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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193화 (193/257)

193화

월량의 소리 없는 신호를 받은 마교도들은 전선에서 이탈해선 일제히 같은 장소로 향했다. 영문도 모른 채 가담하던 백협맹의 집행부도, 그들과 대적하던 하오문의 무사들도 느닷없는 현상에 당황해 허둥거렸다. 그러나 교인들은 뒤에서 날아온 공격에 치명상을 입든, 상관의 명령 불복종으로 즉결 처분을 당하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들을 부른 우두머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각자의 까닭으로 주륜각에 당도한 이들은 쑥대밭이 된 공터를 에워싸고 하나같이 얼어붙었다. 수백 쌍의 시선 끝에 걸린 두 인물이, 그들을 중심으로 흘러나와 낮게 깔린 진기(眞氣)가 밤안개처럼 텁텁이 뭉쳐 진입을 방해했다. 무언가에 억눌린 것처럼 일정 반경 안으로 발을 들일 수도, 엄연히 본인의 육신인 제 입을 열 수도, 수십 년 잡아 온 검을 뽑아 들 수도 없었으나 목 위에 지닌 눈알만은 자유로웠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너희들의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라는 듯 유일하게 허락된 권리였다.

기이한 침묵이 사위에 내려앉았다. 그 가운데서 소리 없는 오열만 하염없이 토해 내던 하윤은 생각했다.

아, 이거 안 되겠구나.

마음만 먹는다면 눈앞의 초월량을 제압하는 일 따위 어렵지 않았다. 운예검이 박혀 있다는 초월량의 본래 몸뚱이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어리고 볼품없는 육신에 넋만을 깃들인 지금의 초월량은 반쪽만큼의 기량도 내지 못하니 내공은 물론이고 무공마저 쓰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한다면, 초월량은 무공 없이도 초윤의 세 아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 손을 뿌리치고 저 목을 꺾으면 뭐 하나. 백발 소년의 몸은 초월량 본인의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빌리고 갈취한 남의 그릇이었으니, 또 다른 타인의 육체를 빼앗아 현현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었다. 초윤은 초월량이 되살아난 방도를 짐작조차 못 하는 눈치였고 하윤이 지닌 원작의 기억마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야말로 사면이 꽉꽉 막힌 난관이었다.

발밑을 받치고 있던 지반이 부스러지는 기분이었다. 아래로는 까마득히 바닥이 보이지 않았고, 벗어나는 길은 뻔한 내리막이었다. 막연한 와중 월량과 맞잡은 초윤의 손끝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하윤은 초윤의 속에 피어오른 살의의 불씨를 기민하게 움켜쥔 채 조금이라도 더 후회가 덜할 선택을 모색했다.

이자를 물리치고, 침입자도 전부 없앤 뒤에 아이들을 데리고 두망산에 숨으면…… 아니, 불귀산맥의 진법은 이미 몇 년 전에 파훼당했다. 기척을 감추는 기물의 복제품이 얼마나 나도는지 모르는 이상 경계를 강화하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얌전히 이자를 따른다면…… 하지만 마교의 기세가 너무나도 공공연했다. 원작대로라면 한참 뒤에나 활개를 쳤어야 했을 남궁영이 벌써부터 설치다가 나자빠졌으니 앞으로의 전개는 크게 둘 중 하나였다. 마교가 몸을 사리거나, 아니면 꼬리를 밟혀 광란하거나. 광천마제 초월량이 호언장담한 대로 초윤 하나만을 데리고 은거한다 한들 마교 전체가 들고 일어난다면 소용이 없었다. 내 아이들이 안전하려면…….

……아니, 마교의 준동은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나. 월량이 마교와 큰 연관이 있는 건 확실했지만, 마교의 행패를 다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어쩌면 광천마제 초월량을 은거시키는 것만으로도 무림에겐 천만다행일 수 있었다.

역시 초월량을 완전히 없애야만…….

그러나 이건 방금 월량이 직접 언급하지 않았던가. 초윤은 이유가 어쨌든 이백 년이 넘도록 월량을 죽이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지금부터 조사하려 해도 단서를 찾으려면 이자의 본체를 보러 가야만 했다. 월량을 죽이든 살리든 이자의 혼백이 묶여 있을 몸을 직접 대면해야만 길이 보이리라고 하윤의 직감이 말했다.

초윤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사실은 당장 뒤돌아 아이들을 보듬어 안을 수만 있다면 나 하나쯤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생각하는 척 입을 다물고 머리를 굴린 까닭은 스스로의 맹목적인 행동에 어떻게든 마땅한 변명을 붙이기 위해서였다. 따라가기만 한다면 아이들에게 더 이상 손대지 않겠다는 말에 고민도 없이 덜컥 넘어가 버린 멍청이가 되지 않기 위해, 나중에 더 큰 대가를 감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구실을 짜고 있을 뿐이었다.

목구멍 뒤를 갈퀴로 긁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감정엔 어느새 무감각해졌다. 더는 타오를 가슴도, 찢어질 정신도 없었으나 어째선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 몸에 자리한 두 명의 의식 중 누가 이리 우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옷소매를 척척히 적시며 가만히 초윤을 올려다보던 월량은 곧 만개하듯 기쁜 표정으로 아우의 몸을 한껏 그러안았다. 너라면 그리할 줄 알았다. 모든 선택지를 끊고 자르고 막은 주제에 알량한 대답 따위 입에 올리지 않아도 안다는 듯 구는 꼴이 가증스러웠다.

월량은 초윤의 품에 뺨을 비비며 잡고 있던 손 위를 천천히 더듬어 올라갔다. 거미 두 마리가 소매를 파고들어선 팔뚝을 타고 기어 다녔다. 이윽고 초윤의 양쪽 팔꿈치를 쥔 월량은 옴폭한 팔오금에 엄지손톱을 세우더니, 그대로 손바닥 가운데까지 쭉 그어 내렸다. 고작해야 어린아이의 무딘 칼날에 불과했으나 뜨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눈동자를 떨구어 보니 팔뚝 안쪽이 일직선으로 깊게 베여 쩍 벌어진 채 송골송골 피가 맺히고 있었다.

“훈육이었다곤 하나 다친 아이들을 이대로 내버려 두고 갈 순 없지.”

사근사근 말한 월량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너그러이 베푸는 것처럼 피에 젖은 손을 가볍게 벌리며 살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당장 떠나고 싶지만, 너와 만난 일이 일평생의 기연인 아이들 아니니.”

마교도와 백협맹, 그리고 살아남은 하오문의 무사들은 어렴풋이 형태만 남은 관중처럼 숨을 죽였다. 무대를 마련한 월량은 구태여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그리고 선심 쓰듯 떨어진 허락은 초윤에게 내밀어진 목줄이나 마찬가지였다.

“약이라도 발라 주고 오렴. 스승이 된 책임은 져야지.”

그것도 스스로의 손으로 숨통을 조이고 손잡이를 바쳐야 하는 물건이었다.

사람을 이토록 모아 벽처럼 둘러 세운 이유가 무엇인가. 수많은 눈이 초윤을 바라보게 만든 까닭은 무엇인가. 아낀다는 아우의 몸에 상처를 낸 연유는 무엇이고, 발라 주라는 약의 정체는 무엇인가.

월량은 지금 너의 비밀을 폭로하라 명령하고 있었다. 네 몸뚱이가 영약이란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네가 돌아와 숨을 곳을 직접 메우라 말하고 있었다. 공청석유 한 방울과 동자삼 한 뿌리에 눈이 멀어 멸문과 멸족도 불사하는 무림인들이 약선 초윤의 피에 대해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흰 머리의 청년이 보였다는 정보가 들어오는 족족 온 중원을 들쑤시고 득달같이 달려들 게 분명했다. 초윤이 이룩한 지고한 경지는, 그동안 쌓아 온 고결한 명성은 엉겨 붙어 불어난 다수의 욕심 앞에서 무의미할 뿐이었다.

하윤은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하윤이 아는 사실을 초윤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거부할 수 있겠는가. 내 아이들이 나를 부르고 있는데.

뒤도는 발걸음이 가볍고 급했다. 월량에게 등을 보이는 순간부터 주도권은 정하윤에게 되돌아왔다. 성급히 뛰어 삽시간에 당도했지만, 시간은 그마저도 아까웠다. 허물어지듯 아이들 앞에 무릎을 꿇자 가장 먼저 초윤을 가로막고 거머쥐는 손은 뼈가 보일 정도로 너덜너덜했다.

“스승님! 왜…… 어째서 낙루하고 계신 겁니까. 저자와 무슨 대화를 하신 겁니까. 도대체 저자가 무어라 했기에……!”

“한가로이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니다. 앞으로 와 앉거라.”

“기다리라 하셨기에 기다렸습니다. 스승님의 명을 듣지 않아 경을 쳤으니 그저 얌전히 따랐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저자의 무도한 손질을 용납하신 겁니까. 이럴 줄 알았다면…….”

당혹스럽다 못해 절박하게 일그러진 안색이 안쓰러웠으나, 초윤은 아랫입술을 사리문 채 천오의 손을 쥐고 떼어 냈다. 거부당한 아이가 짓는 순간의 표정을 마주 볼 용기가 들지 않아 눈을 감았다 뜨자 고여 있던 눈물이 양 뺨에 새 길을 텄다. 쉽게 밀려난 천오는 허한 얼굴로 초윤의 앞에 털썩 앉았고, 그 사이 생긴 틈새로 사영이가 파고들었다. 스승의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그 품을 그러안고 나서야 소리 내어 울부짖었다. 언어를 조형할 방도를 잃은 탓에 그저 짐승 같은 비명이었다.

“허윽, 흐으으, 흐아윽, 아아아악!”

“안다, 알아.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다.”

사영은 초윤의 백의를 잡아 뜯듯 막무가내로 쥐어 매달렸다. 초윤은 안다는 말만 빠르게 중얼거리며 새하얗게 점멸하려는 정신을 애써 붙들어 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사영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자 애꿎은 머리카락과 옷자락만 피로 젖어 들었다. 경황없이 다독일 때가 아니었다. 초윤은 혼란으로 가빠지는 숨을 간신히 다잡은 뒤 의지할 곳을 잃어 쓰러지려는 사현의 멱살을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휘청거리는 몸을 요령 좋게 다루어 제 오른쪽 허벅지를 베고 눕게 했다.

“스…… 스승님.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무릎이 닿는 거리에 주저앉은 천오가 멍하니 물었다. 초윤은 입으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들숨은 차츰 짧아지고, 날숨은 점점 길어졌다. 오로지 목적 하나만 떠올리며 억지로 가슴을 가라앉히는 초윤 앞에서, 천오는 스승을 둘러싼 기운의 변동을 감지하고 성치 못한 손으로 꾹 주먹을 쥐었다. 초윤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짐작도 못 한 채 오로지 날 선 직감에 기대어 안 된다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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