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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183화 (183/257)

183화

“아하하하! 하핫, 흐하하! 아, 설마 했는데! 정말 설마 했는데 이렇게까지 예상과 똑같을 줄이야! 아하하, 하하핫!”

듣기 좋은 미성으로 깔깔 웃는 소리가 천장을 찌르며 날카롭게 울렸다. 우스움에 못 이겨 치는 손뼉에 호갑투 부딪치는 소음이 짤까닥짤까닥 섞여 들었다. 머리카락이 엉키고 비단옷이 흐트러지도록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던 희는 한참 뒤에야 겨우 속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는지 숨 가쁘게 헐떡이며 눈물을 닦은 희가 말했다.

“어우, 죄송해요. 아까부터 웃음을 참느라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흐흣, 흐하핫……. 탐욕스러운 손……. 남궁영이 내게 탐욕스러운 손을 운운한다고? 흐핫…….”

“……하오문주.”

“진짜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면전에서 이렇게나 웃다니 제가 좀 무례했지요?”

대소하다 못해 뒤집어지는 희를 아연하게 바라보던 남궁영이 정신을 차리고 음산하게 되물었다. 희는 그제야 손을 내저으며 일방적인 사과를 하곤 한숨을 폭 내쉬었다.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몇 번이고 깊은 호흡을 한 뒤 책상 위 서류를 뒤적이는 행위엔 일말의 긴장감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두려운 듯 보였던 모든 행동이 모략일 뿐이었나. 분노한 듯 느껴졌던 모든 동작도 이 몸을 속여 넘기기 위한 수작질에 불과했나. 오랜 시간 부패의 정점에 군림하며 익혀 온 감각이 경종을 울렸다. 주먹을 쥐고 턱을 굳힌 남궁영은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희를 노려보며 기감을 넓혔다. 문주를 독대하는 절차로 검은 다른 이에게 맡겨 두었으나, 남궁영은 백협맹을 대표하는 무림인이었다. 하오문의 간자(間者)와 장사치 하나쯤은 여차하면 얼마든지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다시 만날 땐 목만 올 줄 알고 새겨 준 흉터였는데, 이렇게 멀쩡히 보게 되어 정말 기쁘네요.”

“전 문주님 장기짝으로 죽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으니까요. 쥐어 주신 금액이 한 관이라도 모자랐다면 제 입 안을 직접 째는 일 따위 안 했습니다. 하물며 보통 글자도 아니고 하오(下汚)라니.”

이쯤 됐으면 그놈의 이름 좀 바꾸자니까. 중얼거린 계월이 바닥에 발끝을 세우고 발목을 돌려 풀었다. 그리고 옆에 정좌한 남궁영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성큼성큼 희에게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특수임무를 전담하는 마교 부대는 하나같이 기척을 위장하는 법부터 배웠던가. 패착에 이르게 된 결정적 요인이라 생각하자, 저 발모가지를 자르고 싶단 충동이 치밀어 올랐다.

손님을 앞에 두고 정다운 인사를 나눈 희가 남궁영을 바라보며 다시금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오래전에 심어 둔 사람을 보고 오해하신 것 같네요, 맹주님. 공사가 다망하신데 괜한 심려를 끼친 것 같아 죄송스러울 따름이에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하오문이 마교의 위장 단체일 가능성은 아예 배제하셔도 된답니다. 음, 자택에 모아 두셨다는 증거를 제 눈으로도 한번 보고 싶은데요.”

“…….”

“아, 혹시 그 서찰부터 보여 주실 수 있나요? 얼핏 봐선 섬서성의 제 별장에서 나온 종이 같은데…… 마침 그곳을 관리하던 지부장 왕정이 정탐꾼 노릇이나 하고 있었단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거든요. 조만간 축출해 내기 위해 실증을 모으던 참이었는데, 가져와 주신 것들이 딱 좋은 증거가 되어 줄 듯해요.”

희는 키득거리는 웃음을 감추지 않고 화려한 손을 내밀어 까딱였다. 희의 곁에 도달한 계월은 호위라도 하듯 남궁영을 돌아보며 절도 있게 뒷짐을 졌다. 남궁영은 그제야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계월이, 남궁영이 광동성에 들어오며 부른 마교의 일원이, 약선 초윤의 제자를 납치하고 광천마제 초월량의 수발을 들게 한 솔정이 사실상 하오문의 첩자였다.

백협맹주 남궁영은 어디서부터 놀아났는가.

“참, 저도 보여 드릴 게 있어요. 맹주님께서 광동에 입성하시고도 한참을 오지 않으시기에 좀 더 완벽한 대접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대화의 흐름이 여기까지 올 줄 알았다는 듯, 남궁영이 운운한 영약 의뢰는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조차 짐작했다는 듯 일찍이 꺼내 둔 서류의 아래 장을 펼치는 손짓이 가볍고 경쾌했다. 남궁영은 기감에 걸려드는 인간의 기척이 둘뿐이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다름이 아니라, 광동성에 빙문해 주신 사의(謝儀)로 그 흉수의 정체를 알려 드리고 싶었거든요. 위고금다하신 맹주님께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일은 이 정도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일단 두 분께 앙심을 품은 이가 있는지 행적을 되짚어 보았는데…… 남궁 공자님들은 하나같이 유람을 좋아하셨더군요.”

엄지와 검지로 얇은 종이 한 장을 끄집어 올린 희가 살며시 웃었다. 최근에 준비했다고 하기엔 이미 조금 바랜 닥지였다.

무용군주 희는 도대체 언제부터 이 순간을 예견하고 있었는가.

“공자님들이 일주일 이상 머무신 곳마다 특이한 일은 없었는지 조사를 좀 했는데, 이상하게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 뭐예요?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아이가 사라졌다.’, ‘마을의 몇 안 되는 건장한 아이였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부모가 실성을 했더라.’, ‘무골이 있어 보여 동네 장원에라도 보내려 했건만 가을걷이를 하기 전에 실종됐다.’……. 다 공통점이 있는 게 신기하지요? 각자 다른 지역인데 말예요.”

손가락만 떨어트려 서류를 놓자 오래된 보고서가 소리도 없이 책상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저 한 장만 처리하면 될까. 스스로도 어림없는 궁리를 하던 남궁영은 문득 희와 자신의 처지가 어느 순간 완전히 역전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으득 이를 갈았다.

한없이 즐거워 보였던 희는 다른 곳으로 잠시 시선을 돌리더니, 곧 구역질을 눌러 참는 듯 메스꺼운 표정으로 상대를 쏘아보았다. 남궁영은 드넓은 창공처럼 새파란 두 눈에 선명히 어린 경멸을 마주하고 난생처음 수치심을 느꼈다. 연지 바른 입술이 비틀리며 매서운 송곳니를 내보였다. 저변에서 들끓는 분노를 사정없이 긁고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주륜궁주(紂倫宮主)의 거친 으름장처럼 들리기도 했다.

“관아에서도 거들떠보지 않는 하층민이랍시고 죄 없는 애들을 얼마나 갖다 팔았지? 반항도 제대로 못하는 애새끼들 잡아다 납품하는 게 네놈의 인덕이자 의협인가?”

남궁영의 이성은 거기까지였다.

뚝, 끊기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어느 순간 머릿속이 시원하게 트여 정신을 차려보니 한 걸음의 진각을 성큼 내딛는 중이었다. 검은 없었다. 그러나 저 흰 목을 틀어쥐고 단번에 꺾을 여유는 충분했다. 넓은 하늘을 한 손에 틀어쥔다는 금나수(擒拿手) 대연십구식(大衍十九式)의 묘리가 남궁영의 투박한 손끝에서 발현되었다. 남궁영이 행동하는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한 계월이 흉수(兇手)를 막기 위해 그 사이로 끼어들려 했으나 화경의 벽도 넘지 못한 첩자 따위 처음부터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

상황을 파악하고 수습하려는 이성은 본능의 뒤를 따라 느지막이 끌려 나왔다. 이대로 희와 계월을 죽이면 백협맹주 남궁영은 이전의 명성과 위상을 지키지 못할 게 분명했다. 독대를 위해 올라온 사람이라곤 남궁영밖에 없었으니 이 둘이 곧장 죽어 나온다면 범인으로 지목될 자가 명확한 탓이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바로 백협맹주 남궁영인데!

일단 죽여서 저 입을 틀어막고 난 뒤 마교의 소행으로 덮으면 그만이다. 약간의 시간을 버는 사이 마교도를 호출해 상황을 꿰매면 그만이다. 여차하면 광동성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는 집행부를 불러 하오문, 이 더럽고 교활한 쥐새끼들의 소굴을 모조리 쓸어 버리면 그만이다. 이제껏 해 온 것처럼 전부 궁지로 몰아세워 절벽 아래로 투신시키면 그만이다!

거목처럼 웅건한 기세로 감추고 다녔던 썩은 속내가 사정없이 노출되었다. 각박하게 뻗은 손 너머 위치한 희와 시선이 마주쳤다. 간만에 구미를 돋웠던 얼굴이 한심하다는 듯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유리알처럼 영롱한 눈동자에 얼핏 비친 자신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추악하고 불결한 낯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궁영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다.

“이, 이런…… 무슨, 이건 도대체 무슨 비겁한 사술이지?”

“사술이라니요?”

“어…… 암존 초월량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움직임을 멈추게 만드는 사술을 씁니다. 그 비슷한 거라고 착각하신 게 아닐까요.”

“아아……. 이런, 치사하기 짝이 없네요. 그런 사술만 모아 둔 비급은 없나요? 있다면 하나 갖고 싶은데.”

“못 찾았습니다.”

“아쉬워라.”

금나수를 중간에 제압당한 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굳어 버린 남궁영을 앞에 두고, 희는 계월과 시답잖은 어조로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대화를 나누었다. 남궁영은 철저히 무시당한 노여움이 가신 뒤에야 제 공세를 가로막은 수법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희가 들어 올린 한 손을 가볍게 오므려 주먹 쥐었다. 손가락을 감싼 금속 보호구가 머리카락보다도 얇은 실에 쓸리며 끼릭끼릭 거슬리는 소음을 자아냈다.

“가만히 계세요, 맹주님. 저는 당신의 사지를 되도록 멀쩡히 전시해 두고 싶답니다.”

두꺼운 비단옷과 얄팍한 살가죽을 파고들어 육신을 촘촘히 옭아맨 실타래는 다름 아닌 사검(絲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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