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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202화 (202/257)

202화

하윤, 아니. 이제 와 온전해진 초윤은 아연하게 천오를 올려다보았다. 눈앞이 한결 맑아졌다고는 하나 시야에 보이는 모습 자체를 믿기가 어려웠다. 체감상 초윤은 대략 여섯 시간 전까지 하오문에 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다친 아이들을 낫게 했고, 우는 천오를 뒤로한 채 초월량의 손에 이끌려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는 도중 정신을 잃긴 했지만 정말 기절해서 자고 일어난 정도의 기분밖에 들지 않았다. 꿈처럼 ‘초윤’과 나누었던 대화도 그리 길지 않았기에 더욱 아까 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내 애가 맞는 것 같긴 한데…….

자기소개를 해 주기도 했고, 생김새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으니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이 남자…… 확실히 내 애는 맞았다. 내 애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어디가 이상하냐 묻는다면 전부 이상했고, 어떻게 이상하냐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웠다. 아무튼 모조리 이상했다. 등불을 등지고 그림자 진 체구하며, 희게 질린 얼굴의 요모조모하며……. 그러니까 어떻게든 취합해서 말을 해 보자면…….

초윤이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명명백백 자라 있었다.

아니, 잘 자라긴 했는데! 다행히도 멀쩡하다 못해 너무 잘 자란 것 같긴 한데! 초윤은 충격으로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천오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도 문제였지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만약 정말 보자마자 직감한 대로 자신이 한숨 자고 일어난 사이에 수년이 흘러 버렸다면, 신선 관련된 설화가 대개 그렇듯 나는 잠깐 몇 마디 말만 하고 돌아왔을 뿐인데 인간 세계에선 이미 긴 시간이 지나 버렸다면.

그러면 정말 나는 그냥…….

“스승님…….”

아차, 큰일 났다. 울적한 불만에 젖으려던 초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천오가 흘린 눈물이 한 번 더 후두둑 떨어지며 초윤의 눈두덩을 차갑게 적셨다. 애가, 아니, 천오가 이렇게 울고 있는데 혼자만의 생각을 너무 오래 하고 있었다.

“제가…… 제가 기억이 나지 않으시는 겁니까. 무슨 일을…… 그자에게 이제껏 무슨 일을 당하신 겁니까. 왜…… 왜 이런 꼴을, 왜 이렇게…….”

축축한 동굴의 바닥을 긁듯 기어들던 목소리가 점점 음울하게 잠겼다. 천오는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볼썽사나울 정도로 파들거리며 스승의 뺨을 문질러 닦는 손이 거친 와중에도 조심스러웠다.

파랗게 질린 천오의 입술을 응시하던 초윤이 바싹 마른 목을 마른침으로 축였다. 그리고 천오가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 다독이는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천…….”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순간,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월량의 뒷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소름 끼치는 정신머리와 행동력을 생각하니 기억이 없는 수년간 자신이 무언가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갑작스레 두려워진 초윤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목을 매만져서라도 확인해 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제정신을 차리고 나니 시야 구석에 들어온 제 손목의 꼬락서니부터가 가관이었다.

‘아악!!’

초윤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천오를 보고 받았던 충격이 순전한 놀라움에서 비롯되었다면, 이번에는 대낮에 대뜸 귀신을 마주친 것처럼 느닷없는 상황에서야 느낄 법한 공포심이었다.

어쩐지 눈을 뜬 순간부터 온몸이 축축 늘어지고 뻐근하다고 생각했다. 머리도 어지럽고 시야도 흐린 게 당연했다. 초윤은…… 말도 안 되는 과다 출혈 상태였다.

손목 가운데에 반 치가량의 길이로 깊게 갈라진 상처 틈새에서 끊임없이 붉은 피가 솟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흘려 댔는지, 손바닥이 다 젖은 것으로도 모자라 손톱 끝에 핏덩이가 엉겨 붙었을 정도였다. 물론 하오문에 있을 때도 대량의 피를 흘리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 하에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에 반해 지금은 내 몸에 도대체 뭔 짓을 했는지 모르니 속절없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느슨한 소매 사이로 아래팔 안쪽을 길게 가르는 흉터가 보였다. 당시에는 피를 철철 흘리던 상처가 다 아물어 도톰한 흔적으로만 남은 모습을 보니 정말 시간이 흐르긴 한 모양이었다. 할 말을 잃고 입만 뻐끔거리던 초윤은 일단 다른 손으로 출혈을 막으려 했다. 그리고 반대쪽 손목도 똑같은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피와 살이 영약이란 사실을 들킨다면 이런 짓을 당할 수도 있으리라고 예상한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자 정말 너무했다. 의식이 없는 동안 이보다 더 심한 짓을 당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월량은 그 난리를 친 끝에 아우를 데려가서 한다는 짓이 결국 채혈이었던 건가? 난 그러면 결국 ‘초윤’에겐 자기 대신 애들 봐줄 사람이었고, 월량에겐 무제한 영약 화수분이었던 건가?

또 생각이 나쁜 쪽으로 빠지려는 순간 그때까지도 초윤의 얼굴을 더듬거리던 천오의 손이 들어 올린 팔뚝을 덥석 낚아챘다. 도대체 언제 이렇게 컸는지, 엄연한 성인의 팔을 간단히 붙잡고도 손가락이 한 마디가 넘게 남았다. 피부 너머로 느껴지는 뜨거운 체온과 까끌한 굳은살, 그리고 꼼짝할 수 없는 악력에 저절로 어깨가 굳었다. 낯선 모습의 천오에게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초윤이 반사적으로 굳어 버렸지만, 천오는 아랑곳 않고 스승의 양팔과 어깨의 혈도를 꾹꾹 점혈하여 지혈을 마쳤다.

베인 환부가 들썩거릴 정도로 울컥울컥 솟던 핏물이 점차 잦아들었다. 지속된 출혈에 뒤늦게 현기증과 구역감을 느낀 초윤이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양 손바닥 안에 소복하게 들어차는 온기가 느껴졌다.

“스승님……. 무어라 말씀이라도 해 주십시오. 스승님의 제자, 서문천오입니다. 늦어서,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직까지도 울음을 그치지 못한 천오가 꼭 감싸 쥔 초윤의 손에 제 얼굴을 묻고 있었다.

천오가 몸을 일으키자 길게 길러 풀어헤친 검은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헝클어졌다. 구불거리는 흑발과 희게 질린 안색의 대비감이 안 그래도 창백한 얼굴을 더욱 부각했다. 바닥이 깊고 텅 빈 눈은 감을 때마다 뺨 위에 새로운 물줄기를 텄고, 속눈썹 사이사이는 눈물에 젖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안타까운데 피투성이가 된 초윤의 손에 제 얼굴과 콧잔등을 무작정 묻어 비비고 있으니 애의 몰골이 점점 보기 힘들 지경으로 망가져 갔다.

초윤은 속으로 연신 비명을 지르며 한 손을 뒤로 뺐다. 팔꿈치로 바닥을 딛고 주춤주춤 몸을 일으켰다. 누워 있어도 어지러웠는데 일어나려 하니 아예 눈이 핑 돌았다. 저도 모르게 밭은 신음을 내며 다시 쓰러질 뻔하자 천오가 재빨리 한 손으로 어깨를 잡아 받치고 신중하게 초윤을 일으켰다.

부축을 받아 겨우겨우 앉아선 머리를 부여잡고 있자니 주위의 배경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초윤은 천장이 높은 방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석조 단상 위에 누워 있었다. 내부는 50평 남짓으로 그리 좁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돌을 깎아 만든 듯 어딘가 축축하게 반질거리는 벽에 매달린 등불과 돌침대 말고는 창문도 없는 기이한 공간이었다.

초윤은 찡그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단상 밑으로 양다리를 내렸다. 함께 올라와 앉아 있던 천오는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가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단차가 높아 바닥에 닿지 않는 초윤의 발을 맨손으로 감싸선 제 허벅지 위에 올렸다. 발등 위로 투툭 떨어지는 물줄기로 보아 아직도 울고 있는 듯했다.

찬 바닥에 그렇게 앉아 있지 말라고, 나는 괜찮으니 이제 안심하라고 말하려던 초윤은 뒤늦게 밑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돌산의 내부를 깎아 만든 것 같은 이 방의 바닥엔 초윤이 누워 있던 단상을 중심으로 기이한 문양의 홈이 빼곡하게 패여 있었다. 그리고 그 틈새를 빠짐없이 채우고 있는 액체는 아니나 다를까…… 초윤의 혈액이었다.

이것만으로도 기절할 것 같은데, 천오의 무복 하의에 그새 남은 새빨간 발자국이 보였다. 즉 감각이 둔해져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초윤의 발목도 손목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무섭다!

초윤은 이마를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너무 무섭다. 주천오의 마교도 본질을 따지자면 사이비지만, 월량과 초윤이 나왔다는 광명교는 도대체 뭘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어서 더 무섭다. 이 무슨 전형적인 산제물 공양인가. 도대체 뭘 믿기에 산 사람을 데려다가 피를 쫙 뽑고 있던 건가. 한 방울씩만 먹어도 무병장수할 영약을 이토록 무식하게 채취해 바닥에 뿌리는 이유는 뭔가. 초월량 이 인간은 초윤만 있으면 된다는 듯이 말하더니 결국 한다는 짓이……!

-네 손으로 죽였으니, 네 손으로 살려다오.

그때, 소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던 월량의 어린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울렸다. 초윤은 다시 한번 황급히 방을 두리번거렸다. 이렇게 흘린 피가 어디로 모이는지 살펴볼 요량이었다.

무언가를 확인하듯 초윤의 발등 위에 손끝을 올려놓는 천오만 아니었다면 상황 파악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터였다.

“스승님…….”

고개를 푹 숙이고 입술을 사리문 채 흐느끼던 천오가 초윤의 파리한 발등어리를 연신 쓸고 더듬거렸다. 초윤이 반사적으로 발끝을 오므리자, 손바닥 전체로 감싸 매만지며 쓰다듬었다. 발목의 상처는 발꿈치 위, 도드라진 인대를 꿰뚫듯 자리 잡고 있어 손처럼 피투성이는 아니었다. 혈색을 잃은 피부 위에 천오의 손길을 따라 검붉은색 핏자국이 남았다.

위에서 보는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요동하던 천오는 한 손으로 여전히 초윤의 발을 쥔 채 다른 손으론 발목께의 옷자락을 파고들었다. 손목과 마찬가지로 혈도를 짚어 출혈을 멈추곤, 그대로 초윤의 종아리를 움켜쥐어 무릎에 툭 이마를 기대었다. 홑겹 옷자락 너머로 천오의 불규칙한 호흡이 느껴졌다. 느릿느릿 고개를 돌려가며 이마를 문지를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적막한 공간을 가득 채웠다.

발밑에 도사린 기척은 점점 숨 막힐 정도로 무겁고 음산해졌다. 이제는 더 이상 다른 곳에 정신을 팔며 회피할 수 없었다. 잠시 입술만 여닫던 초윤은 허벅지에 손을 문질러 닦은 뒤 천오의 머리를 향해 슬며시 뻗었다. 일주일 넘게 물 한 모금 못 마신 사람처럼 목구멍이 갈라지니 행동으로라도 표현해야 했다.

더는 낯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만큼 천오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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