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초윤은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손을 공연히 꼼지락거리며 식탁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천오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들이 흰 김을 피워 올리며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식사를 할 때면 말수가 현저히 적어지는 사현이와 먹는 속도가 굉장히 빠른 사영이의 그릇은 이미 절반쯤 비어 있었고, 천오는 초윤과 속도를 맞추려 한 건지 몇 숟갈 뜨지도 않은 듯했다. 이야기가 깊어지며 내려놓은 수저 또한 눈에 들어왔다. 흠칫 굳는 손도, 곤란하다는 듯 괜한 힘을 주었다 푸는 움직임도 무엇 하나 놓치지 않는 기민한 감각이 애석하기만 했다.
그때, 돌아온 반응은 초윤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그러면 역시 빙궁에 한 번 다녀오는 게 좋지 않을까요?”
“……뭐?”
“스승님이 방문하신 지 몇십 년은 지나지 않았나요? 그동안 새로운 게 발견됐을 수도 있잖아요. 사천당가도 봉문한 동안 연구한 독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빙궁도 나름의 발전이 있었겠죠. 실마리를 찾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아닌 대로 스승님의 상태를 호전시킬 조언 정도는 들을 수 있을 테고.”
사영이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탕을 그릇째 들어 후루룩 넘겼다. 옆에 앉은 사현이도 근심 한 점 없이 말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천오는 잠시 머리를 기울이며 고민하다가 물어보았다.
“스승님께 사술을 건 자는 광천마제 초월량이 맞습니까?”
“…….”
……이거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살아온 200년은 어렴풋이 기억나게 됐는데 지난 8년은 눈 떠 보니 사라졌다? 내가 들어도 어림없는 소리인데. 거짓말하지 말고 똑바로 털어놓으라고 윽박질러도 모자랄 변명이잖아. 초윤은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머리를 팽팽히 돌렸다. 하지만 어떻게 대답해도 나중에 대처하기 어려운 외통수라 결국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초윤의 미적지근한 침묵을 알아서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아이들은 다시 죽이 척척 맞는 논의를 이어 나갔다.
“광천마제 초월량은 저와 처음 대면했을 때부터 사술의 범주를 벗어난 술법을 썼습니다. 목을 베어도 붙는다거나, 몸 전체를 아예 다른 물질로 변형시키는 등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요. 광명교의 연구에 관여하신 스승님마저도 대처하실 수 없는 사술이라면 아예 문서화되지 않고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술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승(口承)을 수집하는 일이라면 자신 있긴 한데…… 지역이 문제긴 하네. 언어장벽도 있고…… 인구가 적어도 땅이 넓으니까 전부 훑으려면 최소한 한두 달은 있어야 하고. 왕복하는 시간과 빙궁을 녹여 먹는 시간까지 합하면 넉넉잡아 석 달은 필요하겠는데.”
“음, 그러면 누나. 나 대신에 설린 소저랑 가는 건 어때? 설린 소저는 누나하고도 친하고 술법에도 능통하잖아. 나는 하오문이 계속 마음에 걸려. 북해빙궁이라면 꼭 싸움을 염두에 두진 않아도 될 테니까.”
“솔깃하긴 한데 걔는 몸이 약해서 안 돼. 그 추운 곳에서 어떻게 견디겠어. 감기라도 걸리면 오히려 더 골치 아파.”
“사성철려(射星錣囇) 제갈설린한테 몸이 약하다고 하는 사람도 누나밖에 없을 거야…….”
“그게 다들 제대로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걔가 얼마나 허약한지 알아? 좀 울었다고 비실거리는 애한테 무슨 사성철려야. 팔뚝도 겨우 요만해 가지고 뭘 먹고는 사는지 모르겠더만.”
“그럼 당 소저는?”
“운금이? 그 당가 금지옥엽을 데리고 대초원을 건너라고? 어느 날 일어나서 문 열어 보면 당 가주 할아버지가 이렇게 서서 날 쳐다보다가 만천화우로 찔러 죽일걸. 그 인간은 지금도 날 아니꼽게 본다니까.”
원래도 투닥거리는 만큼 조잘대는 아이들이긴 했지만, 이제는 화제가 초윤만을 남겨 두고 달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초윤은 서로가 익숙한 듯 쉴 새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아이들을 얼떨떨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내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이야기에 정신이 쏠린 듯했던 아이들은 스승이 재차 침묵하자 하나둘씩 입을 다물고 하문을 기다렸다. 이윽고 흘러나온 목소리는 평소처럼 고저 없이 담담했으나, 찬비에 젖은 것처럼 어딘가 애연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애써 태연히 굴 필요는 없다. 스승을 자처한 작자가 무림공적(武林公敵)에 준하는 인간이었다니,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닐 터인데.”
“…….”
“목련강시가 8년간 중원에 끼친 피해도 상당할 테지. 그 시작이었을 하오문의 참변마저 내가 걸음 해 벌어진 일이 아니더냐. 수많은 목숨이 꺾이고 짓밟히는 와중 너희들의 친지가 모두 무사했을 리도 없고, 내 지난날이 세간에 알려진다면 괜한 손가락질까지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껏 원망하라고 한다면 나를 배려해 준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게 될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약선의 제자라는 사실은 오보라고 알리라 할까. 약선에겐 그저 조금 도움을 받았을 뿐이라고, 열댓 살 때부터 하오문에서 자랐으니 온전한 하오문도라고 말하고 다니라 할까.
초윤은 어느 정도 발작이 멎으면 곧장 강시를 수습하러 돌아다닐 작정이었다. 지금 돌아다니는 강시를 만들어 낸 주술이 기억과 같은지 조사하고, 해주법(解呪法)을 궁리해 뿌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일은 절대 약선의 선행으로 취급되지 않아야 했다. 결자해지는 자선이나 헌신이 아니라 의무였다. ‘초윤’이 아니라 나마저도 이 사태에 지분이 있다는 걸 죄송스럽게 느끼며 임해야 하는 과업이었다. 스스로에겐 엄격하다 못해 가혹하게 살아온 초윤은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리 믿었다. 억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마냥 두고 볼 수도 없었으며, 책임을 인정한 뒤 다짐을 세우자 도망치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 강시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체계를 세운 인간이 ‘초윤’이라는 사실은 숨기지 말아야 했다. 떠벌리고 다니지는 못해도 대답을 회피하진 않아야 했다.
지탄과 모욕을 들어 넘길 각오는 얼마든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증오할 대상을 찾으면 그 집안의 잡초 한 포기까지 아니꼽게 여기는 법.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 살아온 아이들에게도 온갖 비난의 화살이 쏠릴 게 뻔했다.
그리고 초윤은 다른 상황이면 몰라도 그것만큼은 도무지 견뎌 낼 자신이 없었다.
“……나를 위해 만 리 길을 마다치 않고 달려와 주어 고맙다. 장성한 모습이 대견하고 기특하더구나. 잊지 않으마.”
“스승님.”
“그러니 이만 됐다. 나가서 어찌 말하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너희 입지를 다지는 데에만 골몰하거라. 여차하면 사제 관계를 맺은 적은 없다고 하여도 좋다. 너희들은 이 이상 관여해 봤자…….”
“스승님!”
울적한 말을 쏟아 내던 초윤이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초윤을 대하는 사영이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노기가 서려 있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마주한 사영이는 잔뜩 화난 어조와는 다르게 울기 직전의 얼굴이었다. 그 옆에서 사현이는 입을 앙다문 채 그렁그렁한 시선으로 식탁을 노려보았으며, 천오는…….
천오는…… 가늘게 뜬 눈과 미묘한 기색으로 초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십여 년을 함께 살면서 처음으로 보는 표정이었다. 초윤은 떨떠름하게 무릎을 움켜쥐었다.
잠시 초윤을 바라보던 사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제 앞의 그릇을 밀어 치운 뒤, 꽉 묶어 둔 무복의 팔뚝을 슬슬 풀기 시작했다. 서운한 마음이 다 가시지 않아 비죽거리는 입은 그대로였다.
“사실 문주님은 광명교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계신 듯했어요. 하지만 제가 무언가를 여쭈려 하면 늘 스승님을 찾아 직접 들으라고 하셨는데, 어째서인지 이제 알겠어요.”
“…….”
“스승님께서 치부라고 생각하시는 일이니까 직접 입에 담기 저어되셨던 거겠죠. 스승님을 되찾고 중원을 복구하는 데엔 별로 쓸모없을 정보만 갖고 계셨을 수도 있고요. 아무튼…… 먼저 말씀하지 않으셨어도 제가 언젠가 여쭈었을 텐데, 이렇게 어려운 말을 꺼내 주셔서 전 오히려 머리가 맑아졌어요.”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아래팔에 덧대 조인 천을 풀자 반짝이는 무언가가 탁자 위로 덩그러니 떨어졌다. 맑은 금속성의 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었다. 불귀산맥에서 서로에게만 의지하며 살아가던 아이들에게 ‘초윤’이 쥐여 주었던 최소한의 안전장치 중 하나, 은비녀였다.
머리카락도 짧게 자른 아이가 비녀만큼은 끝까지 지니고 있었구나. 감동인지 설움인지 모를 감정에 젖어 주먹만 쥐었다 펴는데, 코를 한 번 훌쩍인 사현이가 누나를 따라서 덩달아 주섬주섬 은렴을 꺼내 들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누군가 짓밟은 듯 찌그러진 채 버려져 있던 방울은 나름 우수하게 복구되어 반들반들 빛났다.
……아니, 너무 많이 만진 탓에 반질거릴 정도로 닳아 있었다.
“초월량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인간인지는 저도 조금 겪어서 알아요. 짧은 만남에 그쳤기에 그의 사제였던 스승님께서 어떤 삶을 사셨을지 더욱 짐작할 수 있고요. 거기에 마교가 어떤 식으로 사람을 세뇌하는지도 잘 알고, 스승님께서 계셨던 광명교와 마교의 연결점도 알게 되었어요. 그러면 그 당시 스승님의 판단력이 지금과 같지 않았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죠.”
“…….”
“사실 어떤 이유를 붙이든 저와 제 동생들에겐, 스승님의 제자들에겐 별 상관없지만. 설령 맨정신으로 그 모든 일을 해내셨어도 변함없을 테지만 스승님께서 너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단서를 다는 거예요.”
초윤은 결국 속으로 조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서른한 살이 된 사영이는 초윤보다도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제자들의 낯선 모습이 가슴 한구석을 기분 좋게 물들였다. 직접 키운 아이들이 어느 순간 내가 알던 때와 너무 달라져 있으면 쓸쓸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구나.
초윤은 작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한결 누그러진 사영이가 한 글자씩 박아 넣듯 또박또박 명료하게 말했다.
“스승님께서 어떤 생각으로 그런 주술을 만들어 내셨는지는 몰라도 백 년 전에 싹 폐기한 물건을 기어코 찾아 악용하는 인간들이 훨 악질이에요. 그래서 스승님께 큰 책임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든 끌어안고 싶으시다면 저희도 함께 그 무게를 나눠 받고 싶어요.”
“……하지만.”
“저희 잘못은 없다고요? 그럼 스승님도 잘못 없어요. 손가락질? 멀쩡하게 살아도 받게 되는 걸 왜 두려워하겠어요. 저희는 스승님께서 전부 떠맡은 채 휙 사라지시는 상황이 제일 무섭고 싫어요. 다신 그러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알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게 어제도 그제도 아니고 바로 아까 전인데.”
“알았다. 알았으니 눈물…….”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친지? 하나도 안 다쳤어요. 강시들이 저는 물론이고 제 단원들도, 같이 다니던 사람들도 전부 손가락 하나 안 댔다고요. 스승님께서 이렇게 될 줄 알고 주신 비녀 덕분에, 현아의 방울이랑 천아의 장명쇄 덕분에 저희 주변은 아무도 안 다쳤어요. 가까운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니 아무렴 됐다고 생각하는 저희야말로 비난받아야 마땅한 위선자 아닌가요? 그렇게 따지자면 바깥에서 영웅이란 소리를 듣고 있는 저희야말로 스승님께 제자로 남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잖아요.”
아니, 누그러졌다는 감상은 취소다. 따박따박 말하던 사영이는 억눌러 두었던 감정이 다시 북받친 듯 화를 내는 동시에 줄줄 울기 시작했다. 졸지에 밥상머리를 앞에 두고 다 큰 애를 또 울려 버린 초윤은 쩔쩔매며 사현이와 천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원래부터 눈물이 많았던 사현이는 지그시 턱에 힘을 준 채 고개를 돌려 버렸고, 천오는 예의 그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초윤을 지그시 지켜볼 뿐이었다.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다독여야 할지 몰라 당황하던 초윤은 순간 우뚝 굳었다. 쏟아지듯 들려온 말 중에서도 한 구절이 유독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비녀……? 이렇게 될 줄 알고 준 비녀? 비녀 때문에 강시가 손도 안 댔다고?
셋 중 아무도 안 다쳤다는 천오의 말이 그런 거였어? 그 비녀랑 방울에 그런 효과가 있었다고? 언제부터?
왜…… 왜?
어떻게?