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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180화 (180/257)

180화

“네 스승은 연신단을 소화하지 못하고도 살아남은 유일한 아이다. 어렸을 적부터 산나물 같은 거나 좋아하더니, 현경에 들어 그런 능력을 갖추게 될 줄은 몰랐지.”

월량이 가늘게 눈웃음을 짓자 도드라진 혈관이 균열처럼 어긋났다. 이치를 거스른 부정이 응결되어 전신을 적시는 기분이었다. 당장에라도 몸을 뒤틀어 저항하고 싶었으나 눈동자도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빌어먹을, 금술이었다. 금제와 고독 말고는 접해 본 적 없는 영역이었다. 소리 없이 분투하는 사영의 관자놀이로 식은땀이 척척히 흘러내렸다.

평이하게 뻗어진 소년의 손이 사영의 손등을 감쌌다. 제 의지로 움직일 수 없던 주먹은 그의 손길에 속절없이 펼쳐졌다. 사영에게서 은잠을 뺏어 든 월량은 겉면의 섬세한 문양을 손끝으로 하나하나 매만졌다. 연한 웃음을 짓고 남아 있는 핏자국을 문질러 지우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많이 컸구나, 정말…….”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품에 집어넣었다.

제 비녀를 눈 뜨고 빼앗긴 사영의 턱 근육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하지만 전신의 수의근은 이미 통제권을 잃은 지 오래였다. 머리 위로 쏟아진 석고가 그대로 굳은 기분이었다. 심장이 요동치며 혈류가 빨라졌지만 소용없는 몸부림이었다. 흉곽을 부풀리며 간신히 숨만 쉬는데, 월량의 오른손이 천천히 올라가더니 사영의 턱을 만지작거렸다.

“진열대에 올라갈 물건은 이것으로도 충분하겠지. 다행으로 여기렴. 네 눈이나 얼굴 가죽을 뜯어낼 일은 없을 성싶어.”

제기랄, 염병할!

최악의 상황이다. 진열대라니, 이자는 지금 자신과 사현이 잡혔다는 증거를 내밀며 스승님을 제 발로 걸어 들어오게 만들려는 속셈이다!

안 되는데, 우리가 스승님의 약점이 되어선 안 되는데. 안 됐는데! 얼굴을 더듬는 불쾌감과는 별개로, 불길한 조바심이 용암처럼 치밀었다. 흉부를 녹이고 심장을 달구며 전신을 진동시켰다. 결국 저지른 살인은 무용했고 처음부터 손아귀에 놀아난 꼴이 되었다. 사영은 이런 결과를 바라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아무것도 못 한 채 붙잡히기 위해서 스승님께 등 돌린 게 아니었다.

아무리 아우성을 친들 형태를 지니고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없었다. 월량의 손끝이 막힌 목구멍을 트여 주기라도 할 것처럼 사영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이 사이를 벌리고 그 안의 혀끝을 잡아 뺐다. 주방에 숨어든 벌레나 쥐를 집어 올리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행동이었다.

혀가 한 치가량 바깥으로 나오자 불안에 몸서리치던 사영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설마. 씨발, 설마. 여전히 월량의 두 눈에 고정된 시선은 명백한 공포를 머금었다.

월량은 그에 명랑히 웃어 보이며 반대쪽 손을 들어 올렸다. 검지와 중지로 가위를 흉내 내어 사영의 눈앞에서 썩둑거리는 시늉을 했다. 날 없는 교도는 곧 사영의 혀를 사이에 두고 다리를 벌렸다. 불안정한 호흡이 월량의 손등을 간질였다.

“그러니 이는 함부로 사람을 기만하지 말라는 사백의 가르침이다, 맏이야.”

마지막으로 들려 온 목소리는 진저리가 날 정도로 예사로웠다.

계월은 사영과 호관이 사라진 뒷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구멍만 뚫린 삼베 자루는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철저히 가려 주었으나, 가만한 자세에서 배어 나오는 무기력만큼은 감추기 어려웠다. 곧 한숨을 삼킨 계월은 손에 들고 있던 사영의 비도와 암기들을 주섬주섬 제 몸에 챙기기 시작했다.

계월이 사영을 무장 해제하고 호관의 손에 들려 보내는 동안 장원의 담벼락에 기대앉은 채 일련의 과정을 가만히 보고 있던 태운이 불쑥 물었다.

“그렇게 신경이 쓰여?”

“어…… 뭐가요?”

“약선 말을 저렇게 잘 듣는 애가 알아서 튀어나왔을 리 없잖아. 쟤 동생이 진짜 죽을까 봐 날 빼돌린 거지? 네가 부추겼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계월은 담담히 대꾸하며 마지막 단검을 품에 넣었다. 태운은 잠시 송곳니를 드러내며 이죽거리더니 툭 내뱉듯 말했다.

“비녀는 왜 놔뒀어?”

“…….”

“쟤가 발로 나 후려칠 때 비녀가 있는 걸 똑똑히 봤는데, 그건 안 꺼내더라? 약선이 만들어준 장신구 아니야?”

“……모르겠는데요.”

“온중공자가 갖고 있던 방울처럼 약선 초윤에게 그 비녀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계월은 입을 다물었다. 지그시 이를 악물고 천천히 호흡했다. 두 눈은 미동도 없이 널브러져 앉아 있는 태운을 응시했다.

긴장감을 숨기지도 못하는 계월을 보며 히쭉 웃은 태운은 곧 무릎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저기 걸레짝이 될 정도로 너덜너덜해졌던 게 언제냐는 듯 어느새 상흔은 얼추 아물어 있었다. 끄응 소리를 내며 어깨를 몇 번 돌린 태운이 계월에게 자박자박 걸어갔다. 일부러 내는 흙 소리가 적막한 장원을 메웠다.

이길 수 있을까. 아니, 도망갈 수 있을까. 계월은 아둔하던 모습이 무색하게도 기민하게 머리를 굴렸다. 아까 전까지 초윤에게 제대로 된 상처 하나 못 입히고 나려타곤이나 연신 선보이던 태운이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약선이 상상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오운단의 단장 태운은 절대로 약한 자가 아니었다. 극한으로 익힌 외공과 야생동물 같은 본능, 금수만도 못한 폭력성이 어우러져 태어난 괴물이었다. 마교 내부에서는 저자가 명상을 할 인간성만 있었어도 교주 자리를 넘봤으리라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도주할 수 있도록 지그시 발목에 힘을 주는 계월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운은 손에 묻은 피를 옷에 대충 문지르며 태평하게 말했다.

“8년쯤 됐나? 명토(冥土)의 문을 따고 그 아래 주역이랑 접촉한 게 너지?”

“……명토요?”

“모르는 척하지 마. 반역자를 수감해 두는 본교의 지하감옥 말야. 거기서 교주님의 아들을 찾아다녔잖아, 너. 그전까지는 첩자질에 관심도 없어 보이다가 갑자기 큰일을 벌여서 꽤 놀랐다고.”

“…….”

어디까지, 그리고 얼마나 더 알고 있을까? 끝을 예감한 계월이 잠입한 이래 처음으로 신경을 예리하게 곤두세웠다. 이래서 첩자 일은 적성에 안 맞는다고 버텼던 것인데, 부득불 내 천직이라며 밀어 넣은 문주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이제껏 받아 온 막대한 월급과 곧 나올 사망위로금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오문주는 돈 계산에 관련해선 누구보다도 믿을 만한 사람이었으니, 계월은 더 이상 좌절하지 않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 또라이 새끼는 왜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는 거야? 계월은 속으로 욕설을 구시렁거리며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 올렸다. 늘 무기력하고 무관심하던 부하의 비장한 눈을 마주친 태운은 그 앞에 멈춰 서더니 슬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눈동자를 한 바퀴 굴리며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아……. 근데 지금 나, 아무래도 잇따른 전투를 수행하기엔 신체적 여건이 영 여의치 않은 것 같지?”

“……뭐라고요?”

“다름 아닌 약선 초윤을 상대했으니 말이야. 그것도 원래 내 일이 아닌데 우연히 가까운 곳에 있다고 끌려온 거고, 무모한 계획이라고 말했는데도 무시당했지?”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계월이 자루 너머로 눈살을 찌푸렸다. 미친 또라이에 예측하기 어려운 괴짜지만 머리는 좋았던 것 같은데, 갑자기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기지개를 켜듯 다분히 작위적으로 양팔을 쭉 폈다가 머리 뒤에서 손깍지를 낀 태운은 감았던 눈을 슬쩍 뜨고 계월을 힐끔거렸다.

“약선 초윤한테 아주 작신작신 당해서 맥없이 끌려오기까지 했잖아. 걔 아니었으면 죽었을 테고, 정신적 충격도 상당할 게 뻔하지?”

“…….”

“그러면…… 아무리 부하라 한들 엄연한 본교의 교육을 받고 자란 고수인데다, 그중에서도 철저히 엄선해 낸 단원을 쉽게 죽이긴 어렵겠지?”

계월이 흠칫 몸을 떨었다. 이제야 말을 알아듣는 듯한 모습에 픽 웃은 태운이 하품을 하며 빙글 돌아섰다.

“아, 아깝다. 죽이는 것뿐이었으면 몰라도 ‘참수한 머리를 하오문 주륜각의 최상층까지 가져오라’는 밀명이잖아. 기물도 잃어버린 이 너덜너덜한 몸뚱이로 그게 되겠어? 그것도 남궁영이 하오문주를 독대하는 사이에 갖다 바쳐야 한다는 시간제한까지 붙었는데?”

“……단장님.”

“지금쯤이면 다 끝나 가고 있겠지? 어휴, 못해. 병자가 그걸 어떻게 해. 하오문 첩자의 수급을 본교와의 접점으로 몰아가려 하던 것 같은데,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 하나만 믿고 맡긴 게 잘못이라고. 난 고작해야 상투적인 대사나 뱉으러 다니는 말단이잖아.”

벼락같은 충격이 계월의 뇌리를 뒤흔들었다. 남궁세가가 하오문을 함정에 빠뜨리려 한다! 빚에 팔린 아이를 거두어 사람 구실 시켜 주었던, 글과 무공을 가르치며 가족이 되어 주었던 본문에게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우려 한다!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 그 계기가 되어 줄 수도 없었다. 내가 첩자라는 사실은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 이런 용도로 쓰기 위해 가만히 놔두었는지, 도대체 왜 이렇게 놓아주는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계월은 등을 돌렸다. 그보단 문주님을 지켜야 했다. 화경의 끝자락에 다다랐다는 무림맹주와 독대하고 계실 그분께 이 계략을 알려야만 했다.

그대로 달려 나가는 계월을 돌아보지 않은 채, 태운은 고요한 장원의 한가운데서 멀어지는 기척을 음미했다.

“멸절보다는 전쟁이 재밌겠지……. 대등한 싸움이 되어야 오래 이어질 테고.”

폭력을 향한 갈증으로 낮게 잠긴 목소리는 참을 수 없는 소성(笑聲)을 머금고 있었다. 태운은 혀끝으로 입술을 축인 뒤 마른침을 넘겼다. 목울대가 움직이며 욕망을 삼키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이번에야말로 싸우다 뒈졌으면 좋겠다……. 기도처럼 간절한 열망 끝에 남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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