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큰일 났다. 물론 언제까지고 숨길 순 없었을 테지만, 언젠가는 말을 해야 했을 테지만 그게 굳이 아까 만난 지금일 필요는 없지 않나? 아니, 말할 시기를 재다가 아예 놓치는 것보단 차라리 이게 낫나?
은근슬쩍 넘어가야 할지, 아니면 콕 짚어 설명해 줘야 할지 고민하며 수저를 만지작거리는 찰나 사영이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광명교……라면 문주님께 지나가듯 들어 알고 있어요. 과거의 암약 세력이었던 것 같은데, 수년 전에 한 번 연락이 닿은 이후로는 좀처럼 자취를 찾을 수 없어 골치가 아프다고 하셨어요. 그들이 맞나요?”
“연락이 닿았다고? 무슨 내용이었는지, 상대가 누구인지는 들었느냐?”
“아니요……. 교리와 이득에 단단히 혹한 척 접근하려고 하니 접선책이 금세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밖에 못 들었어요. 아, ‘어둠은 빛을 낳는다’? 이런 얘기를 했다고는 한 것 같아요. 그야 당연히 어두워지면 불을 밝히겠지만…… 반드시 어두워져야 그럴 생각이 드는 건 아닐 텐데 말이에요. 뭐 배고프면 밥을 잘 먹으니 싹 굶겨 봐야 한다는 소릴 하고 있어.”
사영이가 사이비 종교의 교리를 촌철살인으로 푹푹 찌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 말을 광명교의 모두가 들어야 하는데. 초윤은 속으로 킥킥 웃었지만, 사실 웃음이 나오진 않았다. 광명교가 하오문에 줄을 대려고 했다니. 엎어졌기에 망정이지 정말 강호에 재난이 닥칠 뻔했다.
왜 희를 영입하려다가 그만둔 걸까. 희의 배경을 뒤늦게 알고선 삼키기엔 덩치가 크다고 느꼈을까? 잠시 고민하던 초윤은 아이들에게 광명교를 제대로 알려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예로부터 사이비 종교는 그럴싸한 말로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을 흡수하는 능력 하나만큼은 특출났는데, 안 그래도 쪼들리는 현재의 무림에 이런 광명교까지 침투한다면 골치가 남아나지 않을 게 뻔했다.
겨우 뜬 한 술도 간신히 넘긴 초윤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옆에서 천오가 아쉽게 쳐다보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교가 본디 무엇인지 아느냐?”
“신강에 있는 미친 무림인 집단 아니에요? 원래 다른 거였어요?”
“마교(魔敎)는 원래 황실의 뜻에 반하는 종교를 배척하고 탄압하기 위해 찍는 낙인이다. 마니교나 회교, 명교, 백련교 등이 혹세무민한다는 이유로 마교라는 명칭을 받았지. 이백 년 전까지의 ‘마교’는 각기 다른 종교일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당연한 사실이었다. 세상의 어느 종교가 번지르르한 낱말을 버리고 마귀 마 자를 앞머리에 붙여 쓸까. 나이는 먹을 대로 먹은 성인들이 악한 심성과 잔혹한 행위를 진심으로 멋있게 느끼는 건지, 별호에 혈(血)이나 귀(鬼)를 자랑스럽게 붙여 가며 내 별호가 더 끔찍하네 네 별호는 약해 보이네 겨루는 장면을 보면 조금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잘못된 종교란 으레 집단의 상식을 덧칠하곤 했다. 외부인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질서 아래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대중의 탄압과 경멸을 도리어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고통과 멸시를 받을수록 충성심은 짙어지고, 동료애는 질겨졌다. 바깥에 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나를 유일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집단에 온전히 투신하면서, 동시에 어떠한 고초가 닥쳐와도 감내할 눈먼 자들을 양성해 내기 쉬운 환경이었다.
그래서 마교(魔敎)는 이름부터 마귀들의 교단이라고 지은 뒤 악마 같은 힘으로 퍼뜨리는 공포만이 권력이라고 신도들을 교육했다. 힘만 겸비하면 무엇이든 제 뜻대로 해낼 수 있으리라 믿게 된 신도들은 무공에 매달리기 시작했고, 인간성보다 무위가 중시되면서 교단 전체의 방침은 점점 잔인해졌다. 차별에 지나지 않았던 명칭이 끝내 공포를 상징하게 되었을 때, 드디어 우위에 섰다는 쾌감을 느끼게 된 자들은 그릇된 맹신의 품에서 다신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영리하게 머리를 썼다고 봐야겠지.’
아니면 생각 없이 지은 이름이 대박을 터트린 걸까. 족보를 따지자면 천오의 고조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쯤이 초대 마교 교주였다는 뜻인데, 아무래도 천오만큼 똑똑하지 않았을까. 잠깐 엇나갔던 생각을 바로 고친 초윤은 이어 말했다.
“광천마제 초월량 역시 마교 출신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었겠지. 그때까지 마교는 이전의 뜻이었다. 그러나 초월량이 봉인당하고, 광명교가 무너진 뒤 그들의 유산을 훔친 자가 새로운 종교를 세워 올렸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마교’다.”
“그러니까 초월량은 원래 광명교 출신이고…… 마교 이전에 광명교가 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초월량을 비롯한 역대의 역천마인들이 전부 광명교에서 배출해 낸 암존(暗尊)이다. 광명교는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고, 오랜 역사 동안 중원을 흔들었던 모든 단체의 뒤에 도사리고 있었다.”
사현이가 멀거니 초윤을 바라보다가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그야 갑자기 이런 세계관 설명을 들으면 난처하겠지. 하지만 진짜인걸. 이 몸이 직접 겪은 일이라니까? 멀쩡히 살아가던 대중에게 갑자기 일루미나티 음모론을 설파하는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초윤은 조금 조급하게 상세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세간에 나설 땐 매번 다른 교단으로 위장했기에 여태껏 덜미를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만, 중원을 침범해 온 북서쪽의 외세는 대부분 광명교다. 때로는 대초원과 손을 잡기도 했고, 때로는 남서쪽에 힘을 싣기도 했지. 영향력을 온 대륙으로 뻗으면서 각지의 주술과 진법, 무공을 수집하고 오랫동안 연구했다.”
“……서역의 상단으로 위장해 중원에 잠입하는 마교도들이 정파의 중소세력에게 ‘독문무공을 보완할 방법’을 미끼로 걸어 접근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의 마교는 광명교의 연구 결과를 손에 넣어 세를 불리는 데에 쓴 거군요. 어쩐지 온갖 무공에 너무 해박하다고 했어.”
“……장담할 순 없다. 분명 모든 자료를 폐기했을 터인데, 무공비급 한 권이면 몰라도 주술이며 진법까지 그대로 복원하다니……. 내가 무언가를 단단히 놓쳤거나, 잿더미만 가지고도 성을 쌓을 천고기재가 있다는 뜻이지. 절대 안심할 수 없다.”
“예?”
사영이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듯 되물었다. 하지만 초윤은 쉽게 말문을 떼지 못한 채 입술만 달싹였다. 내가 강시를 제조할 주술을 만들었고, 내 손으로 모조리 불태웠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다시 살아난 것 같다. 이 간단한 말이 어째서인지 입에서 나가질 않았다.
천오는 초월량과 대화를 나눈 적도 있고, 월량이 초윤을 아우라고 지칭하는 모습도 보았다. 이제 와 초윤의 사형제 관계는 셋 다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으니 출신을 밝히는 게 저어되진 않았다. 반항할 수 없는 어린 나이에 잡혀가서 고초를 겪은 것이 무슨 죄인가. ‘초윤’이 광명교에 몸담고 있을 적에 무슨 일을 했는지, 그로 인해 중원이 어떤 피해를 보았고 어떻게 후회하게 되었는지, 누군가를 전적으로 믿고 의존한 대가가 얼마나 크게 다가왔는지, 이 모든 잘못을 어떤 식으로 수습하려 했는지 털어놓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강시만큼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초윤’의 주술로 깨어난 강시들이 중원을 휩쓸었다. 조종당한 시체들은 민간인과 무림인을 가리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이 살해당한 뒤 또 모욕적으로 되살아났다.
내 아이들은 다치지 않았다고 하지만…… 다치고 죽은 사람 중에 사영이의 단원들은, 사현이의 친구들은 없었을까?
아, 나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구나.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묻어 두려 했던 단풍길의 풍경마저 뇌리 한구석에서 번득거렸다. 느닷없이 두려워진 초윤은 탁상 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두 눈을 꾹 깜빡였다. 섬뜩한 불안으로 손바닥은 차갑게 젖었고, 가슴이 죄어 오며 숨이 막혔다. 말해야 했다. 말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경악하겠지. 놀라고, 분노하고, 그러나 착한 아이들이니 이해하려 하겠지. 납득하고 나선 한숨을 쉬고 분을 삭이려고 들겠지.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닌데.
천오에겐 이걸 어떻게 털어놓았더라? 그땐…… 그때는 천오의 반응을 상상하며 두려워하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은 과거와 그로 인한 부담감, 그리고 혹여라도 아이들이 다쳤을까 싶은 불안에 떨었을지언정 내 말을 들은 천오가 나를 증오하고 원망하리라 생각한 적은 꿈에도 없었다. 그래, 비정상적으로 나만을 바라보는 천오라면, 세상의 도리에 가치를 두지 않는 서문천오라면 내가 무슨 짓을 했든 아랑곳하지 않으리라 믿었나 보다.
그리고 천오는 실제로 패닉에 빠진 초윤을 안심시키려고만 했다. 덕분에 쉽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또 살얼음 같은 평안을 누렸다. 고개를 돌리면 그 자리에 반드시 있으리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생애에 몇이나 될까. 초윤은 어느새 천오가 ‘세 제자’를 벗어나 유일한 위치에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아 버렸다.
아, 역시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초윤은 결국 인정하며 건조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가 했다고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그야 물론 내가 한 일이 아니니 당연했다.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사죄하고 싶지 않았고, 이제껏 몰랐던 일로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 때문에 상처받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았으며 스승이니 납득하겠다는 표정 또한 짓게 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초윤 또한 ‘초윤’에게 한이 쌓인 입장이었다. 잘살고 있던 사람에게 이런 사연 많은 몸을 덜컥 안겨줘 놓고는, 앞으로 잘될 거라고 말하고선 냅다 사라져 놓고는 잘되긴 개뿔. 잊을 만하면 과거에 저질러 놓은 짓이 되살아나 촘촘히 목을 졸랐다.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은 흔적도 찾지 못하겠는데 이젠 무공마저 봉쇄된 채 홀로 남아선 내게 쏟아질 감정과 죗값을 다 받아 내야 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이 와중에도 ‘초윤’의 기억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온전히 탓하지도 못하는 자신도 싫증이 났다. 알고 있었다. 책임질 사람이 하나밖에 없는 시점부터 누가 저질렀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초윤이 성급한 결정을 내리고 초월량을 따라갔기에 중원의 참변을 앞당겼을 수도 있었고, 정해진 이야기는 무시한 채 자신과 아이들의 이득을 중시했기에 더 큰 피해를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꾸역꾸역 내 잘못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폐허 속에서 엉망이 된 몰골로 오열하는 한 아이가 나오는데. 난 당장 세상이 망한다 해도 그 아이를 구한 일을 후회하지 않을 텐데.
무릎에 톡, 무언가가 닿았다. 상념의 바닥을 깨고 고개를 들자 천오가 슬그머니 제 종아리를 스승에게 붙이고 있었다. 사형제가 함께 있어서 그런지 지난 며칠처럼 덥석 손이나 어깨를 잡진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동안 염치라는 게 손톱만큼이나마 생기긴 했구나. 초윤은 속으로 힘없이 웃곤 눈길을 돌렸다. 스승의 용태를 살피며 눈짓을 교환하던 남매가 기민하게 이쪽을 보았다.
괜찮아. 후회하지 말자.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돌이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받아들여야 한다. 적응하고 나아가려면 어떤 결과든 받아들여야 한다…….
정 힘들면 천오에게 몰래 어리광이라도 부려가며 견뎌야겠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는 나만을 중요시하리라 확신할 수 있다니, 얼마나 감미롭고 유해한 관계인가. 서로에게 독이 되지 않도록 정말 괴로울 때 진정으로 조금씩만 기대야겠다. 내가 다시 오롯한 어른을 연기할 수 있게 될 정도로만, 딱 그만큼의 위안을…….
호흡을 가다듬은 초윤이 자세를 고쳐 앉고 입을 열었다. 여전히 눈을 마주치고 말할 엄두는 나지 않아, 어두운 시선은 아래로 가라앉은 채였다.
“나는 초월량의 사제(師弟)로서 광명교에 속해 있을 때, 대륙 각지의 주술과 진법을 연구한 장본인이다. 지금 중원을 뒤덮은 강시를 만드는 주술 또한 내 손으로 보완하여 대량생산에 적합하게 만들었다. 정마대전 도중 월량을 배신하고 교단을 떠나며 모든 자료와 서적을 모아 불태웠는데, 강시가 살아나 중원을 습격했다는 소식을 들어 경황망조했다.”
아이들이 무슨 반응을 보이든 수용해야 한다.
……너무 미안하면 미안하다는 말도 하기 어렵구나.
“이는 즉 두 가지 뜻이 아니더냐. 내가 미처 알아 내지 못한 장소에 각종 사본이 보관되어 있었거나, 아니면 쪼가리만 남은 자료로도 주술을 복원할 수 있는 천재가 태어났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