아주 최근까지도 스승에게 폐를 끼쳤다.
무엇보다 임사현은 인간이었다. 사람이라면 늘 예기치 못하게 죽고, 때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대부분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다 가지 않던가. 그중에서도 무공을 배운 무림인이란 족속은 특히나 장수를 기대할 수 없지 않나.
돌연히 가까운 이들을 잃고 홀로 남은 서문천오는 진심으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만일 사형이 정말 죽었다면, 그건 사형의 능력 부족이었다. 정말 강해지고 싶었다면 하북의 듣도 보도 못한 무림인 밑에서 도검을 배우기보단 스승님의 곁에 있어야 했다. 이를 마다하고 홀로 선택했으니 그 대가 또한 홀로 책임져야 했다.
그러나 지금 이건 무슨 꼴인가. 사저 임사영은 일주일째 업무도 내려놓고 광동성을 샅샅이 뒤지느라 스승님께 문안 한 번 못 드리고 있었고, 사저의 밑에 있는 강서단 역시 사형을 찾는 일에만 동원되었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임사현 또한 하오문의 수많은 문도 중 하나에 불과한데도 수많은 인력이 그의 실종에 집중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서문천오와 별다른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나, 처음으로 돌아와 스승님마저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천오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일곱 살 무렵 초윤의 손에 거둬진 이후로 이렇게나 오랫동안 스승의 관심 한 자락 받아 보지 못한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타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함부로 재단하고 폄하하는 건 내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천오는 언젠가 스승이 알려 주었던 대인관계의 요점을 상기하며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아직까지도 흉내 내기에 불과한 공감 능력이 문제였을 뿐.
“사형을 영영 찾지 못하신다면…… 계속 이곳에 머무르실 겁니까?”
서문천오는 여전히 무심서로 돌아가고 싶었다.
천오의 질문을 들은 초윤이 천천히 제자를 내려다보았다. 천오는 스승의 발목을 움켜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고, 입술도 조금 더 굳게 다물었다. 스승의 낯에 내려앉은 그늘이 무엇 때문인지 잘 가늠할 수 없었다.
“아니, 계속 머무르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쯤…….”
“호남으로 가 보아야지. 사현은 장강을 거쳐 하북으로 올라간 적이 있으니 익숙한 지형을 따라 걸음을 옮겼을 수도 있다.”
천오는 새까만 눈동자를 초윤의 뺨에 고정한 채 입 안쪽 살을 어금니로 꾹 깨물었다. 스승의 눈은 언제부턴가 다시 자신이 아닌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북까지 가서도 흔적이 없다면 강서성으로 내려올 것이다. 광서와 복건은 사영에게 맡겨 두는 편이 좋겠지.”
“시신이라도 찾으실 요량이십니까?”
“…….”
천오는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말을 듣자마자 희미하게 움찔거린 스승의 눈가, 자신의 손을 피하는 것처럼 치운 발목, 무언가 말하려다 만 듯 달싹인 입술과 허벅지 위에서 주먹을 쥐는 손 등의 반응을 조합해 ‘심기를 거슬렀다.’는 사실만을 알아차릴 뿐이었다. 이에 황급히 덧붙였다.
“그저 언제쯤 돌아가실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사형이 절명했다고 단정하거나, 스승님의 노력을 헛되이 여길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서문천오.”
스승의 목소리는 가시가 박힌 것처럼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천오는 올라갔다 내려오는 초윤의 목울대나, 무언가를 삭히듯 감았다 뜨는 눈꺼풀을 유심히 지켜보며 이번엔 스승의 손등 위에 제 손을 얹었다. 다행스럽게도 초윤은 이를 피하는 대신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끓는 감정을 억누르듯 강한 힘이 느껴졌다.
“소중한 것을 놓치고 좌절한 이에게 쉬이 최악을 언급하는 일은 현명하지 못한 짓이다. 물건이라면 잃어버린 경우가 될 테고, 생명이라면 죽음이 되겠지. 방금 네 말은 너의 ‘다름’을 아는 내가 아니었다면 넘길 수 없을 정도로 큰 무례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그저 객관적인 예측을 읊었을 뿐인데도 잘못이 될 수 있는 겁니까?”
천오는 흰 머리카락에 가려진 스승의 턱관절이 약간 경직되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또 무언가를 실수한 모양이었다. 초윤은 제자의 눈에 보일 정도로 깊은 심호흡을 두 번 한 뒤 대답했다.
“좌절한 사람은 대체로 자책을 한다. ‘내가 이리 했다면 지금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겠지, 내가 그리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겠지.’ 하며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을 끊임없이 되씹으며 반성한다. 이를 잘 다잡으면 앞으로 저지를 실수를 대폭 줄일 수 있지만, 다잡지 못하면 동아줄을 놓치고 끊임없이 가라앉게 되어 버린다.”
“스승님도 자책을 하고 계십니까?”
“그래, 네 생각보다 처절하게 하는 중이다. 고작해야 스무 살 남짓인 아이가 무어 그리 많이 컸다고 마음을 놓았는지, 내게 주어진 많은 시간 동안 애 찾는 법 하나 익히지 않고 도대체 무엇 하며 보냈는지. 이 몸뚱이 하나 믿고 나태하게 보낸 지난날이 후회스러울 지경이다. 이런 식으로 내 무력함을 체감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
나태하다니, 무력하다니. 스승의 입에서 경악스러운 말이 왁다그르르 쏟아져 나왔다. 천오는 다급하게 무릎으로 다가가며 스승의 손을 마주 잡았다. 바닥의 찬 기운이나 억눌린 손가락의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초윤이 먼저 천오를 내치듯 놓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