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222화 (222/257)

222화

“강시에 대한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도사들이 하오문과 함께 박멸하고 있다는 말만 얼핏 들었다.”

“안휘성의 ‘남궁세가’ 자체는 하오문이 습격당한 지 2년이 지난 뒤에 무너졌습니다. 광동성에서 남궁호관과 남궁옥리의 시신이 발견되고, 남궁영은 흔적도 없이 실종된 탓에 남궁세가 역시 피해자라고 곡변(曲辯)하긴 했으나 사저가 섬서성의 하오문 분타에 잠입하여 결탁의 증거물을 빼돌렸습니다. 알고 보니 섬서성뿐만이 아니라 하남을 비롯한 중원 대부분의 분타가 조금씩은 좀먹혀 있었다고 하더군요.”

하오문은 중원의 남쪽 끝에 있는 광동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다에 맞닿아 물류가 원활한 광동성은 무역으로 돈을 벌기엔 최적의 장소였지만, 무림 각지의 정보 역시 상품으로 취급하는 하오문에겐 지리적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희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각지의 번화가에 자리 잡은 주루나 상단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거미줄 같은 통신망을 형성했다. 어딘가 한 군데가 썩으면 자연스럽게 주위에도 영향이 가도록 만들어 알아채기 쉽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어지간한 나라 크기의 도시가 몇 개씩 뭉쳐 눈을 가리니 기동성이 떨어지는 희로선 일찍이 깨달을 방도가 없었다. 원작에서는 ‘공자님 덕분에 하오문에 숨어들었던 쥐새끼들을 남김없이 찾아낼 수 있었어요.’라는 언급으로 쉽게 넘어간 일이었지만, 피습과 누명과 배신이 한꺼번에 겹쳤을 당시엔 상당히 골치가 아팠을 게 분명했다.

“하오문이 자체적인 정비를 할 동안에는 모용세가와 하북팽가가 나서서 남궁세가의 선동을 막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오문주는 마지막으로 열린 백협맹 정기 회의에 직접 출석하여 남궁세가의 변절을 공표했습니다.”

멋졌겠다…….

초윤은 현대에 흔했던 법정 드라마 같은 분위기를 떠올리며 멍하니 생각했다. 진실을 아는 사람만 속이 터지도록 궤변을 늘어놓는 상대와 이를 여유롭게 반박하며 결정적인 증거로 논파하는 주인공……. 소설이었다면 이전까지의 전개로 내내 막혀 있던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장면이었을 게 분명했다.

물론 현실에서는 속 터지는 일만 벌어지는 법이었다.

“그러자 남궁세가는 그 자리에 철강시와 혈강시를 풀었습니다. 처음부터 본인들의 주장과 결백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대신 회의에 모인 정파 세력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려고 한 듯합니다.”

설마 했는데 역시 이거였구나! 양산형 무협지에서 더 이상 일반 무림인들이 주인공의 전투력 측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 마교의 잔인함을 부각하는 동시에 먼치킨 뽕을 채워 주는 용도로 등장하는 정예 잡몹! 이전에 죽였던 고수가 더욱 강한 강시로 돌아와 느슨했던 진행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무림인들은 손도 대지 못하는 특수 강시들을 가볍게 제압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묘사하며 대리만족을 주는 만능 소재!

천오가 말한 철강시와 혈강시의 설정은 어느 작품에서든 대체로 비슷비슷했다. 철강시는 말 그대로 육신의 강도가 무쇠와 비슷한 개체였고, 혈강시는 피부가 빨갛거나 눈이 붉으며 일반 강시(이 소재가 소설에 나올 때쯤이면 상대적으로 약해 빠진 일반 강시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았지만)보다 더욱 큰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밖에도 생전에 익힌 무술을 그대로 쓸 수 있는 강시나, 순종적이지만 자아와 기억이 남아 있는 강시 등 변주는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로 접했을 때의 감상이었다. 나라연은 하오문과 도문(道門)들이 지금도 강시를 소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건 즉, 초윤이 처해 있는 현실엔 위와 같은 무쌍 전개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중원의 무림인들이 몇 년에 걸쳐 움직이는 시체에 맞서 싸우고, 또 그 시신이 되어 생전의 아군을 공격했다는 뜻이었다.

이 무슨 동양풍 좀비물인가. 심지어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는 좀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려 무공을 구사할 수 있는 내구도 최강의 좀비라니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강시 제작에 한두 푼이 드는 것도 아닌데 이 자금은 또 어디서 구했을까. 원래부터 마교는 실크로드에 가까이 있어 부유하긴 했지만 중원의 상단을 야금야금 집어삼키며 빼돌린 돈도 상당한 걸까. 그 막대한 황금으로 강시를 찍어 내느라 바쁜 탓에 내가 탈출했는데도 잡으러 올 여유가 없는 걸까.

인상을 쓴 채 괜한 거울만 노려보고 있자 천오가 담담히 이어 말했다.

“그날이 중원에 강시가 들끓게 된 시작점입니다. 저와 사저, 사형도 백협맹에 따라갔다가 함께 환란을 겪었습니다. 그래도 목을 베어 내면 움직임이 멈춘다는 사실을 일찍 알아차려서 피해는 크지 않았습니다만…… 스승님은 강시를 상대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야 환골탈태를 한 무인이 셋이나 같이 있으면 현경 이상의 강자를 마주치지 않는 이상 큰 위기는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재앙에 가까웠을 강시 사태 첫날을 아이들이 고스란히 마주했다니 입맛이 썼다. 초윤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눈을 내리깐 채 기억의 낱장을 빠르게 넘겼다. 제 것처럼 여닫을 수 있게 된 ‘초윤’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래도 이백 년 넘게 살아온 인물이고, 어렸을 땐 광명교인지 마교인지에서 지낸 모양이니 강시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을 수도 있었다. 내 아이들을 위해 자그마한 정보의 파편이라도 찾을 수 있게 된다면 본전이라고 생각해서 별 기대는 하지 않은 회상이었다.

“…….”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표정이 바뀌었다. 초윤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목격한 것처럼 멍하니 눈을 뜬 채 입술을 벌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이상을 느낀 천오가 깨끗해진 손으로 초윤의 아랫배 위를 짚는 감촉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황급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마저 듣지 못한 채, 초윤의 연갈색 눈동자는 타인에겐 보이지 않을 제 속을 정신없이 누비며 현실을 부정했다.

-……시술자가 모든 강시의 행동을 조절할 순 없는 노릇이고, 기껏 만든 강시가 생존 본능밖에 없으면 강자와의 싸움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시체에게 무공을 가르치겠다? 하하! 재밌는 발상이구나. 네가 아니면 아무도 그 고루한 주술을 이용할 생각 따위 못 했을 거야.

-생전의 경지가 절정에 이르지 못한 강시에게는 교단의 무공을 주입하고, 절정 이상이었던 강시는 지닌 능력을 좀 더 원활히 꺼내 쓸 수 있게 해 보겠습니다. 살아 있었을 적의 기억이 너무 많이 떠오르면 어떠한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확실하게 통제할 수단도 마련하면서 단가도 최대한 낮추는 게 좋겠지요.

-그래, 그래. 하고픈 대로 하렴. 따로 필요한 건 없니? 귀소목을 구해 줄까, 초령목을 베어 줄까?

밀랍으로 만든 인형처럼 생기 없는 얼굴의 인간들이 미동도 없이 줄 맞추어 서 있는 대전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지만 짐작하기 어렵진 않았다. ‘초윤’은 필요한 재료를 적어 온 책자를 그에게 건넸고, 기대를 걸고 있다는 말에 만족감과 책임감을 느꼈다.

-이런…… 이런 용도일 줄은, 이렇게 쓰일 줄은…….

-이래서 네가 헛똑똑이라는 말을 듣는 게다, 윤아. 이렇게 흉악한 아이들을 만들어 놓고선 어찌 쓰일 줄 몰랐다니. 너 스스로 알면서도 모른 척했겠지.

-…….

-이 형님을 위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더냐? 그렇다면 또 새로운 이유를 주마.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초윤’의 몰골이 초라했다. 지면을 적신 수많은 이들의 피로 폐슬과 손은 지저분했고, 고개를 숙여 땅에 끌리는 머리카락 끝엔 살점과 혈흔이 엉겨 붙어 있었다. 결코 안식이 되지 못할 장막으로 얼굴을 가린 ‘초윤’은 제 손바닥을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움츠러든 어깨를 감싸는 그의 체온이 느껴졌다.

-없어져야 합니다. 없어져야 해요, 모조리…… 형님과 저 자신까지도.

-교단이 싫다면 나와 함께 떠나자, 윤아. 서적과 인간과 건물을 모조리 태운 뒤 우리 둘은 연고 없는 곳으로 영영 가 버리면 되잖아.

울음에 가까운 탄식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미 시야가 흐린 것으로 보아 눈물을 참진 못한 듯했다. 그의 가슴을 찌르고 벽에 박힌 검신을 따라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손아귀가 축축하게 젖어 드는 감촉이 끔찍하고 역겨웠다.

하지만 ‘초윤’은 알고 있었다. 이 자를 살려 두고 떠나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터였다. 세상의 구성에서 단 한 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 망설임 없이 이 자를 선택해야 했다. 원흉, 근원, 결실, 총체에 해당하는 이자를 죽여야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초윤’은 거대하게 타오르는 불기둥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불길이 따끔하게 뺨을 스치고, 손톱만 한 불티가 손등에 튀어 욱신거렸으나 알아채지 못했다. 한밤의 숙람색 하늘을 환히 밝힐 것처럼 광분하는 화마(火魔)에 넋을 빼앗긴 듯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화염이 미처 삼키지 못한 종이 몇 조각이 대류에 말려들어 날아올랐다.

‘초윤’은 멀리 비상하는 종잇장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불꽃 밑에서 형태를 잃어 가는 사람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수십, 수백 명의 시신이 통째로 불타고 있었다. 이것으로 흔적은 모두 지웠으나.

끝나지 않았다. 칼에도 죽지 않고 불에도 타지 않는 인간이 내 뒤에 잠들어 있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찾지 못한다면 그의 말마따나 함께 하는 한이 있어도 다신 돌아오지 못할 먼 곳에 보내야 한다. 나는 기꺼이 그를 잡아끄는 미끼와 노리개와 가족과 유일이 되리라. 그것만이 나의 속죄고 의무며…….

“스승님!”

귓가를 파고든 목소리가 섞여 들었던 정신을 일깨웠다. 초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타는 냄새 자욱했던 심야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며칠 사이 익숙해진 방 안, 천오의 품속이었다. 분명 천오가 자신에게 기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도리어 제 몸이 천오의 가슴에 반쯤 누워 있었다.

가슴이 버거울 정도로 할랑할랑 뛰었다.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숨이 찼다.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자 식은땀이 묻어 나왔다. 초윤은 가쁜 호흡을 뱉으며 입가를 만졌다.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할 정신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강시는 무협지의 초월적인 기술력이 집약된 생체병기, 전쟁 무기였다. 주술, 침술, 진법, 약재와 인체에 대한 이해도가 극에 달한 자만이 이를 생산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초윤’은 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광명교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다. 주술은 직접 쓴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진법에는 능통했고, 해부생리학이나 온갖 전통 의학은 말할 것도 없었다.

기운 잃은 몸뚱이를 흔들림 없이 받친 천오가 안절부절못하고 초윤의 아랫배며 이마에 연신 손을 갖다 댔다. 다정한 염려가 뚝뚝 떨어지는 손길에 저도 모르게 침음한 초윤은 양손으로 참담한 표정을 가렸다.

아무래도 지금 돌아다니는 강시들…….

‘초윤’이 만들어 냈든 개량을 했든 무언가를 단단히 저지르긴 한 것 같았다…….

(22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